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62화 (162/222)
  • 162화

    * * *

    [ 에드워드 더프 과거 中 ]

    “마커스, 네 이름은 마커스다.”

    더프는 힘차게 우는 아이를 들어 이름을 불렀다. 식은땀이 흘러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있는 아내도 마커스를 보며 방긋 웃는다.

    “고생했소, 정말로.”

    마커스는 어렵게 태어난 아이였다. 그만큼 이들에게 있어서 아이의 탄생이란 값지고 고귀한 것으로, 이들은 축복받아야 마땅하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마커스는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비를 보며 장래엔 기사가 되겠다고. 늘 친구처럼 쥐고 있던 수련용 목검을 놓지 않았다.

    한번은 더프가 출전으로 인하여 부재중일 때의 이야기. 야밤에 아내와 마커스는 자객의 습격을 받게 된다.

    자객은 타국의 첩자였다. 예전부터 비루스 제국의 정예군을 이끄는 핵심 간부 더프를 노린 것이다. 더프의 출전을 노려 가족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때마침 집으로 귀가한 더프가 칼을 빼든 자객을 제압하며 가족을 지킬 수 있었다. 만약 목검을 든 마커스가 어미 앞에 서서 시간을 끌지 않았더라면 더프가 도착하기 전에 인질로 끌려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잘했다, 마커스. 대견하구나.’

    ‘아닙니다. 아버지.’

    마커스는 또한 용맹한 아이였다. 게다가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기까지 했는데, 제 나이 열 해를 넘기고, 뛰어난 성품을 가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더프는 마커스가 기사가 될 수 있게끔 조기교육을 실시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였다.

    비루스 정예군에서 수많은 기사들을 양성했던 만큼, 교육과 훈육이 확실했다. 제 자식이라고 하여도 견습 기사 못지않은 태도를 보여준 더프였다.

    마커스는 성인이 되기도 전에 뛰어난 기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곱고 좋았던 해가 3번 바뀌자, 비루스 제국은 델타 점령을 위한 계획을 조금씩 앞당겼다.

    작은 제국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 비루스 황제는 서대륙에 존재하는 작은 제국들을 집어삼키는 폭군이다.

    더프가 이러한 폭군을 섬긴 이유란 그저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또 다른 왕좌를 받들 생각이 없다. 충성을 다하는 것은 단 하나의 왕좌만으로 끝나야 한다.

    ‘이번에도 특별한 전술은 없는 것인가.’

    수많은 병력과 페지르 정교로부터 탄생한 정예군. 서대륙에서 규격을 벗어난 무력을 지녔기에 특별한 전술이나 지략 없이도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비루스.

    그런 무지한 폭군이, 저 작은 제국 델타에 존재하는 ‘델타의 늑대’를 알 리가 만무하다.

    “군단은 들어라, 델타 앞을 지키고 있는 모든 것들을 신의 이름 아래 처단하자!”

    묵직한 관악기의 소리가 마력으로 인하여 더욱더 크게 전장을 울렸다. 비루스와 델타, 전쟁이 시작됨을 알리는 소리가 격하게 부딪친다.

    전시 첫날에는 비루스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단번에 끝낼 수도 있는 것을 비루스 제국은 서서히 델타를 파멸해갔다.

    단지 유희였다.

    사계열강이라 불리는 ‘아젤 제국’과도 견줄 수 있을 비루스 제국. 그렇게 가진 자의 여유를 소국과의 잔장에서 표출해왔다.

    델타의 병력은 A랭크를 상회하는 자들이 극소수였기 때문에, 사실상 비루스가 가진 병력의 반만 가용해도 승리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 이름은 사킨보!”

    “전장의 늑대가 피바람 위에 올랐으니, 그대들은 감히 각오해도 좋다.”

    무려 자신을 전장의 늑대라 칭하는 한 사내의 외침이 비루스 제국의 기사들에게 웃음거리가 된다. 전장에 꺼림칙한 폭소가 터졌다.

    델타의 늑대.

    델타의 기사와는 무릇 다른 분위기였다. 묘하게 산적과도 비슷한, 도적과도 유사한 듯, 야만적이며 짐승 같은 분위기를 지녔다.

    다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에게 올라오는 피 냄새였다. 꽤나 많은 전장을 누볐다는 증거, 전장의 흙바닥을 실컷 굴러왔다는 흔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루스 제국의 병사들은 긴장할 수 없었다. 뛰어난 사제들이 전장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하고, 정예군만 있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기강이 해이해져도 승리는 늘 비루스 제국의 것이다.

