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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58화 (158/222)
  • 158화

    * * *

    전사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음을 느꼈던 아네스는 입술을 씹었다.

    저 죽음을 각오한 눈빛은, 고집은 막을 수 없다.

    ‘프리실라, 이 할미의 가슴을 아프게 할 생각이냐!’

    지친 기색이 있음에도 수많은 전투성법자들에게 둘러싸여 다시금 길을 뚫는다.

    즉사 정도의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 한, 사지가 잘려도 비틀대며 다가오는 시체들을 상대하는 것은 이전보다 난도가 높다.

    프리실라는 백안을 띄며 기이한 움직임으로 공격하는 시체들과 혈투를 벌였다.

    그녀가 쓰던 검은 헤르메딕트 타격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정비 한번 하지 못했고, 이가 닳아 내구성이 떨어져 있었다.

    ‘브라운이 만들어준 게 아니었다면.’

    ‘진즉 부러지고도 남았겠군.’

    긴 검이 꼬챙이가 되어 전투성법자들의 명치를 동시에 뚫었다.

    여럿이 붙어 그 검에 박혀 있으니 실로 기이한 모습, 이어서 프리실라는 다가오는 다른 적들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하여 이들에게 박힌 검을 뽑으려 했다.

    ‘빠지지 않아!’

    신음을 토하며 프리실라는 전완근에 힘을 실었다. 전투성법자들의 명치에서 검이 빠지지 않는다. 이어서 주변에 있는 전투성법자들이 동시에 달려들어 프리실라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는다.

    ―!

    3개의 단검이 프리실라의 복부를 지나쳤지만, 한 개의 검이 오른쪽 옆구리를 강하게 찔렀기 때문에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손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프리실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방에 검을 휘둘러 시체들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낸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

    “포기하지… 않아.”

    프리실라의 사방으로 다시금 푸른 갈퀴의 형상이 퍼졌다. 이전보다 희미했지만 분명 언덕을 오르는 늑대가 주는 특이현상이었다.

    계속해서 베어나간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가속 마법을 중첩하며 끊임없이 베어나간다. 생명의 줄을 간당간당하게 타고 있는 프리실라를 보며 신음을 토하는 아네스는 철창을 쥐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필요 이상으로 집중을 하고 있다.’

    ‘그 집중을 방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거늘.’

    불가능한 전투를 가능하게끔 만들고 있는 저 짐승 같은 감각과 집중력이 길을 만들고 있었다. 아네스가 괜히 마력을 보충해 주려고 하다가 프리실라의 신경만 곤두세울 뿐이고, 고도의 집중을 방해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어미가 되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이리도 없다니.’

    저 아이가 언덕을 오르는 모습은 과거의 자신보다 더욱이 강렬한 모습이었다.

    혹여 자신이 어미로서의 그릇이 부족하진 않았는가, 만감을 교차하도록 만드는 강렬한 모습. 녀석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역경을 마주하지 않는 것은.’

    ‘반대로 이 할미였어.’

    쓰러진 시체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프리실라가 다시 쌓아 올린 부활한 이들의 시체는 점점 원점으로 돌아갔다.

    헤르메딕트가 허공에 떠서 장엄한 모습으로 자태를 풍기고 있으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어때, 할매.”

    “이제 저 녀석의 검을 다시 뺐으면 끝이야.”

    어림없는 소리, 저 녀석에게 승기를 빼앗는다고 한들, 네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 철창을 부술 수 있다 단언할 수 있는 것이냐.

    어째서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아네스는 얼른 프리실라가 도망가길 원했다.

    둘이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 다음을 기약한다는 기적 같은 일은 바라지도 않았다.

    자신의 조상에게 수십 번 행했던 기도도 전부 프리실라만 무사히 빠져나가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아네스의 바람이 조상에게 전해지고, 잔혹한 정교에 닿을 리 없다.

    ―쿵.

    아무런 기척도,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건만. 프리실라가 땅으로 고꾸라지며 몸을 처박았다.

