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75화 (175/222)
  • 175화

    * * *

    ―[오메가(omega) 랭크 : ‘엔드 오브 시나리오(End of Scenario)’, ‘14회’차 결속 준비 중…….]

    ―[오메가(omega) 랭크 : ‘엔드 오브 시나리오(End of Scenario)’ 결속 준비 완료, 결속 코드를 입력 하십시오]

    “……어디까지나, …이야기, 이야기의 결말은. 기계장치와 …같은 수단에.”

    ‘12번째 가르강티아’가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다시금 나타난다. 흐릿해져 가는 아서를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짓는 비르테리아.

    이야기의 ‘주연’이자, ‘결말’을 상징하는 비르테리아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와 공존을 이루는 가르강티아가 사라질 리 없다.

    존재만으로도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는 가르강티아는 계속해서 절망을 토하는 구멍으로부터 얼굴을 내밀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이야기의 파국을 막는 장치, 기적을 담은 연출, 인류에 출현하면 그 어떠한 재앙이라도 불합리에서 막아내는 자.

    “자, 어디까지 할 생각인가?”

    그 대단한 힘으로도 비르테리아를 소멸시킬 수 없었다. 비르테리아는 주연과 동시에 이야기의 결말을 상징하는 자. 모든 역할을 끝마친 아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

    아서는 비르테리아의 적이 될 수 없다. 비르테리아는 아서의 적이 될 수 없다. 도리어 아서는 비르테리아의 결말에 동조하여 사계를 파멸로 몰아넣어야만 한다.

    “……하아, 하아.”

    제 장치가 고장이 나버린 덕이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아서는 결말에 동조하지 않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승#!인 완@*(#@!료]

    비르테리아를 소멸할 수 없다면 결국 사계는 파국에 치닫고 만다. 아서의 몸이 점점 흐릿해지며 존재의 가치를 잃어갔다.

    기계장치의 신이라는 역할에서도 완전히 벗어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머리 위로 떠 오른 붉은색의 고리도 주파수가 어긋나는 소리를 내며 불규칙적으로 점멸한다.

    「rhgksek. rufakfdp xnwodgksms rjaemfdl dmlwlfmf vnadj.」

    「rlwjrdmf duscnfgksl, dl ahems rjtdms ehrwkdml Emtdlfk」

    전장에서 버려진 주인 없는 검들이 허공을 향해 떠올랐다. 전부 제 주인이 목숨을 잃었거나, 제 손에서 벗어난 것들이었다.

    수십, 수백, 수천, 그리고 수만의 검들이 허공에 떠오르니, 마치 몰아치는 소나기가 역류하여 구름으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그 검들은 제각각 절망을 뚫고 지나갔다. 마치 영혼이 깃든 것처럼, 의지를 품은 공격이 절망을 베어나가고 있다.

    이를 지켜보던 델타 세력은 공포에 맞서고자, 다시금 전선을 마주하며 집념의 일격을 던진다. 저 사내가 계속해서 기적을 일으키고 있기에, 바보처럼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이와 달리 여관 일동은 아서의 모습을 바라보며 신음을 내뱉는다. 그에게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

    프리실라도, 란베르크도, 아이리스도, 모두가 아서를 애타게 불렀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지금의 선생님은 다른 것들을 살필 여유가 없다. 어떻게든 전선을 지켜야 해.’

    란베르크와 프리실라는 병사들을 지휘하며 조금씩 전선을 정비했다. 그들의 투입으로 효율적인 전술이 운용된다.

    아이리스는 다른 이들과 달리 알고 있었다. 아서가 저 알 수 없는 힘을 계속해서 사용한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분명 저 힘은 스스로의 죽음을 가속하며, 자처한다.

    ―[기적 결#속에 대한 부109정!)@#발생]

    ―[권능[email protected] 결속에 대한 *&부정 발생]

    ―[대상자의$(%*장치가#70%소실, 소#(실]

    ―[의지에 따라, 강[email protected]#제 출력 합니다]

    수많은 검들이 하늘로 치솟아, 일제히 멈춘다. 그리고 지상을 향해 거센 소나기처럼 또한 일제히 떨어졌다.

    검들은 절망을 관통하며 그 많은 암흑 덩어리들을 소멸시켜 갔지만, 하늘에 아무 미동 없이 존재하던 결말은 멈출 새 없이 절망을 뱉어낸다.

