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01화 (201/222)
  • 201화

    * * *

    나는 여느 아침과 다를 바 없이 침대와 마주하고 있는 창가 밑에서, 발프레 잎을 우려낸 차를 마신다. 그리고 신문을 읽는다.

    “……세계의 모험에서 신문을 나르는 용으로 신문이 바뀌었다는 것만 빼면 다를 건 없지.”

    아크론과 데크에던의 권력이 결합하여 탄생한, 그리고 교황의 권력으로 탄생한 신성제국 비르테리아를 격퇴했다.

    아크론과 데크에던을 이끌어가던 진짜 수뇌부들은 제국의 지하수용소에 유치되어있었다.

    그들을 통해 제국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데크에던은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이전까지만 하여도 동맹국이었던 아크론은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델타도 이들의 상황을 알기 때문에, 아크론과의 혈맹을 끊지 않았다. 사실상 동맹국이라는 단어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 파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서 비르테리아 세력과의 전쟁에서 도움을 주었던 ‘서대륙, 아젤제국’이나 ‘남대륙, 템피드제국’과의 새로운 혈맹이 탄생했다.

    델타가 서대륙에서 최초로 타 대륙의 제국과 혈맹을 이룬 것이다.

    추신이 적혀 있다면 ‘이 또한 델타 4세, 베를리가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이의 신문 이외에도, 현재의 델타제국은 종이로 된 온갖 정보매개체에서 가십거리가 되며 계속해서 언급된다.

    승리와, 고고한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베를리도 본격적인 왕위계승을 위해 외부활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좋은 소식이 있다면, 마계의 통치자인 마리 페르세포 아베스타는 델타를 첫 시작으로 인계와의 화합을 추진할 것이라 공표했다.

    * * *

    ―기합이 부족하다!

    마당에서 프리실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래곤 길드는 델타의 늑대들을 포함하여 델타의 황실로부터 명예 기사단으로 그 칭호를 부여받았다.

    누군가의 아침 단잠을 방해하는 드래곤 길드의 훈련 소리가 마당에서 울려 퍼진다.

    이 여관주인의 단잠은 예외로, 이제는 조금 이른 기상 알람 같은 것이라. 익숙하다.

    가끔 이를 바득바득 긁으며, 투숙객 시설의 계단을 타박타박 내려가는 아이리스의 발걸음 소리를 들어 볼 때, 분명 그리 달갑지 않은 이도 있는 듯하다.

    …오히려 늦잠으로 인해 매번 지각을 일삼는 아이리스의 못된 버릇을 고칠 수 있어서 좋은 일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나는 현재 머리가 아프다.

    이를테면 관자놀이가 아프다는 말이다.

    발프레 잎을 잔뜩 우려낸 차를 담은, 눈썰미 좋은 고블린으로부터 선물 받은 아린의 찻잔을 들고 투숙객 시설을 내려간다.

    “……후, 얘들아. 어째서 너희가 이 모양이 되어버렸니.”

    투숙객 시설 중앙에는 7개의 해골이 동상처럼 굳어있다. 취미가 조금 남다른 흑마법사의 집에서 볼 법한 해골처럼, 투숙객 시설을 어둡게 꾸미고 있다.

    “……분명 마석도 교체했다. 거기다가 이전에 쓰던 마석보다 더 좋은 마석을 사용하기까지 했는데, 어째서.”

    당장이라도 ‘달그락!’이라는 소리를 내며 우리를 반겨야 망정인데,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런 미동도 없다.

    태풍의 탑에서 용사의 쉼터로 현장학습을 왔던 그 날, 학생들에게 쿠키를 나눠주기 위해 마당을 뛰어다니던 그 날.

    “……왜 가버렸니.”

    부서져 버렸다고 해야 할까, 정확히 이야기하면 분리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생각해보면 블루의 팔이 떨어진 건 복선이다.

