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80화 (180/222)
  • 180화

    * * *

    아저씨는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는 나의 손을 대신 떼어주며, 새하얀 공간 위에 ‘미지의 나무’를 가리켰다.

    「다시금, 이 ‘미지’를 보아라.」

    「맨 아래의 원형, 이는 ‘왕국’을 의미한다. 그 위, 왼쪽부터 시작하여 ‘영광’, ‘기반’, ‘승리’ 그 위로 ‘미’가 존재하며, 양쪽으로 두 개는 ‘신의 힘’과 ‘자애’를 의미하지.」

    「그보다 더 위, 이 세 가지의 원형은 ‘신과 동등한 것’으로 비유되는 구간이다. ‘이해’와 ‘지혜’가 있다.」

    「그렇다면, 맨 마지막. 가장 위에 존재하는 저 원형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나.」

    “알 리가 없잖습니까. 아저씨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서시와 나는 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이야기 자체는 서시로부터 만들어진 것이고, 나는 그 이야기의 균형을 담당하는 것.」

    「이 미지의 나무는 우리들이 만든 것이 아닌, 미지라 불리는 관찰자들의 의지를 의미하며, 이어서 그대들이 부르는 ‘세계의 유산’은 그 의지가 낳은 ‘혹시 모를 가능성’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를 이해하려는 것보다, 차라리 무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 마지막 원형은 뭔데요.”

    「왕관, 가려진 것 중의 가려진 것, 창조의 점, 무한하게 뻗는 휘광, 이야기 위에 있는 자, 보이지 않는 것의 보이지 않는 것, 모든 것의 필연, 모순되지 않은 모순.」

    “이거 참, 아무래도 셜록의 마안을 사용해야만 아저씨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는 그대를 의미하지.」

    가장 위에 존재하는 원형(열매), 그 영역을 대표하며 수호하는 존재는 ‘노르트 아템’으로, 현재 내 곁에는 ‘아템’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 의미의 절반이 엔트로피와 함께 소비되었다고 볼 수 있다며 덧붙이는 일화였다.

    ‘왕관’의 원형은 무한한 빛을 방출하며 인간의 이해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을 통칭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러니까 신의 기계적 출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것이었다. 의아하다면 나는 열매라고 부르는 것을 수호해본 적이 없다.

    아저씨는 맨 아래에 존재하는 원형, ‘왕국’으로부터 지그재그 형태로 올라가는 광선을 만들어 냈다. 빛이 마치 뱀처럼 기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주연은 이러한 방법으로 ‘왕관’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열매를 얻게 된다. ‘왕관’의 열매를 얻지 못하더라도 ‘신과 동등한 것’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해’와 ‘지혜’까지를 얻었으니, 사계를 장악할 힘은 충분했고, 그 힘을 지닌 자는 ‘서시의 비극을 위한 진정한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가 될 수 있었다.」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 주인공, 주연, 주동 인물, 연극이나 영화, 소설과 같은 이야기 속에서 내용의 핵심이 되는 인물.

    「그대는 결말을 위한 신의 기계적 장치. 전환된 이야기는 비극이 되었으니, 이제는 ‘프로타고니스트’를 마땅히 도와야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 ‘비극을 돕는 기계적 장치’가 될 뻔했다고 볼 수 있겠군.」

    「하지만 서시는 그대가 쉽사리 ‘비극을 돕는 기계적 장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간파했던 것인지, ‘프로타고니스트’가 얻게 될 ‘이달리브’에는 그대를 ‘결말과 상관없는 자, 하지만 그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무력이 필요하다’고 예언해두었다.」

    「그러니, 그대는 역풍이 되는 것이다.」

    “역풍?”

    「그래, 역풍.」

    “내가 역풍이 되라니….”

    역풍이 된다. 일화는 내게 지금까지 일궈놓은 서시의 모든 이야기의 엔트로피를 파괴하고, 그의 대가로 돌아오는 역풍이 되라는 소리를 했다.

