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71화 (171/222)
  • 171화

    * * *

    데우스엑스마키나 [deus ex machina]

    ―이야기의 결말은 어디까지나 이야기 그 자체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기계장치와 같은 수단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 * *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태어났다. 놀랍게도 어머니가 불가능을 가능케 한 것이다.

    나는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다르게 태어났다고 볼 수 있었다. 산모로부터 세상에 나왔을 때, 머리맡에서 강렬히 쏘아대는 하얀빛이 안타까운 실체를 밝힌다.

    “응애, 응애.”

    성장기를 통해 부모로부터 듣게 된 사실을 토대로. 나는 네 개의 눈과, 네 개의 귀와, 두 개의 코, 두 개의 입으로 태어났다.

    혹시 ‘샴’이라는 말을 아는가.

    안다면 고양이의 어느 개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샴(Siam)’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지만 콧잔등에 숯을 묻힌 귀여운 고양이 ‘샤미즈 캣(Siamese cat)’이 아닌 ‘샴(Siam)’이다.

    그 뒤에는 ‘쌍둥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나는 ‘샴쌍둥이(Siamese twins)’로 태어난 것이다.

    머리와 가슴이 하나이며, 머리 양쪽에 얼굴이 결합된 야누스체(Janus體), 팔 두 개와 머리 두 개. 혹은 팔 세 개와 머리 두 개가 있는 이두체(二頭體)로 크게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평범한 아기의 몸, 그리고 두 개의 머리, 이두체. 나는 그 두 개의 머리 중 하나였다.

    기형적으로 몸의 일부분이 결합되어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하나의 영혼이 두 개가 되어, 하나의 몸을 공유한다. 무려 발생확률은 약 20만분의 1. 하물며 절반이 사산이 확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후자의 속했다. 20만분의 1을 뚫었지만, 백 퍼센트의 사산 확률은 피할 수 없었다. 이미 태어난 것만으로도 기적을 몽땅 써버린 것이다.

    “하, 하지만. 아직 우리 아이들은 멀쩡해요.”

    당시의 어머니를 기억하면 아버지는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고 죽을 만큼 아프다. 그리 말씀하셨다. 늘 술잔을 기울일 때면 가끔 나오는 이야기였다.

    오죽했을까. 멀쩡히 살아있는 두 아이가, 조금씩 죽어갔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한 아이가, 한 아이를 위해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

    하나가 하나를 위해 제 목숨을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감히 기적 앞에서 더한 기적을 바라는 부모였다.

    비록 몸은 하나지만 그 안에 움직이는 영혼은 두 개였다. 설령 그 영혼이 반쪽짜리일지라도 소중함은 변함이 없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니까.

    더한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아이는, 한 아이를 위해 죽어갔고. 한 아이는, 한 아이 덕에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기나긴 분리 수술을 통해, ‘형’이라 불리는 아이와 나는 이별을 맞이했고. 그렇게 이 넓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 * *

    나는 여느 평범한 대한민국의 소년처럼 성장했다. 학교를 다니고, 학원에도 다녀보고, 늦게 귀가하여 부모의 속을 썩이게 한 적도 있다.

    전자처럼 평범한 아이에서 소년으로, 그리고 성인으로. 내가 먹고, 자고,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 없이 성장해간다.

    이때쯤부터는 내게 ‘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서서히 잊고 갈 무렵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여,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 그리고 또 졸업을 하여 대학생이 될 때까지.

    이 중 ‘형’을 기억할 수 있었던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모쪼록 녀석하고의 기억도 없을뿐더러, 깊은 우애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었으며, 그 시간이 허락되지도 않았으니까.

    사진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간 내 ‘형’은, ‘나’를 남기고 그렇게 잊혀져 간다.

    신기했다. 묘한 무력감이 가끔씩 찾아올 때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커가면서 더욱더 잦게 찾아온다.

    마치 반이 텅 비어있다. 거대한 우물이 있다면 그곳을 전부 채우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남들과 달리 내가 반쪽짜리 영혼이라 그런 것인가. 나는 이 반을 어떻게 채우는지 방법을 모른다.

    성인이 되어, 여타 동갑내기들과 비슷한 시간을 보냈다.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그 비어있는 무언가를 나름 채워가기 시작했다. 완벽하진 못해도, 급한 불을 끌 순 있었다.

    그 무렵이었나.

    아버지가 여느 때처럼 술잔을 드셨다.

    “그 아이 말이다. 아직 기억하고 있니?”

    “그럼요, 잊혀질 뻔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술자리는 언제나 외롭고 무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아이는 네 죽음을 막고 희생했으니, 네 영웅이나 다름없다. 늘 잊지 말거라.”

    유유자적 술안주로 오징어 같은 것을 꼬나물고서, 가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거나. 알고 보니 전자의 모든 행동은 내 성장에 방해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 아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의 무력한 나를 미워하고, 증오할 수밖에 없었단다. 네 어미도 마찬가지였겠지.”

    사실은 외로운 거실, 외롭게 켜진 불빛 아래, 외롭게 앉은 남자, 여전히 죄책감에 벗어나지 못해 그 속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제가 이렇게 살고 있으니, 형도 뿌듯할 겁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잊지 않을게요.”

    사실 거짓된 말이었다. 감사하다라. 감사하다는 감정을 느끼기엔 나는 그저 운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점점 야위어가는 어머니와 초췌해지는 아버지를 보면 더욱 그랬다.

    내 이야기가 비극이 될 뻔한 것을 그가 막아주었다. 아니, 어차피 우리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야만 했다. 그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은 내가 되는 것이고.

