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76화 (176/222)
  • 176화

    * * *

    “…….”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자연스러운 움직임 속에 삐걱거리는 느낌이 있다.

    “…혹시, 망자 녀석들인가! 말해보아라!”

    7인의 영웅은 비르테리아를 마주하며 전투 자세를 취한다. 이는 전투가 몸에 습관처럼 깃들어 있는 자들의 능숙함이었다. 날카로운 눈빛은 일순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을 법하다.

    “달그락.”

    바바비어의 입에서 달그락 소리가 울렸다. 저 7인의 영웅들은 신사해골들이 분명하다.

    기류에는 마력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에게 S랭크 못지않을 마력 유동이 느껴진다. 다만, 역사에 기록된 그들의 SSS랭크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마력 유동은 아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아이리스는 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마력 유동을 최대한 해석한다. 첫째, 저장되어 있는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둘째, 그 마력으로 형태를 구축하여 현세에 불러오는 것.

    “…기억 형상화 마법. 그것도 초월마법이다. 마석으로 형태를 유지하는 저들이 어떻게?”

    있을 수 없지만, 기억 형상화 마법에 가깝다. 이는 역사 속에 기록된 수많은 마법 중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마법’일 확률이 높다.

    존재하지 않을 마법, 비단 수많은 지식을 탐구해왔던 아이리스의 눈에는 저들을 형성하는 마법이 기억 형상화에 가까웠기에 전자의 마법이 존재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의 유산.’

    하물며, 유추할 수 있는 마지막 단서. 손목에 각인되어 있는 ‘7인의 영웅’이라는 문자. 그것은 모든 추측을 설명하는데 충분했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신사해골들이 내는 소리를 똑같이 내며, 아서와 아이리스 주변을 둘러 대열을 만든다. 마치 그들을 지키겠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삭제된 이야기의 주연들이 망령이라도 되어 현세에 머무르겠다는 것인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결말에 순응하지 못하는 빌어먹을 오물들.”

    “그래, 아무쪼록 그대들 덕에 내가 ■■에게 선택받은 것이니 썩 고맙게 생각하도록 하지.”

    비르테리아의 태도는 달라진 것이 없다. 도리어 7인의 영웅을 무시하는 편에 가깝다. 이어서 결말에 순응하지 못했던 7인의 영웅들을 향해 마지막 자비를 논한다.

    “내가 그대들의 결말이 되어 주겠다. 추잡하게 굴수록 그대들의 이야기는 오물처럼 더럽혀질 텐데, 그 안타까운 허물마저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군.”

    비르테리아가 손을 펼치자 지면에 흐르던 검은 기운이 형태를 갖추더니, 어느새 사방은 절망들로 가득하다. 이어서 7인의 영웅들을 향했다.

    “괜, 괜찮겠는가! 망자들이여!”

    “달그락.”

    “하, 하지만! 자네들에게서 란베르크보다 강한 마력 유동은 느껴지지 않거늘!”

    7인의 영웅은 아이리스의 말에 싱긋 웃으며 반응하더니, 별안간 공격을 시작하는 절망들과 대치를 이뤘다.

    수많은 격을 오가며 절망을 처치하는 그들의 모습은 역사에 기록되어있는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마르노프 바바비어’

    붉은 장발. 백색의 로브를 어깨에 걸친 채, 불꽃을 두른 검으로 절망을 가차 없이 베어간다. 그가 닿은 지면에 불꽃이 튀어 올라 사방을 밝게 한다.

    ‘프레이시스 베일리아’

    백색 머리, 붉은 눈, 인자한 인상을 하고 있다. 아름답다. 곱고 고운 손끝으로부터 절망들이 무자비하게 찢겨나간다.

    ‘셀로닌 네르브리안’

    바닥을 끄는 로브를 착용했다. 후드로 인하여 그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나무로 만든 기나긴 지팡이 끝에서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마법들이 발현한다.

