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68화 (168/222)
  • 168화

    * * *

    ‘눈이 지끈거린다.’

    동료들을 뒤로한 채, 비르테리아를 추적한다. 황제의 성채로 들어와 ‘마안 : 셜록의 단서’가 도출하는 길을 따라 이동한다. 계속해서 눈이 지끈거렸다.

    아황이 말하길, 이 이상 ‘권능’을 남용했다간 영혼이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영혼이라, 내게 그런 것이 있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나는, 이 세계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으니까.

    ‘이 이상, 내 이야기를 방해한다면….’

    진짜 내 이야기는 지금부터였다. 아니 여관을 운영하고 나서부터였다. 아서로서, 노르트가 아닌 여관주인으로서의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네 얄팍한 서사를, 진심으로 찢어버리겠다.’

    렌을 구했고, 아네스의 부관참시도 막았다. 델타도 비르테리아의 병력을 격파하여 정복까지 막아섰다. 하물며 마리의 병력까지 동원되었으니, 거의 확정된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남은 건 원천이자 근원이 되는 이스카리옷 비르테리아를 처단하는 일. 그가 어떤 방법으로 ‘유전의 나무’를 ‘신의 유전’으로 각성했는지 모르겠으나, 내 알 바가 아니다.

    “네가 뒤지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계속해서 마안이 비추는 길을 통해 이동했다. 이 건물을 죄다 파괴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성채 자체가 자객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페이크 회로가 장치되어 있다. 전부 부쉈다간, 성채에 장치되어있는 모든 마력회로가 엉켜 셜록의 단서로도 비르테리아의 위치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비르테리아와 조우할 때까지 마안의 사용 횟수를 줄이고, 마력을 최대한 절약하고 있다. 전자 때문에 외부의 마력을 느낄 수 없다는 건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채 자체가 주술영역이라.’

    성채 자체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개별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고유영역, 고유결계, 침식결계, 전자의 비슷한 말들을 묶어 놓은 곳인 듯했다.

    거대한 성채 중심부, 회로를 따라 이동했더니 데크 에던의 왕실이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지만 마안이 쉽사리 단서를 찾지 못했다.

    회로가 엉켜있다.

    침실로 들어간다. 거대한 침대가 호화롭게 놓여있었다. 벽면에는 그림이 있다. 7인의 영웅 중 하나라고 불리는 ‘폰 데크 에던’이었다.

    “개 같은 새끼, 후손들 관리는 잘했어야지.”

    폰 데크 에던의 눈을 노려봤다. 그의 야망이 가득한 눈빛엔 마력이 서려 있었다.

    “설마.”

    그림에 장치되어있는 회로에 접촉하여 마력을 주입한다. 이윽고 거대한 그림이 옆으로 이동하며 숨은 통로를 공개한다.

    * * *

    [대의의 신전, 지하 1계층]

    ‘…마지막 열매를 끝내 찾지 못했군.’

    내가 쥐고 있는 것은 열매였다. 성하께서 바라는 열매가 아닌, 자연이 만든 열매였다.

    언제였던가, 용사의 쉼터에서 해보지도 않은 토끼 사냥에 실패했다고 하소연을 할 때였나. 그때, 아서가 내게 키워보라고 했던 사과의 씨앗이었다.

    ‘델타 북동부, 어느 시골의 사과.’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후회의 한숨이 아니다. 모든 것을 끝내고 무력감에 뱉은 숨이다.

    비르테리아가 찾는 열매가 없더라도, 그는 원하는 만큼 사계를 정복하고 파멸할 것이다. 이미 모든 복수는 끝났고, 남은 것은 자신의 죽음이었다.

    ‘미안하다. 마커스. 이 아비는 그릇되지 못한 일을 해버렸어.’

    외부에서 들었다. 델타의 함성소리를. 애석하게도 그 함성소리가 곧이어 비명이나 탄식으로 바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비르테리아가 가진 진정한 권능은 정교의 무력이 아닌, 본인 그 자체로서 충분하니까. 간신히 격파한 병력은 장기 말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그들은 좌절을 반복하고 겸허히 죽음을 택할 것이다.

