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03화 (203/222)
  • 203화

    * * *

    마도 연맹에 들어가기 위해서 마리에게 빌린 팔찌. 이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는 마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문장을 뱉어야 했다.

    번외세계의 마나가 말했다. 암호를 정하자고.

    ‘그래, 그쪽에서 나를 만날 땐 이 말을 앞에 붙여라, 이 마도 연맹의 수장인 게이트 디 마나는….’

    ―검은색 속옷밖에 입지 않아.

    동공을 크게 뜨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마나뿐만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마력 유동을 일으키던 붉은 용의 기운이 일순 식어버린다.

    “…마, 마스터?”

    “……그, 그게.”

    렌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호감도가 떨어진 것인가. 이윽고 분홍 머리 사내, 아니 게이트 디 마나에게서 폭소 소리가 터졌다. 사방이 온통 그의 마력이었건만, 금세 수그러든다.

    “근데, 네 녀석이 그걸 어떻게 안 거지?”

    “……번외세계에 있던 당신이 암호라고 알려줬으니까.”

    “내가 검은색 속옷밖에 입지 않는다는 건, 암, 사계에 그 어떤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

    “…일단 들어갑시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서 하도록 하고요.”

    그렇게 게이트 디 마나를 따라서 마도 연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기나긴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성질 급한 대마법사가 계속해서 물어왔다. 심지어 ‘이제는 평행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터’라고, 대마법사다운 예리한 촉을 숨기지 않는다.

    번외세계에 대한 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렌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게이트 디 마나는 ‘번외세계’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아까와는 다르게 다소 진지한 태도를 유지했다.

    ‘피곤한 여행을 해왔군, 게다가 나를 찾아올 수 있었다는 말은, 네 녀석이 사계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마나의 방으로 도착하자, 렌은 보자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보자기 속에서 ‘달그락’하고 뼈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나는 렌이 풀고 있던 보자기를 바라보며 약간의 부정이 섞인 ‘흠’ 같은 외마디를 던졌다.

    “이미 죽은 자를 되살리는 것은 불가하다. 혹여 나와 계약되어 있는 마법사라고 한들, 긴 시간 동안 망자로 남은 이들은 되살릴 수는 없다. 인과에서 완전히 벗어난 짓이니까.”

    우리도 녀석들을 망자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진짜 목적은 녀석들이 그저 망자로서, 해골 신사로서 다시금 움직일 수 있게끔 하는 것.

    “생명체로서 되살릴 생각은 없어요. 그저 우리들은 녀석들이 다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죠.”

    “사령 마법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리로군.”

    마나가 머리를 양쪽으로 갸우뚱거렸다. 분홍머리칼이 좌우로 쏠리자, 손가락으로 보자기를 가리켰다.

    “거기 붉은 용아, 마저 풀어봐. 어디 한번 구경이라도 해보자고. 그리고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볼 수도 없잖아.”

    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자기를 마저 풀었다. 마나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해골 신사들을 향해 걸어간다. 이내 정좌로 앉아서 녀석들의 뼈를 만지작거리더니 미간을 좁힌다.

    “……허.”

    마나는 얕은 신음을 토했다. 머리에 붉은 마석이 박힌 두개골, 캡틴의 머리를 들어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 입을 연다.

    “이건, 망자 따위가 아니다.”

    빙글빙글 돌리던 캡틴의 두개골을 바닥에 내려놓은 마나는 말을 이어갔다.

    “이건 골렘(Golem)이야. 제작자가 취향이 이상해서 모양새가 이렇지만.”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며 계속해서 얕은 신음을 토해내는 마나였다.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덧붙인다.

    “세상에 온갖 마법이란 마법은 자기가 독식해놓고. 후세에게 남긴 건 하나도 없는 이기적인 양반이. 뭔가 두고 가긴 했나 보네.”

    “뜬금없이 해골 녀석들이 골렘이다? 딱 봐도 네크로맨서가 사령 마법을 걸어둔 망자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이 골렘의 제작자에게 물어보든가 해야지. 거참 취향 별나네요. 같은 질문 말이야.”

    마나는 손을 훠이훠이 흔들었다.

    “물론, 살아있어야 질문도 할 수 있겠군.”

    * * *

    네르브리안의 위대한 마법사.

    7인의 영웅, 「셀로닌 네르브리안」

    사계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있다면 그 이름은 셀로닌이다. 이어서 지금은 그 양반이 없으니 자신이 가장 위대한 마법사라 자칭하는 마나의 덧붙임이 있었다.

    ‘이건, 셀로닌 네르브리안이 만든 골렘이다. 나는 알 수 있어. 이 골렘을 조형할 때 사용했던 술식은 분명 셀로닌의 것이니까.’

    이때 렌은 ‘셀로닌이 누구죠?’라는 질문을 던졌다. 렌이 셀로닌을 모를 리가 없었다. 7인의 영웅이라는 전설을 진중하게 들었던 녀석인데, 셀로닌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기구하지, 이렇게 7인의 영웅들이 잊혀가니까 말이야.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네 녀석은 알고 있나, 여관주인?”

