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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70화 (170/222)
  • 170화

    * * *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서 심연의 존재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꺼림칙한 모습이다. 천사의 날개를 단 악마가 현세에 내려와 인류를 향해 기괴한 신음을 토했다.

    날개는 분명 천사의 것이었으나 그것의 뿌리를 이루는 육은 현저히 악에 가깝다. 형체가 비틀리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지상에 추락한다.

    “기기기긱, 기이이. 기긱.”

    의기양양하던 병력들은 절망을 마주하며 공포에 빠지기 시작했다. 피부를 쭈뼛하게 만드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희망을 비집고 피어오른다.

    그 작은 탄식조차 낼 수 없었으니, 분명 이들은 사계의 멸망이 시작되리라 생각했다. 명화 같은 창공에 두터운 어둠이 먹을 칠한다.

    “기기긱, 기이, 기긱.”

    “오, 오지 마!”

    “기긱, 기이.”

    그것은 병사들의 심장을 도려내며 처참히 학살해갔다. 양손은 날카로운 뿌리로 되어있으며, 인간의 피부를 한없이 찢고 나가기에 충분하다.

    “…전선, 전선을 유지하라!”

    “두, 두려워 말고, 전선을 지켜라!”

    드래곤 길드를 포함한 많은 병력들은 절망과의 전투를 이어갔다. 무릇 그치지 않는 저들의 수가 한없는 세월을 보내야만 할 것 같았다.

    “…으, 으으, 으악!”

    이들은 평범한 방법으로는 소멸하지 않는다. 검으로 반을 베어내면 원상태로 돌아오는데 찰나면 충분했으니까. 지금까지 그들이 봐왔던 여느 마물하고는 차원이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쳇, 보는 것만으로 꺼림칙한 느낌이군.’

    푸른 용을 타고 어둡게 물들어버린 창공을 날아다니는 이들, 아서 일행은 현 상황을 타개하고자 지원에 나선다.

    아서가 파괴된 성채 중심부에서, 새하얗고 거대한 인간의 장난감처럼 굴러지고 있었다. 참을 수 없었던 아이리스는 곧장 그에게 향한다.

    마법진이 펼쳐지며 얼음 우박이 아이올레드에게 쇄도했고, 이를 맞은 아이올레드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쿵!

    아이올레드의 가벼운 타격으로부터 아이리스가 공기를 가르며 튕겨져 나간다. 지상에서 렌을 보호하며 전선을 유지하던 프리실라와 란베르크, 떨어지는 부산물들을 베어낸다.

    “제길, 아이리스가!”

    “…진정해, 프리실라!”

    절망을 토하는 구멍은 사계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나온 절망들도 마찬가지였으니, 항간의 모든 이들은 공황 상태에 휩쓸렸고.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제의 성채. 그리고 아서를 휘두르는 새하얀 거인과 미지의 무력 앞에서 점차 굴복해가는 병력들, 모든 것은 비극이 되어 이야기의 막으로 다가온다.

    『자, 무슨 말이라도 해보지 그러나.』

    이스카리옷 비르테리아, 정교의 지배자이자, 이 모든 사건의 근원이 나타났다.

    아이올레드 아래에서 아서를 바라보며 통쾌하게 웃는다. 새하얀 손아귀가 쥐고 있는 아서는 만신창이가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새하얀 손아귀에 붙잡힌 아서가 비르테리아에게 가까워졌다. 펼친 손아귀에서 벗어나, 허공을 부유하며 비르테리아의 뜻대로 움직인다.

    아서의 몸은 실로 말이 아니었다. 찢어지고, 사라지고, 파괴되어 성한 곳이 하나 없다. 손아귀에서 벗어난 탓에 더더욱 그 모습이 애처롭다.

    “이 새끼가 감히!!!”

    이를 지켜보던 프리실라가 기어코 달려든다. 란베르크도 이에 반응하여 가문의 의지를 쥐고 그녀와 함께 달려든다.

    비르테리아는 자신 앞에 부유하고 있는 아서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 대단하다던 얼굴의 턱 끝을 잡아당긴다.

