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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92화 (192/222)
  • 192화

    * * *

    [Return Scenario (12) ― 네크아트(Netreth)]

    삭막한 황야, 뒤틀린 지형은 더 이상 과거에 보았던 고룡의 언덕이 아니었다.

    “후, 힘을 쌓아두긴 했지만. 과연 내가 엄마를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어미의 도움으로 고룡의 언덕에 빠져나와 목숨을 잃지 않은 덕에 사계를 떠돌아다니며 많은 지식과 문화를 경험했다.

    그렇게 인류가 나라를 건국하고, 작은 제국이 대제국이 되는 것까지 많은 세월을 보냈다. …이미 내 나이도 성체에 다다르고 있으니.

    나는 내 어미의 도움으로 인류가 겪어가는 세월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소원을 지키기 위해 일전에 이곳을 찾아온 적이 있다. …강대한 힘을 지닌 고룡들과, 타 개체들의 초월마법을 몽땅 몸으로 받으며 싸워냈던 내 어미의 모습은 처참했다.

    본능만 있다면 몇 번이고 움직일 수 있는 기적을 지닌 고대금룡이 되어버린 터라, 그 모습은 더더욱 비참했다.

    “백 년 전에도 찾아왔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는데. …고대금룡으로 각성한 엄마는 너무 강했어.”

    언덕에는 모래가 잔뜩 쌓여있었다. 그 모래 속에 파묻힌 용들의 뼈가 한가득, 이는 내가 그곳을 빠져나온 이후 일어난 전투의 흔적.

    이곳을 찾아왔던 용들은 죄다 죽어버렸을 것이다. 만약 대장장이나, 상인들이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침을 흘리고 달려들었겠지.

    바닥의 모래를 한 줌 쥐어 손을 편다. 고대금룡으로 인해 이곳의 마력 환경은 너무나도 짙어졌고, 미물의 미세한 마력까지 빼앗아 갔다.

    이 언덕을 한참 동안 올라가면 보일 우리 집, 그곳에 있는 내 어미를 보는 것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다. 그녀를 편안히 거두어줄 수 없는 무력함은 더더욱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엄마, 미안해요. 이번에도 잘 될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도 많이 강해져서 돌아왔으니까. ……그래 이번엔 다를 거야.”

    렌은 인간의 모습에서 거대한 붉은 용으로 변했고, 푸석한 대지를 밟으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고룡의 언덕은 고지대였다. 말이야 언덕이지 산맥 끝자락에 놓인 언덕으로 인간은 발 디딜 수 없는 곳이다.

    그 언덕의 유일하게 인간의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 집. 새하얀 벽돌과 지붕은 붉은색으로 되어있어야만 했다.

    『גִדרוֹן……. גִדרוֹן…….』

    허물고 오랜 세월이 지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곳에, 새하얀 백골로 되어있는 용이 똑같은 고대어를 내뱉으며 동그랗게 누워있다.

    『גִדרוֹן……. גִדרוֹן…….』

    고대금룡은 비늘에서 황금빛이 피어오르는 것이 당연하건만. 그 비늘 대신 앙상한 백골만 남은 용이 있다. 하물며 용이 내뱉는 고대어의 뜻은 친근하게 지저귀는 새. 바로 내 이름이다.

    사고가 불가능하지만, 죽어서 부활을 반복하는 내 어미의 뼈는 계속해서 헤츨링을 감싸 안고 지키고 있다.

    ‘……잠깐, 저들은 뭐지?’

    어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인간이다. 인간이 어떻게 고룡의 언덕을 다닐 수 있지? 이곳의 마력은 농도가 짙어 인간이 접근하기에는 무리를 넘어 자살행위에 가깝다.

    ‘……드래곤 슬레이어인가!’

    생각해보면 용살자들마저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일단은 말려야 한다.

    검은색 머리에 사내 1명, 밝은 회색빛이 도는 장발의 여인 1명, 나머지 1명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판단이 어렵다.

    ―쿵!

    이들의 앞으로 거대한 몸을 떨어뜨리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충 겁을 주면 달아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당혹스러움 뒤에는 철저하게 단련되어 있는 냉정함이 묻어있었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온 거죠?』

    인류의 언어를 내뱉자 로브를 쓴 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넘어졌고, 그 로브가 벗겨지니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행동거지를 보아서는 나쁜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수월한 대화를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갔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당장 돌아가세요.”

    이곳에서 떠나라고 말했건만, 나를 쏘아보는, 아니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내. 그 사내가 회색빛이 도는 장발의 여인에게 귀띔한다.

    그 귀띔이 끝나자 회색 머리의 여인이 나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왜?

    “반가워요, 제 이름은 아서입니다. 모험가이고요. 당신은?”

    “제 이름은 드래곤오브…… 아니, 렌입니다.”

    뭔가 반가운 표정을 숨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웃음에서 불안함이 느껴지는 사내, 일그러진 보조개로부터 왠지 모를 친숙함이 느껴진다.

    “만약 저 위를 올라갈 생각이라면, 관두세요. 저기는 위험한 존재가 있으니까요.”

    쳇,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쏘아보고 있던 회색 머리의 여인이 물어왔다.

    “위험한 존재라면?”

    위험한 존재, 내 어미 발프레가 있으니까.

    “고대금룡이라 부르는 개체가 죽어 망령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고요. 이곳은 위험하니…….”

    노려보는 회색 머리의 여인을 끌어당기고는 내 앞에 서서 말을 이어가는 사내.

    “같이 가시죠. 저희도 그 존재에게 볼일이 있으니까요.”

    “볼일? …혹여 드래곤의 뼈가 목적이라면 제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뒤로 끌어당겨진 회색 머리의 여인이 다시금 사내를 끌어당겨 내 앞에 섰다.

