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08화 (208/222)
  • 208화

    * * *

    [ 남대륙 / 드래곤 길드 부유선 ]

    하나안스의 예언을 통해 만들어진 지도가 가리키는 곳. 트라튼 유적으로 향하는 부유선이 남대륙 아이리스 해안을 넘는다.

    검을 연삭하는 프리실라, 외부 난간에 기대어 사색에 잠긴 란베르크. 아이리스와 렌은 용의 모습으로 사방을 날아다니며 트라튼 유적을 찾았다.

    한참을 날아다니던 용들이 부유선 위로 인간의 형태를 만들며 착지한다.

    “고생했다. 렌.”

    “하하, 별말씀을요.”

    “특별하다 싶은 곳이 있던가, 아이리스.”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들어온 것이 없다. 꽤 답답한 표정이구나, 란베르크.”

    “나도 조금은 긴장한 모양이지.”

    부유선 내부에서는 아서와 하나로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나로스는 이들이 트라튼 유적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안내를 멈추지 않겠다며 부유선에 함께 오른 것이다.

    “아서께서도 이달리브와 같은 간편한 도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막상 부유선에 함께 올라도 도움을 드리질 못하니. …죄송합니다.”

    그는 이곳까지 완벽히 안내했다. 하나안스와 월키스가 만든 지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하나로스뿐이다. 아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충분히 감사해.”

    이달리브, 이 세계의 주연에게는 여정의 길을 안내할 지침서와도 같은 것. 하지만 아서에게는 그런 지침서가 없다.

    번외세계의 여정을 도와준 베를리는 모든 것을 안내할 지침이라기보다는 적당히 목적지를 가리키는 나침반에 가까웠다.

    “지금까지의 주연들과 달리, 나는 일화로부터 탄생한 인물이니까. 이달리브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어.”

    쓸쓸한 표정을 짓는 하나로스가 이상하다. 이전부터 이달리브 이야기가 나오면 좀처럼 우울한 표정을 숨기기 어려워했다.

    그 속을 굳이 뒤집을 필요는 없었지만, 이유를 알아야 위로라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꼭 이달리브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굳어지는 것 같네.”

    “…하하, 저희 아버지께서는 사계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정교의 묵시록을 복제하시고, 도주 끝에 돌아가셨습니다. 괜히 우울한 이야기가 되었을까요.”

    어느 칼럼, 「이달리브 묵시록 ‘사라진 역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中에는 묵시록에 대한 비판이 가득하다. 첫 문단이 뚜렷하게 기억한다.

    “…성유물을 무단으로 복제했다는 그 학자가. 하나안스의 아들이자, 하나로스의 아버지셨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정교로 침투하여 성유물을 무단으로 복제한 학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페지르에게 잡혀 처형당했다.

    “이달리브는 모든 역사와 세계에 나타날 비극이 기록되어 있죠. 세계가 그로부터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정교의 입장과 달리, 학자였던 아버지께서는 인류가 진실을 마주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 사라진 역사를 알고 계셨기에. 7인의 영웅들, 그들의 역사가 이달리브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말이죠.”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나로스는 서서히 얼굴을 들어 올리며 아서의 눈을 직시했다.

    “그 공백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인류에게 알려야만 한다던 아버지께서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결국 복제본을 만드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달리브 복제본, 이가 항간에 퍼졌던 시기에 사계의 모든 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무엇보다 7인의 영웅들로부터 탄생한 희망이 이달리브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분을 터트렸던 인류였다.

    “하물며, 이달리브는 정교의 물건이 아니니, 어떤 이유로 7인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누락되었는지 정교도 해명할 방도가 없었을 겁니다.”

    사계의 모든 흐름이 들어있는 책, 이달리브 묵시록. 그 속에서 7인의 영웅들이 사라져야만 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그들이 존재할 이유가 사라졌으니, 바바비어는 사계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 다음 시대에 기회를 피어나게 한 것입니다.”

    아서는 팔짱을 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게 나라는 소리잖아.”

    “감사합니다. 덕분에 사계는 정말이지 평화로워졌으니까요.”

    “대신, 일 잘하는 내 해골 직원들이 몽땅 사라지게 되었지만 말이야.”

    조용히 부유선 내부로 들어온 란베르크가 아서에게 말했다.

    “선생님, 아무래도 도착한 것 같습니다. 트라튼 유적으로 추측되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이야기는 비극에서 벗어나 모쪼록 평화로워졌으니. 이제는 어느 여관주인을 귀찮게 만든 일곱 명의 머저리들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가 왔다.

    “좋아, 가자.”

    * * *

    [ 남대륙 / 트라튼 유적 ]

    트라튼 유적이라는 곳은 평범한 방법으로 찾는다. 이는 어려운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산맥에 거대하게 돋아난 나무들의 잎사귀가, 그 아래, 깊숙이 숨어있는 원형의 공간을 덮어 가리고 있었다.

    부유선이 아래로 내려가기에는 다소 힘들 것 같아, 그나마 평지로 보이는 곳에 부유선을 착륙한다.

    프리실라, 란베르크, 아이리스, 렌을 제외한 드래곤 길드의 일원들은 현재 용사의 쉼터를 운영 중인 상태. 프리실라가 말했다.

    “부유선에 남는 인원 없이 함께 간다. 어차피 모두가 그렇게 할 생각이겠지만, 하하!”

    원형의 공간은 연무장과 유사한 분위기를 풍겼다. 크기는 어림잡아 델타 성채 내부에 있는 연무장보다 세 배는 크다.

