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52화 (152/222)
  • 152화

    * * *

    [ 페지르 정교의 전문, 마녀의 추종자 아네스 中 ]

    정교의 뜻을 거부하는 이단자 노튼 아네스. 델타의 마녀를 숨기고 절망의 부활을 돕다. 심지어 마녀의 추종자들인 저항군들과 내통하여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르다.

    과거 100일 전쟁의 아네스라는 영웅사가 담긴 이명을 빼앗아 정교의 심판을 달게 받게 한 뒤, 그 더러운 영혼을 정화해야 마땅하다.

    ‘사악한 이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흡마철로 제작된 감옥에 가두어 특정 장소에 방치할 것으로, 죄인 노튼 아네스를 ‘아웃러리’상태로 지정하였으니, 이를 죽이는 자에게는 정교로부터 신의 마음만큼 거대한 보상을 받을지어다.

    ‘죄인을 죽인 자에게는 백만 골드를 선사한다.’

    그리고 이를 돕고자 하는 몹쓸 자들을 전원 마녀의 추종자라 판단하고, 정교는 거침없이 심판의 철퇴를 내려칠 것이다.

    ‘그로부터 그 죄를 씻게 될 것이니.’

    철창에 갇힌 사악한 악마에게 주어질 양식은 없으며, 이 악마에게 곰팡이가 피어버린 빵이나, 썩은 물조차 건네줄 수 없다. 이러한 배반의 행위는 전원 심판의 대상자가 되리라.

    다만, 죄인에게 입히는 상처는 모두 ‘심판’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죽이지 아니하더라도, 이 신성한 상처를 입힌 자는 죽어서도 거룩할 것이다.

    * * *

    [ 서대륙 델타 외곽 / 레르 마을 ]

    ―노튼 아네스, 투옥 1일 차.

    정사각형, 감옥 안에는 100일 전장의 아네스가 앉아있다.

    정교가 거대한 수레에다 늑대들의 어미를 데려왔을 때, 레르 마을의 사람들은 놀란 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표정에는 정교를 향한 분노만이 남아있다.

    ‘진정, 빌어먹을 놈들이구나.’

    이들도 가만히 있을 자들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빨을 긁으며 전투성법자들의 멱살을 쥐거나, 이들을 향해 반기를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이 계속 이어졌더라면 분명 큰 문제가 된다.

    이를 보던 아네스가 감옥 안에서 소리치며 ‘절대 이 감옥을 건들지 말라’는 통보를 전했고, 감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감시자 역할을 하던 전투성법자들은 오히려 돕는 것을 부추기기 바빴다.

    ‘정교 놈들이 작정하고….’

    아네스를 아웃러리 상태로 이곳에 방치한다는 것은 레르 마을의 주민을 전원 말살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이 없다.

    레르민족이 굶어 죽어가는 아네스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으니.

    심지어 무기를 들고 포상금을 위하여 찾아오는 몹쓸 자들을 막아설 것이다.

    ‘신이시여, 진정 이들이 당신의 자식이란 말입니까.’

    아네스의 호통으로 인하여 마을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네스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를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당장이라도 감옥 옆에서 흉측한 웃음을 짓는 전투성법자의 면상을 갈기고 싶은 심정이다.

    다만 아네스의 표정을 보라, 정교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똑똑히 보여주려 했다.

    “나, 노튼 프리실라는 살 만큼 살았다!”

    “걱정하지 말고, 각자 하던 것들이나 마저 하시게!”

    가장 믿음이 가는 사내에게 전해두었으니, 호르게타의 일원들은 아네스를 구하지 않는다.

    더 큰 대의를 이루기 위해 소가 희생되어야 한다면, 기껏 자신이 그 몫을 가져가겠노라. 그리 생각하는 아네스였다.

    레르 마을에 어린 소년·소녀들이 아네스의 메마른 입술을 보며 물 같은 것을 가져다주려다 아네스에게 된통 혼이 나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욱 혼나기 바쁘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녀석들은 이 아네스와 마음을 나눈 사이라고 할 수 없다. 이리 어렵게 지켜온 마을을 어찌 늙은이 하나 때문에 포기할 심산이냐!’

