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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57화 (157/222)
  • 157화

    * * *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이 들었다고는 할 수 있는 것인가, 숨을 이어갈 기력이 부족하여 혼절해 버렸을 확률이 높다. 하루가 지날수록 철창 안의 아네스가 별안간 쓰러지는 일은 잦았으니 당연할 법도 했다.

    ‘…아, 슬슬 한계인가.’

    체내에 마력 유동이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청각이 손실되었는지, 주변 소리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멍멍하게 울렸다.

    마치 물속에 잠긴 기분.

    이어서 피부에 스며드는 추위가 느껴지질 않으니, 감각은 완전히 죽어버렸을 확률이 높다.

    차가운 철창이 겨울철 때문에 더욱 냉담할 법한데,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철창의 차가움은 피부에 스치지 않았다.

    ‘사방이 시끄럽구나, 프리실라. 무슨 일이냐.’

    생각만 그리하고 있었던 아네스였다.

    그 음성이 목을 지나 공기에 터지지 않았기에 딱히 프리실라가 들을 일도 없다. 그것도 모르고 아네스는 눈을 뜬 채 독백을 지새우고 있었다.

    ‘프리실라, 주위가 왜 이리 시끄러운지 물었잖느냐.’

    눈을 뜨고 있었지만, 시야에 희뿌연 것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앞을 볼 수 없다.

    이어서 심장에서 보내는 마력이 급격하게 줄어든 탓에 산소공급마저 쉽지 않다. 숨을 뱉고 내쉬는 행위가 전부인데도, 몹시 어려운 일을 고사하는 것처럼.

    ‘…프리실라.’

    ‘프리실라?’

    조금씩 멍멍했던 귀가 제 역할을 해내기 시작했는지 둔탁한 철의 마찰음이 들렸다. 사방이 시끄러웠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선명해지는 청각과 더불어 희뿌옇게 번진 시야가 점차 걷어진다.

    “호탕한 자유를 죽여라!”

    “죽음을 두려워 말라, 모두 신의 품으로 향할 것이다!”

    정교의 전투성법자들이 대대 이상의 규모를 이루고 프리실라를 둘러싸고 있다.

    지친 기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 아이. 바닥에 피를 질척이며 죽어있는 전투성법자들. 전투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프… 리실라!’

    몸 안에 돌덩이가 있는 기분이다.

    아네스는 허리를 반쯤 펼 수 있는 철창 안에서 프리실라를 애타게 불렀으나 들릴 리가 없다.

    ‘…제길, 목이 완전 쉬어버렸군!’

    소리가 너무 작았다.

    안타깝게도 제멋대로 부딪치는 수십 가지의 무기들 때문에 가끔 터지는 큰 목소리마저 묻히기 일쑤였다.

    아네스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 역경을 뚫고 나아갈 것인가, 프리실라가 고개를 살짝 돌려 아네스를 바라봤다.

    ‘녀석, 내가 깼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냐!’

    사실은 아네스가 깨어난 것을 진즉 알고 있었기에 프리실라가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더니 자신은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 모습을 보니 확실했다.

    전투성법자들의 몰아치는 공격에도 재빠르게 대응하여 점차 뭉쳐있는 적들을 타격해갔다.

    신을 방자한 힘이 갈아 닦고 닦은 노력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하물며 성검 아쉬포르마라고 했던가, 전투성법자들의 육체를 보호하는 그 잘나고 잘난 신성력도 더욱 강한 신성력 앞에서 압도적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그래…. 녀석.’

    ‘혼자서 그렇게 노력하더니.’

    ‘할미가 모를 만큼, 많이 강해졌던 게로구나.’

    지친 기색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전투를 뚜렷한 시야로 직관하니 프리실라가 압도하고 있었고, 실로 일당백 이상을 해내는 프리실라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오는 아네스였다.

    마력이 체외로 흘러나와 푸른 갈퀴 같은 형상이 프리실라 주변으로 돋아나 있다.

    ‘언덕을 오르는 늑대’와 흡사하다. 흐릿하지만 동공이 푸른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영광스러운 과거와 닮아있다.

