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12화 (212/222)
  • 212화

    * * *

    다아트(Daath)

    이건 이야기의 억지점이라고 부르세. 수없이 반복했던 회귀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 여유를 즐기는 순간은 지금뿐이니까. 여기다가 나무를 심어보는 것은 어떠한가.

    봐, 피어나잖아. 마치 억지처럼. 대신 이런 곳에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의지처럼 우리의 이야기가 씨라도 남겠지. 혹여 우리의 의지를 이어받은 자가 훗날 이를 운명처럼, 필연처럼 닿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네.

    ―마르노프 바바바이가 서술하다.

    * * *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산맥 위로 떨어진 어느 사내가 있다. 이를 보며 바바비어가 입을 열었다.

    “……이런, 정말 성공할 줄은.”

    나머지 6명의 영웅이 그 사내를 둘러 생김새를 살펴보기 바쁘다. 하늘에서 떨어진 사내는 이들의 목소리 사이에서 제정신을 차리는 데 시간이 걸릴 듯하다.

    “이봐 대장, 이 녀석이 정말로 대장을 쓰러트릴 수 있는 거야? 뭔가 등신 같잖아.”

    날카로운 눈매, 전투 복장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휘황찬란한 갑옷. 예의 없는 말투가 습관처럼 단단히 베여있는 데크에던은 떨어진 사내의 손을 툭툭 쳤다.

    “그만하지, 이렇게 8번째 영웅이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역사에 남을 수 있게 되었어. 무례한 행동은 금물이라고.”

    사내의 손을 툭툭 까던 데크에던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데크에던을 발로 까버리는 긴 귀의 엘프 레니아단이었다.

    일순 균형을 잃고 쓰러진 데크에던은 레니아단을 향해 쏘아보기 바쁘다.

    “성질머리하고는……. 아무래도 결혼은 다시 생각해봐야겠어.”

    “미쳤나 봐, 누가 결혼해 준데?”

    마법사 셀로닌이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의 수염을 매만진다.

    생전 처음 보는, 아니 바바이어와 함께 수많은 회귀를 반복했음에도 보지 못했던 마법이 사내의 몸에 깃들어 있다.

    “이 문신, 굉장히 복잡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마법일세. 내가 만든 ‘회귀 저장소’와 비등할 정도로 복잡하군. 이 정도라면 못 해도 게이트 디 마나의 실력은 되어야 할 터.”

    넘어진 데크에던을 계속해서 신발로 짓누르던 레니아단이 셀로닌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슬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 곧 원정이 시작될 텐데.”

    “아니, 만들 이유가 없네. 이렇게 8번째 영웅이 나타났으니까. 더는 회귀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지.”

    셀로닌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저장소, 이는 1번째 영웅인 바바비어의 고유 능력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탄생한 장치였다. 회귀를 반복해도 기억을 유지하는 것은 바바비어뿐이다.

    “…우리가 성공한 것 같군, 베일리아.”

    하얀 머리의 고운 얼굴을 가진 사내는 바바비어의 어깨를 토닥였다. 많은 뜻을 의미하고 있었지만, 일종의 위로처럼 보이기도 했다.

    셀로닌은 창조주 격의 권능을 지닌 베일리아의 힘을 통해 회귀 지점을 구성했다.

    해골은 그들의 의지와 약소한 기억을 저장해두는 곳. 의지를 담을 수 있게끔 텅 비워진 7개의 골렘은 그런 것을 의미했다.

    “쳇, 짐꾼으로도 아주 유용한 녀석들이었는데, 그냥 만들어버리지 그래. 본 기능만 빼면 될 것 아니야.”

    “닥쳐라. 데크에던, 셀로닌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나 보군. 저 말은 곧 셀로닌이 만든 해골들이 이곳에 도착했다는 말이다.”

    “그래, 두 개의 지점을 만들 순 없네.”

    몇 번의 회귀를 반복하여도 베일리아의 힘을 통해 그들의 의지가 저장된 해골들은 서대륙에서 가장 작은 제국, 델타의 인적이 드문 숲에서 영원불멸하게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친구 말이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레니아단이 무릎을 꿇으며 사내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곤히 잠을 자고 있다.

    “엄한 남자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닥쳐, 데크에던.”

    “…으윽, 흥.”

    엎어져 있던 사내가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자욱한 그림자에 고개를 돌려 7명의 인물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봤다.

    “허, 일어나셨군. 나는 서대륙 데크에던을 건국한 위대한 황제이자,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마검사, 폰 데크에….”

    거만하게 자신을 소개하던 데크에던의 말을 끊으며, 원정대의 대장인 바바비어의 멱살을 쥐는 사내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내 직원들은 어디에 있지? 당장 내놓는 게 좋을 거야.”

    “……하하하, 직원?”

    별안간 멱살을 잡혀버린 바바비어는 화보단 구실 좋은 미소로 사내의 어깨를 두드렸다. 직원이라니, 8번째 영웅이 하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직원으로 삼은 7명의 해골, 분명 이곳으로 들어왔어.”

    “아, 골렘 녀석들을 말하는 것이군. 자네의 목적은 그것이 전부인가?”

    “그게 전부야, 그것만 찾으면 본래 세계에 있는 여관으로 돌아갈 거니까. 말썽을 부릴 생각도 없고.”

    “……아하하, 아하하!”

    이를 지켜보던 나머지 영웅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수첩에 메모하고 있던 베르히만이 ‘더는 적을 필요가 없어졌군요.’라는 말과 함께 기록을 멈췄다.

    데크에던이 배를 까뒤집으며 웃어 재끼자, 그 옆으로 조용히 서 있던 복면의 사내가 옅은 미소를 보였다. 7인의 영웅, 브렌트 잉크였다.

