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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69화 (169/222)
  • 169화

    * * *

    아서는 피범벅이 된 아이단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얼굴이 엉망진창이다.

    “아이단, 마안으로 당신을 회복해줄 만큼 지금의 나는 여유가 없어. 미안해.”

    호주머니에 있던 회복제를 꺼내, 아이단 옆에 둔다. 그 과정에서 인기척을 느낀 아이단이 아서의 손목을 잡는다. 쉬어버린 목소리 때문에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동생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던데, 형까지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쩌자는 거지, 마커스.”

    다시금 쥐었던 검을 바닥에 꽂고, 아이단은 아서에게 다가간다. 걸음걸이마다 당당함이 묻어났고 얼굴은 슬퍼 보였다.

    “누군갈 증오해본 적이 있나, 아서.”

    “있어.”

    “그럼, 그 증오에 빠진 적은 없었나, 아서.”

    아서와 더프는 가까이 붙어, 서로를 노려봤다. 고양되는 마력, 언제라도 공격을 시도할 수 있는 상태. 아서는 상의 앞주머니에 있던 작은 종이를 꺼내어 더프에게 던진다.

    “그럴 뻔했었는데.”

    “여관을 운영하면서 괜찮아졌지.”

    여관주인이 더프에게 던진 것은 ‘탄산수 쿠폰’이었고, 더프는 그것을 보며 피식 웃음을 토해낸다. 그때를 생각하면 행복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띄워보는 미소였다.

    “자네는 나를 이해할 수 없네.”

    마커스의 반문이 나오자, 아서는 급기야 관자놀이를 손으로 누르고 말았다. 사실 지금도 머리가 복잡해서 터질 지경이다. 마커스가 배신자였다니.

    ‘마커스, 네가 배신자였다니.’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자신의 눈에는 더프가 사냥꾼 마커스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케피탄 맥주를 주문해서, 온갖 하소연을 늘어놓을 것 같다.

    상상했다. 캡틴을 포함해서 서빙 담당의 해골들이 울상인 그를 위로한다. 이어서 그들의 두개골 회전시키기를 구경하면, 브라운 아저씨와 함께 폭소를 터뜨릴 것만 같다.

    아직도 내 눈엔 사냥의 재주가 없는 마커스인데, 그런 그가 배신자다.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여관 단골 중의 한 명이 배신자다.

    “참 신기해, 아서.”

    “늙어서 하는 배신은, 젊어서 했던 배신보다 더욱 쉬웠거든.”

    “내 이야기는 훗날 아이단에게 들어주길 바라지, 아니 들어서 좋을 것도 없겠지만.”

    마커스는 자신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아서의 눈을 피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아서의 눈빛은, 옛날부터 마주치기 쉽지 않았다.

    “나는 내 신념을 위해 투쟁했고, 가진 감정을 모두 해방하기 위해 또 투쟁했다.”

    “그것이 설령 그릇되고, 가는 길마다 넘실거리는 증오가 펼쳐져 있다고 한들.”

    뜻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는 마커스를 보며 한숨을 연신 내쉴 수밖에 없다. 아서는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하면 이 사냥꾼을 회유시킬 수 있을지, 아이단이 쉰 목소리로 무언가 말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마커스의 계략이었다. 렌을 저 모양으로 만든 것도, 델타의 파국을 바랐던 것도, 전부 마커스의 진심이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 마커스.”

    그의 정체가 비르테리아의 심복이라는 사실을 여관 동료들에게 들었을 때, 내 표정보다는 그것을 말하는 동료들의 표정이 더욱 어두웠다. 그만큼 그들의 어딘가가 아팠던 것이다.

    “나는 널 손님으로 받았고, 넌 손님으로 내 여관에 찾아온 거야.”

    마커스는, 아니 더프는. 처음부터 여관을 찾아온 이유도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목적을 다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하고 싶었던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그가 여관에 있었던 모든 순간이 거짓이 아니었으면 했다.

    더프는 말을 잇지 못하는 아서를 뒤로한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바닥에 놓인 사과를 줍는다. 그리고 다시 아서에게 향했다.