    ‘폰 데크 에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 마치 귀족을 연상하게 만드는 기품 있는 움직임, 아이러니하게도 무너진 자신의 성채에서 절망들을 베어내고 있다.

    ‘마리나 레니아단’

    긴 귀를 가진 엘프, 그녀는 자신의 마력으로 거대한 활과 화살을 형성시켰다. 초록빛이 맴도는 거대한 마력 응집체를 허공으로 쏜다. 지상으로 떨어지는 날카로운 마력 화살이 대거의 절망들을 유성처럼 꿰뚫었다.

    ‘브렌트 잉크’

    암살자, 그의 움직임은 그림자와 같다. 일순 보이지 않았다가 어느새 절망들을 베어내고 있으니, 놓칠세라 그 움직임을 따라간다. 사방이 어둡고 그림자가 드리울수록 그의 형상은 더욱더 점멸해간다.

    ‘베르히만’

    불세출의 검사 베르히만, 마치 란베르크와 닮아있다. 그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하나 없다. 전방에 검기를 던진다. 절망들은 제 몸을 재생하기도 전에 파편처럼 흩날렸다.

    “달그, 그, 가 …를 만날 때까지, 달그락.”

    “…달그, 결말을 …락, 막아야 해.”

    바바비어가 말했다. 아이리스는 바바비어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방금 무어라 한 것이냐?’라고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달그락.”

    턱관절이 움직이는 달그락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기어 오는 절망들을 격퇴하는 바바비어, 그리고 영웅들이다.

    그들에게 느껴지는 마력 유동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나, 사방을 감싸고 있는 절망은 끊임없다.

    아서가 누군가와의 접촉을 이룰 때까지, 이들이 사계가 멸망하지 않도록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서 아이리스도 자리에서 일어나 절망들을 하나, 둘 소멸해갔다.

    “단, 단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냐!”

    “달그락.”

    바바비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리스는 현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엔 터무니없다. 월키스가 적은 수많은 서적을 보며, 지식을 탐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쿠우우웅!

    * * *

    ―결에 가장 가까운 과거를 들여다보는 서쪽의 현자, 노바인 하나안스의 비밀기록 중(中), 「마력 전쟁과 절망의 구멍」에서 발췌.

    세상에는 단 두 가지만이 존재했다.

    ‘빛과 어둠’

    ‘시작과 끝’

    ‘기와 결’

    태초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운 이 두 개의 근원은 대륙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전능을 지닌 신들을 두어, 권능을 가진 신들을 잉태함으로 그곳을 관철하고 관리하게 하였다.

    그 과정에서 중간계를 지키고 보호하는 드래곤을 만들고 엘프와 드워프, 천계인과 마계인, 그리고 인간을 만들어 냈다.

    세계가 급격히 안정화되고, 드래곤의 힘이 대륙에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자, 드래곤의 힘은 자연의 섭리로 인해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금의 드래곤은 로드라 불리는 존재를 제외하고 고대의 힘이라는 초월적인 마력을 발산하기 힘들다. 그렇게 힘이 줄어든 드래곤은 생존의 두려움을 느꼈고, 자손들을 대륙에 퍼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대륙 붕괴의 시작이었다.

    대륙 붕괴는 드래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시작되었다. 아무리 고대의 힘이 깃든 마력을 발산할 수 없다고는 하나, 자신들의 순수한 힘만으로도 강한 존재. 먹이사슬의 끝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래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자 세상의 균형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 균열이 모여, 결국에는 거대한 균열로 이어진다. 나비효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륙은 결국 알 수 없는 힘으로 둘로 갈라졌다.

    그것을 오늘날의 사람들이 명명하길 지상대륙, 하나는 부유대륙이라 부르게 된다. 대륙 중심이 하늘로 떠버린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엄청난 재앙이 있었다.

    대륙의 부유로 인해 생긴 강진과 먼지와 모래바람이 일어나 세상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재앙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엘프는 나무의 뿌리가 깊게 내린 숲속으로, 드워프는 깊숙이 위치한 지하 동굴로, 그리고 몬스터는 모든 자연에 순응하며 진화해 왔지만 오직 인간만이 그 재앙에 맞서서 대항하였다.

