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67화 (167/222)
  • 167화

    * * *

    “여러분 생황으로 모시겠습니다! 현재 델타제국의 병력이 데크 에던, 아니 비르테리아 연합으로부터 승기를 빼앗는 데 성공했습니다!”

    델타제국의 병력들과 마리가 이끄는 마계의 병력들, 이들이 비르테리아 연합을 차근차근 무너뜨리는 모습이 중개된다. 한 기자의 눈에 담겨 사계에 송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페지르의, 페지르의 잘못된 역사가 다시금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계에 거주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이 사태에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함선 위, 델타의 공주는 메이 옆으로 나란히 선다. 자신이, 제국이, 이단이 아님을 증명할 차례였다.

    “안녕하십니까. 공경하고 친애하는 사계의 주민 여러분. 저는 델타 베를리, 서대륙 델타제국의 후계자입니다.”

    메이를 마주 보며 베를리는 눈을 떴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송출마법이 적용되어있는 메이의 눈을 바라봤다.

    “저는, 마녀가 아닙니다.”

    탄식이 터진다. 현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사계의 주민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은 정교에서 퍼뜨린 전문과 딴판이었다. 마녀의 상징인 보라색을 찾아볼 수 없다.

    ‘마리, 부탁해요.’

    마계의 통치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베를리에게 주술을 걸었다. 해당 주술은 캐스트 오프(cast off)이다. 대상에게 적용되어있는 모든 주술을 해체하는 카운터 마법으로, 검찰 기사단이나 제국 위병소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이었다.

    검문을 받는 이가 검문을 하는 이보다 마법 능력이 상회하면 캐스트 오프가 역전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검문을 위한 캐스트 오프를 피하기 어렵다.

    “캐스트 오프.”

    마리의 손가락 끝에서 소형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사계에 머무는 수많은 마법사라면 저 마법진이 캐스트 오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를리의 눈은 변함이 없었다. 캐스트 오프가 되었다면 그녀의 눈이 마녀처럼 보라색으로 돌아와야 했다. 전자처럼 되지 않았다는 것은 베를리가 마녀가 아님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마녀가 아닙니다.”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것은 늘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쌓여왔던 억울함이다.

    “…저희 제국은 페지르로부터, 아니 비르테리아로부터, 오랜 기간 정복당해왔습니다.”

    양손을 움켜쥐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였다. 메이는 자신의 눈을 통해 현 상황이 송출되고 있음을 망각했는지, 함께 글썽인다.

    “그들은 제게 마녀라는 오명을 씌워, 서서히 왕실의 힘을 잃게 만들고.”

    “내 아버지, 델타 3세를 건실히 받들던, 위대하고 훌륭한 이들을, 계속해서 처단했습니다.”

    늘 생각해왔다. 세계의 유산만 아니었다면, 보라색의 눈만 아니었다면, 비르테리아로부터 이어지는 파국을 면했을 것이라고.

    미련하게 운명을 탓해왔다. 그 운명에 발버둥 치는 용기보다, 탓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기에.

    “제국을 지탱하던 유대 깊은 뿌리. 델타 왕실에는 배반자들이 존속했고, 왕실을 잠식해갔습니다.”

    모든 것을 되돌려야 할 시간이다. 상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비르테리아는 교황의 자리에 올라, 사계를 집어삼킬 심산이다.

    모든 것을 자기 아래로 두려는 사악한 심보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마계를 통치해온 마리 또한 미간을 찌푸린다.

    “……제국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보란 듯이 교황에게 넘겨줄 수 없습니다. 저는 마녀가 아니며, 이단도 아니니까요.”

    베를리는 마녀가 아니다. 이단도 아니다. 델타의 거주민들도, 사계의 모든 이들도, 페지르의 횡포가 역사의 암흑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다시 기억했다. 저 여인이 마녀가 아님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는 마녀가 아닌, …델타가 행복의 터가 되길 염원해온 델타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 * *

    [ 서대륙 델타, 왕의 길 ]

    왕의 길이 언제부터 비르테리아의 것이었던가. 델타의 절반, 정교라는 가면을 쓴 사악한 무리들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하나 이제는 아니다. 진격하는 델타의 기사들이 비르테리아의 병력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그래, 기어코 역사는 재현된다.’