    “……으, 으으악!!!”

    전장의 늑대가, 피바람 위에 올랐으니.

    실로 그 말이 맞았다. 땅을 질척하게 만든 피는 모두 델타의 것이었다. 전자가 반전되어 이번에는 비루스 제국의 피로 질척인다.

    지금까지 전장에서 두려움을 느껴보지 못했던 비루스 제국의 병사들은 사킨보가 이끄는 전사들에게 계속해서 베어나갔다.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치 짐승과 싸우는 기분이다.

    치유 마법을 사용하는 사제도 끊임없이 죽어나자 비루스 제국의 전선은 이전과 달리 공황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퇴, 퇴각하라, 퇴각하라!!!”

    퇴각하라는 말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전선에 올라선 정예군도 전장에서 거리낌 없이 검을 휘두르는 야만적인 전사들에게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기도, 기도를 하자, 신에게 기도를 하여 저들을 처단할 수 있는 용기를 얻자.

    그런 숭배의 마음도 잠깐. 찰나의 순간, 땅에 머리가 떨어져 기우뚱 서 있는 내 몸을 바라보게 될 뿐이었다. 전선에 두터운 공포가 전염되자 기도를 위한 양손은 델타의 늑대들을 향하게 된다.

    비루스 전선에 도래한 공포는 그 어느 질병보다 전염이 빨랐다.

    이들은 밤낮이 없었다. 실로 야만적이다. 그렇기에 비루스 제국의 병력은 공포를 떨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서로 간의 사냥, 전장의 예우 따위는 없었던 비루스 제국이 맞이해야 할 당연한 결과였다.

    ‘다르도라, 루픽스.’

    다르도라, 루픽스라는 사내가, 아니 두 마리의 늑대가 전선 위에 나타났다. 제각기 다른 곳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모두가 하나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 뒤, 비루스 제국의 병사와 검을 맞대는 전사들도 하나같이 똑같았다. 죽음을 고사하고 먹이를 찾기 위해 언덕을 오르는 고고한 늑대. 늑대들은 적진을 격파해갔다.

    “……이그리스, 이그리스 십자회가 왔다!”

    온갖 환호와 함성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늑대들은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음흉한 분위기 속에 새하얀 갑옷을 착용한 기사들이 전장 위에 서 있다.

    이그리스 십자회, 정교의 최대 전력이자, 심판이라는 단어 그 자체를 의미하는 이들. 비루스 제국이 다시금 우세할 수 있게 잠시나마 정교에서 파견되어 전장에 참여한 것이었다.

    30일, 페지르 정교에서 비루스에게 지원한 이그리스 십자회의 기한은 30일이었다. 그들은 정교의 최대 전력이니 아무리 비루스가 정교의 추기경이라 한들, 제 물건처럼 마음껏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30일이라면 충분했다.

    이그리스 십자회는 그런 존재였다. 정교의 모든 은총과 기적으로 둘러싼 심판자들이 그렇게 전장의 흐름 속으로 파고든다.

    그들이 왔다 간 30일 동안. 전장은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다. 완벽한 델타의 패배였다.

    “죽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킨보, 다르도라, 루픽스!”

    “이 개새끼들아… 죽지 않겠다고 했잖아.”

    하염없이 죽어있는 시체들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치는 여인, 그녀는 시끄러운 전장 속에서 홀로 통곡하고 있었다.

    한참을 통곡하던 여인을 지키기 위해. 많은 전사들이, 아니 늑대들이 죽어 나갔다.

    한참 동안 슬픔에 잠겨서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 줄 알았건만, 이윽고 눈을 부릅뜨며 일어난 여인이었다. 눈에서 분노가 들끓는다.

    제국을 위해, 터를 위해, 우리를 위해 죽어간 전사들. 그 전사들에겐 하물며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다.

    저 신성제국이라 일컫는 것은 힘없는 자를 늘 이단이라 칭하며 죽여 나갔다. 보란 듯이.

    아네스를 분노와 증오로만 움직이게끔 만드는 모든 촉매가 모이기 시작했다. 바득바득 긁고 있는 이빨에서 끔찍한 소리가 났다.

    …‘사킨보’ 동료를 향하는 초월마법을 홀로 대응하다 사망하다.

