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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78화 (178/222)
  • 178화

    * * *

    비르테리아는 이전과 달리 사계의 흐름이 불측지연하다는 것을 느낀다.

    허공에 떠도는 마력이 소실했다.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 열려 사계를 집어삼킨다. 이는 분명 그가 계획했으며 ■■가 정한 결말.

    부서져 버린 성채, 들려오는 비명 소리,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는 절망들, 하늘을 모조리 침식해버린 어둠, 고장 나버린 신의 장치, 이는 이 이야기의, 인류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말해준다.

    ‘어째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인가.’

    하지만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를 낳고, 잉태된 이야기가 계속해서 사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군. 일화, 또 하나의 창조주는 일화.”

    이야기의 시작, 모든 것의 시초. ■■는 일화에 관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는 주연을 선정하여 그의 서사를 통해 이야기의 결말까지 도달하려고 한 것이다. 일화를 피해.

    “하하하, 하하하!”

    비르테리아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마구 구기며 아연실색했다. 점차 광기로 물든 얼굴, 잔뜩 주름진 그림자가 짙어졌다.

    “어서, 마무리를 지어야겠군. 이 결말은 내가 원하는 바, 다를 것이 없으니.”

    7인의 영웅들의 잔재와, 푸른 용, 그리고 이 이야기의 파국을 막는 장치를 바라본다. 여전히 그들은 사방을 둘러싼 절망들과 힘겹게 대치 중이다.

    ―파스스.

    비르테리아의 몸이 서서히 부서지며 그 잔재가 허공을 떠돈다. 허공을 떠돌던 티끌들이 절망을 토하는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는 비르테리아가 결말과 완전히 동조하였음을 의미했다. 하늘이 부서진다. 그나마 남아있던 어두운 구름에 금이 갔다.

    이를 지켜보던 아이리스는 아서의 손을 더욱 강하게 쥔다. 7인의 영웅은 주변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이들을 지킨다.

    꽈직, 하늘은 유리가 깨지듯 으스러진다.

    이윽고 현세를 유지하던 모든 흐름이 결말과 동조한다. 하늘은 곧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 되어, 그 하늘에서 절망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달, 그락, 그를, 지켜야, 해.”

    바바비어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6명의 영웅들과 계속해서 절망들을 해치운다. 자세히 살펴보면 유난히 아서를 향해 절망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아서가 사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기적’이기 때문이다. 결말은 ‘비극’을 맞이하는 것이 정당하기에, 그 비극에 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을 소멸시켜야만 한다.

    ―콰직!

    점진적으로 마력이 줄어들었던 탓에 영웅들의 형상이 조금씩 흐려진다. 절망들이 살갗을 물어뜯어 피가 터지는 대신, 비르테리아와 유사하게 티끌이 흩날렸다.

    “괜, 괜찮은가!”

    아이리스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지금까지 많은 마력을 사용해왔던 탓에 공기에 마력이 없는 지금 호흡도 쉽지 않다.

    절망들이 계속해서 굽이친다. 어쩌면 저 하늘에 떨어지는 절망들이 죄다 아서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키에엑!”

    혐오스러운 소리를 내며 허공을 날아다니던 날개 달린 개체, 이윽고 아서를 향해 그것들이 수두룩 달려든다.

    7인의 영웅은 사방을 조여오는 절망들을 막기 바쁘다. 아이리스가 힘겹게 날카로운 얼음을 생성한들 날아가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바닥으로 고꾸라져 깨지기 십상이다.

    ―쿠릉!

    우레가 치자, 하늘을 부유하던 절망들이 찢어져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이윽고 파편이 되어 다시금 절망을 토하는 구멍으로 흡수된다.

    “내가 왔네, 아이리스.”

    “한참 늦었거늘, 프리실라!”

    “미안, 미안, 저쪽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프리실라와 함께 온 란베르크는 아서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서 조용히 탄식을 뱉는다. 아서의 이런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초점이 없는 동공에서 느껴지는 허망함을 피했다.

    ‘…제길, 선생께서.’

    아서를 지키기 위해 절망들과 대치를 이루던 일곱 명의 인물들,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던 란베르크와 달리 프리실라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7인의 영웅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7, 7인의 영웅?!”

    “프리실라, 저들은 우리네 망자 녀석들이다. 짐이 추측했을 때, 아무래도 7인의 영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구나.”

    ―쿠르릉!

    천둥소리가 또다시 울린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천둥소리, 프리실라는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검기로 인하여 절망들이 소멸하고 있다.

    “갚아줄 것이 있으니, 나도 참여하겠어.”

    “아, 아젤!”

    “모르딕이라고 부르라 했을 텐데. 노튼.”

    모르딕 아젤이 철혈의 검을 이끌고 나타났다. 어쩌면 다시는 검을 쥘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걱정했던 란베르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뭐야, 걱정이라도 했나 봐, 울보 자식.”

    쳇, 소리와 함께 고개를 휙 돌리는 란베르크. 이내 7인의 영웅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전투에 임하기 위해 자세를 잡는다.

    ―노튼 프리실라

    ―모르딕 아젤

    ―블헤이드 메인 란베르크

    하나는 노튼의 혁명을 이은, 하나는 아젤의 피가 흐르는, 하나는 가문의 의지가 깃든, 이들이 비로소 사계의 차기 검성들이었다.

