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83화 (183/222)
  • 183화

    * * *

    [ Return Scenario (3) ]

    [ 서대륙 델타 / 던전할머니 ]

    던전 할머니, 서대륙 델타제국의 유일무이한 최대 여관. 용사의 쉼터 사장인 나는 이 여관의 주인 아네스를 잊을 수 없다.

    과거 ‘혁명의 검’이나 ‘늑대들의 어미’로 불렸던 델타의 영웅, 아네스는 언제나 용사의 쉼터를 위해 많은 조언을 준 사람이었다.

    그 눈초리가 어찌나 좋은지, 마리가 가진 세계의 유산이 의심될 정도로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이름 앞에 ‘귀신같은’이나 ‘사람 속을 훤하게 들여다보는’ 같은 단어를 붙이기로 했다.

    “사람 속을 훤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아도, 이 나이 든 노파는 세월에게 빚을 지고 있어 조금 더 지혜로울 뿐이네, 자네가 알고 싶어 하는 ‘미지의 나무’는 한동안 델타를 벗어나지 못한 이 늑대에겐 어려운 단어에 불과하지.”

    결과적으로 아네스는 ‘미지의 나무’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정보를 알고 있는 자가 있다면 역시나 ‘아황’ 말고는 없을 것.

    하지만 과거에 대화를 생각해보면 아황 역시 ‘미지의 나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쉬었다 가게, 표정을 보아하니 많이 피곤해 보이는군. 게다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타 대륙에서 먼 길 오느라 고생도 많았겠지.”

    아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랜만에 찾아온 몇몇 손님들을 오가며 대화를 걸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냐는 식의 안부를 전하는 것, 아네스가 스스로를 주책이라고도 표현했다.

    이 시점에 아네스는 나를 알 리가 만무하다. 아템과의 여행을 끝내고 델타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제아무리 정보력이 뛰어난 아네스라도 레르 마을처럼 발길이 닿지 않는 외곽 시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우락부락한 전사들이 많군. 벽면에 붙어있는 사진들을 보아, 이들은 ‘가족’이라도 되는 것인가, 아서.」

    검의 형태를 유지하던 아템이 물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시끄러운 소음에 덧대어 대답한다.

    “델타의 늑대들, 네가 눈을 감고 지도에 찍었던 대륙을 수호했던 훌륭한 전사들이야. 네 말처럼 무리를 만들어 가족처럼 생활하지.”

    “저들 중, 프리실라라는 사람은 훗날 용사의 쉼터에서 길드를 운영하게 되는데, 저 아네스라는 분의 딸이라고 할 수 있어.”

    「마치 훌륭한 어미의 표본 같은 인상이다.」

    책상 위에 동난 맥주가 다섯 잔을 넘겼다.

    적당히 앉아있으면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작은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수집된 정보라고는 바바리안 같은 사내들의 사냥을 주제로 한 가십거리가 전부다.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했나 보군, 이 노파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깝네.”

    “이러다간 맥주만 마시다 나가겠어요.”

    아네스는 철컥거리는 갑옷의 소리와 함께 팔짱을 끼더니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자세히 설명해 주게나, 해답은 아니더라도 약간의 지혜는 보태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미친 짓이라고 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아네스에게 실토했다.

    과연, 본래 세계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설명하니 잔뜩 구긴 미간을 펼 줄 모르는 아네스였다.

    헛소리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마다 ‘흠’이라는 시늉으로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생각할 것이다. 괜찮다. 아네스는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손님에게도 세월을 통해 얻은 지혜로운 대답을 해줄 것이다.

    “자네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군.”

    그 대답이 왠지 모르게 내 가슴을 후벼 팠다. 뭐랄까, 마치 보상을 받는 기분처럼.

    “흠.”

    외마디는 아네스의 고찰을 의미했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손님들이 온데간데없다. 그녀는 영업이 끝날 때까지 내 이야기에만 오롯이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믿기 어려울 겁니다.”

    “자네의 눈빛은 위대한 세 송곳니처럼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아. 하물며 ‘언덕을 오르는 늑대’라는 세계의 유산이 이 몸에게 있다는 사실은 레르 일족이 아니면 결코 알 수 없을 이야기지.”

    아네스는 자신의 심장 부근을 손에 가져다 대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손쓸 수 없는 단계까지 왔음을 진즉부터 스스로 추측해온 것이다.

    “흐지부지 끝났던, 내 이야기 말이네.”

    나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그러면 안 됐는데, 무심코 내 눈을 직시하는 아네스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렇군. 자네의 반응을 보아, 역시 나는.”

    “….”

    “괜찮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전사는 뒤를 돌아보지 않네, 나 역시 걸어왔던 길에 후회는 없으니.”

    호탕하게 웃는 아네스, 자신의 목덜미에 위치한 펜던트를 연다. 어린 프리실라. 젊은 아네스. 노튼의 성을 가진 두 사람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말을 잇는 그녀였다.

    “꽤 멋진 인생을 살다 가는군. 자네 같은 사명을 가진 이가 찾아와 내게 조언을 구하다니.”

    “하하하, 죽어서도 내게 빚을 지는 셈이라 자네의 표정이 그렇게도 죽상인 겐가.”

    메인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내게 보여주는 아네스였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정보를 필기한 흔적이 있다.

    “자네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네. 이것이 해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파가 판단하기에 해답에 가까운 이름이군.”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여럿 덧칠한 이름이 있다. 이 이름도 이야기를 통해 내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녀가 지닌 세계의 유산, 번외세계의 나침반에 ‘번외세계’는 어쩌면 이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는지.”

    “……델타 베를리.”

