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61화 (161/222)
  • 161화

    * * *

    ‘정의 심판’

    서대륙, 대제국 데크 에던의 심장, 황제의 성채에는 ‘정의 심판’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이 어떤 의미로 건축되어 있는가, 적국의 왕관, ‘왕을 처형하는 장소’로 사용되는 처형장이었다.

    “그대들은 들어라.”

    이러한 야만적인 문화는 정교의 신(新)교황 비르테리아가 아크론과 데크 에던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부족함이 없는 패권주의, 이념이 다른 두 제국이 비르테리아로부터 하나가 된다. 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극악무도한 제국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100일 전장의 아네스도 죽었으니.”

    아크론, 데크 에던. 두 이름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연맹이라, 연맹이라는 단어를 결합하기엔 너무 오랜 세월을 전쟁으로 다퉈왔다. 갑작스레 이들이 동맹이 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이 비르테리아의 오랜 소원을 성취했다.”

    교황 비르테리아가 두 제국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있는 핵심 권력자들을 심복으로 삼았다. 그 권력자들은 내부에서 권한을 높여가다 끝내 실질적인 왕권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건실하던 서대륙 역사 흐름에 전례 없는 변화가 찾아왔다. 페지르 정교가 핵심 변화였다. 오랜 세월을 존재해왔지만 비르테리아와 같은 교황은 처음이다.

    “그래, 델타를 멀쩡히 남겨둘 이유가 없다.”

    교황이 권력을 장악한 결과로 아크론과 데크 에던은 이미 본래의 문화를 모조리 잃었다. 이를 반대하던 자는 죄다 이단이라 취급하며 학살했다.

    보라, 비르테리아의 멋대로 정의 심판이라는 야만스러운 공간이 성채 꼭대기에 존재하는 것을. 7인의 영웅이라 불리는 ‘데크 에던’의 위상은 온데간데없다. 정교의 지도자가 원한다면, 감히 그 이름도 과거에 머무를 뿐이다.

    “정교의 믿음으로 델타를 모조리 정화하여.”

    게다가 델타도 마찬가지였다. 델타 3세 주변에서 구실 좋게 행동하던 대부분의 권력자들이 황실의 배반자, 모조리 비르테리아의 심복들이었다. 실상 비르테리아는 3개의 제국을 손아귀에서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 신성한 말로를, 신에게 바치겠노라.”

    100일 전장, 혹은 노튼 아네스, 전자의 음성들이 귀에 스며들 때, 비르테리아가 이빨을 긁는 이유도 당연했다. 델타에 사는 검성, 늑대들의 어미. 그녀는 비르테리아의 과거에서 지워져야 마땅할 존재였다.

    “이스카리옷 비르테리아.”

    인계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신성제국, 비루스를 이끌던 통치자. 정교의 사자, 정교에서 파문당한 추기경, ‘이스카리옷 비루스’는 부활했다.

    “페지르의 교황이 신의 뜻을 대신한다.”

    * * *

    [ 이스카리옷 비르테리아 과거 中 ]

    ―그대, 성은 이스카리옷이요, 이름은 비루스, 이니라.

    오랜 과거, 이스카리옷 비루스는 페지르 정교에 있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천계 끝자락 ‘필요 없는 곳’, 신성하지 못한 그 이름이 지어진 암흑가. 품으로부터 버려진 아이, 서럽게 울고 있던 그 핏덩이. 성녀 하델이 비루스를 데려왔다.

    성녀 하델은 페지르의 성장을 오랫동안 이바지해온 정교의 ‘천사’였다. 인간이었지만 실로 그 의미에 걸맞은 자애로운 여성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늙지 않는 여성이었다.

    그렇게 성녀 하델로부터 눈에 집힌 이스카리옷 비루스는 정교의 고아원에서 배우며, 먹고, 자란다.

    소년 비루스는 매우 총명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비범한 발상을 지니며, 때론 냉철하고, 하물며 신에 대한 믿음도 굳건했다. 긁어 부스럼 없이 모든 것이 뛰어난 아이였다.

    그렇게 비슷한 세대의 중심이자, 혹은 우상 같은 것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다. 무럭무럭.

    ―마녀 하델을 처형하라!

    시간이 흘러 비루스는 성인이, 성녀 하델은 마녀로 오인받아 화형에 처하게 된다.

    성녀 하델의 화형을 적극적으로 몰아세운 것은 다름 아닌 비루스였다. 그 덕에 비루스는 추기경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다. 불타오르는 하델 앞에서 거짓된 눈물을 떨구며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의 야망을 숨겼다.

    사실상 이 모든 것은 ‘이름 없던 소년’이 하델에게 주워진 시점부터 계획된 것으로.

    비범한 발상이라는 재주를 달리 표현하여 영악한 발상에 재주가 있었다. 혹은 영악, 그 자체임이 틀림없다. 온갖 해악을 담아놓은 신념이 그의 육을 움직이게 했다.