    생채기가 잔뜩 쌓인 딸의 얼굴을 짓밟는 다리가 보였다. 아네스의 흔들리는 동공이 처참하게 짓밟힌 프리실라를 향하고 있다.

    “오만무도한 악마 새끼가.”

    “끝도 없이 기어올랐구나.”

    “감히, 이 죄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빌어 처먹을 마녀의 추종자여.”

    눈이 부시게 만드는 백금의 갑옷에는 ‘이그리스 십자회’의 상징이 있다.

    9명의 심판자가 프리실라를 두르고 있다. 어찌 이 모녀에게 일말의 기적조차 허락되지 않나이까.

    백안을 띄며 혼절해 있던 프리실라의 복부를 발로 찬다. 성벽을 파괴하는 공성 전차의 포탄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프리실라가 포탄처럼 날아가 아네스가 갇힌 철창에 등을 부딪치고 바닥에 쓰러진다.

    각혈을 토하며 바닥에 쓰러진 딸을 향해 늑대들의 어미는 온갖 괴로운 소리를 냈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프리실라가 백안을 뜬 채로 아네스에게 기어와 손을 내밀었다.

    ‘할매’라며, ‘우리 꼭 돌아가자’라는 말을 반복했다.

    멋스럽게 허공에 휘날리던 프리실라의 푸른 갈퀴가 사라진다.

    백안에 동공이 점멸되고 있다. 프리실라가 의식을 잃는 것과 동시에 찾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자, 이제 심판의 시간이 다가왔다.”

    “아이올레드 님이 직접 하시기 전에.”

    “그 호탕하다던 자유를 끊어주지.”

    아이올레드는 저 먼 곳부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꼭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다는 느낌으로. 이그리스 십자회의 압도적인 힘.

    십자회 중 한 명이 단숨에 프리실라를 제압하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헤르메딕트 뒤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아이올레드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어서 십자회는 동시에 칼을 빼 들어 철창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프리실라의 목을 겨눈다.

    ―!

    하늘로부터 정확하게 프리실라와 십자회를 반으로 나누는 거대한 검기가 떨어졌다.

    공기를 찢고 떨어진 검기로 인하여 십자회가 뒤로 물러선다. 흙모래가 사방에 튀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지금부터, 네 녀석의 상대는.”

    “이 ‘까칠한 검’이다.”

    까칠한 검,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분명 란베르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아네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거대한 부유선이 떠 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전력을 끌고 이곳으로 왔다.

    부유선에서 투구를 착용한 호르게타의 일원들이 줄지어 착륙했고, 전투성법자들과 대치를 이루며 프리실라의 불투명했던 전력을 세력과 세력의 싸움으로 만든다.

    아네스는 병력이 증대되었음에도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아니다. 이래선.’

    ‘모든 계획이 무너지고 만다.’

    란베르크는 9명의 심판자와 대치를 이루며 전투를 벌였다. 호르게타의 일원들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검 끝을 따라가는 것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이었고, 이들의 격이 오가는 굉음만으로 고막이 터질 것 같다.

    애 장난 같은 격이 오가는 것만으로 지면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터질 듯 울린다.

    허공에 맴돌던 마력이 가차 없이 찢겨 나간다. 시체와 대치하던 이들의 발끝에서 지면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저들의 전투가 어떤 수준인가.

    “애송이, 검을 다룰 줄 아는구나.”

    “광신도한테 검을 평가받긴 싫은데 말이지.”

    “….”

    명실상부 서대륙 최강의 검객 란베르크라도 비등한 실력을 갖춘 9명과 싸워 승기를 가져오는 것은 힘들다. 게다가 아이올레드가 다가오고 있다.

    그 앞으로는 정교의 일원들을 가히 무적으로 만드는 헤르메딕트까지 있다.

    ―쾅!

    공성 무기는 없었지만, 거대한 전차가 합세한 전쟁처럼 무식한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이내 아이나와 델타의 늑대들이 아네스와 프리실라가 있는 철창으로 다가갔다.

