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91화 (191/222)
  • 191화

    * * *

    [Return Scenario (11) ― 네크아트(Netreth)]

    네크아트(Netreth)

    오래된 승리, 용기와 풍요.

    미지의 나무, 신의 정의와 자애 아래 오른쪽 원형. 그것은 이야기의 근본이 되는 승리를 원천으로, 먼지 쌓인 승리를 잊지 못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벌거벗은 미녀를 의미하기도 하는 ‘네트아크’의 열매는 이야기의 비극에서 탄생하는 모순을 억제함으로, 그 승리와 풍요는 억제함과 동시에 소멸된다. 네트아크의 먼지 쌓인 승리를 빼앗을, 제 자식과 인연이 닿았던 자에게.

    ―번외세계의 나침반이 서술하다.

    * * *

    [ 마계 서쪽 끝 / 고룡(古龍)의 언덕 ]

    ―천년을 훌쩍 넘을 오랜 과거.

    마력이 넘실거리는 드넓은 언덕에. 붉은 용은 거대한 몸을 누워 강철 같은 알을 품었다. 곧 생명력을 들이밀 작은 탄생을 기다린다.

    꽈직. 아직은 뿔이 돋지 않은 작고 작은 용이 알의 일부분을 깨고 얼굴을 내민다. 점액과 함께 눈을 떴다. 어미용의 눈보다도 한참 작은 새끼가 지어미를 바라보며 ‘캬오’ 소리를 냈다. 자신의 생명력을 마음껏 뽐내는 것이다.

    『사랑스런 내 아가, 네 이름은 렌이란다.』

    아직은 이해하지 못할 고대어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새끼용. 렌은 고대 아칸어로 해석되기를 ‘친근하게 지저귀는 새’를 의미했다.

    오랜 세월을 붉은 용으로 살아온 어미는 인류와도 긴밀한 관계를 갖고 지내왔다. 이로부터 시대가 받아들이길 조금은 이른 사랑으로 탄생한 아이. 그 아이가 바로 바로 렌이다.

    용의 이름 끝 자 앞에는 지아비의 이름이 들어가야 마땅할 테지만, 지고한 용들의 규율은 오롯이 끝 자 앞에 이름의 주인이 용이어야만 했다. 그러니 개체가 틀려먹은 인간이 친부인 새끼용에게는 허락된 끝 자 앞의 이름은 없다.

    『내 아이야. 네 이름의 끝 자인 렌 앞에 붙을 이름은 네 할아버지인 레바테이나의 이름을 가져가도록 하자.』

    드래곤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렌,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다음 세대의 용은 지어미에게 이름을 받아 성장할 일만 남게 된다.

    『―캬오.』

    * * *

    렌의 성장은 무척이나 빨랐다.

    보통 용이라는 개체는 백 년이 지나며 그 성질이 뚜렷하게 보였는데, 개체 중에서도 가장 큰 편에 속하는 붉은 용은 다른 색의 용들보다 성장 속도가 두 배는 빠르다고 볼 수 있었다.

    새끼용이 인간의 모습으로 고룡의 언덕을 터벅터벅 걸어오자, 어미는 그 몰골을 이리저리 확인했다.

    『……렌, 또 싸웠니? 이 어미가 단단히 혼쭐을 냈건만, 자꾸 그러면 마브리우스 같은 곳에다가 버려두고 올 거니까. 각오하렴.』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사용할 때는 약 8세에서 10세 정도의 아이로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걱정인 부분은 용의 모습으로 이미 성숙기의 푸른 용과 비슷한 크기였다.

    붉은 용이 투쟁심이 뛰어나 다른 개체의 부락을 쳐들어가는 일은 부지기수였고, 하물며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유난히 조심해야 한다.

    『넌 다른 아이들보다 크잖니, 아무리 경쟁심이 끓어오르더라도, 친구가 싫다고 하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울상이던 렌은 참은 눈물을 터뜨렸다.

    “푸, 푸른색 애들이, 우리 아, 아빠가… 나약한 인간이라고 놀렸단 말이야!… 발, 발프레가 아빠를 잡아먹어서 없는 거라고……. 그랬단 말이야.”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어미용은 렌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그런 줄 몰랐단다. 그리고 그런 야만적인 행동을 하는 건 지고한 용이 아니니까. 못된 아이들의 말은 흘려버리렴. 아가.”

    꼬옥, 서로를 껴안고 있는 모녀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어미는 아이의 붉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진정시켰고, 아이는 고개를 들어 어미를 바라봤다.

    “그럼, …아빠는 어디에 있는 걸까?”

    어미는 아이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쩌면 이는 중요한 교육이 될지도 모른다. 종족, 혈통, 편견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이에게 배운 것처럼, 아이의 정서도 다른 용들과 달리 올발랐으면 했다. 나도 그렇게 변했으니, 우리의 아이도 그랬으면 했다.

    “인간은, 오래 살지 못해.”

    떠나간 그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비록 용들의 세월에 비하면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보다 그 짧은 찰나에 수많은 아름다움을 겪으며 살지.”

    렌을 이전보다 강하게 아이를 껴안으며 말을 이어간다. 천천히, 꾸역꾸역,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슬픔은 금세 추억이 될 것이다.

    “네 아비의 아름다운 순간 속에 이 어미가 있었단다. 그이는 땅과 하나가 되어 다시는 볼 수 없겠지만.”

    뚝하고 떨어지는 어미의 눈물을 작은 손으로 닦아주는 아이였다.

