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87화 (187/222)
  • 187화

    * * *

    [Return Scenario (7) ― 케세드(Chesed)]

    케세드(Chesed)

    불길의 어머니, 자애로운 산맥.

    미지의 나무, 이해와 지혜 아래 오른쪽 원형. 그것은 이야기의 근본이 되는 자애가 밀집된 원천으로, 불타오르는 산맥과 동조하며 생명체들의 열정을 불어넣는다.

    사랑의 뿌리를 의미하기도 하는 ‘케세드’의 열매는 이야기의 비극에서 탄생하는 모순을 억제함으로, 그 자애는 억제함과 동시에 소멸된다. 케세드의 불꽃을 응답받은, 태양과 닮은 반쪽짜리 새 인류로부터.

    ―번외세계의 나침반이 서술하다.

    * * *

    [ 마브리우스 산맥 ]

    마브리우스.

    하늘과 땅에서 흐르는 마력은 높게 솟아오른 지면을 계속해서 깎아 먹었다. 현상은 고대로부터 이어졌으며 이를 발견한 인류는 마브리우스라는 이름으로 이방자들에게 축복을 내릴 신으로 부르고, 모셨다.

    마브리우스의 주인, ‘헬리오스’라는 주신으로부터 풍토가 완성되어 불꽃이 들끓는 생명체들의 소중한 터가 된다.

    마브리우스는 고대 드워프들의 언어 중 하나로 ‘자애로운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철을 다루는 생명체이자, 불을 다루는 생명체에겐 낙원 같은 곳, 산을 부르러 자애롭다는 말을 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불길의 어머니, 헬리오스는 사계에 존재하는 불을 머금은 생명체들의 어미로서 살아 숨 쉬는 생명에게는 열정을, 죽은 불꽃은 다시 자신의 품으로 불러들였다.

    돌아온 불꽃에 영혼은 자연으로 돌아가며, 그 죽은 자들의 열망이 담긴 얕은 불꽃으로는 마브리우스 산맥을 계속해서 태워 갔다. 죽은 것들의 남은 열망은 마브리우스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산맥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죽은 자들의 불꽃으로 철을 연마한다는 것은 곧 그들의 혼을 담는 것. 그 불꽃에 담긴 원혼은 맑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것이어야만 했다.

    “…아템!”

    세솔라스를 쥐고 있던 아템이 헬리오스의 공격으로부터 붉게 달아오르는 벽에 꽂힌다.

    “나는 괜찮으니, 어서 베를리를!”

    들끓는 용암이 사방으로 터지며 광역마법을 연상하게 했다. 벽면에 튀기고 튀는 용암은 불꽃으로 녹지 않을 산맥을 발 디딜 곳 하나 없이 으스러뜨렸다.

    베를리를 안아서 그나마 밟을 수 있는 지대로 발을 내딛자 아템은 이를 확인한 뒤, 헬리오스를 향해 일순 달려든다.

    심연으로부터 반쯤 잠식이 되어버린 헬리오스의 상태는 대절망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보아라. 이를 보아라!”

    용암으로 점철된 거대한 육체는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아템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헬리오스의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공기는 끝없이 뜨거워지며 어렵사리 지면에 피어있는 화산꽃들은 불타올랐다.

    “이것은, 당신의 불꽃으로부터 만들어진 물건이다! 대장장이의 혼이 깃든, 당신의 자손들의 혼이 담긴!”

    멈칫거리던 헬리오스는 다시금 거대한 몸을 움직이며 양손을 이용해 아템을 내려쳤다.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마검 세솔라스, 위에서 떨어지는 헬리오스의 그 묵직한 일격을 간신히 막아낸다.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헬리오스의 불꽃과 세솔라스가 부딪치자 굉음을 낸다. 분쇄되는 지면과 용암이 아템에게 쇄도하며 방어를 위한 집중력을 꺼뜨린다.

    “크, 크윽!”

    뜨거운 지면으로부터 허공의 마력이 모조리 타버린다. 아템은 마력을 원천으로 움직이는 생명체가 아니나, 인간인 베를리는 다르다.

    “…우, 우웩!”

    부족한 마력으로 인하여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있던 베를리가 심각한 마력 고갈로 인해 속이 뒤집히고 만다.