    오늘을 넘기기라도 한다면 다행일 텐데, 그간 수상하게 그지없는 자들이 잔뜩 왔다 갔다.

    전부 아네스를 죽이기 위해서 찾아온 사냥꾼들이었다.

    ‘혹여,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온 자들이 철창으로 검을 집어넣는다고 한들, 너희는 숨죽여 귀를 막아라. 절대 정교의 뜻대로 움직이지 마라.’

    모두의 눈시울이 붉었던 하루의 날이 저물고, 칠흑 같은 밤은 찾아오고야 만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이 고충이었던 레르 마을임에도.

    철창을 가로지르는 쇠붙이의 소리가 잔뜩 울렸다.

    ‘할머니는 왜 저곳에 계시는 거야?’라며 묻는 어린 늑대들을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며 창밖에 퍼지는 칼날 소리에 덧칠했다.

    ‘아네스 님은 우리를 위해서 산으로 가는 거란다,’

    ‘그곳은 늑대들이 죽어서 가는 산이야.’

    ‘아무래도 그곳에 사는 늑대들이 많이 외로운가 봐.’

    ‘그래서 아네스 할머니께서 외로운 늑대들을 돌봐주시려나 봐!’

    그럼 할머니는 산으로 가기 위해 죽는 거냐고 묻는 아이의 숨죽인 목소리.

    그보다 창밖으로 터지는 별안간의 괴성이 더욱 컸다. 부모는 눈시울을 붉히며 아이들의 두 귀를 틀어막는다.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 * *

    ―노튼 아네스, 투옥 2일 차.

    “역시 할멈, 대단해.”

    “이 녀석, 할머니라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아네스가 레르 마을에 방치되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프리실라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아네스라면 그 안에서 죽을 일이 결코 없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감옥 주변에 널린 시체들을 치우는 레르 마을 사람들.

    분명 잔인하게 죽어있으리라 생각했던 아네스가 팔자 좋게 누워서 머리나 긁적이고 있으니 당혹스럽다. 이들은 아네스의 전성기를 보지 못했으리라.

    ‘반드시 내가 구해줄게, 할매.’

    자신을 구하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던 아네스에게 노망이 난 것이 아니냐며 윽박지르고 싶었으나,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이 이미 호르게타의 일원들과 아네스 구출에 대한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할매에겐 비밀이지만.’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도록 단단하게 만들어진 감옥을 주먹으로 툭툭 때려보는 프리실라. 이 행동만으로도 아네스는 프리실라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아네스가 아닌가.

    “이걸 부술 생각이라면, 조금 더 강해져서 오거라.”

    “음…. 생각보다 단단하잖아. 전성기 할매도 부수지 못하겠어.”

    “허, 웃기는 소리. 전성기의 할미는 손가락으로도 부쉈을 게다.”

    폭소를 터뜨리며 프리실라는 감옥 앞에 앉았다. 할매와 오랜만에 담소를 나누고 싶다. 이를 지켜보던 전투성법자가 다가오더니 ‘죽이지 않을 거라면, 접촉을 금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명령의 주인을 향해 올려다보는 프리실라, 엄청난 살기는 숨소리만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투성법자는 지레 겁을 먹고서 다가오던 걸음을 멈춘다.

    “노튼.”

    “내 이름의 성이자, 저 노파의 성이다.”

    “이 철창 안에 갇힌 늙은이를 구하는 것보다.”

    “네 녀석을 죽이는 것이 죗값은 훨씬 적을 듯한데.”

    “계속해서 대화를 방해한다면, 나는 참을 수 없을 테고.”

    “차라리, 죗값이 적은 쪽으로 선택해도 되겠는가.”

    전투성법자를 잡아먹을 것 같은 기백, 이에 아네스는 호탕하게 웃었다.

    프리실라의 포부 덕에 고난이 찾아온들, 녀석이라면 기어코 이겨내리라 생각하는 늑대의 어미였다.

