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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59화 (159/222)
  • 159화

    * * *

    나의 사랑하는 전우들이여, 잘 있게. 그대들과 함께했던 모든 전장에서, 유대감이었지. 내 옆에서 신념과 아집이 담긴 검을 함께 휘두르고, 든든했어. 나는 잊을 수 없네. 자네들과 함께 해왔던 많은 일을 말이야.

    우리가 울타리를 두르며, 레르라는 이름을 스스로 거머쥐며. 많은 일이 있었거늘. 잊을 리가. 수많은 고난을 헤쳤던 늑대들의 아름다운 모습, 비록 자네들의 몸과 영혼은 대지로 돌아갔지만, 우리가 영위해왔던 시간은 내 가슴 속에 변함없다네.

    100일의 기나긴 전장은 끝이 났고. 고개를 돌리면 그대들이 없는 것이 이리도 마음이 아플 줄이야. 고향에 남아있는 자네들의 목소리가 나의 가슴을 그 어떠한 검으로 찔러 넣은 것보다 아프게 한다네.

    보고 싶다네, 나의 전우들이여.

    자네들의 피가 섞인 아들들은 걱정하지 말게. 훌륭한 부인들을 둔 덕에, 훌륭한 전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야. 벌써 어엿한 늑대의 자태를 풍기고 있으니까.

    자네들은 훗날 이들이 크면 나를 모시라고 했다더군. 죽어서도 내가 민폐만 끼치게 할 생각이라니, 눈을 감고서도 나를 괴롭히는데 도가 텄어. 정말이지 자네들은.

    언젠간 숨을 거둔 늑대들이 향하는 언덕으로. 내 영혼이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면. 내가 길을 잃지 않게 마중이라도 나와 주게.

    오래 살다가 갈 것이니 말이야. 앞이 잘 보일지 모르겠군.

    아직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이 드넓고 아름다운 세계를 우리 늑대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기 위해서 말이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네.

    전우들이여.

    ‘형제들이여.’

    ‘언덕에서 다시 만날 때,’

    ‘나를 반겨주게.’

    ―헤더돌프의 자손. 위대한 세 송곳니. 레르의 용맹한 늑대들. ‘사킨보, 다르도라, 루픽스’ 이곳에 고이 잠들어, 땅과 하나 되다.

    “할매, 왜 울어.”

    “프리실라.”

    손아귀에 담긴 작고 아담한 손이 가슴을 더욱 울리게 했다.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고통스럽다.

    소중한 것을 잃는 것 보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을 수천 번 반복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을 함께했기 때문에.’

    ‘이리도 가슴이 아픈 것이겠지.’

    늑대들이 전장에서 눈을 감을 때면 가슴을 후벼 파는 무언가가 나를 더욱더 강하게 했다.

    작은 손을 잡고 있는 내 손이 떨리자. 프리실라가 내 허리를 안으며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자네들의 아들들도, 이 녀석도 이렇게 자랐다네.

    ‘할매, 울지 마.’

    무덤 앞,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미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어 마땅할 때, 아니한가.

    아직은 나와 눈을 맞출 수 없는 프리실라를 위해 쪼그려 앉아 머리를 쓰다듬는다.

    ‘녀석, 누가 운다고.’

    세월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시간은 늙어가는 늑대를 위해 머물러주지 않으니까. 프리실라가 크고, 내 형제들의 아이들이 커갔다. 어엿한 성인으로. 어엿한 전사로.

    전쟁은 이전보다 줄어들고, 델타를 위협하는 적국이 점차 사라져갔다. 몇몇 제국이 거대한 세력을 이루어, 하나는 적국이, 하나는 동맹제국이 되어 델타는 번창해간다.

    ‘마치 다시는 오지 않을 평화처럼.’

    내가 마력을 통해 직접 자가 치유를 운용할 수 없을 만큼 노쇠해졌을 때, 델타의 늑대들은 비로소 멈추었다.

    함께 걸어가기 위함인가, 여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잡다한 의뢰를 받으며 평온한 시간을 쌓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델타의 늑대들.’

    ‘던전 할머니 여관.’

    온갖 상업과 기술들로 무장한 귀족들이 제국에 자리 잡으니, 무기를 들어 제국을 지키는 자의 자리는 조금씩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돈으로는 무엇이든 가능했으니까.

    세력을 사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목숨값으로 100골드가 되지 않는 이들과 늑대들이 같은 취급을 받지 않는 것은 엄연히 황실의 배려라고 할 수 있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사라는 검을 대용한 고풍스러운 조직이 제국에 위상을 풍기며 돌아다녔다.