    셋은 필두가 되어, 몰아치는 절망들을 베어나간다. 두 번의 천둥소리가 울리면 두 갈래로 길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어서 란베르크는 척후가 되어 상대하기 곤란한 특정 개체를 소멸하는 데 집중한다. 계속해서 고갈되는 마력, 이들이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종말에 불응하는, 어리석은 영혼들이여. 비르테리아의 심판을 맞이하고 결말에 동조하라!』

    두 다리를 사용하지 않으며, 굳이 허공을 떠돌며 신을 빙자한 모습, 육중한 몸과 얼굴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비르테리아가 가르강티아와 완전히 결합했다.

    얼굴, 무수히 많은 안구가 뒤죽박죽 섞여 있고, 그 사이에 비르테리아의 얼굴이 있다. 끔찍한 형태를 이루는 이것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인류에게 있어 혐오스러운 모습을 지녔다.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임에 틀림없다.

    손바닥을 펴면 그 속에서 구멍이 열려 칠흑 같은 에너지를 쏴댔다. 에너지가 지면을 스치면, 그 에너지에 스친 것들이 몽땅 썩어간다.

    “조심하게, 모두들!”

    비르테리아, 아니 가르강티아, 아니 종말은 아서를 향해 몸을 튼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성채에서 제각각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이들은 아서를 향해 모여든다. 본능이 말해준다. 아서를 지켜야 한다. 이어서 마리의 대함선이 마력 결계를 펼쳐 강력한 방어벽을 만들었다.

    ―콰지지직!

    칠흑 같은 에너지가 대함선의 결계를 조금씩 침식해간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절망의 세도 그칠 줄 모른다.

    질척거리는 땀, 비릿한 피 내음, 온갖 뜨거운 것들이 섞여 이들을 고양되게끔 만든다.

    “마, 마스터!”

    렌이 아서를 향해 달려왔다. 역시나 그녀도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것도 레니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

    “크윽, 이 쥬드는 수련이 부족했다.”

    쥬드가 다가오는 절망들을 몽땅 베어내지 못했다면 레니와 렌은 도착은커녕 시체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아, 아서가 죽, 죽은 건가.”

    “……마스터.”

    아서는 살아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가볍게 뜬 눈은 이미 초점을 잃은 상태에다 사지가 찢겨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다.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꽃보다, 존재감이 부족하다. 그는 마력 유동은커녕 호흡조차 없었다.

    『고장 난 장치 따위는 기적을 부릴 수도 없을 만큼, 정해진 비극이란 자비 없는 것.』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 이름하야 이스카리옷 비르테리아, 이니라.』

    ―하늘, 절망을 토하는 구멍을 사계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큰일이다. 몸의 구조가 완전히 붕괴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완전히 고장 나버린 것이다.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분주한 이들. 그래, 여관 손님들의 시끌벅적한 소리.

    ‘…용사의 쉼터인가.’

    아니, 그럴 리가. 저 창공을 집어삼킨 절망을 토하는 구멍을 보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전부 종말을 막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의 동료들이다.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으로 감각을 보내보지만, 미동이 없음을 느껴본다. 어서 이들을 도와야 한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인물이니까.

    귓가에 ‘90%의 극심한 육체 손상’이라는 소리가 퍼졌다. 대충 내 사지가 멀쩡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발, 아서! 일어나 봐요. 아서!”

    레니가 눈물을 떨구며 내게 회복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초록빛으로 회복의 마력이 사방에 물들어도, 복부나 육체 곳곳에서 빠져나오는 혈액을 막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걸로 회복될 리가, …없잖아.’

    이야기의 끝이 다가온다. 이는 내게 있어서 두 번째와 같다. 이야기는 보는 이들이 있어야 살아 움직인다고 했는가.

    독자, 일화도 말하길 독자라 불리는 존재들은 ‘미지(未知)’라고 했다. 그들이 있어야만 이야기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고, 이동할 수 있다고.

    ‘이딴 걸 보는 독자들이 어디에 있나.’

    ‘독자’의 이름을 가진 자들, 나는 ‘미지(未知)’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미 내 이야기는 끝이 났으니, 아템과 이야기했던 두 번째 삶을 살기 위해서 아서라는 새로운 이름도 받았다.

    용서의 쉼터, 내 모든 것들이 집약된 소중한 것. 기껏 괜찮은 이야기가 될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빗나가게 될 줄은.

    ‘…그래도.’

    그래도 기회가 한 번 더 찾아온다면.

    ―[…….]

    ―[……시올로]

    ―[…시올로가이온(theologeion)]

    어떠한 방법도 가리지 않고, 저 빌어먹을 결말 이스카리옷 비르테리아의 숨통을 끊어버릴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아무래도 좋다.

    ―[결속 준비 완료]

    ―[결속 코드를 입력하십시오]

    이건 어렵게 낳은 내 이야기니까.

    ‘…그래서, 결속 코드가 뭔데.’

    ‘…이런 건, 들어보지도.’

    별안간 온갖 해악을 밀집시킨 것들이 멈춘다. 이어서 그것들과 대응하던 인류가 정지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절망들도 허공에서 정지한다. 흐르는 시간이 무언가로부터 장악된 것이 분명했다.

    모든 것이 멈춘 상태에서 공간을 비집고 유유히 걸어오는 자. 분명 대면이 없었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아저씨’가 보인다.

    ―[승인 완료]

    이야기가 아저씨로부터 중단된다.

    * * *

    1. ‘■■’ [The ■■■■■■■■]

    1―1. Setup : ‘ending’

    2. ‘일화’ [The Anecdote]

    2―1. Setup : ‘deus ex ma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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