    뒷걸음질을 치며 원래 있던 곳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전투성법자, 이를 보더니 ‘화장실이 급했나 보군’ 같은 말을 던지며 프리실라와 아네스가 다시금 쩌렁대게 웃었다.

    진정 전사의 웃음이다.

    “할매, 나도 할매처럼 될 수 있을까.”

    “이 할미처럼 되려면 아직 백 년은 이르다!”

    “엑, 그럼 할매보다 내가 더 할매가 되어있을 텐데.”

    “바보 같은, 이 할미를 따라올 자는 없다는 말이란다. 하하!”

    둘은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었고, 이를 지켜보던 레르민족들도 하나둘씩 다가와 그 주변에 앉았다.

    오랜만에 아네스가 들려주는 늑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어린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였다.

    ‘이제 나이도 꽤 먹었을 터인데, 제일 좋아하는군.’

    그중 가장 덩치가 큰 아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아네스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아이. 프리실라.

    ‘맞아, 옛날에 할매가 푸른 늑대의 탈을 두르고 전장에서 돌아왔었고, 발끝까지 떨어지는 그 늑대의 털이 할매의 상징이었어. 그때 이 프리실라가 전사의 꿈을 품었지!’

    아네스만큼 아네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던 프리실라가 대신하여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할매가 큰 목소리로 말을 많이 하게 되면 갈증이 심해지니까. 프리실라가 할 수 있는 작은 배려가 이뿐이다.

    ‘막 이래서, 막 이랬다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제 이야기처럼 술술 풀어버리는 프리실라를 보며 조금은 쑥스러웠던 것인지, 얼굴이 붉어지는 아네스.

    젖동냥으로 키워내던 아이였는데 아리따운 여인이 되어서는.

    감옥을 향해 자박자박 걸어와서 사내 한 놈을 눈빛만으로 겁을 줄 정도로 내 사랑하는 아이가 이만큼 용맹하게 컸다.

    ‘나도 할매처럼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다시 떠올린다.

    ‘암, 이 아네스보다도 멋진 전사가 되리다.’

    흡족해하는 아네스의 얼굴을 보며 프리실라는 인중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피도 섞이지 않은 자신을 딸처럼 여겨주던 아네스에게 무엇으로 고마움을 표할 수 있으랴.

    ‘할매, 금방 구해줄 테니까.’

    * * *

    웨라는 헤르메딕트 성가대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들의 연주가 이루어지는 곳을 찾아가 멀리서 지켜보곤 했다.

    분명 정교의 강력한 주술이 헤르메딕트 성가대와 관련이 있다. 성가의 본질적인 것이 틀리다.

    ‘저, 저건….’

    그런 그녀가 이른 아침에 늘 하던 것은 델타의 큰길을 걷는 것.

    아침마다 헤르메딕트 성가대가 이곳에 행렬하며 성가를 부르기 때문이다. 오늘은 웨라가 입을 틀어막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수레에 담긴 무언가를 보며,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두 눈을 비비는 행동을 수십 번 반복한다. 아니길 바랐다.

    ‘……렌, 어째서.’

    수레에는 거대한 용이 실려 있었다.

    용사의 쉼터에서 간혹 용으로 변한 렌을 떠올리면 저 수레에 있는 것은 렌이 분명하다.

    ‘분, 분명 마브리우스 산맥에 있을 거라고 했는데….’

    쥬드의 거대한 검으로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것 같은 비늘이 무자비하게 깨지고, 파괴되어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서 두 눈에 이 장면을 담는다. 아서는 이를 알고 있을까.

    붉은색.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은 강철 같은 비늘. 붉은 용인 렌을 상징하는 당연한 것.

    그런 비늘이 연약한 재질처럼 보일 정도로 엉망이다.

    부유선을 정착시키는 거대한 쇠사슬보다 묵직해 보이는 굵은 사슬이 용의 대부분을 감싸고 있었다.

    심지어 깊은 자상까지 수두룩해 보인다. 수레가 피로 인해 질척해지려고 했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의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 같은 괴물이라는 듯이, 선박 크기의 수레에다 그 몸을 꽁꽁 묶어서 행렬을 지속한다.

    ‘…모두에게 알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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