    그리고 그 커다란 사건은 인간이 대륙의 지배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륙 붕괴가 끝난 세계는 평화가 찾아왔고, 인간들은 세상의 지배자가 되어버린 순간부터 생존에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어진다.

    생존에 쓰던 힘을 바로 발전에 쓸 수 있던 것이다. 그들은 삽시간에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성장의 시간들이 결코 짧다고 할 순 없었겠지만, 그들은 마법을 탐구하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했다. 그렇게 단체나 연맹 같은 집단이 만들어지고 그들은 더욱 자신들의 발전을 빠르게 이루어 갔다. 이에 따라 타 종족들도 자신들만의 번영을 이루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평화는 그 이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력 전쟁은 모든 존재의 마력이 한정되면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몸 안에 쌓인 마력을 제외하고는 세상의 모른 마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력이 없어지면 사망한다. 호흡이란 마력이 들어갔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는 것.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적어도 당시의 인간들은 마력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만약 마력을 담을 수 있는 심장 없이 인간이 태어났다고 하면 그것은 ‘탄생’이 아니라 ‘죽음’으로 비유해야 할 것이다.

    마력이 조금씩 소멸하는 이 괴리한 현상이 시작되면서, 그것은 감당하기 힘든 재앙으로 나타났다. 호흡을 할 때마다 쌓이는 마력은 없고, 빠져나가기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조리 빠져나가게 된다면.

    필멸자로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

    마법사들이 이 현상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도중,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물론 언젠가 알게 될 사실이었으나, 빠르게 알아서 좋을 것이 하나 없는 것. 바로 타인의 마력을 빼앗는 것이 가능하다.

    그때부터였다. 마력 전쟁이 일어난 것이. 그것은 정말 지독한 전쟁이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 뒤엉켜, 광기에 뒤덮이고 서로의 힘을 갈취하고 또 탐욕했으니, 그보다 끔찍한 전쟁은 더 이상 없을 것이리라 장담할 수 있다.

    마력 전쟁 초기 때는 조직을 이루어 전쟁을 했지만, 그것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처음은 작은 배신으로 일어났다. 조직을 이룬 한 집단 내의 아군이 아군의 마력을 갈취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공황 상태를 불러왔다. 서로 적과 아군 할 것 없이 보이는 모든 존재들을 파괴하고, 또 그것들 중 대다수는 파멸했다. 이것은 제국 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 와중에도 마력 전쟁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타협했다. 아니, 선택했다. 이 지독한 전쟁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훨씬 이득일 것이라고.

    천공에 구멍이 뚫렸다. 그것은 아득히 생명의 범주를 넘어선 것, 마물보다 깊은 어둠을 가진 무언가들, 절망 그 자체였다. ‘절망을 토하는 구멍.’ 사악한 무리들이 내려와 대지를 파멸시키기 시작했다.

    비유가 아니라, 그 크기는 마치 대륙을 집어삼킬 크기였다. 전 대륙의 종족들은 모두 고개를 높여 하늘을 쳐다보았다.

    안에 차 있는 것은 감히 짐작하지 못할 정도의 깊은 어둠. 모두가 숨죽여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 그곳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마물들이 대륙을 뒤덮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저히 어둠에 가까운 그것들이 끊임없이 대륙과 생명들을 앗아갔다. 그 끝 심연 속에 있을 무언가는 인류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이 앞에 모든 생명체들은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현상이 가장 처음 일어난 곳. 지금은 아득히 죽음의 땅이라 부른 지 오래였지만, 정식 명칭으로는 세상의 끝.

    그들은 그곳에 원정대를 파견했다. 한 줌의 희망을 품고, 죽음의 대지 위를 탐험하는 최강의 원정대를. 이 사태의 원인을 밝혀줄 영웅들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