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94화 (194/222)
  • 194화

    * * *

    [Return Scenario (14) ― 이에소드(Iesod)]

    이에소드(Iesod)

    기반에서 오는 심판, 모든 기적의 기초.

    미지의 나무, 승리와 영광 아래 중심 원형. 그것은 이야기의 근본이 되는 기적을 원천으로, 현세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이변과, 인류가 찾은 모든 기적에 기반이 된다.

    기적을 둘러싼 아름다운 사내를 의미하기도 하는 ‘이에소드’의 열매는 이야기의 비극에서 탄생하는 모순을 억제함으로, 이야기로부터 탄생하는 모든 기적과 기반을 억제함과 동시에 소멸된다. 이에소드의 기적을 담은 눈을 훔쳐 간 천사로부터.

    ―번외세계의 나침반이 서술하다.

    * * *

    [천계 끝자락 / 필요 없는 곳]

    천계 끝자락에는 그들의 가장 어두운 면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아름다우며 신비롭고 성스럽다는 말에 가장 적합한 천계에서, 이곳은 유일한 슬럼가다.

    ‘필요 없는 곳.’

    필요 없는 곳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들에게 이곳은 실로 필요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과한 신성력은 인류에게 광기를 내렸다. 광기는 세계에서 일컫는 저주, 절망에 잠식되게 했으니, 그 심연에 빠진 이들이 갈 곳을 잃어 모인 곳이 바로 필요 없는 곳이다.

    보기보다 이곳은 성스러운 자들이 많은 곳이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성스러웠던 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이탈한 자, 혹은 잘못된 자.’

    이들을 이탈한 자나 잘못된 자로 부르며, 천계인의 피가 흐르는 많은 이들이 쉬쉬하거나 껄끄러워했다. 천계에 있어서 오탈자나 비문과도 같은 그들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심연에 잠식되어 악귀가 되거나, 혹은 쓰레기더미 옆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성녀 하델, 늙지 않는 여인.’

    그런 초라한 죽음을 지켜봐 주었던 자가 있었으니. ‘하델’이라 부르러, 늙지 않는 성녀는 이단이라 몰리면서도 그들을 돌보고 또 돌봤다.

    최후에는 결국 페지르 정교로부터 성력을 박탈당해 필요 없는 곳에 버려졌지만,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차라리 불쌍한 자들을 돌보는 데 더욱 수월했으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진실을 성녀 하델은 알고 있었다. 이 모든 흐름에 대한 진리. 성녀는 이미 다른 세계에서 진작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가 섬기는 천사가 응답하여 막대한 사명을 가진 채로, 필요 없는 곳에 필요로 하는 것을 찾는 자를 기다린다.

    * * *

    건물의 외벽은 온갖 낙서들로 가득했다. ‘신을 너무 믿어버린 신자는, 심연이 되어.’라는 글귀가 붉은색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필요 없는 곳’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도 이곳의 입구에 있는 파괴된 동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파괴된 동상이 쥐고 있어야 마땅한 검은 부서지고, 피눈물을 그려둔 것이다.

    그 동상 아래에는 ‘필요 없는 곳에 찾아온 필요 없는 것을 위해’라는 글귀가 있었다.

    “정말 으스스한 곳이에요.”

    “보통 이렇게까지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긴 쉽지 않은데 말이야.”

    베를리는 음험한 분위기 때문인지 어깨를 실룩거리며 공포감을 느꼈다. 아템은 이를 보며 베를리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어깨를 주물렀다.

    “황실에 앉아 우수에 젖은 눈망울로 그림이나 교양을 배워야 마땅할 터인데, 이리 고생을 하고 있으니 어깨가 잔뜩 뭉칠 수밖에.”

    “……고마워요. 아템.”

    이곳은 천계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불쾌한 곳이었다. 정신이 반쯤 나가 버린 천계인이 다 허물어가는 건물 옆에서 혼잣말을 반복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이곳이 분명해요.”

    필요 없는 곳의 작은 성당.

    허름한 성당이 여타 거리에서 보았던 건물과 다를 바 없이 금방 무너질 듯 보였다. 다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을 그대로 받으니 무심코 미려한 곳이라 느낀다.

    ―끼익.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이 어울리는 성당의 거대한 나무 문을 열자, 내부에서 미세한 불빛이 들어왔다.

    마도공학을 통해 만들어진 장치로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닌, 촛불들의 향연이었다.

    내부는 이리저리 촛불이 내는 주황빛으로 은은하게 물들어가고 있다. 콧잔등을 스치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약간의 탄내가 번졌다.

    ‘아무도, 없는 건가.’

    신자들이 기도를 위해 앉을 수 있는 나무 의자들이 성당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중앙으로는 어둡게 썩어버린 붉은색의 기나긴 카펫이 성당 입구부터, 끝자락에 있는 빛을 뿜는 동상까지 연결되어 있다.

    베를리가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이를 밟으려 하자 아템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밟지 마.”

    “……아, 아템?”

    “이건 성녀의 길이다. 공주 같은 여인이 이를 잘못 밟았다간 부정을 탈지도 모르니.”

    자신의 발끝이 미세하게 붉은색 카펫에 닿았다는 것을 인지하며 깜짝 놀라는 베를리였다.

    이들을 뒤로하고 성당의 끝자락까지 쭉 걸어가자,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여인이 보였다. 성녀의 차림을 하고 있는 여인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저기.”

    “오셨군요.”

    성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었고, 뒤따라 걸어오는 베를리와 아템에게 손짓했다.

    “어,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그대들이 원하는 목적지로요.”

