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 * *
“아템이라고 했던가, 아주 훌륭한 검이야. 오랜만에 이 대장장이가 힘을 좀 썼다네.”
브라운 아저씨는 아템과 함께 칼집을 건넸다. 녀석을 용사의 쉼터에 옮긴 이후로, 브라운은 장식해놓은 아템을 향해 훌륭한 검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똑같네요.”
“크하하, 무슨 소리인가 아서. 이런 형태의 검으로 집을 만들어보는 것은 처음이라네.”
아니, 똑같다. 번외세계에서 그가 만들어주었던 아템의 칼집과 오차 하나 없이 형태가 들어맞는다. 온전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아닙니다. 언제 봐도 아저씨의 실력이 좋다는 말이었어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브라운 아저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의 쑥스러움을 느꼈다. 굳이 ‘비 바잔’이라는 성을 넣어 달라 부탁하지 않아도, 칼집에는 그의 풀 네임이 각인되어있다.
“아서, 사실 걱정이 된다네.”
내 어깨를 두드리며 묘한 미소를 보이는 대장장이. 그 주변으로 많은 손님이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다.
“여보게, 아서. …사라진 그들을 따라, 자네가 저 엑스칼리버 속으로 들어가면 말이네. 마치 그대마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관을 메운다. 많은 이들의 깊은 한숨이.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이들의 표정을 굳게 했다. 렌은 시선을 돌리며 표정을 숨긴다.
저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 이 여관주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렌과 아이리스는 물론이며, 란베르크와 프리실라, 모든 길드원이 탄성을 내뱉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도움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건장한 쥬드가 그림자를 만들며 다가왔다. 사뭇 다른 그의 표정이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아서, 자네와 함께 발레포르의 탑을 가보았으니 잘 알고 있네, 자네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야. 그렇지?”
그 옆으로 레니가 울상을 지으며 다가왔다. 양팔로 회복제를 가득 안고 있다. 눈시울이 붉어진 마법사는 코흘리개처럼 훌쩍거린다.
“레니, 이 정도면 여관을 때려치우고 시장에서 장사해도 되겠어.”
여관 내부에서 다시금 웃음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장난에 평소와 같은 시끌벅적함을 낼 순 없어도, 팽팽한 분위기를 느슨하게 만드는 데 충분하다.
아황과 정령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관 일동은 그들에게 집중했다. 플로우들이 주위를 날아다니며 내 어깨에 앉는다.
“형님과 함께 고고학자의 도움을 받아, 결말과 가까운 과거를 들여다보는 하나안스를 만나고 왔다.”
“아서, 자네는 지금 멈추어버린 이야기로 향하는 것이지. 대장장이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쩌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여정을 떠나겠다는 자네는 해골들이 중요하다는 뜻이겠고.”
아황은 내 두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역시, 갈 건가.”
“물론입니다.”
주위를 한번 훑었다.
사람들, 늘 여관에 머무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은 내 이야기 속의 인물들. 용사의 쉼터를 오가는 많은 인연이 모여 있는 것이다.
“저기 사람들 좀 보세요. 길드원들은 검을 쥐는 것 보다, 웍을 쥐는 일이 많은지, 자상보다 화상이 많네요.”
“프리실라가 그들을 대신하기 위해 서빙을 하다 깨 먹은 접시만 벌써 백 개가 넘어가죠.”
“그리고 퍼플이 운영하는 마차는요. 타르툰이 명마 우르그를 길들였다고 생각했는데, 해골 마차의 승차감이 떨어졌다고 클레임이 들어오질 않나.”
타르툰은 고개를 숙였다. 사실이었다. 퍼플이 운영하던 마차는 만취한 손님들의 요람 같은 것이었다.
근래에 들어 경황이 없는 베를리도 함께였다. 고급스러운 의복, 비로소 황실의 품위를 보여주며 멋스럽게 서 있었다.
“그리고 베를리의 눈도 문제네요.”
