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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65화 (165/222)
  • 165화

    * * *

    [황제의 성채 중심 / 프리실라 진영]

    적군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프리실라가 정교가 가진 최대 전력과 비등한 전투를 행하고 있다.

    두 명의 심판자, 델타의 늑대이자 노튼의 이름을 가진 여전사는 쉴 틈 없이 격을 주고받았다.

    아득히 먼 옛날, 늑대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언덕을 오르는 푸른 늑대. 프리실라의 육신을 빌려 아네스가 되살아난 듯,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으며 서 있다. 결착이 나지 않은 승부에 이미 승기를 쥐고 있는 기분이다.

    흉흉한 마력 속에서 100일 전장의 아네스가 숨어있다. 비르테리아가 그토록 원망하던 그 아네스의 기운이 사방을 메운다.

    “나는, 오르고 있다.”

    프리실라의 강력한 격을 막고 있는 십자회가 점진적으로 밀리고 있다. 그녀가 검을 내려칠 때마다 강력한 격으로 인하여 금방이라도 전완근이 터질 것만 같다.

    “오르고 있다. 당신이 걸었던 그 길을.”

    두 명의 심판자는 바닥을 지지대 삼아 프리실라의 옆구리를 강하게 찬다.

    “….”

    강력한 일격으로 인해 프리실라가 성채 벽면에 부딪혔다. 없었던 일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려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 뒤로 푸른 늑대의 갈퀴가 매섭게 휘날린다. 육을 통해 전달되는 고통, 그것도 그녀를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높게 오를 것이다.”

    “만날 수 없는 그곳에서도, 내게 잔소리를 하지 못하게.”

    프리실라는 자세를 취했다. 호흡 속에서 순환된 마력이 배출되며 자욱이 연기를 뱉어낸다. 온갖 기적을 두른 심판자들도 자세를 취한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구나, 한낱 전사가 우리의 격을 막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칭찬해주지. 늑대여.”

    심판자가 쥔 검이 프리실라에게 쇄도한다. 검끼리 부딪치는 강력한 쇳소리가 다발적으로 대지를 울리게 했다. 아군, 적군 진영 할 것 없이 진동으로 인해 고막이 터지는 이들도 있다.

    “칭찬이라, 네 녀석에게 듣고 싶진 않군.”

    프리실라는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는 연기를 눈과 입으로 뱉어냈다. 배출된 마력을 날숨으로 쭉 내보낸다. 검 끝으로부터 강렬한 전격이 튀더니 검에서 천둥이 몰아치는 소리가 터졌다.

    ―쿠릉.

    심판자가 늦기 전에 달려들어 강력한 일격 하나하나를 간신히 쳐냈다. 프리실라의 검에 닿을 때마다 지면이 으스러짐과 동시, 발끝으로 묵직한 중력이 전달된다.

    보통내기라면 격을 받는 순간 온몸에 있는 뼈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격을 받아내고도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정교의 최대 전력이라 부르는 이그리스 십자회의 수준을 알 수 있었다.

    황급히 한 명의 심판자는 뒤로 이동하여 프리실라의 일격을 피했고, 또 한 명의 심판자는 그녀의 빈틈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복부를 빠르게 베어낸다.

    “크윽!”

    신음의 주인은 프리실라가 아닌, 심판자였다. 서로 일격을 주고받았으나 별안간 잘려 나간 자신의 왼 손목이 빠르게 재생된다.

    “고통은 느낄 줄 아나 보군. 아니, 고통에 익숙하지 않은 것인가, 자네들은.”

    프리실라의 상처도 치명적이었다. 꿋꿋하게 서 있는 모습, 그 상처도 초록빛 기운에 의해서 서서히 재생되기 시작한다.

    “그대들과 나는 비슷한 것을 지원받고 있는 듯하나, 이쪽은 고통에 익숙한 편이지.”

    레니와 플로우의 초월마법이었다. 정령왕과 주신 아와의 힘을 빌려 아군의 치유를 돕는 광역마법을 성채 일대에 적용시킨 것.