    “아하하, 여관, 여관이라니! 저 머저리 같은 녀석이 방금 여관이라고 했나?”

    우리들의 의지를 이어받은 8번째 영웅은 아무래도 여관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되었나 보다. 그리고 하필이면 골렘들이 그의 직원들이라니. 웃음 섞인 데크에던의 비아냥거림이 멈출 줄 몰랐다.

    “아하하, 우리들의 의지가 그렇게 사용되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네.”

    바바비어는 다시금 아서의 어깨를 두드렸다. 눈가에 약간의 눈물이 고였다.

    “웃어서 미안하네, 하지만…. 그래, 일단 무엇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

    그의 새빨간 동공은 마치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그 불꽃이 8번째 영웅을 또렷이 바라보고 있다.

    “……정말 미안하네. 그리고 고맙네.”

    사내는 마주한 바바비어를 똑같이 응시했다. 그 정적이 유지되자 사내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용서해주는 건가?”

    “선불입니다. 그래서 제 해골들이 어디 있는지 말해주시죠.”

    바바비어는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고개를 돌렸다. 6명의 영웅을 향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도움을 요청하자, 셀로닌이 사내에게 말했다.

    “……후불, 후불도 괜찮은가?”

    후불이라는 말에 사백 안을 뜨고는 셀로닌을 죽일 듯이 쏘아보는 사내, 이를 보며 또 한 번 웃음보가 터져버린 데크에던.

    “아하하, 셀로닌 저 새끼도 한 등신 하는 놈이네. 자기가 만든 골렘을 가져가겠다는데, 후불은 안 되냐고 묻잖아. ……응? 어이, 잠깐만 멈춰 레니아단, 진심은 아니겠지.”

    “그 입 좀 다물어라, 이 멍청하고! 예의 없고! 쓰레기 같은! 오만방자한! 데크에던!”

    레니에단이 데크에던을 마법으로 넘어트린 다음 사정없이 까버렸다.

    폭음과 단말마의 비명을 뒤로하며, 표정에서 근엄함이 묻어나는 사내는 말을 이어갔다. 농담 따먹기나 할 생각은 없다.

    “어째서 후불이죠?”

    셀로닌이 엉거주춤 고개를 돌려 당혹스러움을 보였다. 이런 느낌의 인물이 아니지만, 8번째 영웅 앞에서는 뭘 해도 죄를 짓는 기분이다. 하얀 머리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당신은 제 본체가 만든 인물인 것 같군요. 어째서 후불인지는 당신의 이름을 듣고 난 뒤에…….”

    “본체라니, 그건 또 무슨 뜻인지.”

    “당신을 이곳에 불러들인 창조주 ‘에피소드(일화)’는 제 모체입니다.”

    “…잠깐, 그쪽이 지금 ‘일화 아저씨’라는 말입니까?”

    아저씨. 그 단어가 미소년 같은 베일리아에 어울리지 않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폭소가 다시금 터졌다. 이번만큼은 레니아단도 참기가 어려운 것 같다.

    “아… 저씨?”

    “대충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건지. 아저씨는 소멸했을 텐데요.”

    “이곳에서만큼은 모체가 없어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로 설정되었으니까요. 이 베일리아는 모체의 마지막 창조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내는 이들을 다시 훑었다. 이야기를 엿들어 알고 있다. 바바비어만 회귀를 한 줄 알았더니, 7명 전원이 회귀했다니.

    게다가 모체에서 떨어진 또 하나의 창조주 격인 베일리아가, 7인의 영웅 중 하나다.

    ‘……그 양반, 뭐만 하면 골골대더니 이유가 있었네.’

    데크에던이 이들을 비집고 나왔다. 이어서 아서 앞으로 다가갔다. 분명 평범한 걸음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들의 책임자인 바바비어는 데크에던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데크에던 그만하….”

    쉬익, 찰나의 순간 데크에던의 검이 사내의 시선 앞으로 지나갔다. 이는 사내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의도적인 공격이다.

    속력을 높여주는 마법이 부여된 데크에던의 검. 일순이지만 그 빠르기는 베르히만의 고속 검과 동일하다 볼 수 있었다.

    툭.

    “……!”

    모두는 데크에던의 검이 사내 앞으로 스쳐 갔다고 생각했다. 사내가 손으로 막고 있다.

    속도에 반응하는 것도 놀라울뿐더러, 마법이 적용된 공격을 아무런 피해 없이 몸으로 받은 사내였다.

    분명 데크에던은 자신을 죽일 기세로 공격했다. 그 감은 수많은 전장을 통해서 몸에 밴 것으로 이들만큼 잘 알고 있는 사내다.

    그래서 그런지, 사내도 다소 당혹스러웠다.

    “그… 미안한데. 당신들에 대해 강함이 역사 속에서 너무 과장된 게 아닐까 싶은데.”

    이어지는 사내의 말은 7인의 영웅들을 모두 무색하게 만들었다.

    “뭐, 당신들의 의지니, 뭐니 온갖 개고생이란 개고생은 다 했습니다만, 원망은 안 해요.”

    “은퇴라 생각하고 시작했던 여관 운영, 근데 가장 필요한 직원들이 이곳으로 사라졌네요.”

    “그 사장은 도망간 직원들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당신네 이야기는 궁금하지도 않아요, 그저 내 직원들만 찾으면 되니까.”

    놀란 기색을 한참 동안 유지하던 데크에던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이윽고 사내를 향해 미소를 띠었다.

    “그래서, 그 사장의 이름은?”

    모두는 궁금했다.

    그래서 8번째 영웅의 이름은 뭘까. 우리들의 의지를 이은, 이 영웅의 이름은 뭘까.

    “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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