    “우리 아가, 아빠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세계를 떠나보렴. 그리고 인간들을 만나보렴. 그 속에 네가 찾는 해답은 있을 테니까.”

    붉은 잎사귀. 수많은 나무들 사이엔 붉은 머리칼을 가진 모녀들의 평온함이 있었다.

    * * *

    5000년 이상을 살아온 개체의 용은 그들 사이에서 고룡(古龍)이라 부른다.

    혹은 리틀 골드(Little Gold)라고도 불리는데, 그 의미는 고룡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개체인 고대금룡이 될 수 있는 그릇을 의미했다.

    렌의 어미는 고룡 중에서도 가장 강한 개체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호시탐탐 그녀의 마력을 빼앗기 위해 덤벼드는 어린 세대들이 수없이 고룡의 언덕을 찾아왔고, 새끼용 앞에서 혼쭐이 나며 자신의 터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역시 발프레는 대단해, 발프레는 고대금룡이 될 수 있는 거야?”

    “될 수 있지만, 될 생각은 없네요.”

    어미는 늘 생각했다. 리틀 골드로서 고대금룡에 적합한 개체와는 그 가치관이 달랐으니까.

    고대금룡이 되면 세월이라는 단어는 무색하게 되며, 시간으로부터 늙어가는 생명력을 원하는 만큼 되돌릴 수 있었다.

    즉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의미였다.

    고대금룡은 시대를 통틀어 한 개체만 생존할 수 있는 법칙이 있다. 이는 전투 중에 각성하며, 수많은 개체의 마력을 제물로 한층 더 높은 개체로 진화하는 방식이다.

    인간을 만나 사랑을 하고, 세월에 대한 아름다움을 이해한 어미의 정서와는 상반했다.

    “이 엄마는 네게 말했던 것처럼 언젠가 이 기나긴 세월을 마치고 네 아빠와 재회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단다.”

    “……그, 그럼 렌은?”

    “렌도 이 넓은 세상을 마음껏 누비다 보면, 언젠가 그 세월의 끝이 다가오겠지, 우린 그때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다. 이 엄마가 약속하마.”

    밤이 찾아오자, 렌은 꾸벅꾸벅 어미의 품에서 졸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어미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붉은 잎사귀들로 아이의 이부자리를 만든다.

    * * *

    “렌. 또 싸우고 왔잖아, 너 정말 혼날래!”

    고룡의 언덕에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붉은 용과 그 용의 한 입 거리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여인이 마주하고 있었다.

    『자꾸 우리 아빠더러 나약한 인간이라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아니라고 말하기도 지쳤다고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턱을 올리는 어미, 렌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덕을 올라 작게 만들어 놓은 집으로 향했다.

    “인간으로 변해서 가야지!”

    『알, 알았어요!』

    집으로 들어선 렌은 붉은색을 띠고 있는 잎을 모아 차를 우려냈다. 달짝지근한 향이 콧잔등을 스치며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후, 진정했어요.”

    “아가, 붉은 용은 언제나 분노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니 늘 조심하도록 하렴.”

    붉은색의 잎으로 우려낸 차는 분노에 절은 아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데 특효였다. 이 붉은색의 잎을 수두룩하게 덮고 있는 나무의 이름은 발프레, 어미의 이름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인간의 모습으로 10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던 아이가, 이제는 14세 정도는 거뜬해 보였다.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겠지. …용의 형태는 다른 색 성체의 용이 마주치면 도망갈 정도였다.

    ‘정말 많이 컸구나, 렌.’

    인간의 모습을 하며 인간이 쓰는 찻잔을 사용해 조금씩 차를 홀짝인다. 집에 놓인 헤츨링을 바라본다.

    그 중심으로 깨져버린 구멍은 렌이 세상 밖으로 나온 흔적, 이 알을 버리지 않고서 보물처럼 여기는 어미를 어린 용이 이해하긴 어렵다.

    “발프레, 저거 좀 버리는 게 어떨까요?”

    “어째서?”

    “……괜히 부끄러우니까 그렇죠.”

    * * *

    푸르른 창공은 어둡게 물들고, 발프레 나무의 붉은 잎은 죄다 떨어져 삭막하다.

    아름답게 펼쳐진 고룡의 언덕이 산발적으로 구멍이 뚫려 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렌, 이리로 들어가 길게 놓인 동굴을 곧장 뛰어가렴. 인간의 모습이라면 충분할 거야.”

    집 중앙, 바닥에 있는 러그를 치워 작은 문을 열었더니 통로가 있다. 이는 고룡의 언덕을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 통로로 발프레가 미리 설계해둔 것이었다.

    “……발, 발프레.”

    “우리 아가, 이제 클 만큼 컸잖아, 눈물 뚝, 옳지, 장하다 장해. …이 어미가 부탁이 있는데, 들어 줄 수 있을까.”

    “……부, 부탁?”

    쿵, 하늘에서 언덕을 부수는 마법이 쇄도했다. 천공에는 빼곡하게 수놓은 용들이 용언으로 모녀를 부르며 대지를 떨리게 했다.

    『용의 규율을 어긴 저들은 처단하라! …저 인간의 피가 섞인 새끼용을 잠들게 하고, 지고한 용들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렌을 꼬옥 안아보는 발프레였다. 따스한 온기가 심장에 닿았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껴안는 발프레였다.

    “세계를 실컷 모험하렴. 그리고 이 어미가 말했던 세월의 뜻을 찾은 뒤에 이곳에 다시 찾아오는 거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렌은 볼 수 없을 자식의 얼굴 맡에서 눈물을 떨군다.

    “그때까지, 잠시 안녕이야.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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