    곧이어 장기에 마력이 공급되지 않아 위험한 상황까지 도달할지도 모르는 부분이었다.

    ―콰득, 콰득!

    까드득, 소리를 내며 끓어오르는 용암과 대지는 형태를 만든다. 활활 타오르는 인형처럼.

    그 현상이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계속해서 늘어나자 곧이어 아템은 베를리와 내가 있는 곳으로 후퇴했다.

    “아서, 헬리오스가 원혼을 담아 수호병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50마리의 용인(龍人)의 모습을 띤 전사들이 헬리오스 주변으로 위치하여 포효를 내뱉는다.

    마브리우스 산맥의 중심구, 헬리오스의 신전이라고 부르는 곳은 점점 대절망의 둥지화가 되어가고 있다.

    “알레페스와, 에펜할라.”

    조용히 입을 열었던 나를 향해서 흠칫거리는 아템이었다. 잘못 들은 것이 분명하다고 착각한 녀석은 내게 계속해서 되묻는다.

    “진심인가, 장난이겠지.”

    “이 상황에 내가 장난칠 양반으로 보이나 봐.”

    “그건 승낙할 수 없다. 멀쩡히 다루기는커녕, 몸이 망가질 것이 훤하니까. 마안의 뭉치의 기능이 절반 이상 소실되었는데, 내가 그것을 허락해주리라…….”

    “방법은 만들면 되잖아, 늘 우리가 해왔던 것처럼.”

    아템은 커진 동공으로 입을 벙긋거렸다.

    “……허. 내가 없는 동안 그 성격이 더욱 배가 되었나 보군, 그것도 붉은 용의 몫인가?”

    “지금 베를리는 한계야, 게다가 너를 믿는 게 있으니까 이러는 거지. 출력은 어느 정도 네 쪽에서 해결해주면 되는 거잖아.”

    완고한 내 의사를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건지 아템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마검 알레페스, 에펜할라.

    쌍둥이의 검, 알레페스와 에펜할라. 거인을 베어내는 검으로 사용자의 마력을 구실 없이 몽땅 가져가는 것이 특징이다. 거인을 베어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크기로 약 4m 정도이다.

    “좋아, 준비됐어.”

    아템은 원래 형태로 돌아왔고, 아템을 쥔 나는 알레페스와 에펜할라를 소환한다.

    ―.

    두 개는 구태여 말할 것 없이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검은 칼날의 에펜할라가 왼손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백색 칼날의 알레페스가 오른손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서, 벌써부터 마력 고갈이 심각해지고 있어, 5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기다려 봐. 대략 5분에서 10분 정도는 늘려 볼 수 있을 것 같아. 출력만 조절할 수 있게 도와줘.”

    들끓는 용암은 거대한 분수처럼 튀어 오르며 사방을 녹였고, 마브리우스가 진동했다.

    헬리오스 주변에 머물던 용인들은 어느새 그 용암을 타고 우리를 향해 빠르게 쇄도한다.

    “불가시의 장막(Invisibility Curtain)을 걷어내겠다.”

    [ 고유 차원으로부터 연결 : 대상을 카테고리 최대 S로 지정 ]

    “마안의 뭉치(Bundle of Magical Eyes)를 개안한다.”

    [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안들의 묶음을 해당 장기(눈)에 결속 ]

    “알레페스와 에펜할라의 사용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신체의 마력을 극대화하는 목적으로.”

    “사용 가능한 모든 카테고리의 마안을 결속하겠다.”

    ―‘마력을 극대화’에 따른 정보 수립 중…….

    ―카테고리 준비 중….

    ―결속 시작.

    [ 해당 장기(눈)에 ‘S랭크 : 현자의 눈’ 지속형 마안 결속 ]

    [ 해당 장기(눈)에 ‘S랭크 : 관철자의 눈’ 지속형 마안 결속 ]

    [ 해당 장기(눈)에 ‘S랭크 : 고대 마신의 잃어버린 오른 눈’ 지속형 마안 결속 ]

    [ 해당 장기(눈)에 ‘S랭크 : 현자의 눈’ 지속형 마안 결속 ]…….

    ……[ 해당 장기(눈)에……A랭크…….]

    ……[ 해당 장기(눈)에……A랭크…….]