    고개를 흔들었다. 알 리가 없다. 잊혀간다니. 사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그리고 희망의 상징이었던 그들이 잊혀간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세계의 흐름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는 자들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지, 네 녀석 같은 신의 힘을 표방했던 자나, 혹은 나와 같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운명을 지닌 자가 아니고서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이 이야기의 주연이 되어버린 탓에, 사계의 운명과 연결되어있던 7인의 영웅들은 의미 없는 이야기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눈을 크게 뜬 나를 보더니,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토닥이는 마나였다.

    “결론은 이 해골들, 아니 골렘들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을 만든 제 주인이 더는 이 이야기의 일원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여관주인, 이 또한 네 녀석이 각오한 바가 아니었나? 그걸 각오하고 번외세계로 뛰어든 것이 아니었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 ‘소’는 나를 포함하여 내 반쪽을 의미했던 ‘아템’으로 끝나야 했다. 해골 녀석들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맥거핀(MacGuffin)에 불가한 이야기다. 남은 이곳을 비극에서 벗어나게 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말이야. 여관주인.”

    7인의 영웅들은 이제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마나였다. 이야기의 결말에 도달하지 못하고, 결말에 수긍하지 못한 채, 멈춰있던 이야기는 더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보니 맥거핀도 못되겠군, 사계를 창조했던 두 창조주가 소멸했으니, 이제는 사라질 이야기가 되겠지. 즉 설정의 오류라는 말이다.”

    렌은 게이트 디 마나의 멱살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참았던 성질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이를 으득으득 긁으며 말했다.

    “그래서, 해골 신사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냐고 묻잖아. 그것만 대답해!”

    “제법 성깔 있는 용이군. 그래도 이렇게 제멋대로 남의 멱살을 잡았다간 죽는다. 너.”

    “렌, 관둬.”

    렌은 순순히 마나의 멱살을 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의 유일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분홍 머리의 사내뿐이다.

    게다가 일순이나마 마나에게서 퍼지는 마력이 렌의 마력보다 상회한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렌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물론 해골 녀석들을 생각하면, 전자 따위는 아무 상관 없었겠지만.

    “거참, 주인이 한마디 하면 꼼짝을 못하네. 아주 충신이야, 충신.”

    “아까 렌이 말했던 그대로입니다. 어쨌건 우리에게 있어서 그들은 가족이니까요. 도와주세요, 번외세계의 당신은 이렇게 된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지금의 당신도 그렇겠죠.”

    “……쩝. 가족. 제작자의 취향이나, 그걸 가지고 있는 녀석들의 취향이나. 나보다 또라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마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놈이라, 번외세계에서의 나도 별생각이 없었을 거야. 단지 네 녀석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어떻게든 엮이고 싶었나 보지.”

    “……그게 지금 말이라고.”

    렌이 주먹을 쥐며 마나에게 뛰어들려고 하자, 마나는 양손을 들며 ‘방법을 영 모른다고는 안 했다’고 덧붙였다.

    “정말이지 괴팍한 용이네. 크흠, 이 골렘들은 사계의 흐름에서 벗어난 것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대단하신 이 몸이라도 움직이게 하는 건 무리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마나가 우리를 향해 미소 지었다.

    “사라져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해결하는 것. 해골 녀석들이 마땅히 사계에서 존재할 수 있을 명목을 만드는 것.”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들이 어디에,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어느 이야기에서 머무르고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11번째 숨겨진 이야기.”

    고개를 끄덕이는 마나, 숨죽이며 이를 듣고 있던 렌. 그리고 나는 비르테리아가 말했던 11번째의 숨겨진 여정을 떠올리고 말았다.

    “가능성이 전혀 농후하지는 않아. 어차피 모든 가능성은 네 안에 들어있을 테니까.”

    “숨겨진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 그들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왔던 현자. ‘노바인 하나안스’를 찾아라.”

    “다만 사계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보냈다고 하는 현자께서 과연 살아있을지. 이 마나조차 가늠할 수 없어.”

    “만약 살아있다면, 그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지도.”

    마나는 자신의 등을 보이며 내게 말했다. 마치 내 등을 확인해보라는 시늉처럼 느껴졌다.

    “정말이지, 베일에 감춰진 8번째 영웅 씨는 온갖 고생을 사서 다하는군.”

    * * *

    [ 환계 / 균열의 자연, 흰 나비 숲 ]

    삭막한 대지 위에 일부분이 울창한 숲으로 되어있다. 그 속에 움집 하나, 노인의 깊고 그윽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때가 되었다. 준비는 되었느냐.”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침대 위, 동물의 가죽 따위를 엮어 만든 이불. 노인은 젊은 사내의 손을 잡았다.

    “…사계의 지리는 네 삼촌보다 잘 아는 이가 없을 테지, 월키스가 동행할 것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얼굴에 주름이 많은 중년. 젊은 사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 대신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부 이날을 위해 버텨오셨잖습니까. 반드시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월키스 옆으로 노인을 바라보고 있던 젊은 사내는 손에 쥔 탄산수 쿠폰을 꽉 쥐며, 노인에게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하나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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