    『이런, 네 녀석도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보군.』

    『애석하게도 이 이야기의 주인은 ■■가 되었으니…….』

    이미 아서는 아이올레드에게 벗어난 터라, 아이올레드의 상대는 프리실라와 란베르크로 전환된다. 날개로부터 뻗어나가는 응집된 에너지가 그들을 향했고, 공기가 소멸해갔다.

    아서의 턱 끝을 잡아당긴 아이올레드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자네는 이제 상관없는 일이지.』

    『안 그런가. 기계장치의 신이여.』

    ―쿵!

    전력을 다한 공격에도 끄떡없는 아이올레드가 너무 미웠다. 최선을 다해 성장을 거듭해온 만큼 아서 일행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다.

    ―콰앙!

    초월적인 권능 앞에서 인류의 힘은 스치는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비르테리아는 어질러진 부산물들 사이에서 발견한 쓰기 좋은 검을 뽑아 든다.

    석회가 잔뜩 묻어있었으나, 칼날이 곧고 아름다워 더러움을 무색하게 만든다. 손잡이에는 심판의 여신 아네가브가 자리하고 있다.

    심판, 어쩌면 그 단어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비르테리아가 제 주인처럼 아네가브를 과감히 뽑아 든다. 그리고 아서에게 향한다.

    허공에서, 육체의 반을 소실한 아서를 마주하며. 심판이라는 이름을 지닌 잿빛의 칼날이 기어코 아서를 관통했다. 심장을 관통한 아네가브의 칼날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지금까지 수고 많았네, 이야기는 더 이상 그대를 필요로 하지 않아.』

    초점 없는 동공은 아서의 완전한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생명력이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란베르크, 프리실라, 아이리스. 이 모두는 아서에게 마력 유동이 없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복받치는 감정을 새하얀 거인에게 쏟아내는 것이 전부다.

    ―[결말 코드 인식 중… 인식 완료]

    ―[대상자로부터 카테고리 ‘최종국면’이 판단됨. ‘■■’의 승인]

    비르테리아는 아서에게 수상함을 느꼈다. 분명 저 사내는 가진 생명을 다해 서서히 소멸해야만 했다.

    ―[대상자의 ‘신의 기계적 출현’ 중, 마안의 뭉치, 완전 개안 / 마검의 뭉치, 부재로 인한 사용 불가]

    ―[대상자로부터 적용되는 모든 카테고리가 ‘침묵’에 고정됩니다]

    조금씩 심장 고동이 트인다. 동공이 커진 비르테리아는 놀란 기색이 있었으나, 이내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에게 흐르는 권능이 저 사내에게도 흐르는 것이다.

    “…그래, 그래야지!”

    ―[오메가(omega) 랭크 : ‘엔드 오브 시나리오(End of Scenario)’, ‘2회’차 결속 준비 중…….]

    ―[오메가(omega) 랭크 : ‘엔드 오브 시나리오(End of Scenario)’ 결속 준비 완료, 결속 코드를 입력하십시오]

    가벼운 신음조차 토해내지 못했던 사내가 벙긋거렸다. 미세한 목소리가 간신히 공기를 타고 퍼진다.

    .

    .

    .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결말은.

    기계장치와 같은… 수단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승인 완료]

    절반이 소멸한 사내의 육체. 어깨, 다리, 성하지 않은 곳이 없는 모든 절단면에서 새하얀 뿌리가 돋았다. 그리고 본래의 형태로 돌아온다.

    비르테리아로부터 허공을 부유하던 사내는, 비르테리아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허공을 부유했다. 이내 사내의 머리 위에서 붉은색의 빛이 번진다.

    사람들의 시야를 붙잡았다.

    천사의 고리.

    그것은 천사의 고리와 유사했다. 머리맡에 떠 있는 붉은색의 고리. 이어서 사내의 머리칼이 점차 하얀색으로 물들어간다. 전자를 넘어 안구의 색마저 하얗게 번진다.

    감정을 공유할 수 없는 사내의 얼굴. 비르테리아를 마주한 그의 동공이 열십자의 형태로 개방된다.