그녀를 피곤하게 했던 세계의 유산이 다시금 발현했다. 아마도 저 엑스칼리버 속의 11번째 여정 때문이겠지. 그녀의 눈이 형형색색으로 요란하게 물들었다.
“그들이 정 없이 떠났다는 건, 분명히 이 악덕 사장의 잘못일 겁니다.”
결정했으니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
데려올 수 있는가, 혹은 반대거나.
나는 비로소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고급 마석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나 보죠.”
이윽고 여관에는 폭소가 터졌다.
그렇게까지 폭소할 일이 아니었지만, 이들은 분명 그렇게라도 웃어야만 이야기가 좋은 쪽으로 향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홉스, 내가 없는 동안 여관을 잘 부탁해. 네가 직원으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용사의 쉼터는 이렇게까지 대단해질 수 없었을 거야.”
“아, 물론 나머지 직원들도 마찬가지니까, 빌어먹을 해골들처럼 말썽 피우지 말고요.”
홉스가 나를 향해 시선을 올렸다.
그 옆으로 아이나와 프리실라가, 그리고 우리 여관의 웨이트리스이자, 바보 같은 용들.
이전보다 살가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싸움 따위는 걱정거리로 남지 않을 것이다. 여차하면 란베르크도 있으니까.
“맡겨주십시오. 여관의 모든 직원은 사장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래, 고마워 홉스.”
이후로 여정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 베를리의 안내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혹여 그곳에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닐지.
어느 정도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했다.
…아니, 부정적인 생각은 최대한 배제한다.
짝짝, 축 처져버린 정적인 분위기를 끝내기 위해 손뼉을 쳤다. 약간의 기합을 담아 해산을 알린다.
“자, 자 해산입니다. 모두 들어가자고요. 우리도 마감 준비는 해야 하니까.”
지금 부로, 11번째 여정을 향한 이 여관주인의 준비는 모두 끝났다.
* * *
평범한 아침을 맞이하듯, 침대에서 눈을 떴다. 오늘은 11번째 여정을 출발하는 날. 어제저녁, 여관 일동과 함께 긴 담소도 나누었다.
‘너무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
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버렸다.
아템과의 이야기는 물론, 조금 더 이전, 내가 지구에 살던 이야기까지. 이들은 믿을 수 없는 눈빛과 동시에 온갖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그중 제일 질문이 많았던 아이리스는 이미 지구라는 곳을 살았던 사람과 비견할 정도의 정보를 구축했다.
제 말로는 자기가 지구에 떨어져도 전투기 등등, 내가 장황하게 설명했던 현대 무기들만 조심하면 되겠단다.
‘현대 무기가 너를 조심해야겠지.’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었다. 어쩌면 이곳보다 살기 불편한 곳일지도 모르는데, 녀석들 대부분이 지구에 대한 환상이 컸다.
가뜩이나 절망을 토하는 구멍 때문에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나머지 지구에 대한 기억이 흐릿했는데, 녀석들 덕에 희미했던 기억이 조금씩 선명해지기도 했다.
“마스터.”
“……!”
헐레벌떡 침대에서 몸을 세워 고개를 돌린다. 렌이 조용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 오는 못된 버릇을 혼쭐낸 이후로 이 방에는 얼씬도 안 했는데.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 거야. 혹시 공략 방법을 바꿨다면, 그것도 틀렸어.”
“마스터를 깨우려고 왔는데, 평소와 달리 곤히 자고 계셔서 깨우질 못했어요. 하하.”
“……네가 언제 나보다 일찍 일어난 적이 있던가?”
렌은 자리에 앉은 채로 자신의 손을 매만졌다. 불안한 감정을 어렵사리 숨기는 느낌, 붉은 머리칼이 창을 넘어 들어오는 바람에 휘날린다.
“발프레를 만났어.”
그의 새끼용이었던 렌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떨리는 동공에서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것이 보였다.