    드래곤 길드, 반복되는 전투에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서가 움직이는 검과 함께 전투에 전투를 거듭한다. 인류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절망을 토하는 구멍을 향해 검들이 한데 모여 거대한 파도가 만들어지니, 신처럼 허공을 부유하는 아서와 그 움직임을 공유한다.

    ―[권능[email protected] 결속에 대한 *&부정 발생]

    ―[의지에 따라, 강[email protected]#제 출력 합니다]

    물고기 떼처럼 움직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검들의 향연과 함께 절망을 토하는 구멍을 향해서 강렬하게 쇄도한다.

    ―콰직!

    구멍 외부로 얼굴을 내밀고 있던 가르강티아가 수많은 검들로부터 우수수 박히니, 거대한 비명을 지르며 구멍 속으로 다시금 후퇴한다.

    아서의 붉은 고리가 더욱더 밝게 피어오른다. 이내 아서의 손아귀가 빛을 내뿜으며 구멍 속을 향했다.

    「rufakfdmf qnduwkqsms dmlwlrk, 이 손에 머무른다. qlrmrdml ehakddmf gjfkrgkwl dksgdmsl.」

    가르강티아가 절망을 토하는 구멍 속에서 별안간 튀어나왔다. 괴로운 소리, 가느다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이내 온몸을 꺾어 달아나 보려고 하지만 소용없다.

    목덜미를 잡힌 짐승이다. 가르강티아는 보이지 않는 무력으로부터 제 몸을 자유롭게 가눌 수가 없었다.

    ―.

    일제히 허공을 떠돌던 검들이 가르강티아를 집어삼킨다. 그리고 결말은 14번째 소멸을 맞이하며 재가 되어 사라진다.

    ―[대상자의$(%*장치가#70%소실, 소#(실)

    ―[대상자의 %%##가 90% 손상]

    ―[오메가(omega) 랭크 : ‘엔드 오브 시나리오(End of Scenario)’의 결속을 해체합니다]

    신을 빙자한 모습으로 허공에서 부유하던 아서가 힘없이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붉은 고리도 지속적인 점멸을 끝내며 그 머리맡에서 사라진다.

    ―휘이이익!

    곁눈질로 아서를 지켜보던 아이리스가 푸른 용으로 모습을 변형시킨 다음, 추락하는 아서를 향해 빠른 속도로 쇄도한다.

    거대한 손이 의식이 없는 아서를 받기엔 무리가 있었다. 지상에 닿기 직전, 폴리모프를 이용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아서를 간신히 받아낸다.

    ―콰지지직!

    날카로운 지면을 등으로 받아내며, 아서를 꾹 안는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이리스 손끝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렇게 아서를 안은 채로 바닥을 한참 동안 나뒹굴다 간신히 멈춰 선다. 아이리스는 황급히 아서의 상태를 파악했다.

    “임, 임자야. 임자야!”

    초점이 없는 동공, 호흡이 없고, 피부에는 차가움만이 남아돈다. 이는 박식한 아이리스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지식으로, 곧 인간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임자.”

    용의 눈물이 떨어졌다. 주르륵 떨어지는 눈물이 아서의 뺨을 한없이 부딪친다. 간지러워 눈을 떠볼 법도 한데 미동이 없다. 가슴팍을 강하게 때려보지만 아무런 기색도 없다.

    가까이 붙어있는 것이 싫은 나머지,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으름장을 놓을 것만 같은 아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시체 흉내를 내고 있다. 그 흉내를 내고 있다고 굳게 믿고 싶다.

    “…뭐해, 이러면 뭐 해, 근사한 여관도 짓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고, 사계가 알아주는 여관을 만들면 뭐 하냔 말이다.”

    아이리스는 흐느꼈다. 모르겠지만, 이것은 가벼운 감정이 아니었다. 용이라는 생명체가 가질 수 없던 유대감, 그리고 가족, 울타리. 모든 것이 허망해지는 느낌이다.

    “네 녀석이, 네 녀석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런…. 끄윽, 흑.”

    “달그락.”

    “…망자, 너희들이 이곳엔 어떻게.”

    “달그락, 달그락.”

    “위로라면 필요 없다. …이젠 모든 것이 소용없어졌으니까.”

    7명의 해골은 아이리스의 어깨를 계속해서 토닥거렸다. 화가 난 아이리스의 손짓으로 인해 캡틴의 팔이 바닥에 떨어진다.

