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200화 (200/222)
  • 200화

    * * *

    “여기 있는 직원들은 하나같이 사장을 닮아서 성격이 못됐어, 심지어는 야시장에 부유여관을 운영했는데 입장도 못 하게 했다니까?”

    정령왕.

    빌어먹을 정령왕은 태풍의 탑 학생들에게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진실이라 할 말도 없다만. …다 떠나서, 정령왕의 모습을 상상으로만 그려봤던 학생들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다.

    “저거 봐, 저거 보라고.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예사롭지 않아. 여기 사장은 나를 싫어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래 맞아.

    정령왕은 내 눈치를 보며 학생들에게 말을 이어갔다. 얇게 뜬 눈을 보라, 학생들은 정령왕에 대한 환상이 깨진 지 오래였다.

    마당을 가득 채운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이어진다. 학생들은 이 여관주인과 비슷한 표정을 할 줄 아는 듯하다.

    “언제는 좋다고 부둥켜안더니.”

    좀. 지어내지 마.

    죽이려고 목을 조른 것이 그렇게 해석될 줄이야. 다음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 그래, 이제부터 내 이명은 오베론 슬레이어다.

    중략하고.

    서대륙에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마탑 중, 정령계 마법이나, 소환 마법을 전문으로 하는 태풍의 탑 학생들이 용사의 쉼터로 현장학습을 왔다.

    며칠 전, 노튼 아네스의 추모를 위해 잔치를 벌이던 그날이었다. 태풍의 탑 교장이 찾아와 현장학습을 신청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정말이지, 머리가 아프다니까.’

    역시는 역시다. 나를 보며 아저씨라 부르던 그 망할 꼬맹이도 학생들 사이에 껴있다.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아, 저, 씨’라고.

    …이 아저씨는 마안의 뭉치가 없어도 널 단숨에 없애버릴 수 있단다.

    각설, 학생들이 정령왕에 대한 환상이 모조리 깨져버렸으니 얼른 저것을 치워야 마땅하다.

    아와는 고개를 숙이며 학생들에게 넌지시 사과를 전했고, 정령왕의 귀를 잡아다 끌고 사라진다.

    “아하하, 자… 다음은….”

    “검, 검술 수업이군요. …저기 근데 검술 수업이 왜 들어가 있을까요?”

    교장 선생님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학생들에게 다음으로 이어질 수업을 말했다.

    그사이 나타난 프리실라가 어느새 호탕한 자유의 투구를 쓰고 나왔다. 아주 위풍당당하다.

    ―와!

    학생들의 환호가 터진다.

    호탕한 자유. 신문에서도 기재되었듯, 그렇게 알려진 바로 위대하며 뛰어난 전사이다. 델타를 구한 영웅을 직접 보게 될 줄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크흠, 내 이름은 노튼 프리실라, …아, 아니 호탕한 자유다. 지금부터 날붙이에 검기를 불어넣는 수업을 하겠다.”

    프리실라는 자신의 검을 뽑아, 허공에 들춰낸다. 그 동작만으로도 또다시 학생들로부터 환호가 터져 나온다.

    엑스칼리버에 기대어 고개를 흔드는 란베르크가 프리실라를 향해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도대체, 그게 정령과 무슨 상관인데.’라는 표정은 덤이다.

    ―스스스.

    프리실라의 검에서 마력이 흐른다.

    그 마력은 푸르게 색을 찾으며 칼날에 은은한 기운을 풍겼다. 학생들은 이미 입이 벌어진 상태로 호탕한 자유를 바라볼 뿐이다.

    “이를 오러 소드라고도 하지, 검기. 이 검기를 쏘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방향으로 칼날에 스며든 검기를 휘둘러 허공에다 뿌린다.

    거대한 바람이 프리실라의 주위로 터지며, 학생들의 머리칼 같은 것이 휘날리자, 또다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칼날에 스며들거나 그 주위를 집중적으로 맴도는 마력을 내보내는 것, 이를 검강이라고도 하지.”

