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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53화 (153/222)
  • 153화

    * * *

    “에잇, 얼른 꺼져버려!”

    델타 북문, 고블린 한 마리가 어느 기사에게 내쫓기고 있었다.

    정교의 일원이 아닐 시에는 현재 델타의 거대한 국문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고블린은 북문 앞에서 누추한 차림으로 정교 경비병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잠깐, 이곳은 통과할 수 없소.’

    북문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던 정교의 일원들은 찢어진 로브를 걸치고 있던 고블린의 손목을 부여잡고, 주인으로 추측되는 기사를 바라봤다. 수상하기 그지없다.

    성문 밖으로 고블린을 쫓아내던 기사는 전투성법자를 향해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쉰다. 오죽하면 이러겠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탄스러운 숨이었다.

    “비싸게 주고 산 노예인데. 자꾸 집안의 물건들을 훔치려는 데다, 내 어린 자식을 해하려 드니 쓸모가 없어졌소. 그래서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오.”

    “이곳에 녀석을 두어버리면, 정교에 이바지하는 당신들의 막사에 들어가, 분명 또 물건을 훔칠 테지. 방법이 없소, 방법이.”

    “그렇다고 도끼를 들어 녀석의 목을 베어버리자니, 저거 보시오. 온갖 해악을 담아놓은 저 눈빛이 죽어서도 나를 저주할 것 같소.”

    전투성법자는 자기를 노려보던 고블린을 직시하기 힘들었다.

    정말이지 기사의 말대로 온갖 해악을 담아놓은 것 같은 눈빛이었다. 과거부터 인식이 좋지 않던 고블린이니 참으로 어울리는 눈빛이다.

    고블린을 잔뜩 구매하여 죽을 때까지 광물을 캐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노예로 쓰지도 않을 개체였다. 그런 개체를 비싼 돈으로 구매했으니 사기를 당한 것이다.

    이런 기사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자신의 상황을 적당히 납득시킨 기사는 전투성법자를 향해 우물쭈물하다 입을 열었다.

    ‘아니면 당신이 저 녀석을 죽여주겠소?’

    가뜩이나 델타로 파견을 나온 이들은 현재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델타의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 때문이다.

    터를 잃지 않겠다는 기가 꺾이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근래에는 해보지도 않았지만 전쟁 후유증 증세가 찾아온 것 같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이 화를 풀 대상으로 고블린으로 만족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됐소. 영 찜찜해서. 얼른 밖으로 쫓아내시오.’

    바닥에 걸쭉한 침을 뱉어내고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들고 있던 창으로 고블린의 등을 쿡쿡 쑤셨다. 짜증이 올라오니 얼른 성문 밖으로 나가라는 의미였다.

    이상한 고대 언어를 구사하며 전투성법자에게 ‘칵’거리는 고블린, 저 버림받은 노예 때문에 언짢은 기분을 유지하기 싫다.

    “고맙소, 이거라도 받으시오. 덕분에 발 뻗고 자겠군.”

    “노예가 문제가 아닐 텐데, 제국이 이 지경이니 쯧.”

    기사는 경비를 서고 있던 전투성법자에게 몇 골드를 쥐여주었다.

    나름 얼굴에 화색이 오르자 기사를 ‘돈 많은 양반’이라 칭하며, 제국이 정교에 정복당한 뒤에는 타 제국으로 이주하라는 조언을 던진다.

    고블린은 북문 밖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초원을 내달리기 시작했고, 점점 멀어지는 고블린을 향해 지켜보던 전투성법자들은 ‘몇 리 못 가서 사냥꾼에게 잡히는 신세나 되겠지’라며 혀를 찼다.

    기사는 유유히 돌아서서 걸었다.

    사실은 자식도 없고 고블린을 노예로 구매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구실 좋던 눈빛이 차갑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원래 이 기사의 눈빛은 한없이 냉정한 것이니까.