    발전해가는 제국과 함께 야욕도 늘어나는 이들. 그 그림자에 용병 따위로 불리는 늑대들은 그저 가려지기 마련이었다.

    레르의 늑대들은 이미 기사의 직위를 받지 않겠노라 말했으니 후회는 없다.

    다만 우리가 해왔던 일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쇠퇴해가는 마을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그렇게 하여 델타의 심장이라 불리는 델타 3세를 찾아갔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왕관 주위의 몹쓸 것들이 문제였구나. 그 표독스러운 표정을 보았더니, 온갖 고찰이 지나갔다.

    ‘델타 3세가 주변에 휘둘리는 성격이었다니.’

    델타 2세가 눈을 감고, 3세가 왕위를 차지했을 때는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이 드사덴의 제국처럼 강렬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만큼 현 제국을 이끄는 델타 3세는 용맹한 사내였다. 내가 떠올린 델타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문제가 있으리라.

    “할매, 이건 말도 안 된다!”

    “시끄럽다!”

    “왜 그렇게,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거지!”

    “우리가 섣불리 나설 일이 아니니까.”

    프리실라가 어느새 나와 눈을 맞출 만큼 커 있었다. 노쇠해가고 있는 나와 달리, 단련을 통해 얻은 튼튼한 몸과 정신은 녀석이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지 않아도 어릴 적부터 사내대장부처럼 목소리가 지나치게 컸던 녀석이, 다 큰 어른이 되어 호통을 치는 바람에 귀가 멍멍거릴 정도다. 그만큼 주관도 뚜렷해졌다는 뜻이겠지.

    어느 날 녀석이 여관으로 찾아와서 하는 소리가 ‘태양 새의 용병단’을 창설하겠단다.

    태양 새는 우리의 조상 헤더돌프가 데리고 다녔다던 전설적인 동물이었다. 대관절 어떤 의미로 이름을 그리 지었는지 예상은 갔다.

    “진심인가, 프리실라.”

    “나도 할매처럼 마을을 위해 움직이겠어.”

    “흠….”

    “아이나가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이나는 레르의 사람이다.

    녀석도 전쟁고아였지만 늑대와 함께 살면서 늑대가 되었으니, 레르의 사람이다.

    프리실라와 다르게 뛰어난 통찰력과 냉정함을 지녔기 때문에 기사 교육대에서 교관 역할까지 맡은 녀석이었는데.

    ‘그런 녀석이…. 대뜸 프리실라와 용병단을 운영하겠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은퇴하여 여관을 운영하는 델타의 늑대만으로는 레르 마을을 회생시킨다는 것이 역부족이란다. 걱정이 앞서긴 했으나 대견했다.

    어차피 녀석은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내게 통보를 하러 온 것이다.

    ‘다치지 말아라.’

    프리실라는 그렇게 태양 새의 용병단을 이끌었고, 조합의 주된 기능은 전쟁 용병으로서의 지원, 강습, 추적전력, 전쟁터가 곧 직장이기에 용병단의 이름도 그만큼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그 이름값 덕에 보상의 크기가 커지는 것은 당연했고, 그만큼 일의 난도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했기 때문에 사망자들이 속출해서 늘어난다.

    이로 인해 프리실라는 어느 날 우울한 얼굴로 여관에 찾아왔다.

    녀석은 늘 호탕한 웃음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웃어대지만, 그만큼 우울할 때는 표정 관리가 일절 되지 않는 내 딸이었다.

    “할매, 내가 우두머리의 자격이 있는 걸까.”

    “그런 표정을 계속 짓는 자가 우두머리의 재목은 아니겠지.”

    “….”

    “이 상처는…. 부상은 그때그때 치료하라고 했을 텐데.”

    나는 녀석의 어깨에 파고든 날카로운 자상을 치료하며 말했다.

    늑대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생물이니 혼자 모든 것을 안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뜸 녀석은 나를 노려보더니 ‘전부, 할매한테 배워서 그렇잖아.’라는 말을 더했다.

    “늘 할매는 그랬어, 그 모습이 멋져서 나도 닮으려고 한 거지.”

    “아니, 그때의 나, 아네스는 잘못되었다. 짊어질 그릇이 되지 못했어.”

    “….”

    눈을 맞출 필요도 없이 이만큼 성장한 프리실라가 의자에 앉아있다.

    나는 무릎을 꿇어 녀석의 손을 잡았다.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내 무식한 딸이 당장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언젠가 이해할 때가 오면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겠지.

    “짊어지다 보면 넘어지기 마련이니, 너무 짊어지지 말아라. 넘어지게 되면 네가 지킬 수 있는 것도 그 순간엔 지킬 수 없단다. 그 순간이 오면 혼자서 짊어진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잖니.”