    아서가 마커스에게 위로의 마음으로 건넸던 씨앗이 자라, 사과가 되어버렸다.

    “아서, 내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받아주겠나.”

    새빨간 사과, 새빨간 사과였다.

    “나를 과거에 머물 수 있게 내버려 둬.”

    새빨간 사과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마커스가 웃고 있다. 여관에 앉은 초라한 사냥꾼, 여느 때와 같은 미소로.

    “고마웠….”

    마커스의 미소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머리가 부딪치며 새빨간 선혈을 터트린다. 그럼에도 그 얼굴에는 미소가 그치지 않는다.

    그저 무정하게 떨어졌을 뿐이었다.

    “마지막 열매를 저자에게 주려고 하다니, 마커스 이 개자식은 배반의 배반을 일삼는구나.”

    몸은 힘을 잃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고, 그 끝에는 분수가 튀었다. 묵묵하게 쥐고 있던 사과와 같이 새빨간 분수가 튄다.

    “…마커스?”

    아이올레드 카미드헬러, 이그리스 십자회의 수장. 심판자의 으뜸이 마커스의 목을 베었다. 그것도 마커스가 브라운에게 선물 받은 검으로.

    “심판의 여신 아네가브라, 꽤 멋진 검이로다. 하물며, 네 죽음에도 어울리는 검이군.”

    백금이 둘러싸인 갑옷을 입은 4명의 심판자들을 데리고 나타난 아이올레드. 차가운 목소리, 차가운 걸음걸이, 그의 모든 것이 냉혈하다.

    “그대가 성하께서 말씀하신, 결말과 상관없는 자인가.”

    사과를 움켜쥔 마커스의 손목을 백금 갑옷의 신발이 지르밟았다. 맥없이 펴지는 손아귀, 아이올레드는 사과를 움켜쥔다.

    “이 열매는 성하의 것이다. 성하께서 애타게 찾으시는 마지막 열매이지.”

    * * *

    귓등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쉬어있는 것이 아무래도 아이단이다. 친구의 허망한 죽음을 눈앞에서 보았으니 당연할 법도 했다.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아이올레드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뻔하다. 짜증 나는 웃음소리가 그곳으로부터 퍼졌고, 아이단은 더욱 흐느꼈다.

    “미안하지만, 나는 마커스의 사과를 받아야겠다. 그건 우리에게 건넨 사과니까.”

    아이올레드의 손이 별안간 잘려 나간다. 선혈이 사방에 흩어지며 백금 갑옷을 물들인다. 아이올레드의 손에서, 아서의 손으로 새빨간 사과가 옮겨졌다.

    “게다가 이 사과는 니들이 생각하는 그렇게 대단한 물건도 아니고.”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델타 북동부, 어느 한적한 시골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사과.”

    “하하하! 하하!”

    “하지만 마커스가 주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사과지.”

    아이올레드는 폭소했다. 그 폭소가 사방을 울리며 귀를 더럽히자 미간을 찌푸리는 아서, 심판자의 웃음에서 사악함과 오만함이 묻어있다. 이제는 정교의 이름도 그들에게 있어서 무가치한 느낌이다.

    “그래, 그대의 이야기는 성하께 충분히 들었다. 이 아이올레드의 손을 단숨에 앗아가다니, 인정하지.”

    아이올레드는 폭소를 멈추고 정색했다. 이어서 잘려 나간 팔이 황금빛을 뿜으며 빠르게 재생된다.

    “다만, 거기서 네 발악은 그칠 것이다. 나는 네 녀석보다 뛰어난 존재로 진화….”

    [ 해당 장기(눈)에 과부하 발생 / 마안 결속 강제 출력 가능 ]

    ―.

    [ ‘EX랭크 : 하델의 마안’ 강제 출력, 해당 장기의 파손 발생 ]

    전방을 향해 쇄도하는 빛, 새하얀 깃털이 사방에 흩날렸다. 그 빛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침묵시킨다. 심판자들이 그 빛에 휩쓸리더니 그림자마저 뱉어내고 사라져간다.

    아서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 그의 귓가로부터 ‘해당 장기 파손’, ‘복구 불가’라는 음성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우위에 놓인 존재는 없어, 설령 그게 아템일지라도.”