    녀석들이 팔이나 다리 같은 것이 떨어지는 건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인데, 두개골도 시원시원하게 돌리던 녀석들인데. 왠지 그날따라 제 몸을 붙이고 일어나는 단계가 길어졌다.

    …1분, 10분,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달그락 따위의 소리는 그들의 두개골에서 들리지 않았다.

    “……너희가 그렇게 매정하게 가버리면, 여관은 어떡하라고!”

    간신히 조립해서 투숙객 시설에다 걸어둔 캡틴과 해골 일동들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자, 어느덧 나타난 렌이 허리를 잡으며 말렸다.

    “마, 마스터! 식, 식사하세요!”

    오늘 요리 당번은 아이리스.

    그렇게, 그들이 하염없이 그리워진다.

    투숙객 시설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웃고 있는 붉은 용과, 심술이 가득 찬 얼굴의 여관주인은 전방 건물로 향했다. 가자, 최후의 만찬으로.

    꿀꺽, 침을 삼키는 것은 눈앞에 있는 음식이 먹음직스러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이거 먹을 수 있는 거 맞지?”

    마침 여관으로 들어온 프리실라가 아이리스를 보며 내뱉는 소리였다. 마치 대변인처럼 내 속에 있던 물음을 그대로 말했다.

    “프리실라, 그렇게 음식을 편식해서는 강한 전사가 될 수 없거늘. 짐이 차려둔 음식은 고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근육을 붙이기에도 좋을 것이니, 잔말 말고 먹도록.”

    “오! 그렇단 말인가!”

    “그래, 아이리스 해안에서 가져온 물고기들은 바다의 비보라는 말이 있지. 하하!”

    바다의 비보, …바다의 바보가 헛소리하자, 델타의 바보는 흥분한 상태로 식사에 돌입했다. 전사처럼.

    “왜 먹지 않는 것이지, 임자?”

    “네가 먼저 먹어 봐.”

    “…….”

    * * *

    “흠, 아무래도 원인을 알 수 없어요. 아서.”

    “단장님, 수소문해서 많은 마법사를 찾아갔지만, 이 역시 알 수 없었습니다.”

    또다시 북적한 용사의 쉼터, 레니와 아이나는 내게 온갖 종이를 가져와서는 해골들이 의식을 잃고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리스 왈,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마법, 실존하는지도 알 수 없는 마법’이라고 했다.

    “그래, 마탑 교장 선생님께서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심각한 문제겠지.”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크하하, 라고 웃어대는 브라운 아저씨는 농담을 받아주는 직원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

    인력은 드래곤 길드에서 충당했기 때문에 홀을 뛰어다니는 전사들을 볼 수 있다. 문제는 효율이 다르다. 프리실라는 음식을 내려놓다가 접시를 깨트린 횟수가 열 번이 넘는다.

    “마스터, 손을 또 다치셨어요.”

    “하아…….”

    게다가 나는 부엌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다. 빌어먹을 아이리스에게 맡겼다간 용사의 쉼터가 정말로 망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마스터 셰프가 되었다.

    부엌칼에 손가락을 베이는 먼치킨이 있다면, 바로 이곳 용사의 쉼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렌, 여관 입구에 걸려있는 제 ‘21회 서대륙 최고의 요리사’ 팻말 좀 떼어 줘.”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주고 있던 렌은, 굳이 그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익, 숯불 BBQ는 이런 맛이 아니야! 당장 요리 트리오들을 살려내! 아서!”

    “……저도 그러고 싶다고요. 쥬드.”

    다시금 부엌으로 가야만 했다.

    이제는 여관주인으로서 여관을 돌아다니며 찾아온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는 행위는 할 수 없다. 소위 짬을 때릴 수 없는 노릇이 되어버렸다.

    “아서, 다음 마차를 운행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타르툰.”

    퍼플을 대신하여, 해골 마차를 담당할 사람은 수인이라는 종족 특성을 보인 타르툰 밖에 없었다. 명마 우르그를 제대로 다룰 수 있으려면 동물과의 친화도가 높아야 했다.

