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90화 (190/222)
  • 190화

    * * *

    [Return Scenario (10) ― 티페레트(Tipheret)]

    마도 연맹은 지하 1층부터 시작해서 지하 99층까지 건축되어 있는데, 게이트 디 마나가 거주하는 공간은 그보다 아래인 지하 100층에 있다고 한다.

    ‘으리으리한데, 궁전 같기도 하고.’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웅장하고 멋진 곳이었다. 마리의 설명만 들었을 때는 흑마술사들이 모여 있을 법한 광기가 넘치는 곳이었다만, 의외로 고상한 분위기의 조각상들이나 정교한 장식품들이 내부를 꾸미고 있었다.

    넓고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지하 2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로비를 향해 걸었다. 거대한 근위병, 거인 같은 모습을 띠고 있는 동상들이 그 길을 따라 쭉 세워져 있다.

    이를 신기하게 보던 베를리에게 마리가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

    “아, 그거 악마니까 조심하고.”

    “……?”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서 머리 위로 손을 훠이훠이 흔들더니 말을 덧붙이는 마리였다.

    “악마라고, 침입자들을 도륙 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거거든. 고대 악마의 영혼이 담겨있는데 대강 SS랭크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네.”

    “……대, 대충 세워 봐도 20개는 될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내 스승은 사계를 멸망시킬 수 있을 몇 없는 존재라고.”

    지하 1층.

    100명 정도가 일렬로 서서 내려와도 문제가 없을 크기의 거대한 회전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층마다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층마다 마도 연맹의 일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층은 분주하거나, 어느 층은 인기척이 전혀 없기도 했다.

    제각각 다른 역할을 하고 있는 층으로 보이는데, 목적은 연맹의 탐방이 아니니 우리는 계속해서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온다.

    “마리, 깊게 파 놓은 구멍처럼 굳이 회전 계단 중심을 막지 않은 이유라도?”

    “그야, 뭐 스승님의 취향이겠지. 이 사이로 떨어져서 간혹 낙사하는 일원들이 있어. 낙사 지점은 결국 100층이라 스승님께서 소생 마법을 사용해주기도 하고.”

    “……크흠.”

    회전형 계단의 중심을 막지 않았기 때문에 아래를 내려다보면 일반인의 경우 고소공포증을 느끼기에도 충분했다.

    지하 20층.

    이전보다 묵직한 마력이 흐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대지에서는 느껴볼 수 없을 법한 마력이다.

    마법사들이 상급 마법을 시전했을 시에 나오는 고농도의 마력이 주변 공기와 동화되어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환경과 비슷하다. 조금씩 호흡이 가파르게 변하는 베를리였다.

    지하 40층.

    더욱 묵직한 마력이 흐르기 시작했다. 본 현상에서 조금만 더 마력 기류가 변질되면 충분히 마력 역류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 법했다.

    뚫려있는 중심부 아래 어둡게 깔린 어둠 사이로 미세한 연석의 조각들이 허공을 타고 맴돈다.

    지하 50층.

    “아, 깜빡했네. 저 델타 공주는 일반인이니까 내려가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내가 보호마법을 걸어주지.”

    “왜 그걸 지금 말하는데, 이 사람아!”

    지하 70층.

    공간의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마력 기류가 달라졌다. 마력 역류 현상은 60층부터 진즉 시작되었고, 회전 계단의 중심부로 지하 100층부터의 부산물들이 허공을 타고 올라온다.

    “마력 역류 현상이 심해지면, 중력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하마터면 저 공주가 중력에 의해 위로 슝― 하고 날아갈 뻔했군. 하하!”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조심해주시죠.”

    지하 90층.

    마력 기류의 변질이 심해지면 마력 양이 부족한 이들은 환각을 일으키거나, 의식장애를 동반할 수 있다. 이보다 심해지면 코나 귀 같은 곳에서 출혈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역시나 마력 양이 부족한 편에 속하는 베를리는 속이 매스꺼운지 표정을 구겼다.

    “환경의 마력 요소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력 요소보다 상회할 시에는, 마력의 특성상 강한 쪽으로 집합하려는 특성이 있지. …그러니까, 저 델타의 공주가 만약 이 몸의 보호 마법을 두르지 않았더라면 몸이 으스러져 이곳에 있는 마력과 하나가 되었을지도.”

    베를리는 흠칫하더니 마리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놀려대는 강도가 심각한 수준이니 그럴 법도 했다.

    지하 99층.

    마력의 농도가 너무 짙어서 마력을 잡아먹는 미르라힌 같은 것을 꺼냈다가는 주변이 초토화할 것이다.

    보호마법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베를리를 부축한 뒤, 마리에게 물었다.

    “마리, 어째서 계단이 없는 건데요. 분명 우리의 목적지는 지하 100층일 텐데.”

    그도 그럴 것이 지하 100층으로 이어져야 할 계단이 보이지 않는다. 있어야 할 계단 대신 그 아래로 어둠이 깊게 깔린 구멍만 있었다.

    “뭐긴 뭐야, 이 밑이 100층이지.”

    마리는 베를리를 밀어서 냅다 구멍으로 떨어뜨렸다. 그 속에서 베를리의 비명이 녹아든다.

    아템과 나는 멍한 표정으로 마리를 한참이나 직시한다. 그 와중에도 베를리의 떨어지는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

    .

    .

    .

