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07화 (207/222)
  • 207화

    * * *

    블헤이드 메인 란베르크.

    검을 다루는 위대한 명가 중, 블헤이드 메인의 종자로 태어난 이 아이는 지극히 소심했다. 작은 돌부리에 넘어지면 쉽게 우는 그런 아이였다.

    훗날 훌륭한 검객을 배출하는 본 가문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건만, 검이라도 쥐는 날에는 칠색 팔색을 하며 도망가는 그런 아이다.

    ‘뚝 그치고 일어나렴, 란베르크.’

    이 아이가 정녕 자르문의 아들이란 말인가. 블헤이드 메인을 들르는 검객들은 늘 아니꼬운 표정으로 혀를 차는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자르문 경, 란베르크 도련님이 또 훈련을 빼먹으시고 도망가셨더군요.’

    그 소심한 아이의 실수를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블헤이드 메인이라는 가문 앞에서 늘 아부나 아첨 따위를 일삼아왔던 귀족들.

    이를 기회라 생각하며 란베르크를 실패작으로 비유했다. 이는 블헤이드 메인과 같은 대열을 이루고자 했던 몇몇 검술 명가의 저급한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또다시 그런 소리를 입에 올렸다간, 이 자르문이 결코 그대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자르문은 가주이기 이전에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종자는 모르딕처럼 어릴 적부터 어른스러움을 타고난다고 하지만, 꼭 내 아이가 그렇게 될 필요는 없다.

    ‘란베르크, 그들이 하는 말을 신경 쓰지 말아라, 검을 쥐는 자는 약한 것보다 신념이 중요하다.’

    ‘지금 당장은 무섭고 두려울지도 모르는 일. 하물며 모르딕을 보고는 겁을 먹어도 상관없는 일이다.’

    ‘때가 되면, 네가 검을 쥐어야 할 이유가 생길 것이고. 검을 쥐게 된다면 강해져야 할 이유가 생길 것이다.’

    자르문은 어린 란베르크의 머리를 마음껏 쓰다듬어주었다. 검이 무서워도 아버지가 무서운 적 없었다. 강철끼리의 강렬한 마찰이 고막을 때려 공포가 몰아쳐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무서운 적 없었다.

    ‘란베르크, 그런데도 검을 쥐기 싫다면 쥐지 않아도 된단다. 그건 네 선택이니까.’

    * * *

    모르딕이 휘두른 목검에 맞아버린 탓에 멍이 잔뜩 들어버린 란베르크, 눈시울이 붉다.

    짠 내음을 풍기며 얼굴이 팅팅 부어올라 있었지만 지아비의 무릎에 앉아 옛이야기를 들으면 우는 얼굴도 미소를 감추기 힘들다.

    자르문은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했다. 유독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7인의 영웅들이다.

    “란베르크, 사계에서는 절대 넘을 수 없는 검이 있단다.”

    노튼 프리실라, 블헤이드 메인 자르문, 드사덴 아젤, 3인의 검성은 이미 사계에 알려진 위대한 검객. 그들은 명실상부 사계의 최강으로 알려져 있다.

    “하물며 그건, 드사덴 경도 모를 일이지.”

    사계에는 그 누구도 넘을 수 없는 검이 있었다. 그 누구도 이 사내를 검으로 넘지 못하리라 정해진 것처럼. 그는 그가 살던 시대의 검이라는 그 자체를 상징했다. 그리고 7인의 영웅이 있던 시대를 살았다.

    “7인의 영웅 베르히만. 이 아비도 불세출의 칼날이라 불리는 그 사내를 본 적이 있다.”

    “드사덴 경과 인연이 깊은 사내지. 아직은 란베르크 네가 태어나지 않을 때였다.”

    타국으로 팔려나갈 뻔했던 소년을 운명적으로 만난 드사덴은 그 소년의 재능을 보고 말았다. 그저 심심풀이에 불과했던 소년, 드사덴은 자신을 뛰어넘을 소년의 천부적인 재능까지는 읽지 못했다.

    소년의 세월은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을 폭발적으로 터트렸고, 끝내 아젤의 입에서 훌륭하다는 표현을 하게 했다.

    그의 곁을 지키는 충직한 검으로.

    완전한 수호 기사로 거듭난다.

    아젤 제국을 수호하는 검으로서 인정받은 뒤, 세월은 계속 흘러. 드사덴을 뛰어넘어버린 베르히만은 불세출의 칼날이라는 이명을 하사받는다.

    “란베르크, 너도 보았겠지만 드사덴 경은 절대로 누군가에게 ‘훌륭하다’는 표현을 할 사람이 아닐 테지. 얼마나 베르히만이 대단하지 감이 오느냐?”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란베르크, 이 역시 귀여운 맛이 있다. 자르문은 땀으로 엉겨 붙은 아들의 머리를 실컷 매만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더 강한걸요.”

    자르문은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환상은 모든 아이가 지니고 있는 것.

    이따금 ‘아버지는 왜 원정대가 아니셨어요?’라고 물어오는 란베르크에게 ‘그들이 이 아비보다 강하니까’라며 대답했던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3인의 검성 중에서도, 가장 약한 이 아비를 그렇게 말해주다니. 고마운걸, 역시 내 아들이구나.”

    란베르크는 자신이 동경하는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검객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3인의 검성이라, 떠들썩한 항간의 이야기 때문인지 웬만한 검객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지아비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란베르크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란베르크, 어찌 꿍한 표정을 하고 있느냐.”

