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04화 (204/222)
  • 204화

    * * *

    [ 서대륙 델타 / 용사의 쉼터 ]

    평화롭다. 너무 평화로워서 문제다.

    델타는 다시 건실한 제국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거기다 외곽에 있는 레르마을도 베를리의 추진으로 인하여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기에, 근래에 들어 프리실라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질 줄 몰랐다.

    ‘녀석들만 있으면 완벽한데.’

    한숨을 내쉬며 조금씩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홀을 바라봤다. 해골 녀석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어렵진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아직도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도 연맹을 다녀오고 나서, 결과적으로 ‘노바인 하나안스’를 찾아야 한다는 해답이 떨어졌고. 아이나와 아이리스는 각종 정보를 수집하려고 노력했지만 정확한 출처가 없어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결국엔 당장 해결할 수 있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문제는 사람들에게서 점점 7인의 영웅들이 잊혀간다는 것.

    “흠, 어디 보자. 저 그림이 언제부터 있었더라. 7인의 영웅? 아서는 이걸 언제 걸어 놓은 거지?”

    쥬드까지 거장 ‘노바인’의 마스터피스 ‘7인의 영웅’을 몰라봤다. 옆에 앉아있던 브라운은 ‘무슨 소리인가 자네, 7인의 영웅을 모른다니. 헛소리가 나날이 느는군, 크하하!’라고 웃었지만, 쥬드는 정말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처럼 7인의 영웅들을 여전히 기억해내는 자들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로 나뉘었다. 예를 들어 아이리스나 브라운의 경우, 7인의 영웅에 대한 지식이 아직 빠삭하다.

    어느새 옆에 나타난 아이리스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사람들을 바라봤다.

    “임자야, 이에 대해서 짐이 추측하는바, 아무래도 7인의 영웅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내재하여있는가에 따라, 기억이 오래 머무는 것 같구나.”

    손님들은 아이리스와 달리 7인의 영웅이라는 전설에 관심은 있었지만, 특별히 공부를 자처한 것은 아니었다. 늘 고고학자 월키스의 서적을 바라보던 아이리스와는 달랐다.

    “짐도 조금씩 그들에 대해 가물가물해지거늘, 얼른 해결되어야 할 텐데. 이러다가 해골 녀석들마저 기억하지 못하면 큰일이니까.”

    “나도 그게 걱정이야. 아이리스.”

    아이리스는 7인의 영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예측하지 못했던, 고고학자 월키스의 서적에도 기재되지 않았던 정보에 대해서.

    “현자 하나안스의 성이 ‘노바인’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게다가 그 현자가 그린 그림이 이 작품이라는 것도 짐은 알 수 없었지.”

    ―운명은 언제나 이야기의 다리를 놓아주지. 노바인의 그림 하단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건 그렇고, 임자야.”

    “응?”

    “등짝, …등짝을 보자!”

    아이리스가 내 상의를 걷어 올리더니, 등 뒤에 새겨진 ‘8번째 영웅’을 바라봤다.

    평소 같았으면 윽박질렀겠지만, 녀석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내 등에 새겨진 세계의 유산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관자놀이를 누르는 선에서 그친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임자는 저 그림 속에 후드를 뒤집어쓴 8번째 사내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 그 부분에 대해서 연관성을 찾아보려 노력하고 있었지. 근데 도저히 잡히는 게 없어. 나는 저들을 만나본 적도 없으니까.”

    지극히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나는 그들을 알지 못하고, 그들 또한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아템과 나는 그들을 위한 대체품으로 일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그들이 주어진 일을 끝내지 않았다는 것.

    “도리어 피해를 본 쪽은 나였으니까.”

    “그래, 짐은 잘 알고 있노라. 임자는 그들과의 관계가 불편할 수밖에.”

    아이리스와 이야기를 이어가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동무를 걸었다. 혹여 렌인가 싶었지만, 렌은 웨라에게 서빙을 하고 있었다.

    아이리스가 뭐라도 씹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서 군.”

    “…빌어먹을 정령왕의 목소리네.”

    고개를 돌려보니 정령왕 오베론을 포함하여, 로아, 아와가 있다. 아무래도 놀러 온 모양이었다. 그 뒤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누군가가 있다.

    “오랜만이구나, 아서.”

    “아황, 당신이 여길 왜?”

    아황이 용사의 쉼터에 방문했다.

    용사의 쉼터 외부를 바라보니, 광귀 두 마리가 정령들과 함께 앉아 쉬고 있다.

    “갑자기 손님들을 잡아먹는다던가…….”

    “그런 일은 없네. 이거 참.”

    고개를 흔들며 메인테이블에 앉는 아황, 정령왕과 모쪼록 비슷한 생김새라 누가 누군지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었다.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나는 ‘결말과 가장 가까운 미래’를 들여다보는 예언자였다.”

    아황은 몸을 돌려 7인의 영웅을 바라봤다. 그림, 명화 속에 존재하는 영웅들을 하나하나 멀리서 훑는다. 그리고 그의 눈이 로브를 뒤집어쓴 8번째 남자에서 멈춘다.

    “일전에 나는 ‘결말과 가장 가까운 과거’를 들여다보는 예언자는 죽었다고 했었지.”

    “여전히 나는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결말과 가장 가까운 미래가 또 한 번 바뀌었다는 것.”

    아이리스는 아황의 말에 집중했다.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눈꺼풀은 천천히 감겼다가 뜬 채로 유지된다.

    “아마도 그가 살아있는 것 같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본래 숨을 거두어야 했던 이가 숨을 거두지 않고 존재한다는 말이지.”