    ……[ 해당 장기(눈)에…….]

    .

    .

    .

    ……[ 인식에 따른 결속을 완료 ]

    ―결속 종료.

    “자, 이제 열매 수집 시간이다.”

    * * *

    시간이 멈춘 듯, 검은 칼날과 하얀 칼날은 아서에게 동화되어 최고조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거인 같은 검이 아서와 함께 용암을 타고 달려드는 한 마리의 용인을 베어낸다.

    희미했다. 으스러지듯 없어지는 검기, 마치 음양의 조화였다. 베를리는 이것이 과연 인류가 닿을 수 있는 경지인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황홀함과 아름다움의 극치.

    화려한 마력 집합체.

    온갖 마안으로 범벅된 사내는 수십 가지의 색을 내뿜으며 뜨거운 마브리우스 산맥을 밟아 천둥처럼 움직였다.

    ‘……숨, 숨쉬기가 편해졌어!’

    아서의 육체 안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마력, 넘쳐흐르는 마력이 마브리우스 산맥 일대를 마력으로 점철되게 만든다.

    ―콰지직!

    그 여파로 인하여 베를리는 비로소 숨을 편안하게 내쉴 수 있었다.

    ―콰직!

    ―칭!

    허공에서 이어지는 전투, 줄기차게 덤벼드는 수많은 용인을 허공에서 베어낸다. 사 척에 가까운 흑색 검과 백색 검은 아서의 날개였다.

    그 날개에 치이고 베어나가던 용인은 어느새 하나도 남지 않았다.

    “아템, 몇 분 남았어.”

    「곧, 일 분 남았다.」

    “충분해.”

    「암, 충분하지.」

    눈앞에 보이는 헬리오스. 마브리우스의 주인이자, 심연에 잠식되기 시작한 안타까운 불꽃. 브라운의 화로로부터 응답을 받기도 했다.

    그나마 멀쩡한 지면을 밟고는 일순 헬리오스에게 다가간다. 다가갈수록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용암이 양팔을 들어 올리며 분노를 쏟아냈다.

    ―쾅!

    헬리오스의 심장 부근,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자욱해진다. 그 속에서 아서와 아템이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결속 해제.

    가슴이 뻥 뚫린 헬리오스는 마브리우스 산맥에 무릎을 꿇고, 심연과 함께 서서히 녹아내렸다. 바닥에 착지한 아템과 아서는 무너져 내리는 헬리오스를 직시했다.

    “끝났어, 녀석이 소멸하면 열매도 얻을 수 있을 거야. 수고했어, 아템.”

    소멸하는 헬리오스를 직시하고 있던 아서를 향해 아템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꼭 안타깝게 생각할 거 없잖아. 아서.”

    “…매정하긴.”

    “과거에도 말했듯이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것도 있는 법. 우리는 여정을 위해 재회했으니 여정이 끝나면 그 이별을 맞이해야 한다.”

    “거참, 쉽게 이야기하네. 누가 못하겠다고 했습니까. 아주 자기 없으면 못 사는 줄 알아.”

    아템은 운명에 저항하는 것과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그 두 개를 구분되게 만든 것은 심연이었다. 심연이 없으면 그만일 테지만, 심연은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필연적인 것으로 비극에서는 그것이 활개를 치겠고, 희극에서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머물 것이다.

    ‘자애로운 산맥, 불길의 어머니.’

    헬리오스는 마브리우스 산맥의 어미였다. 멀쩡한 곳에서 심연이 되어 돌아온 자손의 혼을 거두는 것도 그 어미였을 것이다.

    * * *

    ―괜찮다. 인류의 주역이 되려는 자여.

    번영하는 인류와, 사랑으로 타올랐던 산맥으로 거두어지는 것이기에. 비로소 열기가 남지 않는 재가 되어, 내 부름에 응한 자의 여정이 될 수 있었으니.

    심연으로 물든 화마가 걷히면 산맥은 온화로워 질 것이며, 또한 마음으로 낳았던 내 자손들은 이곳에서 번영하며 살아갈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이전과 다른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혹 그때가 되면, 그때가 되면.

    과거에 머물러 있을, 마지막 여정에 남아있을, 희생의 불꽃을 거두어다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