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09화 (209/222)

209화

* * *

어둠 속, 그 깊은 어둠 속을 비추는 란베르크의 마법이, 우리를 공포감으로 물들게 했던 실체를 밝혔다.

…――.

모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꽉 다문 입술과 정적은 언제 누가 저 모습을 보며, 자신의 감상을 말할지 기다리고자 하는 것이다.

“…살아, 있기는 한 것인지.”

첫 정적을 트이게 만든 것은 아이리스였다. 어떠한 감상보다는 과연 저것이 생존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어둠 속의 공간은 대강 아젤 제국의 연무장과 크기가 비슷했다. 그의 무의식이 이곳을 아젤 제국의 연무장과 비슷한 크기로 만들었을 확률이 높다.

“……우, 우웩!”

벌벌 떨고 있던 하나로스가 끝내 제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토사물을 뱉어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무릎에 손을 대고 일어나다 넘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렌은 고개를 흔들며 그가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도록 했다.

“흉측한 마력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하니, 살아 있나 본데. 모양은 저래도 말이지.”

아서의 말에 란베르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가문의 의지를 쥐었다.

베르히만, 아니 저 망령과의 거리는 여유로웠다. 긴장을 풀지 않고 조금씩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는 란베르크다.

「――끼에 …엑.」

어두운 공간을 유일하게 밝히는 마법 구체를 쥔 채, 조금씩 걸어간다. 그것의 실체가 자세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

앞장선 란베르크의 뒤로, 모두는 눈살을 찌푸렸다. 과연, 살아있는 것인가. 생존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생명체가 분명하다는 말인가.

란베르크는 마법 구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력 공급은 후방에 있는 아이리스가 맡는다.

“도대체, 어떻게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건데.”

아서가 얼굴을 찌푸리자, 뒤에 있던 렌이 덧붙였다. 약간의 경외와 약간의 안타까움이 섞여든다. 프리실라는 한숨과 함께 베르히만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7인의 영웅이라는 존재는, 정말이지 아무나 될 수 없는 건가 봐요. 마스터.”

바위 위, 어느 시체가 검을 바닥에 꽂은 채로 앉아있다. 계속 저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독한 시체 냄새가 물씬 올라와야 했다. 그게 곧 정상적인 생명체의 부패라고 볼 수 있으니.

그러나 코를 찌르는 날카로운 썩은 내음도, 징그럽게 주위를 알짱거리는 구더기도 없다.

그저 그 옆에는 낡아빠진 수첩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조금씩 앞으로, 한 걸음, 걸음마다 집중을 잃지 않는 란베르크. 시선이 베르히만으로 움직인다. 빠짝 말라비틀어진 몸, 착용한 경갑은 녹슬다 못해 으스러질 것 같다.

‘그런데도, 흉측한 마력이 남아있다.’

모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베르히만은 이 공간을 오랜 세월 동안 오로지 숨만 쉬고도 생존할 수 있을, 자신으로부터 마력 순환이 가능한 그런 환경을 조성했다.

오싹한, 피부를 쭈뼛하게 만드는 이 공간의 밀도 높은 마력은 결국 베르히만으로부터 나왔다는 것.

‘그 마력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을 봤을 때, 분명 여력이 남아있다.’

아서가 란베르크 옆으로 붙어 함께 걸어갔다. 베르히만과의 거리는 대략 여관 마당에서 여관 입구까지.

…―파직.

‘…무언가 막고 있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던 아서가, 투명 벽에 부딪힌 것처럼 뒤로 밀렸다. 이를 보았던 란베르크는 아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혼자서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란베르크는 착용하고 있던 코트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이어서 그 속에 착용하고 있던 경갑을 벗어, 무정하게 바닥으로 던져버린다.

“…란베르크 선생! 그래도 갑옷은 착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갑옷을 착용하는 것은 근접전을 비롯해 모든 전투에서 생존력을 높여주는 기본적인 수단.

그렇게 란베르크가 길드원에게 교육하기도 했다. 행동이 다른 란베르크의 모습을 프리실라는 이해하지 못했다.

란베르크는 고개를 흔들며, 프리실라에게 말했다. 눈빛은 여전히 냉정하고, 냉철하다.

“네게 마지막 교육을 해주지 프리실라.”

두 손으로부터 푸르른 마력의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강화되는 근섬유와 신경계 때문에 란베르크의 사방으로 날카로운 기운이 일렁거린다.

“단 일격에 끝나는 싸움이 있지, 있을 수는 없겠지만, 예를 들어 실전에 가까운 선생님과 나의 전투라던가.”

아서를 바라보는 란베르크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아서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됐어, 퇴물을 너무 높여주지 마’라고 덧붙인다.

“저 썩어버린 영웅과 싸우는 것은, 최소 선생님과 비슷한 수준으로 봐야 한다. 게다가 저 녀석이 선생님처럼 봐줄 것 같진 않으니까.”

“……그저 일격에 끝내겠다는 소리군, 선생.”

“그래, 몸에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떼어낸다. 이곳에 남자들밖에 없었더라면 전라로 덤벼들었을지도 모르는 부분이고.”

“하하, 아하하, 알몸이라. ……진심이잖아.”

란베르크가 투명 벽으로 들어간다. 필연적인 전투. 아서를 튕겨내는 것과 달리, 아무런 방해물 없이 평범하게 걸어 들어간 느낌이다.

“움직이지도 않는 시체를 베라고 세계의 유산이 나타난 건 아닐 테니까, 베르히만.”

란베르크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시체였다.