    추기경 이스카리옷 비루스, 그는 다음 목표를 선정한다. 교회의 황제, 교리의 지배자, 정교의 수장. 즉 자신의 모습에서 교황의 자태를 바랐던 것이다.

    이스카리옷은 신성제국 ‘비루스’를 인계에 구축하게 되며, 정교의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그 영향력을 기반으로 하여금 교황 선정에 이름이 오르길 고대했다.

    비루스는 그 고대한 마음으로 수많은 제국을 파멸시켜나간다. 제국 앞에는 이단의 글자를 붙이고, 죄 없는 이들에게 죄를 만들어 과감하게 정교의 철퇴를 내려쳤다.

    ‘이단의 종자들은 모조리 뿌리 뽑아라.’

    비루스가 추기경이 되어 망국을 늘려나갔던 시기. 현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역사로 남는다. 현 정교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었다.

    수많은 암흑기 중 ‘비루스’라는 인간의 이름이 실린 것도 처음이랴, 추기경이라는 직함이 실린 것도 처음이다. 이 암흑기가 끝나기까지 인계의 서대륙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비루스를 찬양했다.

    하나 난세에는 영웅이 탄생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암흑 같던 그 시기를 무너뜨리는 자가 존재했다.

    바로 ‘100일 전장의 아네스’

    ―악마의 탈을 쓴, 저 흉포한 광전사를 당장 막아라!

    단 100일, 비루스 정예군을 단숨에 격파하고, 난공불락의 벽이라고 불리던 제국 문을 뚫었다. 델타의 모든 것을 끌어모은 병력이 진입해 비루스 진영을 완전히 격파한다.

    난공불락의 벽을 뚫은 전사, 이 모든 것을 아네스라는 여전사 하나가 이루어냈다. 델타는 패전국이 될 뻔했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 것이다.

    델타의 고고한 늑대, 100일 전장의 아네스는 추앙받아 마땅했고. 정교의 변절자, 신의 배반자 이스카리옷 비루스는 끝없이 실추하는데 충분했다.

    이후, 긴 시간이 흘러. 아직도 연명하고 있는 비루스를 볼 수 있다. 그는 죽지 않았다. 끝내 이그리스 십자회에게 추적당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신이시여.’

    사계를 허름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던 비루스가 고치지 않았던 것은 ‘기도’였다. 여전히 신에 대한 믿음만큼은 변치 않은 것이다.

    매번 영악하게 그지없는 소년이, 추기경이, 황제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신이었기에. 이념을,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제게, 자비를…….’

    아이러니하게도 신은 실로 존재하는 것인가, 비루스에게 ‘세계의 유산’이 각성했다. 기도가 통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흉부 중앙에 나타난 고대어는 이렇게 해석이 되었다.

    ―유다의 배반.

    이스카리옷은 새로이 이 세계의 결말을 구축하기로 마음먹는다. 야망은 꺼지지 않았다. 교황의 자리를 빼앗아, 정교를 손아귀에, 사계를 쥐락펴락하리라 각오했다.

    ‘……이 유다의 배반으로!’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제가 가진 유산이 교황의 자리를 빼앗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유다의 배반은 적들을 심복으로 만드는데 탁월했다. 적들의 적들마저도, 부모, 연인, 자매, 형제, 피가 섞인, 섞이지 않은, 피부가, 동공 색이, 머리칼이, 모든 이유는 그에게 이유가 되지 않았다.

    정교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다. 그 균열은 십이 되어, 백이 되어, 천이 되어, 그로부터 배가 되어. 끝내 질서 없이 깨져버린 정교의 시스템 위, 온갖 해악을 쥔 채로 그가 군림했다.

    그리고, 본래 있어야 할 교황의 별은 떨어지며, 정교에는 새로운 별이 뜬다.

    ‘이스카리옷 비르테리아’

    새로이 뜬 정교의 별이 우선적으로 찾아간 이가 있다. 비루스 정예군을 이끄는 기사 ‘에드워드 더프’ 추기경의 검이자, 비루스의 심복.

    ‘더프, 자네가 날 도와주겠나.’

    서대륙 어딘가에서 간신히 생을 이어가던 더프는 몰골이 초라했다. 마치 비루스가 다시 자신을 찾아오길 고대했던 사람처럼, 이어서 그 눈에는 온갖 증오와 저주가 맹렬히 남아있다.

    ‘비루스 님.’

    ‘지금은 비르테리아, 이니라.’

    비르테리아는 고개를 숙인 더프의 얼굴을 들었다. 사계에 그 어떠한 복수보다도 짙은 복수를 함께하길 소원한다. 신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이 모든 것을 어지럽힐 어두운 별. 그 별은 그림자가 필요하다.

    허름한 집 밖, 마당에 놓인 두 개의 무덤. 그것은 델타에서 나온 날카로운 쇠붙이가 그들을 무정히 뚫고 지나갔음을 말해준다.