    “…진심은 아니야.”

    * * *

    사계는 결말을 맞이하고 있다. 검은 하늘, 깊은 눈동자는 계속해서 절망을 뱉어냈다.

    데크 에던, 이어서 델타, 서대륙을 둘러싼 절망을 토하는 구멍은 지속적으로 그 크기가 범 잡을 수 없이 커졌고. 북대륙, 남대륙까지 넘어간다.

    고대 유적에 잠들어있던 주신들의 심연이 깨어나 절망으로 변천되고, 이어서 절망은 인류의 심상에 파고들어 절망으로 재탄생한다.

    죽어있던 비르테리아의 병사들과 그 세력들은 절망화가 진행되어 드래곤 진영과의 사투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포기하지 마라! 사계의 파멸을 납득하지 않고, 굳건하게 맞서 싸워라!”

    “…델타의, 아니 아칸의 인류여!”

    델타 진영, 아베스타의 마계 진영, 드래곤 진영,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최선을 다해 파멸에 맞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인류는 보살피는 자가 없기에 너무나도 나약했다.

    사계는 구멍으로 인하여 계속해서 마력이 손실되고 붕괴 중이다. 얼마 가지 않아 공기 중의 마력이 완전히 소멸하여, 마력이 적은 자는 죽을 것이고, 많은 자는 생존할 것이 뻔하다.

    ‘…겉으로는 서로를 위하는 척하지만, 공포 앞에선 인류도 생존이라는 본능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마리는 전투를 이어가는 수많은 병사들의 마음을 읽었기에 알 수 있었다. 처음과 달리 공기 중으로부터 얻는 마력이 점차 사라지자 돌연 찾아온 공포가 미래를 향한 의지를 꺾고 있다는 것을.

    ‘이대론, 정말….’

    한편, 그 결말의 중심이자 절망을 토하는 구멍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비르테리아. 복장을 가다듬으며 유유히 아이리스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 눈이 아서에게 향한다.

    여유로운 걸음걸이, 그리고 가르강티아를 다시금 창조한다. 구멍 속에서 사라졌던 가르강티아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네 녀석, 임자가 누군지 알고 있나 보군.”

    자신을 노려보던 푸른 용을 향해 멈칫하더니, 별안간 폭소하는 비르테리아였다. 손가락으로 초점을 잃은 아서를 가리키며 입을 연다.

    “그럼, 알다마다. 결말에 굴복당해 영혼을 전부 소실한 시체, 고깃덩어리가 아니한가!”

    “….”

    이를 바득 긁던 아이리스는 날카로운 얼음손톱을 생성해 비르테리아에게 달려들었지만, 일순 그 몸이 무언가로부터 지배당한다.

    “고장 난 기계를 그렇게 안고 있다 하여, 다시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나?”

    무력한 아이리스를 등진 채로 다시금 걸어가는 비르테리아, 양팔을 들어 올리며 가르강티아를 구멍에서 불러낸다.

    그 부름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가르강티아는 다시금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15번째의 얼굴을 들이민다.

    “정해진 결말을 비틀어버릴, 파국을 막는 장치가 없어졌으니.”

    “보아라, 이것이 진정한 결말이다.”

    다시금 뒤돌아 아이리스를 향해 손짓하자, 바닥에서 검은색의 기운이 올라온다. 날카로운 형태를 갖추더니 그녀를 향해 쇄도한다.

    ―칭!

    질끈 눈을 감은 아이리스. 귓가로 터지는 날카로운 쇠붙이 소리. 그다음으로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의 소리가 이어진다.

    붉은 용인가?

    아니다. 붉은 용과는 전혀 다른 뜨거움이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부여잡은 아서를 놓으며 눈을 뜨는 아이리스였다.

    한 명, 두 명, 숫자를 세어가다 보니 어느새 일곱에 달한다. 일곱은 비르테리아의 공격을 막아내고 그를 마주하고 있다.

    유난히 빛이 나던 그들의 손목.

    그곳에는 워낙에 많이 보았던 문장이 각인되어 있었기에, 아이리스는 육성으로 그 문장을 쉬이 뱉어낼 수 있었다.

    ‘……7인의 영웅.’

    하물며, 귓가에 스며들었던 불꽃 소리의 주인은 그들의 중심 ‘마르노프 바바비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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