    “자, 다시 시작해 보자. 그대들과 나, 수는 그대들이 우세하지만, 딱 이 정도가 비등한 전력이라 생각되니.”

    심판자는 이빨을 긁으며 프리실라의 복부와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빛의 성질을 가진 불투명한 검기, 심판자들의 공격을 짐승 같은 감각으로만 모조리 쳐내는 프리실라였다.

    또 한 명의 심판자는 뒤로 나가떨어진 프리실라를 동시에 추적한다. 발바닥으로 땅을 강하게 잡고, 쥐고 있던 검에 강한 마력과 상성을 무시하는 비르테리아의 기적을 내포한다.

    “끝이다. 늑대여.”

    ―!

    성채의 일대가 검기로 인해 종이처럼 잘려 나간다. 그 사이로 튕겨져 날아가던 프리실라, 푸른 갈퀴는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퍼뜨려진다.

    심판자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주변 일대와 프리실라가 처박힌 성벽에 집중한다. 먼지가 피어올라 그녀의 상태를 알기 어렵다.

    ―쿠르릉.

    ‘…천둥소리!’

    우레의 굉음, 그 굉음을 들었다는 의미는 전방으로 뻗어나간 검기로부터 이미 목이 떨어져 나갔음을 뜻한다.

    툭하고 떨어지는 두 개의 머리, 머리를 잃은 심판자들의 몸이 바닥으로 맥없이 처박힌다.

    성벽에 피어오르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푸른 갈퀴를 휘날리는 전사가 유유히 나타난다.

    델타의 병력은 이러한 소란 가운데 무심히 걸어오는 프리실라의 모습에서 다시금 한 전사를 떠올린다. 노튼의 성을 가진 유이한 늑대 프리실라.

    프리실라는 검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심판자들의 부활을 기다린다.

    “부활하라. 심판자들이여.”

    “그대들은 아직 나를 심판하지 못했다.”

    심판자들은 거친 호흡을 뱉으며 소생했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것은 마지막 소생이었다.

    헤르메딕트는 현재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그가 직접적인 소생을 관여하지 않으면 효율적인 부활을 할 수 없고, 심판자의 육체에서 마력처럼 소모되는 비르테리아의 신성력도 부활을 지속하기엔 한계가 있다.

    헤르메딕트의 성가가 심판자들의 귀로 스며들지만, 이 또한 심판자의 부활을 가능케 할 것 같진 않다. 부활을 마친 심판자들이 프리실라를 향해 입을 연다.

    “그렇다고 한들, 우리가 네 녀석 같은 야만적인 전사에게 패배할 리 없지 않은가. 오만하지 마라 늑대여.”

    프리실라의 찌푸린 미간이 펴지더니, 부활에 성공한 심판자들을 향해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 또한 아네스와 닮아있었다.

    “정말이지 애처로운 동네군, 자네들은 삶에 무지해도, 너무 무지하다네.”

    프리실라는 씨익 웃어 보였다.

    아네스가 죽고 난 이후 드디어 얼굴에 화색이 뜬 것이다. 드래곤 길드와 델타의 늑대들은 그녀의 웃음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심판자들은 프리실라에게 달려들며 상공으로 그녀를 쳐올렸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향해 치솟는 프리실라, 바람이 귀 끝을 강하게 때린다.

    ‘……허공에서는 기동이 제한된다!’

    프리실라는 바람에 의해 얼굴이 일그러져 흉한 모습이었다. 지상에서 바라보았을 때 손가락보다 작아진 그녀가 자세를 잡았다.

    비슷한 전투가 떠오른다. 과거 모의 공성전에서 마주한 S랭크의 마법사, 그녀가 사용한 중력 마법은 상공에서 기동이 불가능한 프리실라에게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추하게 다시 그 꼴을 보일 순 없다!’

    지상, 두 명의 심판자가 미세하게 보인다. 그곳으로부터 짙은 마력이 내재된 강력한 검기가 날아왔다.

    ‘…지금!’

    검에 마력을 두른 후 첫 번째 검기를 쳐낸다. 다시금 한 손으로 강한 마력을 재차 다음 검기를 흘려보냈다.