    인파 속으로 흘러 들어가 후드를 뒤집어쓰고, 홉스가 무사히 마계에 도착하여 마왕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란베르크는 소원할 뿐이다.

    * * *

    호르게타의 중심인물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나날이 갈수록 초췌해지는 아네스를 보고 있자 하니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는데, 실로 야위어 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제길, 제길!”

    “프리실라….”

    가끔 철창 안에 있는 아네스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란베르크나 프리실라는 레르 마을로 향했다. 아네스 앞에서 모두가 평소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고,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분명 정교의 일원들이 무슨 짓을 했겠지.’

    명백하게 그녀의 얼굴은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아무리 아네스가 노쇠하였다고 한들 급작스럽게 각혈을 토해낼 리 없다.

    단 한 번도 눈 밑에 검은 반점이 없었던 늑대의 어미는 얼굴에 죽음을 드리우고 있었다.

    ‘사실…. 젠장, 아네스 님 죄송합니다.’

    팔짱을 끼고서 앉아있던 타르툰의 음성에 모두가 집중했다.

    눈을 감고서 미간을 찌푸리거나 이빨을 긁으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아직도 고민을 하는 모습이 분명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

    “아네스 님은 흡마철을 갈아 만든 물을 섭취하셨습니다.”

    “……!”

    아네스가 처음으로 레르 마을에 이송될 때 타르툰은 레르 마을에 미리 도착해 있었고, 전투성법자들 사이에서 아네스를 두고 얼마나 버티다 죽을지에 대해 내기를 했다.

    일주일 이상을 넘겨서 내기를 거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 제아무리 노쇠한 아네스라고 한들 한 달을 버티지 못할까, 그때 ‘흡마철’을 갈아서 만든 물을 섭취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타르툰. 자네가 저들이 떠드는 것을 전부 들어버렸으니, 못 들은 걸로 하세. 프리실라나 델타의 늑대들이 알게 된다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거야. 큰일을 앞두고 그래선 안 된다네.’

    자신의 멱살을 잡은 프리실라를 이해할 수 있었던 타르툰은 새하얀 털로 수북하게 쌓인 자신의 손으로 프리실라의 등을 토닥였다.

    프리실라도 타르툰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미안하네, 타르툰. 내가 실례를 했어.’

    고개를 흔들며 괜찮다는 의사를 전하는 타르툰, 프리실라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흡마철을 갈아서 만든 물을 아네스가 마셨다니,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가뜩이나… 할매는 몸이 성하지 못하다고.’

    몸을 돌려 호르게타 일원들에게 ‘다음, 다음 작전은 언제 시작할 건가, 란베르크.’라며 입을 여는 프리실라, 다음 작전은 ‘헤르메딕트 성가대 타격’이었다.

    이 작전이 무사히 성공할 수만 있다면 아네스 구출 작전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다음 작전은 잠시 중단한다. 프리실라.”

    놓여있던 책상을 양손으로 강하게 내리치자 책상이 반으로 파괴되어버렸고. 프리실라는 몸을 돌려 천막으로 된 초소에서 나갔다.

    대꾸도 필요 없다는 것처럼.

    ‘…어쩔 수 없어, 프리실라.’

    이슬이 맺힌 잔디를 자박자박 걸어가는 프리실라, 추기경 헤르메딕트의 전력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헤르메딕트 성가대를 당장 타격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나도, 전부 알고 있다고. 그런데 말이야….’

    그러나 ‘흡마철을 마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계획을 똑같이 진행한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했다.

    최소한 뭐라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

    .

    .

    숙연해진 마당에 웨라가 나타나 엄청난 소식을 던지고 만다.

    헤르메딕트 성가대의 문제점을 파악했기 때문에 ‘헤르메딕트의 성가가 정신오염과 관계가 있다’는 정보를 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레, 렌이…!”