    아황은 어떠한 이변으로 인해, 거기다가 그 이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는 늘 나였다고 덧붙였다.

    “다소 까마득했던 멸망이 그대와의 만남으로부터 당겨졌고, 그로부터 사계의 멸망은 진행되어야 했지만, 진행되지 않았다.”

    “도리어 진행되기는커녕, 자네의 활약으로 사라지고 말았지.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네.”

    평화는 계속해서 유지될 심산이다. 그렇게 말하는 아황과 정령왕이었다. 인류로부터 탄생하는 비극은 언제든 존재하는 것. 하지만 인류로부터 탄생한 비극이기 때문에, 인류로 인해 언제나 희극이 될 수 있다.

    즉, 정해진 비극은 더는 존재하지 않으니, 이제는 실로 평화다운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게 손뼉을 치는 정령왕. 아황은 제 형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대에게 어느 나무에 관해서 설명해 준 적이 있다. 그리고 자네는 그 나무를 완성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 사계의 멸망을 막았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황이 말하고 있는 나무는 미지의 나무를 의미했다.

    “11번째 원형이 있더군. 원래라면 10개의 원형이 전부였는데 말이지.”

    아황은 내 호흡을 끊더니 자신의 검지를 세워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쯧, 쯧’같은 시늉은 덤이었다.

    “내가 볼 때는, 그리 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자네의 형태가 지금도 ‘신의 기계적 장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예언을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 보이지 않았던 11번째 원형이 나타났다는 의미는, 결과적으로 자네가 그 원형을 얻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원인과 결과는 함께 만들어진다. 그것에 저항하는 것은 그 존재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그렇게 만들어졌다.”

    “자네는 더는 개별적인 존재라고 할 수 없으니, 이제는 ‘우리’에 속하게 되는 것이고, 더군다나 세계의 유산이라는 ‘책갈피’를 쥐고 있으니…….”

    “자연스레, 자네의 이야기는 그곳을 따라 움직일 테지.”

    * * *

    이 여관주인 못지않게 정령왕을 혐오하는 아황은 보기보다 술이 약했다.

    케피탄 맥주를 마시고서 제 형과 어깨동무를 하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모습. 역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기다리라는 소리잖아.’

    아황이 근사하게 말을 늘어놓았지만, 결국 기다려보라는 뜻이었다. 인내라면 부족한 게 없을 여관주인도, 해골 녀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짧다면 짧았지만, 길었다면 길었던 시간을 녀석들과 함께 보냈다. 달그락거리는 해골들의 상징적인 소리는 여관에서 마땅히 울려야 할 기분 좋은 것 중 하나였다.

    “……플로, 플로.”

    “너희들도 속상하구나.”

    “…플로.”

    부족한 케피탄 맥주를 가져오기 위해서, 플로우들이 있는 주류창고를 들락날락하는 해골 신사들, 플로우에게 매번 손짓으로 인사하거나 놀아주는 것은 늘 행하던 습관이었다.

    “마스터, 요즘 여관의 분위기가 계속 오락가락하네요. ……역시, 그들이 없기 때문일까요. 뭔가 중요한 부품 하나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간 느낌이에요.”

    “그런 것을 보며,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매했던 과거와 다리, 짐도 현재 그곳이 쓰라린 기분은 녀석들 때문이겠지.”

    그러지 않아도 우중충한 여관에 녀석들까지 이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 곤란하다. 나는 두 마리의 용을 달래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녀석들이 다시 움직이게 해야지. 바빠 죽겠는데, 곤란하게 파업이나 하고 말이야. 해결하고 나면 아주 평생을 이곳에서 일하게 해주지.”

    렌과 아이리스는 피식하고 웃었다.

    잇따라 손님을 알리는 여관 문에 달린 종이 울린다. 울리는 방식이 단골들과 다른 것을 보아 새로 찾아온 손님일 확률이 높다. 열리는 문을 향해 인사하는 렌과 아이리스였다.

    “어서 오십시오. 용사의 쉼터입니다!”

    “어서 오거라, 용사의 쉼터…… 에.”

    당황한 표정,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더 놀란 표정이었다. 아이리스가 이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런 표정이었다.

    “…고, 고고, …고고!”

    “고고?”

    “…고, 고고, 학자 월키스!!”

    고고학자 월키스.

    그 이름은 아이리스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아이리스 단어’ 중 하나로, 녀석이 매일같이 읽는 어느 서적의 필자다.

    사계의 고대(古代) 및 자연을 연구하는데 모든 삶을 할애해온 남자. 푸른 용에게 인류의 지식을 뿌리내려 준 자.

    월키스의 뒤로, 한 사내가 비장하게 들어왔다. 왠지 안면이 있는 사내였다. 그 사내는 월키스와 함께 여관 홀로 입장하더니, 기어이 내게 다가왔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때의 빚을 갚으러 왔습니다.”

    “빚이라니요?”

    “기억이 어려우시군요. 그때의 저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니. 이걸 보시면 기억하실까요.”

    사내는 ‘용사의 쉼터 탄산수 무료 쿠폰’을 보였다. 꼬깃꼬깃, 발행한 지 최소 일 년을 되었을 법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탄산수 쿠폰을 뿌린 것이 한두 개가 아니라….”

    월키스는 고개를 숙였다. 흔히 감사의 표현을 보이는 것이다. 도대체 왜?

    “당신을 만난 곳은 동대륙 아벨기우스 섬.”

    “저를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제 할아버지를 살리기는커녕, 그곳에서 쓸쓸하게 송장으로 남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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