    아내는 더프에게 한없이 좋은 여자였다. 아이가 쉽게 생기지 않아 서로가 고단했던 시간 끝에 한 아이를 가지는 데 간신히 성공했는데.

    그리고 그 아이는 커서 제국의 기사가 되길 고대했다. 지어미도 고대했는데, 지아비도 고대했건만, 될 수 없었다.

    더프는 한없이 그 자리에서 울다가 일어선다. 그림자, 그림자가 되어주겠다. 어두운 별을 따라가다 언젠가 빛을 만나 그 그림자가 저버리더라도.

    설령 무거운 죄로 인하여 비명이 들끓는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델타를 파멸시키리라.

    ‘마커스를 위해서.’

    * * *

    [ 서대륙 / 델타 산맥 ]

    “마커스 님,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델타 산맥, 그곳에는 비르테리아가 언급했던 ‘미지의 나무’에 필요한 마지막 열매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성하가 말씀하시길, 미지의 나무를 완성시키면 세계의 결말을 조작할 수 있다고 했다. 교황의 자리를 빼앗고, 단 며칠 만에 모든 권력을 쥐어 잡은 성하의 말씀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약 성하가 바라는 결말이 모두가 절멸하는 것으로 끝이 나버릴지언정. 처음부터 무관했다. 죽음은 비로소 복수로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 건지, 무엇이 문제인가, 위치? 아니, 이곳의 모든 것을 뒤졌으니 더 이상 찾을 곳도 없다.’

    ‘산맥의 모든 것은 뒤졌다. 결론은 이곳에 마지막 열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마커스는 얼굴을 가린 로브 속에서 미간을 찌푸린다. 성하가 미래를 조정할 수 있는 힘, 사계의 모든 시작과 끝이 기록된 성서 이달리브를 보며 말했다. 분명 예언하길 이곳에 마지막 열매가 있다고 했는데.

    ‘혹시, 바위 산적이?’

    아니, 그것도 아니다. 그렇게 대단한 짓거리를 할 정도로 영리한 녀석들이 아니기에, 그리고 이미 그들은 모두 죽어있다.

    바위 산적을 통해서 피랍, 약탈 등의 악행으로 주변 마을을 헤집은 다음 주변일대가 모조리 터를 떠난 상태였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이 가져간 것도 아니다.

    하물며 그들은 ‘미지의 나무’도 모를뿐더러 ‘열매’에 대한 정보도 무지할 것이니 절대 그들이 범인이 될 수 없다.

    “마커스, 어디 가십니까.”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 산맥의 조사는 이어서 하도록, 성하를 만나 뵙고 올 터이니.”

    * * *

    [ 서대륙 데크 에던, 황제의 성채 꼭대기 ]

    데크 에던, 황제의 성채, 정의 심판에는 붉은색의 거대한 용이 죽음을 고사하고 있었다.

    종일 쉰 소리로 포효했지만 용을 가두는 족쇄는 계속해서 기력을 빨아들인다. 그래서 그런지 소리를 뱉어내는 것 이외엔 미동도 하지 못했다.

    비르테리아를 상징하는 거대한 보라색의 깃발. 그리고 그곳에 묶인 시체. 이는 부관참시를 위한 것으로 시체의 이름은 다름 아닌 ‘아네스’였다. 그리고 붉은 용이 포효하는 원인이다.

    고대어가 데크 에던 성채에 울려 퍼졌다. 다만 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감정에 분노가 섞인,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런 포효가 계속해서 사방을 울렸다.

    “렌.”

    바닥을 질척이는 용의 피, 그중 심판자들과의 전투로부터 얻은 짙은 상처, 이는 불사 같던 렌의 죽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제 그만하지.”

    성채 꼭대기에는 용을 지키는 경계병 하나 없었었다. 휑하며 외로운 곳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끝, 렌을 부르는 남성이 있다. 익숙한 목소리, 그렇지 않은 태도.

    “……마커스.”

    거대한 우리 속, 쇠사슬에 묶인 붉은 용을 향해 남자는 유유히 걸어온다. 무정했다. 그를 보며 순간 화색에 잠기다가도, 본능적으로 그가 어떠한 일을 저질렀는지 이윽고 알아챈다.

    “어째서……. 어째서죠.”

    사냥꾼 마커스, 그에게서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멍청하고, 익살스럽고,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중년이었는데. 여관에서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낀 적이 있었다. 거기서 조금 더 짙은 악의가 느껴졌다.

    마커스를 향해 거친 포효를 뱉어내는 렌.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마커스는 물러나지 않는다. 걸음은 멈추지 않으며 계속해서 붉은 용을 향한다.

    붉은 용 앞에 앉는다. 차마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그는 반대로 앉았다.

    그러나 담담한 목소리, 흐트러지지 않는 문장, 마치 고요한 태풍 같다.

    “내 이름은 더프.”

    “마커스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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