    기동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공에서 검기를 쳐내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막는다는 것이 아니었다.

    묵직한 검기를 모두 쳐내버린 바람에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허공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비틀거렸다. 프리실라는 최대한 본능에 육체를 맡기고 제 차례를 준비한다.

    ―쿠릉!

    상공에서 천둥이 몰아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칼날에 마력을 중첩시키느라 마력 소모가 컸던 프리실라는 정신이 혼미해진다.

    ‘나의 어미 아네스여, 이 프리실라에게 힘을 주소서.’

    ‘저들의 자유를 지킬 힘과 저들의 자유를 지킬 방패가 되게 하소서.’

    ‘노튼이라는 이름의 그릇을 다할 수 있게끔. 내 영혼이 그대가 말한 언덕에 오를 때까지.’

    상공으로부터 강렬한 빛이 지상을 향해 떨어진다. 그것은 거대한 우레였다. 그 빛줄기를 타고 함께 떨어지는 프리실라.

    ―.

    노튼의 집념이 담긴 일격이 두 명의 심판자들을 무자비하게 베어낸다.

    온갖 집념으로 무장한 전사의 격을 눈으로 따라갈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아무런 비명 없이 반으로 갈라진다.

    “…하아, …하아.”

    드디어 주위를 둘러본다. 전시는 아군 쪽으로 승기가 기울고 있었다.

    칼날이 잔뜩 무뎌져 버린 검으로 몸을 부축하던 프리실라가 다시금 씨익 웃어 보인다.

    주위에 있던 부하 및 동료들은 프리실라를 향해 아네스를 애도한다.

    “아직은 더욱이 나아갈 수 있는 이 늑대를. 부디, 굽어살피소서.”

    * * *

    심판자들과의 전투가 끝이 난 프리실라는 고갈된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나마 자리에 앉았다.

    아네스의 시체를 되찾기 위하여 꼭대기를 향할 차례건만, 몸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심판자들과의 전투는 육체에 상당한 무리를 가했다.

    성채 전역으로 적용되어 있는 레니와 플로우들의 초월마법이 조금씩 프리실라의 회복을 도왔다. 이전보다 회복 속도가 저조한 것을 보아 그들의 마력도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비르테리아 병사들의 수가 확연하게 줄어든 것을 감안했을 때, 성채 외부의 전시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오스칼의 도움을 받아 남대륙으로부터 델타제국에 잔존하는 정교의 병력을 밀어내는 것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이곳에 남아있는 아크론의 변절된 수뇌부와 비르테리아의 중심 세력만 무사히 격파할 수 있다면, 이 전쟁에서 델타는 승리할 수 있다.

    “자, 어서 새 방어구를 착용하게!”

    어느새 걸걸한 목소리를 내보이며 나타난 브라운과 쥬드. 소규모의 길드원과 함께 마차를 끌며 후방과 전선을 오갔다. 장비를 지원하고 있었다.

    “브라운, 그렇게 밤낮 할 것 없이 망치를 두드리더니, 다 이를 위해서였군.”

    모두가 힘을 내고 있다.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저력을 다한다.

    거친 호흡을 뱉으며 성채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프리실라, 강렬한 빛에 눈살을 찌푸린다.

    ―.

    황제의 성채 꼭대기, 렌과 아네스가 있는 방향에서 새하얀 빛이 터졌다. 태양이 지금보다 낮게 떠 있었다면 이처럼 눈이 부셨을 것이다.

    빛이 조금씩 걷히자, 성채 꼭대기에서 날아다니던 성기사들이 먼지처럼 사라진다. 어디서 보던 현상과 닮아있다.

    “…저 빛은 단장의 비범한 무력을 상징하는!”

    사라져가는 빛 사이로 푸른 용이 떠오른다. 푸른 용, 아이리스. 아서 일행이 인계로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

    아서다.

    아서가 돌아왔다.

    * * *

    황제의 성채 꼭대기.

    새하얀 파편을 흩날리며 소멸하는 성기사들 사이, 한 사내가 유유히 나타났다. 그는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내 용을 돌려받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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