    “네 녀석 붉은 머리, 우리는 드래곤의 뼈가 목적이 아니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에도 가시가 돋아있군.”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 망령의 정체는 바로 제 어미니까요. 지어미의 유골을 가져가겠다는 자를 말리지 않을 자식이 어디 있을까요.”

    * * *

    푸석푸석한 모래를 밟으며 계속해서 올라갔다. 내 어미에게 도착하려면 적어도 30분은 더 걸어야만 하는데, 인간치고는 지친 내색은커녕 숨쉬기도 어려운 환경에 잘도 말이 길다.

    “저 로브를 쓴 분께서는 괜찮은지요?”

    “그, 그럼요. 아서 님에게 도움을 받아 웬만한 환경에는 적응할 수 있어요. 게다가 도움을 주신 마법사분도 계셨으니까요.”

    “…그럼 다행이지만, 다들 정말 따라올 생각인가 보군요. 객사해도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검은 머리의 사내는 내 말에 답변했다. 약간의 따스함이 묻어나는 건 왜일까. 알 수 없다.

    “혼자서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힘들었다면서요, 저희가 도움이 될 것 같으니 렌 씨의 일을 돕도록 하죠.”

    “제가 만나봤던 인간들 중에서 가장 특이하신 분이네요, 하지만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따라오는 건 그저 죽음을 재촉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괜찮으니 따라만 갑시다. 따라만.”

    언덕을 따라 내 어미를 향해 올라가는 과정에서 몇 가지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유난스럽게도 궁금함을 더해가는 저 사내 때문이었다.

    “제 어머니는 저를 탈출시킨 뒤, 백 마리가 넘어가는 개체들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아마도 그 과정 속에서 고대금룡이 될 수 있었겠지요.”

    문제는 다른 개체들이 걸어놓은 마법이었다. 정신착란, 혹은 의식장애, 그게 내 어미의 정신병을 만들었다. 하물며 모든 피부 조직이 썩어도 망령은 뼈만으로도 부활이 가능하다 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저리도 앙상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용의 망령은 본능만 남아, 깨진 알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저 자리에 머물고 있어요.”

    이미 태어난 새끼용의 알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 덕에 새끼용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오로지 과거에 사로잡힌 채.

    “그 깨진 알에서 태어난 용이 바로 너였구나, 렌.”

    처음 보는 인간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예상외에 일이었다.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또다시 느껴지는 평온함에 얼굴을 붉힌다.

    『גִדרוֹן……. גִדרוֹן…….』

    그것도 잠시.

    바로 코앞에서 서서히 들려오는 고대어, 친근하게 지저귀는 새. 나를 부르는 내 어미의 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저 백골의 용이 바로 제 어미입니다. 제가 먼저 상대할 테니, 여러분들은 적당히 피해 주세요. 오히려 도와주는 게 방해니까요.”

    흥, 하고 고개를 돌리는 회색 머리의 여인을 뒤로한 채 용으로 모습을 바꾸며 어미에게 달려든다.

    ―콰직!

    으스러지는 내 어미의 뼈,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강도였다. 그녀의 안식을 위한 첫 도전 때만 해도 저 뼈에 맥도 추리지 못하고 기절하지 않았던가.

    ‘역시, 가능성이 있어!’

    ―콰지직!

    거대한 두개골이 내 목을 물어 비튼다.

    이 역시 과거와 달리 밀도가 약해 스스로 으스러지는 뼈. 나는 그 찰나를 노리고 명치 중심의 갈빗대를 잡아 비틀었다.

    콰직, 이 용은 더 이상 내 어미 발프레가 아니다. 그저 본능만 남아있는 용의 망령,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시울이 붉혀지는 것은 나 또한 과거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인가.

    『레… 엔….』

    거대한 용의 뼈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분명 내 이름이다. 이윽고 자신이 불리해질 것을 알았는지 내 품에서 빠져나와 깨진 알로 향하는 백골의 용. 온몸이 으스러져도 알을 지키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그녀, 아니 망령이었다.

    『레… 엔….』

    백골의 용은 깨진 알을 꼬옥 껴안았다.

    그럼 뭐해, 부러진 뼈 사이로 다 보이는데. 이미 두꺼운 그 뼈도 전부 부서져서 남은 것 하나 없잖아, 더 이상 회복조차 하지 못하잖아.

    『흐으윽……. 으흑….』

    하다못해 내 어미에게 걸려있는 용들의 마법만 풀 수 있었어도 약간의 대화는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수많은 개체들로 점철된 저주마법은 도무지 풀 수 있을 방법이 없었다.

    “……아템, 미르라힌.”

    “…알겠다.”

    * * *

    붉은 용은 인간의 모습으로 백골의 용에게 다가갔다. 터벅터벅, 자꾸만 눈물이 떨어진다.

    백골이라 부르기에도 이제는 깨진 조각들에 불가하다. 그나마 멀쩡한 머리도 반으로 갈라져 벽에 거는 장식품보다 못한 수준이다.

    “……렌, 내 새끼.”

    “응, 발프레. 나야 렌.”

    “……세계는, ……잘, 돌아다녔니.”

    “응, 내가 찾는 해답도 찾았는걸.”

    “……장해, 장하다.”

    “사랑해, 사랑해. 고마웠어.”

    “…앞, 앞으로도. ……자알, 할 수, 있지?”

    “응, 할 수 있어. 그리고 걱정 마.”

    어미를 닮아 붉은 잎을 뽐내는 차나무가 지금만큼은 피어올랐다. 발프레처럼.

    화가 가득한 새끼용을 진정시키는데 특효인 발프레 찻잎, 발프레처럼.

    그러고 보니, 내 아름다운 순간엔.

    언제나 발프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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