「――끼엑.」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고, 시체라고도 할 수 없고, 오로지 수첩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만 남아 있군. 분명 옳은 이가 가지러 왔는데도.”

칼집과 칼날 사이 밀집된 마력, 란베르크의 오른손이 손잡이에 닿는다.

―.

피어오르는 선혈이 란베르크의 전방, 오른쪽 어깨와 쇄골 사이로 터졌다.

칼집과 칼날 사이에 밀집된 마력을 읽고, 손잡이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날아온 베르히만의 검강.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강렬한 살의를 느낀 아이리스와 렌이 마력으로 란베르크의 몸을 밀어주지 않았더라면.

‘…죽었겠군.’

숨을 가다듬는 검객, 지금까지의 길을 떠올린다.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으로 휘둘렀던 칼날을 떠올린다.

“렌, 아이리스. 마력을 공급해야 한다. 최소한 성체까지 성장한 백 마리의 용을 죽인다 생각해.”

발끝으로부터 끌어 올린 마력을 정갈하게 정리해간다. 심장으로부터 터져나가는 짙은 농도의 마력을 온 신경계로 밀어 넣어, 필요 이상의 감각을 깨운다.

“저 녀석, 가속 물약도 없이.”

아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란베르크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화학물질을 넣지 않았다. 마력의 이물감을 느끼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저 멀리서 두 마리의 용으로부터 나오는 마력이 란베르크에게 흡수된다.

이마에 혈관이, 팔뚝에 혈관이, 짙은 농도로 넘실거리는 마력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정갈하게 다듬는다.

“가문의 의지.”

“이는 우리 가문을 상징하는 것.”

“최고가 될 순 없었지만, 최고의 길을 걷겠다는 아버지의 의지, 그리고 나의 의지.”

“늘 시대에 최고가 될 수 없었던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말해주는 신념이다.”

란베르크가 자세를 잡았다.

정적 속에 정적, 베르히만과 란베르크는 서로를 베기 위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천천히 손은 가문의 의지로 향한다.

―.

짙은 농도의 마력이 공간에 잠시 머문다.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했지만, 일격은 끝났다.

밀집된 마력을 느끼지도 못할 순간을 만들어, 란베르크가 베르히만을 재현한다.

“그러니, 이제.”

마법 구체가 터져 사방을 하얗게 만든다.

“불세출의 칼날이라는 그 이름을.”

란베르크의 오른 눈에서 그 아래로 쭉, 강렬하게 선혈이 터졌다. 그 뒤로 일격의 잔재가 쾌속으로 빠져나간다.

―툭.

정적 속에서 경쾌한 소리가 내부를 울린다. 이는 누군가의 목이 떨어졌음을 암시했다.

불쾌하면서도, 승부를 판단 내리는 유일한 소리에 침을 삼키는 프리실라.

“두고 떠나라.”

목이 매정하게 바닥을 구른다.

모두가 란베르크의 흐리멍덩한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적이 이어진다.

란베르크. 이제는 그 이름 앞에 불세출의 칼날이라는 문장을 붙여야 마땅하다.

* * *

―베르히만 두 번째 수첩, 트라튼에서 中

긴 세월이 흘렀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런 기록을 두 번째 수첩에 적어도 될는지 모르겠다만, 훗날 이 기록을 보게 될 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몸 안의 마력과 이곳의 마력을 적절히 순환 시켜 긴 시간 동안 버텨왔다. 하지만 이 기록을 발견하기 위해 찾아올 자는 아직도 멀었는지. 그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금 의식을 잃어가는 중이다.

생물에게 당연한 이치겠지만, 나는 현재 죽어가는 것이다.

다만 이 기록을 가져서는 안 될 자가 찾아온다면 내 껍데기가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르겠지. 문제는 그것이다.

과연 내 본능이 옳은 자와 잘못된 자를 구별할 수 있는가. 혹여 옳은 자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 베르히만은 처음으로 두렵다.

죽음보다는 우리들의 진정한 결말이 담긴, 아니, 원정대의 진실이 있는 이 기록이 영원히 사라져 없는 것이 되어버릴까 봐.

하지만 방법은 없을 터이다. 이 기록을 읽게 된다면 그대는 성공한 것이고, 우리를 이끌었던 대장께서는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 않을 이유가 있다면, 그대는 옳은 자가 아니라는 소리, 차라리 함께 사라지는 것이 사계에는 이득인 셈이다.

구구절절, 말이 많았군.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려는 것인데, 만약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면 전해주길 바란다.

―드사덴 아젤.

나를 칙칙한 그늘에서 끄집어내 주신, 훌륭하고, 존경하는 주군께 전해 주었으면 한다.

나의 주군께.

평안하셨습니까, 한 시절 주군의 검이었던 베르히만이 올립니다.

기껏 어렵게 키워 놓은 검사가 원정대로 들어가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

그래도 이 검객의 의지를 이해해주시는 넓은 아량에, 늘 당신이 향한 곳으로 몸을 틀어 고마움을 표하고는 했습니다.

닿았으면 좋았으련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때 주군께서 물어보셨지만, 쉬이 대답을 드리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어쩌면 주군께서는 이 검객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통한다면 그때처럼 고개를 끄덕여주시고, 웃어주십시오.

주군이 바라던 2세께서 언젠간 이 사계에 태어난다면 말입니다.

주군과 함께 수많은 대륙을 넘나들며 보았던 수많은 검 중에, 너무나도 미려하여 눈을 떼지 못했던 그 검…….

모르딕, 모르딕이 어떻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