    델타 3세는 며칠 사이 벌어졌던 희망을 재차 떠올린다. 마계의 통치자 아베스타. 그가 군단을 끌고 델타로 찾아왔다.

    ‘베, 베를리! 네 눈이 돌아왔구나!’

    함께 온 베를리의 눈이 보라색이 아니었다. 말하길, 전부 아서라는 작자의 덕이었다. 그렇게 델타제국의 어느 여관주인으로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희망이 피어난 것이다.

    마계의 통치자가 델타로 진격한 이후, 제국에 잔존하던 비르테리아의 병력이 대부분 격파된다. 이후, 가장 중요했던 아네스의 부관참시를 위해 그들은 빠르게 이동했다.

    ‘아가, 부디 몸조심해라.’

    그들이 결전을 향해 떠나기 전, 델타 3세는 마왕에게 물었다. 어째서 우릴 돕는 것이냐며. 그 또한 여관주인에게 빚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난 그에게 빚이 있소, 내 뜻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 여관주인의 몫이니, 훗날 그에게 보상해주길 바라네.’

    페지르의 횡포로 왕실이 무너지고, 타국과의 교류가 그리 완만하지 못했다. 못했건만, 남대륙에서 템피드 제국이 정령을 이끌고 나타났다. 모든 것이 이어지듯, 그 또한 여관주인과 관계가 있었다.

    “오스칼이라고 합니다. 아서 님에게 빚이 있어, 델타에 지원을 왔습니다.”

    “그대, 정말 고맙소.”

    여관주인. 노쇠한 이들이 농사나 지으며 안락한 노후를 보내는 한적한 마을, 그곳에 대뜸 여관을 지은 사내. 그곳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레르 마을과 비슷한 향을 풍겼다.

    ‘…영웅은 그런 곳에서 태어나나 보군.’

    그 사내는 사계가 델타를 주목할 수 있게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골을 요리사로 부렸다. 하물며 여관에는 용과 고블린이 있다. 근래에는 정령이 드나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서, 그는 정말이지 신묘한 사내다.

    ‘아서라고 했던가.’

    ‘부디, 아네스의 마지막을 지켜주게.’

    * * *

    [ 서대륙 데크 에던, 황제의 성채 ]

    황제의 성채에는 더 이상 보라색의 깃발이 휘날리지 않는다. 델타의 병력들로부터 헌신짝처럼 찢어지고 굴렀다. 그들의 병력도 마찬가지였으며, 점차 신성력을 잃어가더니 그 이상 전투가 불가능해졌다.

    마계 군단, 델타의 병력, 드래곤 길드, 델타의 늑대, 전자의 무력이라면 서대륙 통일을 가능케 할지도 모른다.

    제정신을 띄고 있는 비르테리아의 병사들도 전원 무장 해제를 하며 항복을 선언한다. 헤르메딕트 성가대의 정신 술법이 완전히 파괴되었음을 의미했다.

    “항복을 선언한 자는 살해하지 않는다. 또한 데크 에던의 백성들도 털끝 하나 건들어선 안 된다.”

    델타의 중앙기사단, 그리고 왕실기사단의 단장들이 병력을 정비하며 명령을 하달했다. 거대한 성채의 부산물들로부터 깔려 목숨이 위태한 이들을 구조했다.

    “우리도 똑같은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빼앗긴 터를 되찾기 위해 전장에 참여했을 뿐, 약탈과 정복은 관계없다.”

    그들은 데크 에던을 완전히 정복하고도 충분한 전력이 남아있다. 배반자가 모두 비르테리아에게로 떠난 지금, 델타 3세의 명령을 거부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왕실의 힘이 복구되고 있음을 알렸다.

    “전선을 정리하고, 임시 사령권한을 가지고 있는 아베스타와 드래곤 길드의 마지막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한다.”

    전선은 페지르 정교로부터 지원 병력이 투입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기사단장의 지휘를 통해 병력이 전선을 정리하도록 했으며, 떨어지지 않은 복귀명령에 사주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어, …어?”

