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95화 (195/222)
  • 195화

    * * *

    [Return Scenario (15) ― 조금 이른 막간]

    [서대륙 델타 / 델타 성, 베를리의 방]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델타의 성채 꼭대기, 숨겨진 방에 깨져버린 창문이 어느새 보수되어있었다. 베를리 뒤에서 근엄하게 서 있는 저 기사 양반의 몫이었겠지.

    아템을 한번 쳐다본 뒤, 베를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괜찮아.”

    마지막 여정만이 남아있었다. 그 여정을 끝내고 나면, 나는 본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고.

    탐탁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베를리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짧으면 짧고, 길었다면 길었던 여정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느낌이었을 테니. 그도 그럴 법했다.

    베를리는 우리에게 의사의 확고함을 느꼈던 까닭인지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함께했던 시간 동안,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바랄게요. 모두들.”

    “고생했다. 베를리. 그대는 우리에게 있어서 소중한 동료였으니, 이 아템의 기억에도 남아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오랫동안 말이야.”

    아템이 베를리를 꼭 껴안자, 이윽고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떨어지는 눈물, 공주의 눈동자는 분명 은은한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다.

    * * *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더군다나 마지막 여정의 도착지도 알고 있으니, 베를리도 모든 임무를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당장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 이별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사라지기 일보 직전, 의미심장하게 뱉었던 하델의 말이 떠올랐다.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아픈 이별이 될 것이라, 부디 같은 것을 반복하지 말도록.

    담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보다 마지막 여정을 마주하자니 왠지 두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아템은 내 반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졌으니, 그것이 사라지는 공허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아서?”

    “아, 미안해.”

    “또, 그럴싸한 표정을 짓고 있군. 이제는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어. …그 붉은 용가리의 탓일지도.”

    아템이 자신의 어깨로 몸을 날리며, 내 팔을 부여잡았다. 환한 미소를 짓는 녀석이 마냥 이별 앞에 담담한 것 같아 괜스레 서운해지는 순간이다.

    “가자, 네가 가보고 싶어 했던 곳이잖아.”

    “……보자, 음.”

    뱃사공 모멧티가 이끄는 배를 타고, 바다 위 물줄기를 만든다.

    바다 위에 띄워져 있는 작은 건물, 멀리 보이는 저 건물은 분명 아템이 가보고 싶어 했던 ‘바다거북 여관’이다.

    “바다거북 여관이잖아!”

    “이제는 구름바다 여관이지만.”

    구름바다 여관에 들어와, 아템과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케피탄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테이블 위로 쾅하고 내려놓는 아템. 약간의 취기가 올라온 것이 분명했다.

    “아서, 내가 히끅!, 그 편지를 적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고 있냐는 말이다! 흥!”

    여기서 편지란, 아템이 사라지기 전 내게 남겼던 편지를 말한다. 그것을 읽으며 또 한 번 절망감을 느끼는 내 심정보다는,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다시 소생한 녀석의 부끄러움이 컸던지 내게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그건,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적었던 것이다!”

    라고, 아템이 취한 이후로 갓 100회에 도달했다. 녀석의 비실거리는 고개를 손바닥으로 받쳤다.

    “아서.”

    녀석의 회색 머리칼이 또 한 번 들썩였다. 뺨에 닿아있던 내 손을 잡고는 눈을 감았다.

    “여기서 자면 안 돼.”

    콧바람이 손목을 스친다.

    창가로 넘어오는 아이리스 해안의 바닷바람과 맑게 떠 있는 달, 그리고 그리 시끄럽지 않은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른다. 그것이 아템을 더욱 집중하게 했다.

    “자는 거 아니야.”

    잘 키워둔 고양이처럼, 닿았던 뺨이 천천히 내 손에서 움직였다. 숨은 날숨보다 들숨이 많았다.

    “왜 그래.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부끄럽다고.”

    무심코. 그녀는 나로부터 전해지는 온기와, 목소리와, 냄새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서서히 눈을 뜨는 아템의 눈망울은 평소에는 보기 힘든 모양이었다.

    우수에 젖은 것인지, 감상에 젖은 것인지, 혹은 슬픔이 차오른 것인지, 그렇게 촉촉하게 젖어있다.

    “아서, 다시 묻겠다.”

    그녀는 확인하고 싶어 했다.

    아까보다는 더욱 강한 손아귀로, 녀석의 뺨을 받치고 있던 내 손을 쥐고는 천천히 물어오는 아템이었다.

    “나는 그대에게…….”

    녀석의 눈동자는 똑똑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고 있는 대답이지만, 늘 그렇듯 묻고 싶었던 것이다.

    “……훌륭한 벗이었는가.”

    녀석이 말하는 벗의 뜻이 이번만큼은 친구라는 의미를 아득히 벗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응. 당연해.”

    만취한 아템을 업고서 투숙객 시설로 향할 때 쏟아지는 야유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온갖 휘파람 소리와 더불어 기둥에 멋스럽게 기대어 있던 모멧티는 엄지를 들어 올리기까지.

    “아유, 술 냄새. 이번엔 네가 졌다고.”

    침대 위에 녀석을 놓아두자 내 목을 꽉 잡고 있던 팔이 스르륵 풀렸다.

    툭. 떨어지는 손, 그 손에 있어야 할 아템과 나를 이어주는 문양은 서서히 연해지고 있었다.