    렌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오랜만에 육성으로 들어보는지 상당히 반가운 이들, 그러나 마브리우스 산맥에서 요양하고 있어야 할 그녀가 ‘이그리스 십자회’와 함께 복귀했다니, 그것도 만신창이가 되어.

    ‘…점점 일이 복잡해지는군.’

    호르게타를 이끌어야 할 가장 큰 인물은 란베르크였고, 그는 최선을 다해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따금 속에서 올라오는 선생님의 얼굴이 이토록 그리워진 것은 처음이다.

    그가 있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고개를 흔들며 지금 상황에 집중한다.

    어차피 상황은 달라지지 않으니, 렌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지 생각했다.

    “홉스가 오늘 아침 델타를 탈출했다.”

    “그 말이 사실인가!”

    “응, 생각보다 쉽게 탈출할 수 있었지.”

    홉스가 마계로 향해 마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세가 밀린다면 세를 만드는 것.

    마리 페르세포 아베스타가 힘을 빌려줄지 모르겠으나, 홉스의 말대로라면 반드시 힘을 빌려줄 것이라고 했다.

    ‘추가로 남대륙 오스칼 제국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선생님과의 인연이 있으니, 분명 도와줄 거라고 믿는다.’

    가능성이 커진다.

    가벼운 세력 싸움으로 종지부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크나큰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완벽한 상태에서 전면전을 펼쳐야 한다.’

    마왕의 세력을 빌릴 수만 있다면 헤르메딕트 성가대 타격을 떠나서, 델타에 쳐들어온 정교의 그림자를 물러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부분, 선생님과의 인연이 닿은 자들이 아니었다면 이 또한 상상할 수 없었겠지.

    ‘마녀라는 핑계로 마계 자체에 등 돌리는 것도 쉽지 않을 터.’

    우호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딪쳐서도 좋은 것이 없는 천계의 정교와 마계의 마왕군, 거기다가 선생님이 베를리의 문제만 해결해서 돌아온다면 모든 것은 승리에 가까워진다.

    ‘웨라, 헤르메딕트 성가대의 정신오염은 확실해졌습니까?’

    웨라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정교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은 전부 ‘헤르메딕트 성가대’의 영향이라는 주제였다.

    성가대의 음악은 성스러움을 뼈대로 구축된 예술적 마법으로 그들과 동조되는 모든 이들에게 기적적인 효과를 전달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신앙심이나 기쁨, 행복 같은 것들이다.

    ‘소름 끼치는 광기가 섞여 있어요.’

    사실 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웨라가 아니라면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숨기고 숨겼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소리를 듣는 수준이 다른 웨라가 아니곤 음색 안에 광기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없다.

    이 성가대의 노래는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강박적인 심상을 만들어냈다.

    특히 전투성법자들이나 정교의 신도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들이 신의 이름 아래 타당한 것이라는 사상이 만들어지고, 헤르메딕트 성가대의 음악이 점차 국민들에게 노출되기 시작한다면 국민들마저 정교를 강제적으로 찬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성가대 심장의 역할을 하는 추기경 헤르메딕트.’

    ‘그가 성가대의 대부분을 제어하고 있습니다.’

    웨라의 조사가 완벽하게 끝날 시에 헤르메딕트를 사살하는 작전을 준비해야 했다.

    큰 사건을 만들어 레르 마을의 집중도가 낮아질 때. 아네스를 구출하고 레르 마을의 일원들과 다 함께 델타를 탈출하는 것.

    이때 마왕의 도움이 필요하다.

    ‘…선생님이 돌아오면 델타를 회수한다.’

    문제는 헤르메딕트 사살 작전은 ‘이그리스 십자회’라는 특이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상황이 바뀐 지금, 홉스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호르게타의 활동을 임시로 중단하는 이유도 정교에게 조직의 노출을 줄이기 위해서였음을.

    프리실라처럼 답답한 마음은 란베르크도 마찬가지였다.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깨달은 검사의 고찰이 입을 열게 했다.

    ‘…할 수 있는 것이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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