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82화 (182/222)
  • 182화

    * * *

    [ Return Scenario (2) ]

    그녀는 마검의 뭉치.

    과거에 ‘노르트’라는 이름으로 ‘신의 기계적 장치’라는 역할을 해냈던 나의 유일무이한 무기이자. 이따금 독백 속에서 언급되었던 ‘동료’의 정체.

    혹은 과거에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동아줄이었다. 아템은 이 모든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해했다.

    마치 척하면 척이라는 듯 자신이 깨어나자 본능적으로 ‘내가 일어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음을 알아챘다.

    「아서, 칼집이 필요하다. 내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칼집으로.」

    생각해보니 칼집이 필요했다.

    아템은 인간형으로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데다, 자신이 저장하고 있는 검을 꺼내어 그것을 사용하는 것까지도 가능하다.

    인간 형태를 유지하며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아템.

    그런 녀석이 굳이 칼집에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이유란 ‘불가시의 장막’의 역할을 하는 ‘칼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가시의 장막― 장막은 일화에서 비롯된 거대한 기적을 가리는 규칙, 정해진 이야기의 규칙을 초월하는 힘이 차원에 유지되고 있으면 심각한 ‘엔트로피’를 초래한다.

    과거에는 칼집의 역할을 하는 것이 ‘절망을 토하는 구멍’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기에, 이도 가르강티아를 봉인하고 난 이후, 일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우리는 보상으로 여행을 해야만 했으니 당연하게도 칼집이 필요했고, 아무 시장에서 구매한 칼집에다 내가 가진 ‘불가시의 장막’을 덧씌워 아템의 엔트로피를 조율할 수 있었다.

    “괜찮은 사람을 알고 있어, 브라운 아저씨라고. 술 냄새를 달고 사는 양반이긴 한데, 실력은 내가 볼 때 사계 제일이야.”

    “여행 때를 생각하면. ……네게 맞는 칼집을 찾느라 온갖 고생을 다 했으니 또 그런다고 생각하면 쓴물이 올라오잖아. 그분에게 맞춤으로 제작해달라고 부탁하면 돼.”

    아템은 귀를 쫑긋 세우며 나를 바라봤다.

    뭔가, 비슷한 뉘앙스를 누구로부터 본 듯한 느낌이다.

    「…오, 맞춤이라.」

    「여행 도중에는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그대와 나는 늘 사서 고생이다. 그대여 마지막 여정만큼은 최고조로 가는 것이다!」

    “동감이야.”

    현재 자신이 눈을 뜬 세계가 급조하게 만들어진 ‘평행세계’라는 점이나, 어떠한 이유로 본래 세계가 종말에 가까워졌는지,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은 델타로 향하는 길에 차근차근 설명했다.

    물론, 용사의 쉼터에 관련된 이야기도 빼먹지 않았다.

    「해골 신사들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개체끼리의 의사소통까지 가능하다라, 내게 심어진 정보로도 존재하지 않는 신묘한 이들이다.」

    「게다가 요리부터 시작해서, 빨래, 주문, 서빙. …더욱이 마차까지 몰 수 있다는 말은 아무리 그대라도 믿지 못할 뻔했다.」

    “분명, 그들도 아템을 좋아할 거야.”

    「뭔가 교묘히 ‘일곱’이라는 숫자가 ‘7인의 영웅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짧게나마 고찰까지 하게 되는군.」

    그들이 7명이라는 것에서 7인의 영웅들과 깊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유난히도 궁금함을 더해가는 아템이었다.

    물론 여기서 ‘붉은용’이나 ‘푸른용’이라던지, ‘정령왕’이나 ‘까칠한 칼잡이’, ‘바바리안 같은 여전사’를 설명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흥, 제법 잘 지냈던 것 같아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군, 사내 아니랄까 봐 꽤나 호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이건가?」

    가던 길에 멈춰 서서는 나를 강렬하게 쪼아보는 백색 머리의 여인.

    표표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애초부터 숨길 생각도 없었겠지.

    “호화롭다니, 여관 수리로 빠져나간 비용만 생각해보면 호화롭기는커녕 거덜이 나버릴 뻔했다고.”

    「뭐, 우리가 이룬 여정에 마지막 도착지이자, 새로운 시작점을 지켜주는 이들이 많아 나름 안심은 되는군.」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잖아, 현재 상태로는 네 힘으로도 충분히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부디 조심해주길 바랄게. 살기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으니까.”

    혹여, 기회가 된다면 녀석에게도 용사의 쉼터에서 일할 것을 권유하려고 했다. 물론 말을 잇지 못한 건 그 말이 쑥스러워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괜스레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어, 기껏 느끼는 재회의 분위기를 먹먹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 * *

    [ 서대륙 델타 / 브라운 대장간 ]

    타오르기 시작한 화로 앞에서 차를 홀짝이던 브라운 아저씨는 벼처럼 나 있는 자신의 덥수룩한 수염을 매만졌다.

    홀짝이던 차를 내려놓고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내 인상에 대해서 입을 연다. 여전히 오지랖하고는. 역시 브라운 아저씨였다.

    “크하하, 사연이 있는 얼굴이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사연이 있는 검객들은 하나같이 자네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거든, 그리고 하나 더. 검은 꼭 하나만 지니고 다니지.” “굳이 두 개씩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꺼운 가죽으로 된 앞치마를 착용하며 말을 잇는다.

    “쯧, 자네를 보아하니 상당한 실력자인 듯한데. …하수에게는 이 세상이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야.”