    ‘그대에게 미안하오. 남편이 그릇되지 못한 일을 해버렸소.’

    그림 같던 창공을 구멍이 뒤덮은 것을 보라, 비르테리아는 신의 유전을 얻고, 심연을 개방했다. 천사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절망을 토해내고 있다.

    ‘이 방법이 아니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소. …참, 또 이기적인 선택을 했군.’

    비르테리아의 말을 듣고, 세상은 본래부터 비극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게 우리 세대가 아니더라도, 결국 맞이할 비극이라고. 그래서 그는 힘을 얻어 신을 빙자한 존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이 세계는 비극이다.’

    ‘내 이야기도 비극이었지만.’

    마지막 열매를 얻지 못해, 그가 결말을 조정하는 힘을 갖지 못한다고 한들, 사계의 비극은 그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나는 이제 도망칠 것이다. 내 신념으로부터 도망칠 차례다. 신념은 내게 독과 같았고, 가족을 망가뜨렸으며, 비극이 따로 없었다. 비르테리아에게 바친 내 모든 충성은, 내 이야기를 비극으로 만드는 데 충분했다.

    ‘내 목적이 끝났습니다.’

    ‘이제, 충성은 없으니까요, 성하.’

    새하얀 공간, 차갑게 느껴지는 대리석 바닥에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공간이 넓어 그 발자국 소리는 고요하고, 묵직하다.

    “더프.”

    “아니, 마커스.”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말투, 내 친우이자 벗이었던 아이단이다.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했다.

    “그래서, 다 이루었나.”

    다 이루었냐는 아이단의 음성, 눈물이 떨어졌다. 미안했다. 그에게, 그의 동생 아이덴에게도. 몹쓸 짓을 해버렸으니까.

    “암, 다 이루었지.”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무가치한 일이 되어버린다. 아이단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래, 다 이룬 자는 어디로 향하나.”

    “성하에게.”

    “마치 죽으러 가는 길 같군, 더프.”

    “아니, 그로부터 도망치는 길이다. 아이단.”

    “…도망치는 길이라, 이 사달을 해놓고서.”

    더프를 노려보던 아이단, 이윽고 참아왔던 질문을 던진다. 이는 둘의 관계를 무정하게 끊어버릴 수 있을 아주 치명적인 질문이었다.

    “어째서, 아이덴을, 내 동생을 그렇게 만든 거지.”

    아이단은 더프가 벗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심지어 제 동생 아이덴은 더프와도, 아니 마커스와도 사이가 깊었다.

    “그림자 기둥, 나는 더프라는 기사에서 그들의 수장이 되기 위해 많은 일들을 벌여왔다.”

    “계획을 위해 아이덴의 손가락이나 발가락쯤은 부러뜨려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

    “그리고 아무 감정도 없었다. 네가 부탁한다면 사과는 하지, 아이덴에게.”

    아이단은 생각했다. 더프는, 아이단의 벗 마커스는 그럴 리 없다고. 그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비르테리아에게 조종을 당해 그런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저 개자식을 용서할 수 있었다.

    “아이단, 나는 내 뜻으로 그를 따랐다.”

    더프는 검을 빼 들었다. 브라운, 상당한 실력을 지닌 대장장이. 더프가 여관을 떠날 때 그가 주었던 검이었다.

    “아이단, 나의 벗이여.”

    “네가 바라는 것이 내 죽음인가.”

    “혹은, 네가 바라는 것이 내 후회인가.”

    이 검이 더프에게 어울리지 않게 어울릴 법도 하다. 손잡이에, 심판의 여신 아네가브가 각인되어 있었다.

    “…더프, 이 아이단이 바라는 것은 네 회유다. 여관 사람들도 그것을 바랄 테고!”

    아이단은 ‘벗으로서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말을 흐렸다. 더프는 이를 들었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가 이윽고 입을 연다.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더프는 아이단을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완고하게 거부의 의사를 표한다. 그는 회유당할 생각이 결코 없었다.

    “이 증오는 과거에 머무르기로 했으니까.”