    아이올레드를 포함한 5명의 심판자들은 침묵했다. 티끌도 없이 소멸했다. 가장 오만했던 자들이 가장 오만한 힘을 가진 이에게 침묵당한 것이다.

    뚝뚝 바닥으로 눈에서 흐른 피가 떨어진다.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아서는 아이단을 향해 걸어간다. 힘겹게 정신 차린 아이단을 외부로 보내야 했다.

    “어딜 가나, 여관주인. 아직 우리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는데.”

    별안간이었다. 황금빛을 강렬하게 내뿜는 거대한 칼날이 아서의 명치를 관통했고, 아서는 허공에다 피를 토한다.

    “쿨럭, …어째서.”

    “말했을 텐데, 나는 성하에게 남다른 권능을 부여받았다고.”

    다른 심판자들은 없다. 그들은 소멸된 것이 분명했고, 남은 것은 아이올레드뿐이다. 그는 아서의 명치를 관통했던 검을 회수했다.

    “곧이어 ■■가 될 이스카리옷 비르테리아의 심복이자, 그의 대리인.”

    아이올레드의 몸이 황금빛으로 일렁이더니, 아서를 강하게 걷어찼다. 벽면을 향해 빠른 속력으로 쇄도하며 부딪치자 또다시 각혈을 터트린다.

    “■■ 뜻으로 그대를 심판하겠노라.”

    이내 아이올레드의 육체가 꿀렁이며 형태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의 몸이 마치 지점토가 된 것처럼 점차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난다.

    심연에서 나온 것과 묘하게 닮아있다. 하물며 절망을 연상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아이올레드가 ‘새하얗고 거대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에 눈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입은 조형이 되어있으나 벙긋거리지 못했다.

    그것은 3쌍의 날개를 피워냈다. 그 날개에는 무수한 동공이 갇혀있었고, 동공의 위치는 섬뜩한 움직임과 함께 벽에 박힌 아서를 향한다.

    “자, 시작해보자. 신의 유전을 가진 이들의 전쟁을.”

    거대한 날개 속의 수많은 동공이 빛을 뿜어내자, 그로부터 응집된 에너지가 벽에 박힌 아서에게 향한다.

    끔찍한 폭음을 무한히 터트린다.

    공격은 멈출 줄 몰랐다. 하델의 마안과 유사한 에너지가 아서를 무자비하게 꿰뚫고 지나간다. 벽면이 연기가 그윽해지며 그의 모습이 감춰졌다.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도 소멸하지 않았다니. 실로 대단하구나. 역시 그대도 신을 빙자한 권능이다.”

    아이올레드의 무자비한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 여파로 인하여 내부의 벽면이 파괴되기 시작했고, 성채를 지탱하던 거대한 기둥들이 힘을 잃어갔다.

    ―쿵!

    몇백 년간 유지되었던 황제의 성채가 아이올레드의 공격으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지하를 제외한 계층들이 힘을 잃은 채 아래로 맥없이 쏟아지고, 석회로 이루어진 자욱한 연기가 불이라도 난 것처럼 사방을 메꿨다.

    성채의 대부분이 아이올레드로 인하여 파괴되자, 이내 흑색의 하늘이 나타났다.

    외부에 있는 전선과 무너진 성채는 하나가 된다. 구멍으로부터 튀어나온 절망들이 드래곤 길드를 포함한 델타의 세력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아서는 부산물로부터 아이단을 지켜내기 위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사지가 찢기거나, 팔이 제자리에 놓여있지 못했다. 심지어 얼굴의 절반이 날아갔다.

    ―쾅!

    아서 일행은 거대한 소리에 집중했다.

    ―쾅!

    날개를 펴 올린 미지의 존재가 몸이 찢겨져 나간 인간을 붙잡아, 허공으로 들어 올린 후 바닥을 향해 강하게 내려친다.

    그칠 줄 모르는 굉음.

    이는 무한히 반복되었다.

    그 새하얀 거인이 거머쥐고 있는 인간. 이윽고 그것이 아서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동료들로부터 참았던 비명이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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