    그리고 검으로 모습을 유지하는 아템을 들어 칼집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견적을 잡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내가 지닌 무기가 파손될지 모르니까. 보조무기 하나쯤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지. 보자, 쥬드라는 사내가 있어. 무식한 인상에 보조무기는 없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가슴팍에는 숨겨진 단검이 위치해 있지.”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며,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연필을 집어 전달했다.

    “애써 키워놓은 검술 실력인데. 어느 운수 좋지 않은 날, 일격에 검이 부서지는 바람에 숨을 거두면 아쉽지 않겠나.”

    “지당하신 말씀이네요.”

    “그래서 말이야, 내가 할 말이 없군그래. 이 은색의 검은, 마치 숱한 쇠질에도 결코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함을 지녔다네. 이런 물건은 살아생전 처음이야.”

    화로가 불꽃으로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한 번, 두 번, 누차 그 불꽃이 매섭게 피어올랐다가 저무는 것을 반복한다.

    “게다가 자네는 운이 좋아.”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피어오르는 화로 때문이라면, 오히려 더 불길한 느낌이 드는데 말이죠.”

    “헬리오스 신께서 응답해주신 게야.”

    아템을 내게 돌려주고, 새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양식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브라운 아저씨였다.

    “내 고향은 마브리우스였다네, 드워프는 그곳에서 일생을 살아가지. 용암이 펄펄 끓는 산맥에 생명을 유지하는 모든 것들의 주인인 헬리오스는 우리의 조상이자, 받들어 모시는 수호신이다.”

    묵직한 집게로 강철을 잡아다 화로 속으로 들이민다. 열기 속에서 강철이 붉게 물들어간다.

    “우리는 불을 다룰 때면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는 한다네. 마치 혼을 담는 게야. 전쟁에서 사용되는 무기라면 날을 꼬박 세서라도 양손을 모아 가지런한 마음을 갖추려고 노력하지. 천운이 따르면 화로 속에 불꽃으로 그 응답을 받기도 한다네.”

    망치로 철을 두드리던 브라운 아저씨는 고개를 돌려 나를 직시했고, 씩 웃음을 보였다.

    “자넨 헬리오스에게 응답을 받은 게야.”

    나는 그 대답에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묵묵히 망치질을 하는 그의 옆을 지키며 아템의 칼집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헬리오스의 불꽃을 두른 강철이 대장장이의 손으로부터 형태가 만들어진다.

    형태를 갖춘 강철이 집게에 잡혀서는 받아둔 물 안에 잠기자 수분을 매섭게 빨아들였다.

    아템의 기본 형태에 가까운 은색 장검에 조화로운 칼집이 될 수 있도록, 창창한 은색 빛깔의 염료를 추가적으로 도포한다. 그의 두툼한 손끝으로부터 사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을 훌륭한 물건이 완성된다.

    “다 되었네, 어디 한번 착용해보게.”

    묵직한 칼집이, 가죽끈을 두르고 있다. 대각선으로 상체의 전반을 감싸 착용 이후 기동의 편의성을 살린 것이 돋보인다.

    파손되기 쉬운 구멍의 입구나 특정 부위에는 두꺼운 철을 둘러 내구성을 보완했다.

    그가 건네준 칼집을 착용한다. 3점식으로 되어있는 가죽끈에 부착된 버클은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착용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대단하네요.”

    “그 멋진 검도 제 집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니까.”

    브라운 아저씨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템을 쥐어 칼집으로 집어넣었다. 칼날이 칼집으로 들어가는 적절한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걸리적거림 없이 수월하고 부드럽다.

    “자, 그럼 다시 내게 줘보게.”

    “혹시 너무 잘 만들어져서 판매하지 않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크하하, 그런 게 아니야. 자네, 그 칼집이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군.”

    기껏 착용한 아템의 칼집을 브라운 아저씨에게 건넸다. 이를 받고는 책상 위에 다시금 위치시킨다.

    “뭘 하시려고요?”

    “음각이야, 이 브라운께서 만들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지. 여정에 부적이 될 수 있기를 고대하며, 대장장이의 혼을 담는 게야.”

    조각칼과 유사한 것을 손으로 쥐고선, 화로를 통해 온도를 높였다. 칼집에 브라운의 ‘브’가 새겨지려는 것을 보며 입을 연다.

    “비 바잔이라고 해주세요.”

    멍한 얼굴로 나를 한참이나 지켜보던 브라운, 이윽고 자신의 무릎을 치며 걸걸한 폭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하하하! 크하하!”

    브라운은 칼집에 ‘비 바잔’이라는 자신의 성을 새겼다. 흡족한 얼굴로 내게 칼집을 건네주며 말을 잇는다.

    “아무래도 자네는 나를 알고 이곳에 찾아왔나 보군, 그런 자는 흔치 않은데. 이를 필연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나.”

    “다시 또 보게 될 겁니다. 지금보다 더 평화로운 사계에서요.”

    “그것을 위해, 자네는 싸우는 건가.”

    채비를 마친 나는 대장간 입구에 서서, 그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네, 이제는 사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 *

    대장간을 나오자, 델타는 밤이 되어있었다.

    불가시의 장막을 칼집에 적용하여 아템의 엔트로피를 조율했으니, 이로써 기본적인 준비는 끝이 났다.

    문제는 ‘10개의 원형’을 찾는 일. 결과적으로 이것을 찾지 못한다면 일화의 소멸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템과 함께 프로타고니스트로서 결말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지의 나무’를 완성해야만 한다.

    시작부터 엄청난 난관에 봉착한 기분으로, 필히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가자, 던전할머니 여관으로.”

    가장 많은 정보가 오가는 곳, 어쩌면 과거의 아네스는 미지의 나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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