“어제저녁에 이야기했던 번외세계에 대해서 말이야, 하지 못했던 이야기야. 발프레를 만났다고 말이지.”
“…….”
렌은 어제저녁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번외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쯤, 란베르크를 포함하여 만나지 못한 인물 중에는 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렌을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 것은 새빨간 거짓말로 당시에는 발프레에 관한 이야기가 쉽사리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네가 그녀에게 안식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마 이곳과 그곳이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라면 네 과거나 마찬가지겠지.”
“……그렇군요.”
나는 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것은 과거의 렌이라면 듣지 못할 발프레의 마지막 말이었다.
“렌, 내 새끼.”
“세계는 잘 돌아다녔니.”
“장해, 장하다.”
렌은 조금씩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늘 헤실헤실 웃고 다니던 녀석이, 가슴을 움켜쥐고서 조용히 울음을 참아냈다.
“앞으로, 잘할 수 있지?”
울음을 참고 있던 렌이 마음껏 울었으면 하니까, 잠깐이나마 새끼용으로 돌아간 붉은 머리의 작은 아이를 발프레처럼 안아준다.
‘…응, 걱정하지 마, 발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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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색만큼이나 눈시울이 붉어진 렌을 꼬집는 아이리스.
“틈만 나면 울어 재끼는구나, 렌.”
한두 번은 넘어가 주나 싶었는데. 꼬집힌 렌의 이마 위로, 서서히 열십자 혈관이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끔은 여성스러운 모습도 보여야 마스터가 관심을 두시죠. 멍청하고, 바보 같은 아이리스는 그런 것도 모르겠지만.”
콰당, 그들이 마당에 엎어져 육탄전을 벌이는 동안 엑스칼리버 앞으로 배웅을 나온 나머지 동료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제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셔야지요.”
고개를 끄덕거리며, 제자의 말에 수긍한다. 이제는 란베르크를 제자라고 부르기에도 무리가 있을 것이다.
가르쳐 준 것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녀석은 많은 발전을 일궈냈다. 이전에 하드웨어가 어쩌고 했던 말은 없던 것으로 하자.
“저 녀석들 또 싸울지도 모르니까. 잘 감시하라고 란베르크.”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차하면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겠습니다. 관심 밖이었는데 도전할 때도 되었으니까요. 물론 진심입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마법사들이자, 마계의 핵심 세력의 수장들, 게이트 디 마나, 그리고 그의 제자인 마리가 엑스칼리버 앞에 서 있다.
마나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이걸 받아 가도록, 도와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뭐라도 주고 보내야지. 쯧, 지금은 이전과 달리 신묘한 힘을 쓰지 못할 것 아니냐. 뭐랄까 머저리처럼.”
마리의 몸에 새겨져 있던 문신이 악수를 통해 내 몸으로 건너왔다. 기능을 알 수 없었다. 묘하게 불쾌한 느낌은 주인 때문인가.
“이게 뭡니까?”
“내가 가진 최대 전력이다. 마력으로 구성된 웬만한 마법들을 무시한다. 고뇌 끝에 탄생한 이 마법 덕에 EX등급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리고 주는 거 아니니까 착각 말고, 돌아오면 도로 내놔.”
마나의 문신이 완벽하게 피부에서 자리 잡힌다. 무사히 돌아오면 다시 돌려달라는 그의 말에 덧붙였다.
“그전에, 저쪽으로 넘어가도 괜찮을까요.”
“적어도 이 대마법사께서 사망하지 않는다면야. 이 문신은 사용자의 영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마법이다. 네 녀석에게 빌려줘도 내가 죽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아.”
좋네, 고개를 끄덕였다. 배웅을 나온 모든 동료를 바라본다. 하나씩 부르기엔 입만 아프다. 전부다, 용사의 쉼터 여관 일동이다.
“빌어먹을 해골들.”
11번째 여정, 그리고 신사 해골들이 무정하게 떠난 곳. 엑스칼리버의 나무문을 열었다.
“사장님 출동이다. 딱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