    ‘언덕을 오르는 늑대라.’

    ‘이 할미도 질 수만은 없지.’

    아네스는 정좌를 취하며 눈을 슬며시 감았다. 체내의 맴도는 남은 마력을 응집하여, 프리실라에게 전달할 생각이었다.

    몸 안에서 생성되는 마력이 너무나도 미미했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이 필요했다.

    ‘이 아네스가 힘을 보태주마.’

    ‘너와 이 어미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

    ‘그 잘난 신에게 보여주어라, 프리실라.’

    프리실라가 상대하는 전투성법자들은 바닥에 쓰러져 죽어있는 이들을 포함하여 적어도 오백에 달하는 수였다.

    쓰러진 자만 그 반에 가까우나 가뜩이나 체력이 빠진 프리실라가 마력을 회복하며 전투하는 것은 무리에 가깝다.

    이미 포위된 상태였기 때문에 특별한 전술이랄 것도 없이,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전투성법자들의 공격과 난무하는 빛의 화살을 그대로 받아쳐 내야 했다.

    아네스에게 집중된 적들은 없었으나 문제가 있다면, 이들이 너무나도 프리실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오, 위대한 나의 조상, 헤더돌프여.’

    마치 프리실라를 죽이면 천국에 당도할 수 있으리라 맹신하는 것처럼, 달려드는 불나방이 연상된다.

    눈에 흰자위는 붉게 물들고, 제 목숨을 무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저 광신도들을 보면 그러하다.

    ‘저 작은 늑대에게 힘을 빌려주시옵소서.’

    남아있는 마력을 프리실라에게 서서히 보내기 시작했다. 육체가 닿지 않는 선에서 상대에게 마력을 보충해 준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이어지는 문제가 있다면 아네스는 자신의 마력이 동날 때까지 프리실라에게 마력을 넘겨줄 심산이었다.

    ‘부디, 저 아이를 굽어살피소서.’

    상대를 치료하기 위하여 마력을 과다하게 보내는 경우가 적은 것은 아니었으나, 흡마철과 더불어 다양한 병치레를 앓고 있는 아네스는 경우가 다르다. 가히 죽음을 코앞으로 데려오는 것에 가까웠다.

    “할매, 장난해?!”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고!”

    “내가, 이 개고생을 하는 이유가 뭔데!”

    “정신 차려, 이 노망난 할망구!”

    프리실라는 인상을 찡그리며 아네스를 향해 호통을 쳤다. 딸의 울분이 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강하게 때린다.

    아네스는 감고 있던 두 눈을 천천히 뜰 수밖에 없었다. 무엇 때문이냐, 무엇이 다 죽어가는 이 노파를 살리려 안달인 것이냐.

    ‘알고 있다. 프리실라, 하지만….’

    “끝까지 지켜보라고!”

    “내가 아직 언덕을 오르고 있잖아!”

    눈이 그렁그렁해진 프리실라가 아네스를 향해 울분을 토하며 지켜보라고 외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서럽게 들리던지, 아네스는 몇십 년간 잊고 살았던 울컥함을 조용히 토해냈다.

    그래. 늘, 늘, 그랬다.

    칭찬이 줄줄 발린 그 어떠한 말보다는 언덕을 오르라는 말을 했다. 지치지 않고 다가오는 역경을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당당히 오르라고.

    “노튼 아네스.”

    “네 아이는 지금!”

    “언덕을 오르고 있다!”

    투구를 착용하지 않은 프리실라, 빛의 화살이 그 뺨을 지나치고 생채기를 남겼다. 아랑곳하지 않는다.

    프리실라는 아네스의 대답이 들릴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다.

    “…오냐. 그러나 정녕 신이 우릴 돕지 않는다면.”

    “기회는 지금이 전부가 아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을 '홀아비'라 하고.”

    “남편을 잃은 아내는 '과부'라 하고.”

    “부모를 잃는 자식은 '고아'라 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 그것을 일컫는 말은 없다.”

    “살아남는 싸움을 하여라.”

    “이 할미를 그렇게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언제든 도망갈 힘을 남겨두어라.”

