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81화 (181/222)
  • 181화

    * * *

    [ Return Scenario (1) ]

    돌아왔다. 그래, 회귀다.

    여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가진 능력. 기억을 보존한 채로 과거로 돌아가는 놀라운 기적.

    나는 이로써 경험하고 있는 이것이 ‘회귀’가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이곳은 멸망과는 동떨어진 델타 북동부의 한적한 시골이다.

    ‘…이럴 수가, 정말 돌아왔잖아.’

    멸망 직전을 경험하다가 평화로운 초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초점을 잡기가 쉽지 않다.

    이는 기회에서 오는 고양감과 불안함. 전자를 뒷전으로 다음 문제를 생각해야만 한다.

    내가 어느 시점에 도착했냐는 것이다.

    초원은 명실상부 ‘용사의 쉼터 마당’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용사의 쉼터 본 건물과 투숙객 시설이 있다.

    드래곤 길드의 건물은커녕, 그림자를 자욱하게 만들어 낼 엑스칼리버도 없다. 혹시 몰라 투숙객 시설 후방으로 이동하여 해골들의 관을 확인해보았지만, 이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주류창고도 만들어지지 않았어, 그렇다면 적어도 3년 전. …여관 운영 초창기쯤인가.”

    그 외에 갖춰진 것은 없으니 어느 시점에 도착했는지 얼추 추측할 수 있었다.

    주류창고가 만들어지지 않은데다, 밤이 되었는데도 라운지에서 들려오는 브라운 아저씨의 폭소 소리가 없는 것을 보아, 여관 건물이 막 지어졌을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용사의 쉼터 라운지를 돌아다니다, 포션을 담아두는 공병이 메인 테이블에 놓여있는 것을 확인한다. 유추해보자면 오픈 준비를 위해서 가속의 약을 복용한 여관주인의 흔적이다.

    공병이 도르륵 소리를 내며 테이블 아래로 떨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낚아챈다.

    “휴….”

    떨어지는 공병을 빠르게 잡을 수 있었다. 이는 육체의 재구성이 무사히 이루어졌음을 의미했다.

    “불가시의 장막(Invisibility Curtain)을 걷어내겠다.”

    [ 고유 차원으로부터 연결 : 대상을 카테고리 EX로 지정 ]

    “마안의 뭉치(Bundle of Magical Eyes)를 개안한다.”

    [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안들의 묶음을 해당 장기(오른쪽 눈)에 결속 / 장기(왼쪽 눈) 재구성 불가 ]

    [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안들의 묶음 중, 일부가 소실. ‘EX랭크, SSS랭크, SS랭크’ 해당 등급 마안이 결속에 제한됨, 결속 불가. ]

    감안했던 부분이었으나, 위 등급의 마안을 결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마안의 뭉치’의 실효성이 대폭 줄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혹은 실효성 자체가 없어졌다고 하여도 무방했다.

    “뭐, 상관없지만.”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고물 상태에 가까운 마안의 뭉치를 잃는다. 따지고 보면 일화가 소멸한 것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괜스레 찾아오는 불안함에 라운지를 어슬렁거리다, 이윽고 메인 테이블에 앉는다.

    시끌벅적함을 상징하는 라운지의 뮤즈. 여관의 무드를 담당하던 웨라의 감미로운 연주가 공간을 가득 채워야 하건만.

    주위를 둘러보지만 작은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손님들의 별 볼 일 없지만 우스운 수다 소리가 없으니, 용사의 쉼터는 그저 적적한 공간에서 그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이곳을 차지해야만 할 사람들은 지금쯤 모두 제각각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언젠간 이곳에 들러 공간을 채워줄 것이고. 내게는 그런 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장르를 바꿀 의무가 있다.

    “…다음은, 아템인가.”

    아템. 노르트의 반쪽을 담당하는 영혼, 신의 기계적 장치가 휘두르는 날카로운 기적. 일화가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그곳에 가게 되면, 어쩌면 그대의 잃어버린 날개가 눈을 뜰지도 모르겠군.