    * * *

    50평짜리 술집, 그렇게 근사하지는 않지만 부모님과 함께할 가게가 만들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언젠가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조금씩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비극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 인생이, 부모의 인생이, 멀리서 봤을 때 희극처럼 보이기라도 하려면 노력해야 했다.

    고마웠다. 노력을 보답받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으니까.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며, 그들의 이야기에 어렴풋이 공감할 수 있을 지경이다.

    세상에는 좋은 일도 많지만 그만큼 힘든 일도 많다는 것. 사람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는 공간에서 그들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서로를 보듬을 수 있었다.

    “군대 가야지, 너.”

    아, 군대. 그렇다. 군대에 가야만 했다. 대한민국 건장한 남성이라면 대부분 그곳을 가야만 한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가게에서 수많은 박스를 옮기며 단련된 신체. 실로 대한의 건아였다.

    “아프지 말고, 잘 다녀오렴.”

    “걱정 마세요. 안에서도 연락드릴게요.”

    야위어가고 있던 어머니에게 생명력이 넘실거렸다. 아버지는 초췌해진 몰골에서 건장한 신사가 된 느낌이다. 아무런 걱정 없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큰일이네, 군대하고는 안 맞을 것 같은데. 그래도 적당히 하다 보면 되겠지, 적당히.’

    나는 군대 체질이었다. 어쩌면 전생에 군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군인에 적합한 인재였던 것이다.

    훈련소에서 조교가 하는 말을 빠르게 이해하고, 행동하고, 움직였다. ‘적당히’라는 전제가 있긴 하다만, 좌우지간 하라는 것들을 수행하다 보니 수료식 날 부모님에게 이런 말을 전하게 된다.

    “저 조교로 차출됐어요.”

    그렇게 나는 조교가 되었고, 국방부의 시계는 흘렀다. 이병에서 일병, 그리고 상병, 병장까지. 교관과 함께 탄생시킨 군인들이 천을 넘기고 있다.

    “저 왔어요.”

    여느 때와 같이 휴가를 받고, 집에 도착했다. 아들 휴가 나온다고, 훌쩍이는 손님 때문에 미루고 미루던 마감 시간도 간신히 당겼단다.

    행복했다.

    이제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어쩌면 전역을 앞두고 있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고. 가끔은 텅 빈 느낌이 또다시 찾아오기도 했으나 눈앞에 생기 가득한 가족을 보고 있으니 ‘내 안의 허무’에 대한 고찰도 저물어간다.

    * * *

    전역, 나는 병원에 왔다.

    그것도 전역일이라 마중을 위해 먼 길 오르던 부모님의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나는 죽어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쯧쯧, 저 봐라, 저 불효자식.”

    “눈물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쯧, 부모가 불쌍하지.”

    장례식에 많은 이들은 나를 헐뜯기 바빴다.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어머니, 아버지, 저들이 말하는 불효자는….’

    저들은 모른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목을 막고 있으면, 울음조차 나올 구멍이 없다는 것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그럴 법도 하겠지.

    ‘속에서 잔뜩 울었습니다.’

    마음에 깊은 바다가 생겼다. 아마 밖으로 쏟아내지 못해서 만들어진 바다인 듯하다. 확 잠겨 죽어버릴까, 그랬지만. 영정사진 속 해맑은 미소를 보고 있으면 그것도 힘들다.

    꾸역꾸역 살아가기로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내 전문이니까.

    군인이 되기로 했다. 조교 경험을 바탕 하여, 교관이 된다. 똑같이 훈련병을 양성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대략 2년 정도가 흐른 것 같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내 안에 절반이 남긴 허망함. 그것과도 함께였다. ‘아무것도 없는 것’과 함께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1사로, 2사로, 3사로, 4사로 입장.』

    “1사로 입장! 2사로 입장! 3사로…! 4사로…!”

    1사로부터 4사로까지, 수류탄 교장에는 수많은 조교들과 교관들이 배치되어 있다. 각 사로마다 교관이 위치하여, 훈련병들의 원활하게 수류탄을 투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안전클립 제거.』

    “안전클립 제거!”

    『안전핀 뽑고, 수류탄 던져.』

    “안전핀 뽑고, 수류탄 던져!”

    쿵. 다발적인 폭음이 전방에 있는 강으로부터 퍼져나갔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넷이 울리지 않는다.

    “뭐하나, 270번 훈련병!”

    “…으, 으익!”

    “뭐 하는 거, …호! 호 안에 수류탄!”

    바닥에 수류탄이 떨어져 있다. ‘호 안에 수류탄’이다. 보통은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게끔 교육하지만, 불가항력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이를 대비하여 철두철미하게 대처 교육을 받아온 사람이다. 교관이니까.

    찰나면 근방의 모두가 죽는다. 첫 번째 대처, 사로 속에 있는 구멍을 향해 발로 찬다. 아니, 불가능이다. 위치가 너무 좋지 않다.

    두 번째는 수류탄을 다시 집어서 던진다. 아니, 그것도 불가능이다. 허공에서 폭발하여 잔재가 엄한 훈련병들에게 날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밖에 없다.

    .

    .

    .

    .

    ―쿵.

    * * *

    고통스러웠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그저 희미한 시야와 귀를 찌르는 이명소리가 전부였다.

    확실한 것은 수류탄을 덮은 내 몸이, 인간의 몸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는 것.

    땅이 따뜻했다.

    수류탄을 바닥에 흘린 훈련병이라, 교관이라는 직업정신도 좋지만 뭐 예쁘다고 내가 구하겠는가.

    사실, 처절하게 살아가는 것을 관두고 싶었다. 그러는 김에 누군가를 비극에서 지켜준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