    “네가 혼자서 짊어진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아, 언제나 네 곁에는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을 떠올려라, 전장에서 혼자 이기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굉장히 외로운 사람일 테지.”

    “전장에서 전우들이 죽는 것을 두려워 말아라. 우두머리가 되어서 먼저 떠난 이들보다 못하면 어떡하잔 말이냐,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에 올랐다. 그 죽음을 네가 조금 더 강하다고 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라.”

    “네가 당장 기억하는 것은 생기 없는 눈동자를 띈 그들의 시체, 영혼은 이미 그 몸을 떠났으니 그 시체가 네 전우라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다. 그것에 동정을 느낀다면, 프리실라. 너는 우두머리의 자격이 없다.”

    “그들을 잊지 않는 전우가 있고, 그 전우가 죽으면 다른 전우가 있고, 다음 세대가 있고, 그다음 세대가 있고. 그렇게 우리의 혼은 이어지는 것이다. 가슴 속에.”

    “네가 지금까지 전장을 나서기 전, 두 손을 모아 ‘헤더돌프’에게 기도를 했던 것은 전부 가짜였던 것이냐, 아니라는 것을 안다. 네 가슴 속에 전우들이 남아있다. 함께 있다. 영원히.”

    “그러니, 울고 싶을 땐, 크게 울어라. 아가.”

    “네 마음이 그들에게 닿을지도 모르니까.”

    * * *

    아네스의 철창 쪽으로 란베르크가 퉁겨져 날아왔다. 십자회 9명을 전부 상대하기가 벅찼는지, 숨을 헐떡이며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다.

    어깨에 깊은 자상을 움켜쥐며, 다시금 공격을 시도하려 지면을 강하게 밟는다.

    퇴각 신호를 들은 호르게타 일원들이 대열을 정비하며 철창 뒤로 이동한다.

    남아있는 것은 철창에 있는 아네스와 발악하는 프리실라를 어깨에 짊어진 델타의 늑대들, 눈시울을 붉히며 십자회를 노려보는 아이나.

    “오락은 여기까지다.”

    용언도 아닌 것에서 소름 끼치는 기백이 울려 퍼지자, 부유선으로 이동하던 호르게타의 일원 중 몇몇이 자리에서 혼절한다.

    9명의 십자회가 10명으로서 진짜 대열을 되찾는다. 아이올레드가 대열 속으로 들어오더니 걸음을 멈추자, 가로로 쭉 이어진 이들의 모습은 성스러움보다 공포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이그리스 십자회여.”

    “――모조리.”

    “심판하라.”

    별안간 란베르크를 지나치고 철창으로 쇄도하는 이들의 무기, 백안을 띄고 있는 심판자들은 아이올레드의 명령으로 전력을 실었다.

    지면에 강력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철창 쪽은 흙먼지가 크게 피어오른다.

    ―쿵.

    그 속, 풍압이 터지며 피어오른 흙먼지와 함께 9명의 십자회가 아이올레드 쪽으로 튕겨 나간다. 이를 지켜보던 아이올레드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깨문 다음, 철창 쪽을 직시했다.

    철창을 가렸던 흙먼지가 완전히 걷어지고, 쇠창살이 구부러져 있다.

    비르테리아 교황이 아니면 어떠한 무기로도 파손시킬 수 없는 감옥.

    놀랍다. 그것을 파괴했으니.

    “이 전장의 주역은.”

    “노튼 아네스, 나로 충분하다.”

    푸른 늑대의 형상, 불꽃처럼,

    그 가죽을 뒤집어쓴 것처럼 한 여자가 서 있다. 그 중심으로 마력 유동이 거세게 느껴진다.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기운에 호르게타의 일원들은 시선을 집중한다.

    노튼 아네스,

    철창 안에서 생과 사를 오가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100일 전장의 아네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마치 젊음이 느껴졌다.

    “사계에서 이 시절의 나를 부르길, 검성! 혁명의 검! 100일 전쟁의 아네스! 델타의 영웅! 늑대들의 어미! 그저 베는 것을 잘하는 나를, 참으로 근사하게 불러주었다!”

    “들어라, 심판자들이여! 생을 거두는 대가로 내 조상께서 기적을 주셨으니! 내 아이를 위하여! 젊은 넋의 미래를 위하여! 빼앗긴 터의 자유를 되찾기 위하여!”

    고도의 마력만으로 응집된 검, 강렬한 빛이 흩어지고 있다.

    눈에 푸르른 불꽃을 머금고 있는 여인, 그녀가 쥐고 있던 검이 10명의 십자회들을 가리킨다.

    “나, 노튼 아네스.”

    “마지막 전장에 올랐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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