    일화가 넌지시 던진 문장은 아템과의 재회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했다. …동시에 그가 말한 ‘나의 도피’ 또한 회수하여야만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각오했으니까, 이왕 겪을 이별이라면 이번엔 확실하게 해야겠지.”

    그렇게 말했지만 역시나 마음을 먹기는 쉽지 않다. 의미 없는 고찰은 스치는 대로 두고, 동이 트면 곧바로 메르헨을 향하자.

    “뭐, 뭐야.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혹시, 아서의 요리가 맛없다고 해서?”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노란 장발, 늘 착용하고 다니는 로브, 초록빛의 동공, 그녀는 분명 레니였다.

    “…레, 레니?”

    생각해보면 여관의 첫 손님은 레니였다. 주방에 어질러진 식기 도구가 언덕을 쌓고 있는 것을 보아 어젯밤 레니의 도발로 인한 흔적임에 틀림없다.

    “그, 그럼요. 레니죠.”

    레니는 테이블 위에 얹혀두었던 공병을 황급히 로브 속에 집어넣었다. 수줍은 표정과 함께 ‘어제 거하게 취했는지, 또 아서 앞에서 회복제 자랑을 했나 보네요.’라며 시선을 돌린다.

    “풉, 하하.”

    “왜 웃는 거죠, 다른 건 몰라도 제가 만드는 회복제는 틀림없이 좋은 물건이라고요!”

    “그럼, 맞아. 하하.”

    “…왜 울고 그래요?”

    왼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뺨을 타고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손등으로 그 뺨을 훔친다.

    스윽 닦아낸 손으로 레니의 어깨를 두드렸고, 레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건 장치가 고장 나서 그런 거니까.”

    “장치?”

    “그래, 장치. 빌어먹을 장치지.”

    “엑.”

    “됐고, 오늘은 기대해도 좋아.”

    나는 양팔을 걷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 도중 대화를 주고받으며 담소를 이어간다. 아직은 진행되지 않은 이야기가 섞여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하루 만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다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리소토가 레니의 후각을 자극했는지, 금방 올려놓은 접시가 새것이 되어 있다. 아주 말끔하다.

    “먹은 게 아니라, 마셨네. 레니.”

    “마, 마셨다니요. 분명 씹어서 먹었다고요, 워낙 맛있으니까 그런 거지.”

    “회귀도 나쁘지 않은데, 이렇게 콧대를 꺾을 수도 있고 말이야.”

    “아서, 내일도 오픈하실 예정이죠?”

    내일도 오픈할 거냐는 물음이 대충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이 마법사는 몇 년간 피와 땀을 흘리며 탄생시킨 나의 회귀 리소토를 평가해준다는 빌미로 매일같이 음식을 얻어먹을 심산이다. 이른바 무전취식임에 틀림없다.

    “여관의 오픈은 당분간 미루기로 했어, 레니.”

    “지금 심술부리는 거죠, 제가 어제 맛없다고 해서 심술부리는 게 분명해!”

    “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서 그래.”

    해야 할 일, 10개의 열매를 찾아, 결말을 조우한 뒤 아템과 함께 그것을 무찌르는 것. 더 이상 과거로부터 도피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진정한 종말을 막는 것.

    “아주 힘든 일이라, 겸업은 힘들 것 같아.”

    “…그렇군요.”

    레니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한참 동안 직시했다. 이윽고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라며 응원하는 그녀였다. 발레포르, 동료를 잃었던 과거를 떠올린 것이 분명하다.

    “그런고로, 이 여관을 잠시 동안 레니가 맡아줘야겠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레니에게 카운터에 걸린 보조 열쇠를 넘겨준다.

    “필요할 땐 언제든지 이곳에 와서 쉬다가 가도 좋다는 얘기니까. 가끔 바닥을 쓸어주면 좋으련만, 귀찮으면 넘어가도 좋아.”

    “진, 진심이세요?”

    “아, 혹시 모르니 미리 얘기해두는 건데, 만약 레드 드래곤이 나타나면 놀라지 말고.”

    “레, 레드 드래곤?!”