    혼이 나간 표정으로 거대한 방석 위에 입을 벌리고 있는 베를리.

    구멍을 타고 지하 100층에 낙하한 지 십여 분이나 지났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다.

    지하 100층. 마도 연맹의 수장이자 셀로닌을 넘어서 마법계의 정점에 가까운 게이트 디 마나의 거처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평범한 곳이었다.

    “그래서, 게이트 디 마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데요.”

    “게이트 디 마나가 네 친구도 아니고, 이런 취급은 또 처음이네. 이거 참, 그래서 목적이 뭔데.”

    “다 들어놓고 무슨 소릴 하고 있습니까. 아까부터 이상하더니.”

    “그러니까, 내가 ‘게이트 디 마나’인데, 뭐가 목적이냐고 묻잖아.”

    엉뚱한 소리를 해대고 있는 마리를 똑같이 쏘아봤다. 그러자 아템이 한숨을 푹 쉬더니 입을 연다.

    “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저자는 지금 ‘마리’가 아닌 것 같다. 아서.”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아템의 어깨에 팔을 걸치는 마리는 그 자세를 유지하며 나를 직시했다.

    “지하 20층쯤이었나, 그때 마리를 돌려보내고 내가 대신 안내했는데.”

    거대한 방석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린 베를리는 뒤늦게 우리를 향해 뛰어왔다.

    “무슨 뚱딴지같은, 빨리 게이트 디 마나나 만나게 해줘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고.”

    “말이 안 돼? 돼, 나니까.”

    ―따악.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일순간 우주처럼 공간이 바뀐다. 그리고 마리에게서 느껴졌던 마력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녀에게 이질적인 마력이 흘렀다.

    “사실 목적도 알고 있어. 네가 찾는 거, 저거잖아. 저 애물단지 말이야.”

    “……!”

    “목적을 다시 물은 이유를 묻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별 이유 없어. 그냥이니까.”

    확실히 마리가 치를 떨 법도 했다. 이 양반은 정령왕 정도는 가뿐히 뛰어넘을 레벨의 또라이다.

    * * *

    마계의 주신 아칼라. 푸르스름한 색에, 형태는 거대한 태아의 모습을 띠고 있다.

    게이트 디 마나가 소환한 우주 같은 공간 속에서 눈을 감은 채로 부유했다.

    “아칼라는 과거에 내가 마력 전쟁에서 마계를 지키기 위해 소환한 마신이다. 게다가 네 녀석이 원하는 것도 분명 이것일 테고.”

    마리의 모습을 유지한 채로 설명하는 게이트 디 마나. 그녀는 아칼라를 쓰다듬었다.

    “현재는 봉인 중인 상태다. 아마 네가 말하는 ‘본래 세계’에서도 동일한 상태일 거다.”

    게이트 디 마나는 본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도 우리가 찾고 있는 열매가 아칼라라는 것을 콕 집어 이야기했다.

    “본래 마계는 마력 전쟁을 통해 없어져야 마땅할 대륙이었는데, 이 아칼라의 희생 덕에 대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마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지식이나 지혜, 또한 모든 마법까지 섭렵한 나는 여전히 이 기적에 대한 정체를 아직도 풀지 못했다.”

    “아마도 이 모든 시간을 관전할 수 있는 ‘미지의 독자’ 같은 이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겠지.”

    “감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유일하게 믿는 감이 그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니 평생 동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미지의 독자, 과연 그들은 무엇인가.

    이는 ‘일화’마저도 자세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위치에 있었다. 덧붙여 그는 ‘서시’도 모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했으니.

    “하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세계를 창조한 신보다 높은 권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마법으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자, 자연스레 얻은 지혜는 그러했다. 네 녀석이 이곳에 올 것이라는 예측도 전부 그 자연스럽게 흡수한 지혜 덕이라고 볼 수 있고.”

    아칼라를 쓰다듬고 있던 게이트 디 마나의 손이 떨어지자, 거대한 태아는 빛을 뿜어내더니 미세한 기운이 흐르는 원형의 모습으로 변질했다.

    “뭔가, 이번에는 수월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군, 기분이 나빠서라도 실력으로 응해줘야겠는데.”

    나는 질색팔색, 게이트 디 마나를 향해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사계에 존재하는 두 명의 EX랭크 중 한 명을 담당하는 저 마법계의 정점과 전투를 벌인다? 그것보다 피곤한 일은 있을 수 없다.

    “장난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고.”

    “……장난으로 안 받아들일 수가 있나.”

    마나는 침대와 소파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고 있는 왕좌 같은 곳으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몇 보 걷지 않아 그곳으로 널브러지는 그녀였다.

    “그리고, 저쪽으로 돌아가서 분명 네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올 거다.”

    “네 녀석은 현재 자연스러운 흐름을 오히려 변칙적으로 바꾸려 하는 자니까. 네가 이야기의 주역이 되어도 그걸 채우기 위한 ‘억지’ 쯤은 또다시 늘어날 수 있다는 말이야.”

    마나는 손가락을 훠이훠이 움직였고, 벽면에 장식되어있는 갑옷의 투구가 허공을 타고 그녀의 손으로 자연스럽게 도착했다.

    “찾아와, 그때가 되면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암호로는, 보자 뭐가 좋을까.”

    “그래, 그쪽에서 나를 만날 땐 이 말을 앞에 붙이라고. 마도연맹의 수장인 게이트 디 마나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