    세계는 단 하나, 더 이상 ‘현재’를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규칙에 상관없이 모든 것이 정해진 이곳에서 무언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이야기는 일화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이다.

    ‘다시 이야기를 진행했다간, 삽시간 안에 이야기가 결말을 조우하고 만다.’

    「역순으로 미지의 나무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마땅히 장르가 ‘전환될 개연성’을 만드는 것이지.」

    「미지의 나무는 완성되기 전까진 어느 이야기에서나 존재하는 것. 완성이 되고 나면 하나가 되어, 그 세계선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곧 평행세계의 기준선이 되어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래, 지금 네 머릿속에 떠오른 것. 두 번째 주연 비르테리아는 마지막 열매를 손에 넣지 못하여, 미지의 나무를 완성시키지 못했으니. 평행세계만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도 미지의 나무를 완성시킬 ‘열매’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의 말대로라면 평행세계는 첫 번째 주연의 회귀를 위해서 몽땅 대가로 받쳐….”

    “설마, 아저씨는.”

    「그러하다. 나 ‘일화를 소비하여’ 단 하나의 평행세계를 구축하면, 그 세계에서는 그대가 ‘신의 기계적 장치’가 아닌 ‘프로타고니스트’로서 움직이게끔 재설정 할 수 있다. 즉 대가만 충족한다면, 다소 억지스러운 미지의 개연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

    「미지의 관측자는 ‘변덕이 심한 편’이기에, 만약 새롭게 구축된 평행세계에서의 그대가 ‘프로타고니스트로서의 목적’이 내재된 결말까지 도달하여 그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만 있다면. 주축이 되는 장르는 그대와 내가 만든 결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해진 이야기에 두 가지의 결말이 존재할 수 없으니, 그대가 다시 이곳에 돌아와 비르테리아를 마주한다면, 비르테리아는 그 어떠한 것도 관여할 수 없는 ‘미지의 관찰자’들에 의해 ‘프로타고니스트’가 아닌 ‘응당 파괴되어야 할 비극, 최후의 안타고니스트(악역)가 된다.」

    「이것이 그대와 나의 최종 목적이다. 그를 처치하고, 이야기를 ‘희극’으로 전환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것.」

    “그러니까, 새로운 세계에서 ‘미지의 관측자’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그 이야기가 주축이 될 수 있게끔 유도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다시 이곳에 돌아와 ‘비극을 위한 주인공’이 아닌 ‘희극을 위한 악’으로 전환된 두 번째 주연 ‘비르테리아’를 소멸하는 것까지다.」

    “처음부터 이렇게 할 수는….”

    「그대여,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나. 이야기의 모든 것은 필연과 운명이 서로를 밀어붙이며 개연성을 만들어 탄생된다.」

    「그대가 내 뜻이 아닌 그대의 도피를 위하여 ‘결말을 봉인’하지만 않았어도, 사실상 이야기는 ‘일화’만으로도 ‘희극’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 터.」

    「그대와 나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지금 이 순간이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이렇게 할 수는 없었을까’라는 고찰도 생기지 않았겠지. 이곳의 이야기, 모든 결과는 시작과 끝이 아닌 중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의 피조물이여, 같은 것을 반복해서는 아니 된다. 그대는 미지의 나무를 통해 결말을 소멸하는 이야기를 그려야만 하니, 할 수 있겠는가.」

    「분명 ‘그녀’도 그것을 원할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그대를 어떻게 그 평행세계에 보내는가. 미지의 관측자는 엔트로피를 감당할 대가를 응당 요구할 것이고, 그대는 그 대가를 줄 것이 없으니.」

    「두 번째, 나는 현재 서시와 달리 ‘이달리브’와 같은 것을 창조할 힘이 남지 않았다.」

    「그곳에서 미지의 나무를 완성시키기 위해선, 현시점의 프로타고니스트가 얻은 이달리브와 같은 길잡이가 필요하나, 전자는 단 하나로 비르테리아의 것이니, 그대가 길을 찾지 못하여 그로부터 결말을 파괴하지 못한다면.」

    「…언젠간 중단되어있던 ‘서시의 이야기’가 다시금 진행되어, 나머지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시점에 나는 소멸했을 터이니, 더 이상 비극을 막을 ‘일화’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고.」

    * * *

    아저씨는 옅은 미소를 품고, 거대한 문을 만들었다. 새하얀 공간,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한 나무 문.