    박수갈채가 떨어지자, 호탕한 자유는 투구를 쓴 채로 코언저리쯤 되는 구간을 슥삭 비볐다. 막상 관심을 받으니 쑥스러운 것이다.

    “아줌마,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마력을 칼날에 집중시킬 수 있는 거죠?”

    당돌한 녀석, 꽤 보는 눈이 있다.

    마탑에서 짝꿍이었을 때부터 보통 녀석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프리실라를 보고 아줌마라니. 대단해.

    “…아, 아, 아, 아줌마?”

    그래, 당신도 그런 소리를 처음 들어봤겠지. 잘했다. 당돌한 녀석.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에게 무조건 ‘아줌마, 아저씨’라 부르던 저 학생은,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큰 편인 듯하다.

    사실상 무를 수련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검기를 가르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를 진즉에 느끼고 있었던 란베르크가 프리실라의 뒷덜미를 잡고서 끌어낸다.

    ‘……다음은.’

    학생들 앞으로 쭈뼛하게 걸어 나오는, 붉은 단발의 여인과 푸른 장발의 여인.

    나는 그들을 보자마자 한숨이 푹하고 연신 터져 나왔다.

    ‘……드래곤인가.’

    늘 구실 좋게 인간을 대하던 녀석들이 생각 이상으로 쑥스러움을 타고 있다. 프리실라도 그렇고, 저런 식으로 주목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 듯했다.

    “저, 저는 드래곤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렌입니다. 붉, 붉은 용이죠!”

    “지, 짐은 드래곤오브 블루아르헨 블레아스 아이리스다. 고귀한 지혜를 자랑하는 위, 위대한 푸른 용이지!”

    녀석들의 수업은 생각보다 인기가 좋았다. 손가락만으로 화염, 물, 얼음의 원소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으니 신기할 법도 했다.

    덧붙여 극과 극이라고 볼 수 있을 두 마리 용이 서로의 원소를 적절하게 대응시켜, 학생들에게 ‘상성’에 대한 것까지 교육했다.

    “그, 그럼 이제 드래곤으로 변해볼까요?”

    “좋, 좋다. 어디 한번 해볼까.”

    여기서 잠깐, 하고 뛰어가 이들을 막는 교장 선생님. 그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내가 뛰어갔을지도.

    “……혹, 혹시 아이들이 지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그도 그럴 것이다.

    다 큰 사내도 지리는 판국에, 저 아이들이 드래곤이 뿜어대는 강렬한 마력을 느낀다면… 오늘 저녁, 제 이불에 사계만 한 지도를 그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라고 미소를 짓는 렌.

    둘은 거침없이 용으로 변했다.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그 멋진 자태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쉽게 조우할 수 없을 드래곤을 직접 눈여겨 관찰할 시간을 만든다.

    ‘이제 마력을 감추는 게 상당히 익숙한 모양이네. 아직도 강렬한 마력이 느껴지지만, 확실히 숨긴 티가 나잖아.’

    녀석들은 용사의 쉼터에서 꽤나 오랫동안 웨이트리스로 일 해왔다. 손님으로 익숙한 이들마저 용이라는 본연의 마력으로 인해, 지릴까 말까를 반복하는데.

    방문이 처음인 손님은 어떻겠는가. 신신당부했더니, 그래도 꽤나 많은 노력을 한 듯했다.

    “……신기해, 멋있어.”

    “이 두꺼운 비늘을 좀 봐, 날카로운 검이나 창에도 절대 뚫리지 않을 것 같아.”

    “…날, 날개도 엄청 커!”

    학생들이 자신의 비늘이나 날개 같은 것들을 만질 수 있게 허락한 용들이었다. 저렇게 만져대도 녀석들에겐 파리가 앉은 느낌,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그렇게 드래곤들의 수업이 끝이 나고. 사실 이게 수업이라는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애당초 죄다 정령에 관련이 없는 것들인데.