    델타의 기사 한 명이 부산물을 정리한 탓에 허리가 아파 몸을 세웠다. 쨍쨍한 하늘, 하늘에 검은 반점 같은 것이 생기고 있다.

    검은 반점, 그것은 창공을 비집고 산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그리고 셋, 반점의 개수는 배가되어 조금씩 황제의 성채 하늘을 뒤덮었다.

    “……이다.”

    반점들이 제각각 다른 곳에서 커지더니, 이윽고 하나가 되어 그림 같던 창공을 어둡게 물들였다. 거대한 크기의 반점이 구름을 소멸시키고 나타난다.

    “…멍이다.”

    병사들이 제각각 하늘을 바라본다. 별안간 어두워진 세상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가,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구, 구멍이다!!!”

    “절,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다!!!”

    * * *

    프리실라는 황제의 성채 꼭대기로 올라갔다. 어둡고 컴컴했던 성채 내부는 그들의 정서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부유함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나, 피 냄새가 올라오는 야망이 느껴진다.

    곳곳에 장식된 검투사들의 갑옷, 맹수들의 머리, 잿빛이 도는 벽의 재질. 마치 그들은 스스로가 냉혈인임을 자랑하는 듯했다.

    ‘아서, 아서가 돌아왔어.’

    아서가 돌아왔다. 상공을 덮어씌우는 강렬한 빛, 그것은 분명 그가 가진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었다. 게다가 아이리스까지, 적절한 순간에 나타나 아네스의 부관참시를 막고 렌을 구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할매.”

    꼭대기로 올라와, 바닥에 놓인 아네스의 시체를 마주했다. 어미의 시체를 마주하는 프리실라였다. 주변에 있는 동료들은 그저 묵묵히 애도할 뿐이다.

    “…할매, 흐윽, 할매!”

    아네스를 부여잡고 눈물을 쏟아내는 프리실라, 목청이 쉰다. 계속해서 쉰다. 애석하게도 그 괴로운 소리는 오랫동안 사방에 울려 퍼졌다. 실로 하염없이.

    “…그래서, 어머니는.”

    아네스의 죽음이 비로소 완성되었다. 프리실라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를 짓고 있는 아네스를 바라봤다.

    “오를 언덕을….”

    “오를 언덕을… 다 올랐는가.”

    안고 있던 아네스를 놓았다. 프리실라는 참 신기했다. 어릴 적 가장 존경했던 아네스의 모습과 시체는 닮아있었다. 젊다. 그때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그래, 이미 육에서 혼은 떠나갔으니. 이건 어머니가 아니겠지.”

    프리실라는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아네스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 희생했던 그 날 이후로 평생을 울어도 모자랄 눈물을 떨궜다.

    발전하지 못한다면, 나아가지 못한다면, 어미에게 면목이 없으니 일어나야 했다. 가슴 언저리가 아무리 아파도.

    “그래서, 아서는, 단장은 어디에 있나?”

    눈물을 닦는 프리실라, 그 물음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들. 란베르크는 팔짱을 끼고서 한숨을 푹 쉬더니 끝내 입을 연다.

    “비르테리아를 처단하러 가셨다.”

    “뭐? 혼자서 갔다는 말인가?”

    “그래.”

    아서를 왜 혼자 보냈는지, 프리실라는 호통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아서의 몫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리는 잔존 병력과 함께 대기하라 하셨다. 혼자서도 충분하시다고.”

    란베르크는 ‘쳇’ 소리와 함께 땅을 찬다. 아서에게 본인도 프리실라와 유사한 말을 뱉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떨궈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프리실라. 아서를 이해하기로 했다. 그는 늘 그래왔으니까, 정말 힘든 건 자기가 다 해야 수지가 맞는 남자니까.

    내려다본 바닥이 자욱한 그림자로 뒤덮였다. 아주 별안간이었다.

    모두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것을 바라보던 두 동공이 거리낌 없이 요동친다.

    누구 하나 신음을 터트리지 못했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음성이 당혹감으로 막혔다.

    구멍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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