    “도대체…. 너를, 누가 보냈느냐.”

    “■■와 공존된 것은 나일 터.”

    확실했다. 아서는 비르테리아를 소멸할 수 없다. 그것이 ■■가 창조한 세계의 원칙이자, 절대적으로 변함이 없을 이야기의 규율이었다.

    다만 비르테리아는 고찰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뒤바뀐 사계의 공기, 허공에서 범람하는 마력의 본질이 틀려지기 시작했다.

    저자가 자신을 소멸시킬 순 없어도, 자신이 정복하고 파괴하려 했던 사계를 홀로 수호하는 게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니, 가능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역사가 있었지, 나는 분명 그것을 보았다.’

    ‘7인의 영웅’이라는 이야기에 가려져 그의 정보는 이달리브에서도 정확하지 않다. 그들의 대체품이라는 것 이외, 더 이상 결말과는 관계가 없는 자였다.

    그래, 다 쓰고 버려진 장치일 뿐이다.

    열십자가 펼쳐진 동공에서 알 수 없는 미지의 기운이 흘러나온다. ■■와의 연결을 통해 사계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졌는데도, 저 알 수 없는 기운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마주하던 비르테리아에게서 고개를 돌려 아이올레드를 직시했다. 아이올레드는 거대한 날개를 펼쳐 그를 소멸시킬 심산이다.

    날개 속의 동공은 붉은 고리를 띄우고 있는 아서를 향한다. 그것을 직시하던 사내의 입에서 인류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터지니.

    「rm dksdp wlehrgks rufakfdl dlTdjTdmsl, dl qnfmwlwdmadms ehrwkdml qlcdlfk.」

    사내가 펼친 손에서 붉은 에너지가 일렬로 곧게 뻗어나갔다. 자연에서 떠도는 모든 마력이 이와 부딪치며 강대한 마력 유동을 일으킨다.

    거대한 에너지 응집체가 아이올레드의 공격을 완전히 걷어버리고 무자비하게 통과한다. 아이올레드의 상체 전반이 사라져버린다.

    「rkagl rlrPwkdcldml tlsdms dlfghkdml EMtdp Ekfk rlwndrlfmf soflsek.」

    그리고 비르테리아의 검이 손아귀에서 벗어나 아서의 품으로 돌아간다. 아서는 심판의 여신이 그려진 검을 들고 천공을 베어낸다.

    ―콰드드득!

    천공을 가득 채운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 유리처럼 깨지기 시작한다. 휘두르는 동작 하나로 절망들이 다발적으로 소멸하며 사라진다.

    이를 지켜보던 비르테리아가 아서를 향해 과감히 폭소했다. 사내가 자신의 영혼을 태우며 절망을 해치우는 것, 이는 깨진 장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마음껏 애쓰도록 하라.”

    “네 녀석이 나를 없애지 못하는 한, 이 결말은 변함이 없을 터이니!”

    양팔을 들어 올리는 비르테리아, 천공에서 거대한 구멍이 열린다.

    그 안은 심연처럼 깊고 어두웠다. 무언가, 꺼림칙한 구멍을 비집고 나온다. 인류의 것이라 할 수 없는 기괴한 얼굴이 서서히 나타났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병력들이 급작스러운 공황에 빠져 질식한다. 구멍에서 거대한 팔이 튀어나와 허공에 떠도는 절망들을 먹어 치웠다.

    “사계의 결말, 가르강티아.”

    “네 임무를 마칠 시간이다.”

    비르테리아의 권능으로 인해, 이윽고 사계에는 ‘봉인된 이야기의 결말’이 도래한다.

    * * *

    ―삭제된 서술 중(中), 이야기를 여는 ‘■■’에서 이런 문단이 있다.

    나로 말미암아 잉태된 세상의 모든 것은, 스스로 희망을 품을 것이고.

    나로 말미암아 잉태된 세상의 모든 것은, 내게 보답으로써 비극을 맞이할 것이다.

    ―중략 이후, 마지막 문단엔 이렇게 적혀있다. 해당 문단은 취소선이 지나간다.

    이는 독자들만이 볼 수 있는 서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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