    더프가 아이단에게 달려가 첫 격을 휘두른다. 급작스러운 공격에 아이단이 재빠르게 뒤로 이동했다. 칼끝이 뺨을 스쳐 피가 떨어진다. 더프는 진심이었다.

    “…진심인가 보군, 마커스.”

    더프는 아네가브가 새겨진 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쥐고, 아이단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주위로 푸른빛의 기운이 맴돈다.

    “이 더프, 거짓말도 정도껏이어야지.”

    “안 그러나 아이단.”

    아이단은 더프를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린다. 그가 비록 제국 감옥에서 평생을 망명해도, 숨만 붙어있다면, 살아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더프 눈가에 고인 눈물이 어느새 메말라 있었다. 아이단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알기 때문에 진심을 다해야 했다.

    더프는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얹히고, 다시금 아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 이상 사냥꾼 마커스는 이 곳에 없다네.”

    그렇게 격렬한 싸움이 시작된다. 하나는 뜻을 굽히려 하는 자, 하나는 뜻을 굽히지 않으려는 자, 둘은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이단은 델타에 특수 임무를 하달받아 수행하는 기사로서, 그 전투 능력이 왕실기사단의 기사들과 비등하다고 볼 수 있다.

    에드워드 더프, 그는 아이단을 더욱 상회하는 무력을 지녔다. 비르테리아로부터 받게 된 기적과 같은 재생력은 전투의 효율을 더없이 높여준다.

    아이단의 모든 공격을 손쉽게 막아내는 더프, 어찌 된 영문인지 아이단에게 빈틈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깊은 일격을 가하지 않는다.

    ―칭!

    본래부터 더프는 실력이 좋은 편에 속했으나, 그림자 기둥의 수장이 되기 위해 더욱 강해졌다. 아이단은 더프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난, 너를 그렇게 놔둘 수 없다. 마커스!”

    아이단의 외침이 더프를 당황하게 했다. 서로의 칼을 비비며, 견고한 자세로 무력 싸움을 이어나갔다.

    축 이동이 반복되며, 서로는 서로의 포지션에서 돌고 돈다. 서로의 검은 계속 붙어있다. 서로를 밀쳐내며, 다시 서로에게 달려든다.

    ―치, 칭!

    검 두 개가 허공에 튄다.

    검이 바닥에 꽂히는 소리가 터졌다. 이윽고 검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든다. 날 없는 육탄전이 시작된다.

    ‘……포기해, 아이단!’

    질척질척한 싸움 끝, 더프는 아이단의 복부를 무릎으로 차올린다. 내장이 뒤틀리는 끔찍한 충격에 그는 침을 토하며 쓰러졌다.

    끙끙거리는 신음이 1계층을 가득 울린다. 쓰러진 아이단의 얼굴을 발로 차는 더프였다.

    ―퍽!

    더프는 쓰러진 아이단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친다. 계속해서 내려친다.

    ―퍽!

    기절하길 원했다. 그리고 자신이 사라지는 동안 잠시나마 쉬길 원했다. 더프는 벗만큼은 죽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포기해, 아이단!”

    ―퍽!

    “포, 포… 기할, 수.”

    ―퍽!

    “…없어.”

    그렇게 사람 말처럼 들리지 않는 아이단의 목소리와 얼굴 뼈를 분지르는 주먹 소리가 서서히 끝나간다.

    “정말이지…. 자네는.”

    피범벅이 된 아이단의 얼굴, 마커스의 벗은 그렇게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아직도 더프의 바지 끝단을 잡고 있었다. 무의식 속에서도 아이단은 더프의 최후를 말리고 싶었던 것이다.

    “마커스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네. 아이단.”

    바짓자락을 잡고 있던 아이단의 손을 폈다. 다리로 뿌리치기엔 너무 정 없는 행동이다. 쓰러진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비르테리아에게 향할 차례다.

    “이봐, 마커스.”

    “넌 더프가 아니라, 마커스야.”

    동공이 커진 더프. 1계층 끝에서 유유히 걸어오는 사내가 시야에 담기기 시작한다.

    용사의 쉼터, 여관주인. 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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