    “그때는 네가 덤덤한 척 노력했겠지만. 이번엔 내가 노력해볼게.”

    창가로 들어오는 달빛을 머금은 아이리스 해안, 수평선을 쭉 바라봤다.

    “사실 나도 자신은 없는데 말이야.”

    잠이 오질 않는다.

    곤히 자는 아템을 깨워다가 이야기나 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자리에서 일어나 여관 외부를 향했다.

    혹시 몰라 구름바다 여관의 주인인 리엔호크에게 배를 빌려두었건만, 원래라면 만취하지 않은 아템과 함께 아이리스를 보러 갈 예정이었다.

    “잠깐 아이리스나 보고 올까.”

    작은 배는 아이리스 대양위로 물줄기를 만들며 움직인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쯤, 녀석이 수십 년간 아껴둔 물고기가 대양의 기운을 얻기 위해 튀어 오르는 것은 이미 알 사람은 알고 있는 부분이 아니던가.

    여기서 알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겠다. 혹시 모른다. 미지의 독자라 일컫는 자들이 이 이야기를 보고 있을지도.

    대충 기억해낸 위치에 배를 멈춘 뒤,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역시, 오지 않는 건가.”

    모멧티는 이미 대양 위로 떠 올라 아이리스 대양의 기운을 한입에 꿀꺽 삼키고는 사라졌다.

    용사의 쉼터 웨이트리스인 아이리스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녀석이 모멧티를 먹기 위해 나타날 시점이 아니니까. 당연했다.

    『인간, 넌 뭐지? 어째서 떠오르는 모멧티를 보고도 잡아먹지 않는 것이냐, 잡아먹으려 했다면 단숨에 그 숨통을 끊어버리려 했거늘.』

    아이리스가 달빛을 등지고 날고 있다. 워낙 익숙한 마력이다. 가까운 관계였던 터라 저 무지막지한 마력을 인지하지 못했다.

    “먹을 생각 없었어, 네가 열심히 아껴두고 있었던 건데.”

    『내가 저 물고기를 아껴두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안 것이냐. …설, 설마!』

    “설마?”

    『드래곤 슬레이어! 나를 죽이기 위해 저 물고기를 미끼로 둔 것이냐!』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틀렸어, 그리고 어느 미친 드래곤 슬레이어가 용을 잡기 위해서 몇십 년간 물고기를 바다에 풀어놓고 키우겠냐.”

    『……그, 그것도 그렇군.』

    “똑똑한 줄 알았더니, 역시 바보가 맞아.”

    『……뭐, 뭣이!』

    그리고 아이리스와 긴 시간 동안 대화 아닌 말싸움을 이어갔다.

    쏘아붙이는 말투와 인간을 하대하는 말투는 여전했지만, 아이리스는 단 한 번도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진 않았다.

    “만나기 전에도 꼭 나쁜 녀석은 아니었잖아.”

    “그, 그렇다!”

    “그리고 언제 폴리모프 한 거야.”

    “……인간이 타는 배를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 짐이 이 배를 타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 변하면 전라가 되는 줄도 모르고 부끄러워한 주제에.”

    착용하고 있던 내 로브를 더욱 강하게 쥐며 얼굴을 붉히는 아이리스였다.

    “인간을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가 뭐야, 아이리스.”

    아이리스는 늘어선 대양을 쭉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내 녀석이 말을 잇는데 약간의 정적이 지속된다.

    “블루아르헨. 우리는 인류와의 접점이 깊은 일족이었다. 과거로부터 쭉 그 유대는 이어졌고. 그 유대는…….”

    아이리스의 푸른 눈은 일그러졌고, 맑게 빛나던 입술은 깨물어진다.

    “내 아버지인 블레아스에서 끊겼다.”

    본래 세계에서는 듣지 못했던 아이리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블루아르헨은 푸른 용족에서도 가장 지성이 뛰어난 개체들로, 아이리스와 같이 인류학이나 사계의 문명학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었다.

    아이리스 역시 인류에 관심이 없었더라면, 고고학자 월키스의 서적을 수집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 아버지인 블레아스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죽었으니까.”

    결코 사람을 해하지 않겠다던 블루아르헨의 의지는 아이리스의 손에서 꺾였다. 지아비를 무참히 베어버린 용살자를 죽임으로서, 인류와의 유대를 복수로 끊어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오래, 오래전 일이지만.”

    아이리스는 어쩌면 인류와 가까이 지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관에 남는 것도 녀석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렌에게 말해 둘게, 너희 조상 어쩌고 하는 욕은 삼가라고. 따지고 보면 심각한 욕인데도 불구하고 나름 잘 참았네. 아이리스.”

    대양을 직시하며 오랜만에 지아비를 떠올리던 아이리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 무엄하다! 그리고 짐의 이름은 어떻게 안 것이냐!”

    “장문의 이름을 가진 용의 끝 자는, 그 개체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에서 따온다.”

    “……뭐, 뭘 안다고. 조금 친한 척해줬더니 주제를 모르는구나, 인간!”

    쓰다듬던 손을 내려놓는다. 동공이 커진 아이리스는 용으로 모습을 되돌리며 대양 위로 떠 오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는 녀석이었지만 분명 미소를 짓고 있을 것만 같다.

    “너만큼 이 바다와 어울리는 용은 없어. 아이리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