    …‘루픽스’ 동료의 목 대신 적장에게 자신의 목을 과감히 내어주며 사망하다.

    …‘다르도라’ 기가 잔뜩 오른 정예군과의 전투에서 사지가 찢겨 사망하다.

    “먼저 가 있게, 전우들이여.”

    “그대들의 영혼은 내가 받았네.”

    아네스는 셋의 피를 제 뺨에다 묻혔다. 지금부터 한 육신에 네 명의 영혼이 담겨 있노라.

    마력으로 생성된 푸른 갈퀴를 휘날린다. 여인은 검을 강하게 쥐었다. 다시는 놓지 않을 것처럼.

    그리고 정확히 100일이 되는 순간, 확정된 패배는 델타가 아닌 비루스로 넘어간다.

    이그리스 십자회가 남아있었더라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그들 전원과 대등할지도 모른다. 그 강함은 완전히 규격에서 벗어나 있었다.

    모든 병력을 한 여인이 파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 속에서 이 여인에게 ‘검성’과 ‘100일 전장의 아네스’라는 이명이 붙는다.

    “빼앗으니.”

    “빼앗기는 법이다.”

    정예군의 2번대 대장, 유일무이하게 전선에서 이탈하지 않고 델타와 끝까지 맞선 기사. 제 목숨이 눈앞에 있는 여인에게 있음을 알고 입을 열었다.

    “에드워드 더프.”

    “내 이름이다.”

    “죽여라.”

    하지만 무엇이 저 여인에게 자비를 베풀게 한 것인가, 델타의 남은 병력들이 비루스로 향하냐는 말에 죽음을 면했다.

    이어서 그녀가 나지막이 뱉는 말에 두 동공이 떨린다. 지면에 흙 같은 것을 손으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당장 비루스를 향해야 한다.

    더프의 뜀박질, 철갑인데도 불구하고 죄다 찢겨버린 갑옷이 더욱더 처절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비루스 제국의 문양도 온갖 쇠붙이들을 막느라 없어진 지 오래, 비루스로 진격하는 기사들이 더프를 알아볼 리도 만무하나, 그들에게 섞여 비루스를 향하는 것 또한 묘한 일이다.

    같은 방향을 향하지만 목적과 목적은 교차했다. 더프는 이윽고 비루스 제국으로 진입한다. 집, 자신의 집을 향한다.

    어렵게 붙어 있던 갑옷이 하나, 둘 떨어지니 영락없는 거지꼴에 가까웠다. 그런 더프는 처절하게 뛰었다.

    부족한 산소로 인해 폐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하나 멈출 수 없다. 내 아이와 아내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에.

    “아…. 아…. 아!!!!!!!!!”

    더프는 앞이 어두웠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반겨줄 것만 같은 마커스와 아내가, 끔찍한 몰골로 있었다.

    그들을 잡아 아무리 흔들어도 반응은 미미하다. 그저 시체를 잡아 흔드는 행위나 다를 바가 없었다.

    무엇이, 무엇이 이들을 죽이게 했는가, 델타는 비루스처럼 이런 짓을 해댈 제국이 아닌데.

    고개를 돌린다.

    벽면에는 비루스 제국의 정예군을 상징하는 깃발과 무려 그들의 지휘관을 상징하는 내 초상화가 걸려있다.

    저것이다. 저것이 내 가족을 죽게 만든 것이다. 분명했다.

    “아, 아……. 아.”

    그것이 인간의 울음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끔찍한 소리가 집 안을 잔뜩 울린다. 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비루스를 파멸로 이끈 아네스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너희들의 행보를 떠올려본다면.”

    “지금쯤 네 아이와 아내는….”

    “델타의 기사들에게 죽었을지도 모르겠군.”

    빼앗았으니 빼앗긴 것이라, 틀린 말이 전혀 없었다. 나는 제국을 위해 충성을 다한 것이지만, 그 이념과 하나가 되어 많은 이들의 피를 흘리게 했다.

    하지만, 하지만.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했던가, 처절한 자의 증오가 가장 깊다고 했던가,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더프에겐 잃을 것이 없었다.

    잃을 것 같지 않던 행복이 낳은 증오는 효과가 좋았다. 그에게 본능처럼 남아, 복수를 위해 움직이게 할 뿐이다.

    “……안 돼, …마커스, ……마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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