    “자네도 이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복잡한 나머지 겨를이 없었겠지. 아, 감명받은 얼굴로 나를 직시하지 말게나, 노파도 쑥스러울 줄 안다네.”

    뇌리를 스치는 아네스의 조언 덕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델타 베를리, 그녀가 있는 곳이라면 알고 있다.

    보랏빛의 눈 때문에 델타 성 꼭대기에 숨어있었다는 사실은 이전 세계를 통해 실컷 들었으니까.

    “벌써, 가는 겐가.”

    “시간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얼마나 시간이 부족한지 알 수 없다는 것도 문제라.”

    “내 조언이 도움이 되었길 바라지.”

    “이처럼 반드시 도움을 줄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네스를 찾아왔으니까요.”

    “이 노파는 칭찬에 취약해, 그만하게.”

    델타 시내로 나선다. 거리를 비추는 불빛 말고는 남은 것이 없는 쓸쓸한 거리, 팔짱을 낀 채로 문턱에 기대어 있던 아네스가 손을 흔들었다.

    “아 참, 아네스.”

    “프리실라에게는 다음 전투에서 매복을 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 이번엔 그곳을 지나갈 일이 없으니 도와주기 힘드니까요.”

    아네스는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그 사명을 모두 이루게 된다면, 이곳도 사라지겠지. 그렇지 않은가, 아서.”

    “그러니 걱정 말게, 그 전투는 내보내지 않도록 하지.”

    “나도 프리실라와 함께할 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덕분에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을 게다.”

    * * *

    [ 서대륙 델타 / 델타 성 ]

    서대륙 델타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성채, 델타 3세를 둘러싼 핵심 권력가들이 황실을 찾기 위해 오가는 곳.

    혹은 속을 까보면 너무나도 많은 비리가 응집된 곳이었다. 이제 와 관심 밖에 이야기였다고 말하기엔 핵심 간부가 전원 비르테리아의 심복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베를리는 지금도 철장 안의 새처럼 성채 꼭대기에 몸을 숨기고 있겠지.”

    “본인은 마땅히 숨겨져야만 한다고 생각한 채. 제 탓하기 바빴을 거고.”

    무역 상인들의 이동 수단인 마차가 편리하게 다닐 수 있는 거대한 길. 델타 성으로 이어지는 ‘왕의 길’을 반만 걸어도 가로로 쭉 이어진 성벽이 모두를 맞이한다.

    델타제국 전체를 감싸는 성벽의 동문, 동문으로 쭉 이어진 이 길을 따라 걸으면 델타 성의 동문이 나온다.

    거대한 성벽이 제국을 두르고, 그 안의 백성을 포함한 모든 재물들 그것을 헤치려는 자는 절대 넘지 못할 벽이었다.

    수호신처럼 자리 잡고 있는 성벽 앞으로 델타의 병사들이 경계 태세를 잃지 않는다.

    벽을 통과하고 펼쳐지는 그 분위기는 어떤 것보다도 판타지에 나올 법한 위엄 있는 성과 닮아있다.

    번외세계의 나침반이라는 세계의 유산을 지닌 비운의 공주. 그녀가 이따금 환계에서 이야기했던 것을 토대로 잠입을 시도한다.

    동쪽 정문, 잿빛의 거대한 벽돌로 만들어진 성벽은 제국을 지키는 기사들이 연상된다.

    인기척을 줄이고 거대한 아치를 통과한 뒤, 정문 앞에는 평범한 순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분주한 것치고는 형편없는 경계라고 볼 수 있군, 굳이 상대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쉽게 가자고 했잖아.”

    지면을 바닥으로 툭툭 깐다.

    「흠, 못 본 사이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변한 것 같은데. 그것도 붉은 용의 영향인가?」

    “시끄러워, 아니거든.”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

    거대한 아치를 나와서 중앙 성채 주변을 훑었다. 높이로 보았을 때는 10층 높이다.

    대지면적은 데크 에던의 황제의 성채와 비슷할 정도로 넓은 편으로, 아템의 말대로 병사들이 분주해 보여도 경계가 삼엄한 편은 아닌 듯했다.

    외벽과 연결된 아치, 그리고 이어지는 정문이 유일한 통로라 그곳만은 경계가 유독 심하다고 볼 수 있다.

    황실이 안주하고 있는 중앙 성채 주변을 둘러쌓은 성벽 위에도 수많은 기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벽 위로 잠입하여 성채의 꼭대기 층까지 오르는 방법 외에는 없다.

    다만 성채를 등반하고 있는 미친놈이 발견이라도 된다면, 잠입은 뒷전이고 곤란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인기척이 가장 적고 경계가 적은 곳을 발견하여 잠입 준비를 마친다.

    쪼그려 앉아,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강하게 뛰어오른다.

    이어서 베를리가 있는 곳으로 추측되는 꼭대기 층에 아템의 칼날을 단숨에 박아 넣는다.

    「이런 용도로 사용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그대여, 앞으로 나를 만능검 아템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사방에 구멍 하나 없는 성채의 꼭대기, 벽면에 튀어나온 작은 구조물을 밟아 한 바퀴를 돌았더니 작은 창이 보였다.

    창에는 보랏빛의 눈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 그 눈을 크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창을 깨고 들어가자, 베를리는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비록 숨겨진 곳이라곤 하나, 여느 제국의 영애와 다를 바 없이 호화로운 방이라고 착각했건만, 베를리의 방은 용사의 쉼터 투숙객 시설보다 좋지 않았다.

    “베를리.”

    “당, 당신은 누구…….”

    사악한 마녀의 종자라 불리는 보랏빛의 눈은 어느 것보다도 맑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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