    성녀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내 눈을 또렷하게 직시했다. 그 눈은 바라보는 자가 하나가 아닌 기분이 든다. 이어서 베를리의 눈을 직시하더니 몸을 돌려 다시금 가던 길을 향했다.

    성당 끝자락, 원형으로부터 빛이 방출되는 동상, 성당 벽면에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낸다.

    이는 페지르 정교의 교리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신, 위대한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느 교회나 성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철컥, 철컥.

    그 동상에 손을 대자, 동상이 위로 움직였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성당 사방으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함께 하시지요. 내려가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동상이 가리고 있던 통로가 나타났다. 어둠이 깊게 깔린 계단, 아래로 이어지고 있다. 이내 횃불을 가져온 성녀가 앞장서 계단을 내려갔다.

    “경계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 여정에서는 달리 싸울 일이 없으니까요. 그가 기다리십니다. 이방인이시여.”

    횃불이 밝혀주는 좁은 계단을 계속해서 내려갔다. 그간에 베를리의 긴장이 가득 담긴 소리가 퍼지자 성녀는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하델입니다. 어릴 적부터 성녀의 운명을 타고나, 영생의 기적을 가진 덕에 겉모습과 달리 나이는 벌써 70을 향하고 있지요.”

    겉모습과 달리 나이가 많다는 것보다, 그녀의 이름이 하델이라는 것에서 의문점을 느끼는 아템과 나였다.

    “하델…… 이라면?”

    “네, 당신이 가졌던 기적을 품은 눈의 본래 주인, 천사 하델의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성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템은 검을 소환하여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댄다.

    “네 녀석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똑똑히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그 목이 떨어질지도 모를 테니까.”

    성녀는 자기 목에 겨누어진 검을 향해서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댔다. 그 검을 옆으로 치우며 아템을 마주한다.

    “괜찮습니다. 이 목이 떨어져도 이미 제 역할은 모두 수행했으니 말이지요. 부디 저 빛이 새어 나오는 곳까지 가보시는 건 어떠신지?”

    더 이상 횃불로부터 계단을 비출 필요가 없어졌다. 출구로부터 빛이 새어 나온다. 거침없이.

    성녀가 건네는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칼을 걷어내는 아템. 빛이 흘러나오는 공간을 향해 우리는 무심코 걸었다.

    ―.

    빛. 통로를 빠져나오자 사방은 빛으로 가득했다. 빛을 뿜어내는 원형이 그 빛의 중심이 되고 있다.

    마치 눈동자의 모양이었다. 그 눈동자는 시력을 잃은 맹인의 눈과 유사하다. 거대했다.

    ―왔는가.

    “있잖아, 방금 누가 날 불렀나?”

    아템은 나를 향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도 그대를 부른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라고.

    “당신에게 말을 건넨 것은, 저 눈동자입니다. 바로 하델이시지요.”

    성녀는 웃는 얼굴로 우리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이내 저 거대한 눈동자, 하델이라 일컫는 것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바라보는 기적의 천사 하델입니다. 아니, 지금은 눈먼 기적이겠군요.”

    거대한 공간은 오로지 암흑일 뿐, 그 공간을 비추는 것은 하델의 빛이었다.

    ―한쪽 눈은 어디에 두고 왔는가.

    하델이라고 부르는 저 시력을 잃은 눈동자는 내게 물어왔다. 자신의 눈을 어디에 두고 왔느냐고.

    “이쪽으로 오느라 제물로 사용했다. 혹시 돌려받길 원한다면, 곤란해.”

    ―그럴 생각은 없다. 다만 안식이 필요한 자가 끊임없이 이동하고, 움직이고 있으니. 내 걱정이 되어 하는 소리일 뿐.

    “괜찮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내 눈을 실컷 사용했으니 ‘하델’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담담하지 못해야 망정일 터.

    “…그, 덕분에 곤란한 상황에서는 늘 도움이 되었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다고 전해두지.”

    ―그래, 그랬다면 다행이군.

    “눈을 빼앗긴 입장에서 기분이 나쁠 수 있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나 봐.”

    ―창조된 것은 언제 어디서 사라져도 문제랄 것은 없고, 나 또한 ‘시작’으로부터 창조된 것. 내 눈을 네 녀석이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또 다른 창조주 덕이니. 꼭 그 눈이 내 눈이라고도 할 수 없는 법이다.

    하델과 같은 천사는 일화가 아닌 서사로부터 만들어진 것, 사실 생각해보면 마안의 뭉치를 만들기 위해 천사들의 시체가 쌓인 구덩이를 일화가 헤집었다. 마치 재료를 찾기 위한 것처럼. 그중 하델도 일부였다.

    “나를 이곳까지 끌어들인 이유를 도통 모르겠네, 네 녀석이 내가 필요한 열매를 가지고 있다는 건 확실한데.”

    ―호기심이다. 나는 그대를 인지한 상태에서 소멸했고, 이렇게 다시금 여정의 역할을 위해 현세에 도래했으니. 이방인, 네 모습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 그래서 궁금함은 풀리셨나.”

    빛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힘을 잃는 거처럼 어둠을 밝히던 그 찬란한 빛이 맥없이 저버리고 있다.

    ―암, 저 성녀의 눈을 통해 그대의 모습과 생김새, 운명까지도. 그렇기에 이 하델의 모든 호기심과 궁금함은 풀렸다.

    그리고 하델의 눈은 아템을 직시했다. 성녀의 시선도 아템을 향한다. 눈먼 기적은 아템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템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 시선에 대해 물을 수밖에 없다.

    “내게 용무라도 있나.”

    ―마지막 여정만큼은 쉬었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다. 이야기에게 있어서 아주 수고스러운 존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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