    그 말을 듣자마자 백안을 띄며 전투성법자들이 뿌린 빛의 화살을 일격으로 튕겨내는 프리실라.

    마력 소모가 심해 분명히 남은 힘이 없을 텐데도 완전히 새것으로 부활한 전사가 되어, 전투성법자들을 재빠르게 해치우기 시작했다.

    ―쾅!

    철과 철이 닿아 마력이 터지는 소리가 퍼진다. 이어지는 전투는 복잡함이 없었다.

    쓰러져가는 적들은 혼신의 첫 격을 실었지만, 이를 손쉽게 막으며 전투성법자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전투방식을 모조리 받아치는 프리실라였다.

    ―콰쾅!

    전투성법자가 광기를 뿌리며 목숨 달린 공격을 수십 번 시도하여도. 그녀의 손쉬운 반격에 가차 없이 튕겨 나간다. 그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했다.

    수십 명이 동시에 달려들 때는 약간의 뜀박질만으로 하늘 높이 치솟는다.

    이후 지상으로 던지는 천둥 같은 검기가 단숨에 이들을 초토화했다.

    ‘어디서 불길한 마력이 느껴진다!’

    사방에 기분 나쁜 마력이 흩날린다.

    프리실라에게 모조리 패배하여 50명조차 남지 않은 전투성법자들은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피부가 쭈뼛해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 느껴본 것이다.

    ‘…!’

    분명 저자는 죽어있어야 마땅했다.

    그의 손동작 하나만으로 성검 아쉬포르마가 제 주인을 만난 듯 프리실라의 쥐고 있던 손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원래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헤르메딕트!’

    프리실라는 곱씹어 생각해도 헤르메딕트가 눈앞에 보이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분명 성검 아쉬포르마가 그의 명치를 뚫고 지나간 느낌은 확실했다.

    죽음이 확정된 것이었다.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신을 방자한 모습으로 허공에 떠 있는 금안의 인간은 헤르메딕트가 분명하다. 게다가 완전히 새것처럼 느껴지는 마력이 실로 부활을 연상하게 했다.

    ‘게다가 성검까지 빼앗겨 버렸어, 제길!’

    제 주인에게 돌아간 것일 뿐인데도, 프리실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를 갈 수밖에 없다.

    역경의 난도는 올라갔고, 어쨌든 헤르메딕트를 다시 쓰러뜨려 성검을 빼앗아야 한다.

    ‘제길, 제길, 제길!’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돌아간 거나 마찬가지잖아!’

    헤르메딕트 주변으로 강력한 빛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쓰러져 있는 전투성법자들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니 쓰러져 있는 시체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까득.

    ―까드득.

    ―까득――까드득.

    뼈와 인대 같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는 불쾌한 소리가 레르 마을 일대에 퍼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기이한 움직임으로 땅에서 서서히 일어난다. 흉측한 몰골이다.

    “신은 아직 너희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으니.”

    “십자회와 함께 이 거룩한 성전을 누비고.”

    “거룩한 신에게 저 사악한 자의 목을 받쳐.”

    “그대들의 믿음을 증명하라.”

    프리실라가 힘겹게 쓰러뜨린 수백에 달하는 전투성법자가 시체가 되었고, 시체가 되살아나 망자가 되어 원점으로 돌아온다.

    크게 뜬 동공이 강렬히 흔들리는 프리실라. 패배를 직감한 자의 절망이 섞여 있다.

    아네스는 철창을 강하게 쥐었다.

    양손으로, 성검도 깨부수지 못한 옥을 쥐어짤 듯한 모습이었다. 아네스도 살아남고 싶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닌, 그저 저 아이와 조금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프리실라, 할미를 두고….”

    “…그럴 순 없어, 할매.”

    “…이 멍청한!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닌 거를!”

    천천히, 어딘가 꽂혀있는 제 검을 찾아서 걸어가는 프리실라, 이를 지켜보는 아네스는 계속해서 철창을 치며 호통을 쳤다.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남아있는 힘이라면 충분히 프리실라가 도망갈 수 있다.

    “할미 말 들어, 프리실라!”

    “시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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