    “이 넓은 곳을 거대한 나무들이 가리고 있으니, 찾기가 어려울 법도 하지.”

    새하얀 돌로 만들어진 바닥, 곳곳에 이끼가 듬성듬성하게 나 있다. 게다가 주인 없는 수많은 검이 박혀있었다.

    마치 사원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곳이 과연 트라튼이라는 곳이 맞을까. 의문을 품던 이들을 향해 주변을 살피며 입을 여는 하나로스였다.

    “아서, 이곳은 트라튼이 맞습니다. …이 수많은 검은 전부 베르히만의 검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예언으로 보셨던 곳과 상당히 닮아있어요.”

    란베르크는 바닥에 오랫동안 박혀, 세월과 함께 녹슬어간 검들을 매만졌다.

    “하나로스, 이것이 베르히만의 검이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차원이 융합하여 같은 모양새의 검을 수십 개까지 복제할 수 있다는 베르히만의 검.

    적당히 명검으로 불리는 것이 최선인, 이름 없는 검을 쥐고서 원정대에 입성한 베르히만.

    셀로닌은 베르히만이 사용하는 검에다 직접 고유 복제라는 마법을 내재해주고는, 이름으로 ‘트라튼’을 붙여주었다.

    “트라튼은 고대 아칸어로 ‘젊은 검객’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젊은 검객, 아니 트라튼의 본체는….”

    “이곳 어딘가에 있을 베르히만이 들고 있겠군요, 하나로스.”

    “명답입니다.”

    원형으로 이루어진 바닥의 중심부로 걸어가는 란베르크. 그곳에 꽂혀있는 검을 뽑자, 지면이 묵직한 굉음을 터트렸다.

    “선생님,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란베르크 앞으로 바닥의 일부가 열렸다.

    그 안으로 쭉 이어지는 통로. 그저 흙을 파놓았다는 느낌이 전부인 것을 보아, 숨을 곳을 위한 것이니 멋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베르히만은 마법 장치를 구성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봅니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는 검을 예외로 모든 방면에서 뛰어났기에, 마치 바바비어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이죠.”

    통로를 따라 쭉 들어가자,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혼자서 전부 파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굴이었다.

    “마스터, 이 정도의 크기라면 던전 할머니 여관보다 두 배는 크겠어요.”

    “이거 참, 왕년에 삽질 좀 했나 보네.”

    란베르크는 어두운 공간을 밝히기 위해 간단한 생활 마법을 사용했다.

    손 위에 떠 오른 구체가 사방을 밝히자, 아이리스와 프리실라는 주변의 마력 유동을 살핀다.

    대부분이 순환되지 못한 마력이다.

    동굴을 조성하는 마력은 일반적으로 외부로 들어오는 마력을 통해 순환을 이룬다. 동굴 같은 곳에 마력의 농도가 짙은 종유석이 만들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곳에서 순환되지 못한 오래된 마력은 공기와 섞이지 못해,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내부의 마력이 조금씩 순환될 수 있는 것도, 저희가 이곳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네요.”

    “싸움밖에 할 줄 모르는 네 녀석치고는 뛰어난 해석이구나. 아하하하.”

    “아이리스, 원래 푸른 개체들은 맞아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게 특성인가요, 왜 자꾸 기어오르는지 모르겠네.”

    “흐, 흥!”

    이곳에 마력이 순환되지 못하는 까닭은 전부 베르히만의 의도였을 것이다.

    두 번째 수첩이 잘못된 주연이 아닌, 바바비어와 일화로부터 탄생한 주연에게 전달되어야 했다.

    그때를 위하여, 이곳에 꽁꽁 숨어들었으니 외부의 마력을 들여보낼 수 없다.

    이는 내부의 마력을 외부로 내보내는 것과도 같다. 평소와 달리 조용했던 프리실라가 별안간 외친다.

    “베르히만, 그는 진정한 전사다! 비르테리아 같은 새끼가 가져가지 못하게,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는 곳에서 숨은 것이지!”

    여전사는 근사한 표정과 함께 허공으로 꽉 쥔 주먹을 치켜든다.

    “이 기록을 마땅히 가져가야만 할 자, 그가 나타날 때까지 깡으로 버텨냈다는 말이군!”

    ―휘이익!

    강렬한 바람이 불었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바람이 불었던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다.

    쭉 이어지는 거대한 어둠, 저 끝에서 불어온 바람으로, 상당히 오래된 마력이 내재하여있다.

    “…….”

    모두가 아무 말 없이 어둠을 향해 바라볼 뿐이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짙은 농도의 마력으로, 분명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가면, 죽는다.

    피부를 쭈뼛하게 만드는 기운, 저곳에 베르히만이 있다. 전투 혈족의 피가 흐르는 붉은 용이 긴장한다. 저기서 불어오는 기운은 지금까지 느껴본 것들과 차원이 다르다.

    저 어둠에는, 마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의 규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가 있다.

    “뭐야, 안 갈 거야?”

    “선생님이 기다리신다.”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두 사내, 란베르크와 아서. 그리고 그 뒤를 질세라 따라붙는 프리실라. 어둠 속으로 모습이 사라진다.

    반쯤 혼절한 하나로스를 바라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렌은 그를 업고서 걸어갔다.

    아무래도 창백한 얼굴의 아이리스는 벌써 전의를 상실한 것 같다.

    “풉, 머리밖에 쓸 줄 모르는 푸른 용 씨. 싸움밖에 할 줄 모르는 붉은 용이 지켜줄게요. 얼른 따라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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