    “지금부터는, 자유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는 정령들이 많으니,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마음껏 교류해보세요.”

    와아―… 하고 박수를 치는 학생들. 이전보다 호응이 크지는 않았다.

    평생 동안 보지 못할 드래곤을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만지기까지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달그락.”

    “아, 캡틴.”

    “달그락, 달그락.”

    “그래, 그렇게 해줘.”

    학생들은 캡틴과의 대화를 보며 신기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캡틴은 쿠키를 가지러 여관으로 향했다.

    “어, 어떻게 대화를 한 거죠?”

    “아저씨는 저들과 친구라서 대화가 그리 어렵지 않아, 대충 내게 와서 이렇게― 하고 행동을 보여주면, 내가 이해하는 거지.”

    “……우와.”

    캡틴과 나머지 해골 일동은 배당받은 쿠키를 마당 곳곳에 흩어져있는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학생들은 해골들이 쿠키를 나눠주자 묘한 표정으로 그들의 동태를 살핀다.

    대부분이 이들을 향해 짓는 표정은, 망자인가? 사령마법인가? 같은 느낌이었다.

    ‘어제저녁부터 열심히 만들더니만.’

    …어젯밤이다. 여관 부엌은 오렌지, 그린, 옐로우로 인해서 난리도 아니었다.

    마탑의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들에게 선물할 쿠키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우당탕 소리와 함께 후방건물의 투숙객들을 몽땅 깨워버리는 사태를 만든다.

    ‘뜻이 좋으니, 된 거지 뭐.’

    학생들이 마당 곳곳에 흩어져, 엑스칼리버를 통해 넘어온 정령들과 교류했다.

    아와나 로아, 정령왕 역시 이들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플로우는 사방팔방을 날아다니며 학생들을 즐겁게 한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 달그락!”

    한참 동안 달그락 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했더니, 신사 해골들이 내게 와서 복잡한 행동을 보였다.

    “음, 그러니까…. 아이리스에게 부탁을 받아서…… 안 돼, 거기서부터 기각이니까.”

    달그락거리며, 돌아가던 두개골 7개가 동시에 멈추자 오랜만에 섬뜩함을 느끼는 EX랭크의 여관주인이다. ……무섭잖아.

    “그래, 알겠으니까. 더 들어볼게.”

    “달그락!”

    다시금 녀석들이 움직였다.

    그러니까 아이리스에게 도움을 받아 변장마법을 적용한 뒤, 7인의 영웅들의 모습을 하고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라는 말이지?”

    “달그락, 달그락.”

    끄덕이는 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고, 냉큼 아이리스에게 달려가는 녀석들이었다.

    “야, 야! 블루! 너 팔 빠졌어, 바닥에 떨어졌다고! 주워가야지!”

    두개골을 긁적이며 돌아오던 블루가, 바닥에 놓인 자신의 팔을 주웠다.

    “자리에서 그거 끼우고 가야지! 그걸 손으로 그냥 가져가면 어떡해, 애들이 무서워한다고!”

    * * *

    여관에서 차를 홀짝이며 ‘월간, 세계의 모험’을 읽었다. 메이가 이를 보면 노발대발 화를 낼 것이 뻔하다.

    ‘어쩔 수 없지 뭐, 사실상 세계의 모험만 한 신문이 없…….’

    ‘사장님! 너무하세요!’라고. 신문을 나르는 용의 창업자가 나타나 내 귓등을 쑤신다.

    외부는 여전히 학생들의 소리로 북적했다. 현재 ‘7인의 영웅’들로 변장한 해골 녀석들을 앞에 두고서 아이리스가 역사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딸랑―….

    아, 경쾌한 종소리. 저 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여관에 오게끔 만드는 멋진 물건이올시다.

    그 뒤를 잇는 걸음 소리와 거친 호흡에 약간의 불안함을 느꼈다만.

    “……임, 임자야!”

    “어, 일단은 안 돼.”

    “…그, 그게 아니라. 망자 녀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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