    7인의 영웅만큼이나 인정받아야 마땅할 블헤이드 메인이라는 이름이, 자신이라는 불량품으로 인해서 격이 낮아지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란베르크는 늘 아버지를 동경했고, 아버지가 속한 이 가문을 동경했다. 헛소리에 불과할지라도, 소심한 이 아이는 지아비가 베르히만보다 강하다는 표현을 통해 자신만의 ‘가문의 의지’를 품었다.

    “그다음은, 원정대로서의 발탁이란다.”

    세계의 시작과 끝, 위기를 말해주는 정교의 성서 ‘이달리브’는 태초부터 존재한 미지의 물건이다.

    마력으로도 읽을 수 없되, 오로지 교황만 볼 수 있는 것. 그곳에는 7명의 이름과 함께, 그들이 어디로 향해야만 하는지 적혀있다.

    사계의 전체적인 조율을 위해 정교는 늘 앞장섰다. 그들은 사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그리고 이 역경을 이겨나갈 7명의 영웅을 소집했다.

    이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 절망을 토하는 구멍과 마력 전쟁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우리가 아직 희망이 있음을 말해주기 위해서란다.”

    그렇게 그들은 여정을 떠났고, 그렇게 마력 전쟁과 함께 절망을 토하는 구멍은 사라졌다.

    현세에 남아있는 절망들은 고대의 유적에 숨어들거나, 알 수 없는 영역에 잠들어 고대의 유적이 되거나, 인류를 비극으로 몰아세웠던 그들이 한참을 퇴보한다.

    “남아있는 절망들은, 7인의 영웅을 동경하며 매해 발전하는 모험가들의 몫이지.”

    사계의 역사를 우화로 정리해둔 책을 넘기자, ‘인류가 벌인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타났다. 자르문은 뜸을 들이다가 책을 덮는다.

    “아버지?”

    “언젠가 알게 될 이야기구나. 어린아이는 좋은 것만 봐도 아까울 터. 당장은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는 이야기란다.”

    인류가 벌인 전쟁. 그 이야기는 특별할 것이 없다. 최근에 나온 서적이다.

    아마 ‘아네스의 100일 전쟁’도 들어있을 것이고. 과연 어떤 신파로 우려냈을지. 보지 않아도 훤하다.

    서로의 마력을 빼앗아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마력 전쟁이 끝났음에도. 우리는 서로의 것을 빼앗기 위해 마력 전쟁만큼이나 싸웠다.

    당장은 읽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가뜩이나 생채기에도 우는 녀석이 어떤 감정을 품을지도 알 수 없다.

    란베르크를 번쩍 들어 올리는 자르문,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아들이 다시금 미소를 짓는다. 진정한 투쟁을 이해할 때가 되면, 그때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이 아비만큼 커지면, 그때가 되어 스스로 읽어보렴.”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는 무시를 받기에 십상이었던 란베르크. 사실은 숨기는 것이 있다.

    “있잖아. 모르딕. 요즘 등이 가려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그런 헛소리나 할 것 같으면 와서 목검이나 쥐시지.”

    연무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있는 란베르크. 근래에 들어서 검을 휘두르는 것에 겁이 없어졌음을 느끼는 모르딕이었다.

    모르딕은 바보 같은 소리나 해대는 란베르크의 머리를 쥐어박기 위해서 다가갔다.

    “또 때리려고?”

    “맞아, 이 애송이가 자꾸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아서 말이야.”

    녀석, 늘 느낀 것이 있지만 눈을 감지 않는다. 겁은 많지만, 겁을 느낀 대상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않았다.

    예를 들면 코에 붙은 벌레에도 온갖 난리를 부리는 울보지만, 두 눈을 뜨고 그 벌레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본다. 이는 마치 공포감을 유도하는 대상에게서 느끼는 호기심과도 같았다.

    공포의 대상은 자유로웠다.

    벌레, 사람, 짐승. ―그리고 검.

    마력을 담은 주먹을 허공으로 냅다 들어 올려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겁내는 란베르크. 자꾸만 자신의 등을 긁적이며 울상을 지었다.

    “에잇, 뭐가 그렇게 간지럽다고 긁어대는 거냐!”

    앉아있는 란베르크의 상의를 단숨에 들어 올리는 모르딕. 녀석이 자꾸만 긁어댔던 부위를 향해 시선을 옮긴다.

    “……?”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며칠 전 있었던 일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모르딕이 이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자르문 경이 돌아오면 직접 이야기해’라고 했다.

    고개를 들어 아버지의 미소를 바라본다. 몇 시간을 앉아있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아버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자르문.

    “마치 무언가를 숨기는 표정이구나. 음, 이 아비가 한 번 맞춰 볼까? 혹시 또 훈련을 빼먹었다면…….”

    아버지의 무릎에서 일어나 상의를 까 올리는 아들, 등에 나타난 문양을 향해 떨리는 동공을 감출 수 없는 아버지였다.

    * * *

    아서를 포함한 동료들은 란베르크가 까 올린 등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한여름에도 긴 옷을 입은 채, 몸을 꽁꽁 싸매기 바빴던 란베르크. 그 행동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제가 아무래도 따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그때부터 정해진 숙명. 아무래도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필연이겠군요.”

    “……그래, 네 등을 보고 났더니 제자의 도움이 무조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어.”

    아황이 말했다. 세계의 유산은 우리가 사는 이야기에서 낱장 사이에 끼워두는 책갈피와도 같은 것.

    세계를 움직이게 만드는 수많은 이야기 중, 어느 중요한 역할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주변으로 나타나는 이것들로 인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까 올린 등을 내리기 전, 그가 가진 세계의 유산을 다시 훑었다. 실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아서였다.

    ―베르히만을 베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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