    인간은 다루기가 쉽지 않은 명마라는 뜻이었다. 맡긴다는 상상 자체가 끔찍한 정령왕. 지원자로 나섰지만 나는 지원자의 인성 문제로 바로 기각한다. 다음 지원자가 타르툰이었다.

    타르툰이 해골 마차를 맡게 된 이후, 그가 말하길 종족 특성이 있음에도, 우르그들은 쉽사리 말을 듣지 않는다고.

    …넌 도대체 얼마나 대단했던 거냐. 퍼플.

    아무튼, 다시 부엌으로 향하자.

    내가 아니면, 칼을 들 직원이 없다.

    “저 양반 얼굴이 왜 저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뭐 때문에 바빠서 뒤지기 일보 직전인 이 사장을 귀찮게 굴려고 찾아왔어요, 마리.”

    나는 번외세계에서 만난 마리의 말을 예로 삼았을 뿐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멍하니 한참 서 있다 달려드는 마리를 내 직원들이 말린다.

    “너 인마, 네 직원 덕에 산 줄 알아라.”

    “하하, 반대로 내 직원들 덕에 산 줄 아셔야죠, 마리.”

    다시 또 마리는 달려들었고, 내 직원들은 마리를 말렸다. 과연, 이곳은 나의 공간이며, 당신 편은 없다. 마리.

    “그거 삐딱한 성격이 꼭, 우리 스승을 닮았단 말이야.”

    “그 사람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고요. 게이트 강 앞에서 다리를 후들거리던 마리, 꽤 볼 만했어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게이트 강 앞에서 그런다는 걸.”

    “그야 뭐…….”

    번외세계의 과거를 다녀왔으니까.

    그때 있었던 일들도 전부, 내게는 오래 남을 기억이다. 잊어서는 안 될 것도 있고.

    “아무튼, 나는 오늘 쉬러 온 거야. 델타와의 동맹을 위해서 찾아왔다가, 네 상판을 보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말씀이라고.”

    “그래요, 쉬다 가세요. 저기 투숙객 시설에 있는 제 직원들 상태도 좀 봐주시고요.”

    “부탁한다는 녀석이, 참.”

    “오늘 마리는 공짜니까요.”

    마리는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레니의 안내를 따라 투숙객 시설로 향했다.

    .

    .

    .

    “모르겠어, 미안해.”

    나는 그렇게 대단한 마법사도 아니면서, 지금까지 대단한 척을 하고 다녔냐며 마리를 쏘아봤다. 공짜는 없었던 거로 하겠다는 말을 덧붙이려 했다만, 넘어가는 것으로.

    용사의 쉼터는 늘 그렇듯, 여전히 북적하고 조용할 줄 모른다. 늘 그렇듯 시끄러운 수다 소리와 웨라의 연주가 섞여 이곳이 모험가들이 찾아오는 여관이라는 느낌을 물씬 살렸다.

    그런 느낌을 물씬 살리고 있지만, 이들의 표정 속에는 그리움이 녹아들어 있었다.

    ‘모두가,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면 나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에게 부탁하는 방법밖에 없지…….”

    나는 쥐었던 웍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왜 그걸 몰랐을까, 마리가 넌지시 던진 조언은 혼자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번외세계에서 게이트 디 마나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는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 미리 예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쪽으로 돌아가서 분명 네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올 거다.

    ―나를 찾아와, 그때가 되면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마도 연맹에서 마리의 모습으로 변장한 게이트 디 마나는 내게 분명 그렇게 말했다.

    “마리, 아무래도 마도 연맹으로 가야겠어요. …마리? 잠깐, 어디 간 거야 이 사람.”

    렌과 아이리스는 손가락으로 여관 문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마리는 자기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에게 부탁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을 시점부터 줄행랑을 친 것이 분명하다.

    “스승의 이름만 나왔다 하면 캐릭터가 바뀌잖아. …아주 줄행랑을 해버렸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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