    ‘아, 아네스 님.’

    아네스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철창에는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따위는 없었으니까.

    가히 산송장에 가까운 끔찍한 몰골에 아이나는 눈시울을 붉혔고. 함께 있던 델타의 늑대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들의 표정만 보아도 자신의 모습과 상태가 어떤지 감이 오는 아네스, 피식 웃으며 철창 밖으로 손을 꺼내, 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늘 해왔던 것처럼. 손으로 전달되는 온기는 여전히 아네스였다.

    이어서 쓰러진 프리실라를 확인하더니, 뒤늦게 내려온 레니가 치유마법을 사용했다.

    레니도 프리실라와 아네스의 몰골을 보고서 울컥함을 감추지 못한다.

    용사의 쉼터에 있던 귀여운 얼음 정령과 함께 주문을 외우니, 전투 중인 일원들도 함께 회복된다. 언제 아서에게 들었던 얼음 정령이 지닌 세계의 유산인 듯했다.

    장기 손상, 마력 결핍, 과다출혈, 근골격계와 신경계의 극심한 손상. 프리실라의 상태는 곧 죽어가는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희미해진 동공, 치유를 받는 와중에도 아네스를 쳐다보고 있다.

    뻐끔거리는 입술에서 조금씩 소리가 새어 나온다. ‘할매…, 할매… 우리 같이 가자….’ 아네스는 프리실라의 내민 손등을 부여잡으며 이마에 댄다.

    얼굴을 떨구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네스는 흐느꼈다.

    “아네스 님, 철창을 부수겠습니다.”

    “아니, 이걸 부수는 것은 불가능해.”

    현재 이들의 힘으로 철창을 부수는 것은 불가능이다. 이제 알았다.

    이 철창은 단순히 흡마철로 만든 철창이 아니라 정교를 이끄는 교황의 힘이 담긴 초월적인 물체라는 것을.

    그게 아니라면 성검 아쉬포르마로 이 철창이 부서지지 않을 리가 없다.

    이 또한 호르게타 일원들을 모조리 학살하기 위해 만든 덫.

    호르게타는 스스로 덫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고, 이대로 가다간 분명히 저들이 바라던 대로 흘러가고 말 것이다.

    프리실라를 잡기 위해서 십자회를 전원 끌어들였다는 것부터 수지가 맞지 않는다.

    “프리실라를 데리고 도망가라.”

    “하, 하지만…. 아네스 님!”

    “너희도 멍청한 행동을 저지르려는 것이냐!”

    “……하지만.”

    아네스는 각혈을 토해냈다.

    이전과 달리 실로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입가를 말라비틀어진 팔로 닦으며 프리실라를 바라본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델타의 늑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프리실라를 어깨에 짊어졌다.

    힘이 조금도 남지 않은 탓에 사지가 축 늘어져 시체를 드는 기분. 여전히 뻐끔거리는 프리실라가 아네스에게 같이 가자며 힘없이 말했다.

    힘이 없었기 때문에, 외침이 속삭임이 되어버린다.

    아이나가 눈시울을 붉힌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되살아난 전투성법자들의 세력이 호르게타 일원들 덕에 상당히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아이나가 이들을 지휘하며 퇴각 신호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건, 퇴각 신호?’

    ‘아직 아네스 님은 철창 안에….’

    ‘…그렇군.’

    아네스는 여전히 철창 안에 갇혀있었기에 호르게타 전원은 이를 의아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란베르크는 대충 상황을 파악한 뒤, 십자회들을 더욱더 강하게 몰아붙인다.

    ‘나의 조상 헤더돌프여.’

    ‘이 아네스에게 힘을 주소서.’

    ‘저들의 자유를 지킬 힘과.’

    ‘저들의 방패가 될 힘을 주소서.’

    ‘어미의 그릇을 다할 수 있게끔.’

    ‘내 영혼이 모조리 산화될 때까지.’

    ‘힘이 다한 늙은 늑대를.’

    ‘부디, 굽어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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