    끼익, 아저씨가 그 문을 열자 내부는 흑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혼돈이나 심연이라고 부르기엔 꺼림칙한 느낌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저 문을 넘어섰을 때,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도피’를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이 문을 넘으면 계획이 시작되는 건가.”

    「그대는 대가를 줄 것이 없으니, 자칫하다간 의미 없는 소멸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아서.」

    「그렇기에, 그대가 나를 돕는다. 고대하긴 했으나. 그대와 약속했던바, 요구에 따라 본래 세계로 환생을 도와줄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기적을 축적하고, 보존했던 것이니.」

    「저 문은 마지막, 그대의 의지에 따라 하나는 이야기의 모든 일화인 나를 소비하여 창조된 복사 평행세계로 전이되거나, 혹은 그대가 머물던 본래 고향의 어느 시점에서 전이될 것이다.」

    “회귀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게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아저씨.”

    「…….」

    “잠깐, 이 문고리에 적힌 문장은 뭐죠.”

    「신묘하게도, 나는 보이지 않는데. 그대에게만 보이는 글자인가 보구나.」

    아저씨는 내가 쥔 문고리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해보니 이목구비가 뚜렷하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왠지 아저씨의 표정이 보이는 느낌이다.

    「그대는 아무래도, 나와 뜻을 함께하려는 것 같은데, 괜찮겠는가.」

    “괜찮을 리가 있습니까. 구원자는 늘 부담을 안는 존재라고 하더니, 세상에서 제일 불합리하다고요. 그리고 대가가 왜 없어요, 여기 버젓이 있는데. 안 할 수도 없고.”

    한쪽 눈을 가리켰다. 이는 ‘마안의 뭉치’로 ‘노르트’를 의미하는 모든 것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저쪽으로 갈 때, 왼쪽 눈.”

    아저씨를 바라보며, 오른쪽 눈을 가리켰다.

    “돌아올 때, 오른쪽 눈.”

    아저씨가, 일화가 호탕하게 웃었다. 창조와 그 의미가 동등한 존재가, 이렇게 호탕하게 웃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곳에 가게 되면, 어쩌면 그대의 잃어버린 날개가 눈을 뜰지도 모르겠군. 눈 한쪽을 잃는데, 대신할 수 있는 ‘그대만의 지팡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애석하게도 본편보다.”

    그렇기에, 같은 것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스핀오프가 더 잘 팔릴지도 모르겠네.”

    문고리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일화도 볼 수 없을뿐더러 오로지 나만 볼 수 있었던 이 문장, 본인은 이해하기가 어려우니 미지의 독자들이 마음껏 해석해주길 바란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재미있게, 쓰이겠군.」

    * * *

    아서가 문을 넘는 순간, 새하얀 공간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문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는 일화. 제 몸도 서서히 파편이 부유하더니 으스러진다.

    「그대는 본질부터, 비극을 막고 싶어 하는 성질을 가졌지, 같은 네 핏줄에 먼저 온 아이처럼.」

    구두 끝에 종이가 부딪친다. 이곳은 외부의 물질을 들여올 수 없을 터, 아무래도 아서의 물건이었다.

    ―고마웠습니다. 어쨌거나, 이곳에서의 내 부모는 당신이었으니까요.

    피식, 웃음을 짓는 일화였다. 늘 들고 다니던 종이 쪼가리라 그런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용사의 쉼터, 탄산수… 무료 쿠폰… 이라.」

    「하하, 녀석답군. 대충 무슨 의미인 줄 이해했다네, 아서.」

    .

    .

    .

    2. ‘일화’ [The Anecdote]

    2―1. Setup : ‘deus ex machina’

    2―2. Setup : ‘Spin Off’

    2―3. Protagonist : ‘Arth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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