    “그래, 렌이라는 녀석인데, 정확히는 드래곤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렌이야.”

    “드래곤의 이름은 장문이라더니 사실인가 보네요…. 그걸 외우고 있는 아서도 참.”

    레니와의 사소한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김에 그녀가 안고 있는 트라우마를 덜어낼 수 있으면 좋았을 터, 역시 발레포르를 해치우지 않으면 불가능해 보인다.

    동이 틀 때까지 맥주를 홀짝이던 레니가 테이블 주변을 초록빛으로 가득 물들인다.

    “네 트라우마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아니지, 이미 해결했으니까.”

    어차피 이곳은 본래 세계에 있어서 리허설과 같은 것이다. 목적만 도달한다면 본래 세계에 섞여 사라질 것이고.

    잔뜩 취한 레니의 수면이 부디 좋은 꿈이길 소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담요를 덮어준다.

    “음냐…. 그래서 아서의, 생일은, 언제….”

    나쁘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여관 문을 열며,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첫 손님의 잠꼬대에 응한다. 피식거리는 입꼬리도 함께였다.

    “나는 아템이 지어준 아서라는 이름으로, 9별의 15일에 다시 태어났지.”

    “9별의 14일은, 아템이 잠든 날이었어.”

    * * *

    [ 메르헨 / 황혼의 숲 ]

    ―어스름을 어깨에 놓고는 황혼의 숲을 지나, 붉게 달아오르는 나무들을 지나, 파랑새와 함께 아름다운 강에 도착하면, 우린 쉬었다 갈 수 있을까.

    익숙한 어스름이 자욱한 숲에 드리운다. 굳이 파랑새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길을 알 것 같은 기분이다.

    그녀가 잠든 강을 찾는 것은 보통 고약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과거에 나는 꼭 헤매곤 했었는데. 지금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지름길을 가고 있는 기분이네.’

    ‘인정하지 못했기에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는 건가.’

    울창한 잎사귀 사이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붉은빛이 지면 위에 어질하게 꺼져있다. 그 어질러진 빛을 계속해서 지르밟으니 어느새 그녀가 잠든 강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아.”

    강 위에 은발의 여인이 서 있다. 고개를 돌려 마주하는 그 눈빛과 표정은 내가 아는 아템이었다. 비로소 숨을 쉬는 아템이다.

    “…아템.”

    찰박찰박 소리를 내며 얕은 강에 걸음이 잠긴다. 그칠 줄 모르는 그 걸음에 아템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황급할 필요 없다며, 다독이듯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윽고, 받아들이기로 한 것인가.」

    나를 반기는 아템의 화사한 웃음과 목소리는 소멸에 대한 씁쓸함이나 좌절 따위는 묻어있지 않았다.

    「나의 경애하는, 애경하는, 총애하는, 사모하는, 동경하는, 갈망하는, 흠모하는, 그대를 우러러 받칠 수 있는 모든 단어를 섞어도 부족할 나의 그대여.」

    「이 아템의 최후는 그대의 중요한 여정 끝에, 그대의 손에서, 품에서.」

    「끝나지 않을 행복한 꿈을 꾸며, 그대와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으니.」

    헤어짐에 있어서 서러울 것 없이, 그 자체를 겸허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건 내 쪽이었다. 겁쟁이나 어린아이처럼 고집부리며 떼썼다.

    “그래서 부탁하러 온 거잖아.”

    “다시 한번 나와 모험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끝나지 않을 도피를 간신히 떨쳐내고 찾아왔어.”

    아템은 아무 말 없이 내 허리를 감싸며 강하게 끌어안는다.

    우리에게 있었던 모든 추억과 유대감으로부터 태어난 진정한 재회였다.

    “보고 싶었다는 말은 못 할 것 같아, 아무래도 오그라드는 건 질색이니까.”

    「…나는 보고 싶었다.」

    .

    .

    .

    2. ‘일화’ [The Anecdote]

    2―1. Setup : ‘deus ex machina’

    2―2. Setup : ‘Spin Off’

    2―3. Protagonist : ‘Arthur’

    3. Return Scenario (1) ‘사실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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