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51화 (151/222)
  • 151화

    * * *

    [ 정령계 / 호르게타 진영 ]

    엑스칼리버를 통하여 정령계로 진입하면, 울창한 숲에 호르게타 진영이 놓여있다.

    호르게타의 일원들은 정교의 압제에 저항하기 위해 이곳에서 많은 것을 준비하며 휴식을 취한다.

    수풀에 가로로 깔린 거대한 나무에 앉아있는 타르툰은 털이 수북하게 돋은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며 신음을 앓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네스의 말처럼 며칠 뒤에 말하는 것이 나았다.

    “이거 놓아! 나는 가야 한다!”

    분명히 날이 저물 때는 개별기동을 엄격히 금한다는 사항이 있었으나, 프리실라는 숲속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분개를 하고 있었다. 찌푸린 미간이 여느 때보다 그 분노가 들끓어 있음을 나타냈다.

    “프, 프리실라! 진정해라!”

    프리실라는 델타의 늑대들에게 잡혀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거구들이 프리실라의 사지를 부여잡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는다. 어찌나 힘이 강한지 여럿이 붙어도 제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할매, 할매, 이 프리실라가 갈 테니까!’

    노튼 아네스는 어제저녁 정교에 붙잡혔고, 이 사실을 모르는 혁명단원은 없다.

    모두 같은 표정을 지으며 늑대들의 어미를 걱정할 수밖에 없지만 별수 없었다.

    프리실라처럼 사방을 날뛰며 아네스를 구출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똑같다. 란베르크가 단독행동을 엄격하게 금지하는데 이유가 있다.

    누가 봐도 함정이었으니까, 눈시울을 붉히는 프리실라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부여 잡힌 다리를 틀어 무릎으로 델타의 늑대 중 한 사내의 코를 찍었다.

    진심이었기 때문에 민얼굴에다 프리실라의 공격을 맞은 그는 코를 잡으며 바닥을 짚을 수밖에 없다.

    “프리실라!”

    “시끄럽다. 이 한심하게 그지없는 겁쟁이들!”

    “아네스 님이 네 녀석이 그렇게 나오면!”

    ‘다시는 이 할미의 얼굴을 보지 못할 줄 알 거라고 전하라 하셨다.’며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여는 사내. 아네스의 곁에서 늘 시중이나 임무를 부여받던 사내였다.

    프리실라만큼이나 가까웠던 그가 아네스가 붙잡혀 가는 것을 보고도, 그 뜻을 받아들인 것에는 전부 이유가 있다. 프리실라가 사내의 목덜미를 잡으며 소리쳤다.

    ‘옆에 있었으면서, 왜 가만히 있었던 건데!’

    가까운 곳에서 철컥철컥 갑옷을 입은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도 모르고 프리실라는 계속해서 델타의 늑대들과 주먹질을 하며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짝!

    아이나가 프리실라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고, 프리실라는 아이나의 얼굴을 똑똑히 쳐다본다. 그 이유는 전혀 아프지도 않은 따귀에 아이나의 마음이 묵직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리실라, 이 이상 난동을 부린다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누굴 죽이지 않겠다는 신념, 당신을 베는 것으로 제 신념을 무너지게 만들지 마십시오.’

    프리실라는 그녀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고, 이내 자리에 주저앉고는 아빠 다리를 했다.

    아이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프리실라를 직시했다. 어릴 적부터 아네스의 손에서 자라 왔던 것은 프리실라뿐만이 아니니까.

    ‘할매….’

    금방이라도 아네스를 구하러 갈 것처럼 난동을 부렸으나 프리실라도 알고 있었다.

    모두를 이끌고 정교를 향해 쳐들어간다면 그것은 명백히 죽음을 자초하는 것.

    란베르크가 ‘이것은 함정이다.’는 말을 던졌을 때도 이를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그 어떠한 희생을 낳는 것보다, 가슴이 미치도록 아파져 오는 고통을 참을 수 없을 뿐이다.

    프리실라도 침착할 필요가 있었다. 모두가 자신과 같은 마음이 아닌가,

    혼자 오지랖을 부리는 것은 함께하는 동료 전우들의 마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과 다름이 없다. 이들도 마음만큼은 이미 정교를 향했다.

    ‘진정해라, 사태가 아주 좋지 않으니. 이것은 정교에서 작정하고 아네스 님을 잡아간 것이다. 호르게타의 모든 이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말이지.’

    ‘혹여, 우리가 구했던 모르딕처럼 쉽게 끝낸다는 기적을 품어서도 안 된다. 아네스 님은 정교로 끌려가셨을 테니 그곳에 도착한들, 얼을 뵙기도 전에 우리가 모두 말살될 가능성이 백에 가깝다.’

    란베르크를 포함하여 델타의 늑대들이 프리실라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이미 자리에 주저앉은 이상 당장 움직일 생각은 없다. 누차 곱씹어보지만, 이들이 말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고문이라도 당한다면.’

    프리실라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대답했다. 그 음성이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가슴을 쑤시게 했다.

    아네스가 우리를 정교 놈들에게 팔아버릴지도 모른다는, 그런 같잖은 소리를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모두가 걱정하는 것은 그 어떠한 고문도 아무렇지 않게 이겨내고서 입 한번 벙끗하지 않을 아네스, 늑대들의 어미는 절대 우리가 관련된 정보를 흘리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참고 버틸 고통에 대한 상상이 끊이질 않는다.

    * * *

    [ 대의의 신전 ]

    10개의 왕좌, 그중 가장 거대한 왕좌에서 목소리가 흘렀다. 거대한 신전을 울리게 하는 목소리. 나머지 9개의 왕좌가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모르딕 아젤은 찾지 못했나.”

    “그, 그렇습니다. 성하.”

    그저 모르딕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물었을 뿐. 나머지 9개의 왕좌에서 흐르는 목소리에 전원 공포감이 섞여 있었다.

    이들이 성하라고 부르는 자가 검을 사용할 줄 안단 말인가, 그렇다고 뛰어난 마법을 사용할 줄 안단 말인가.

    이 거대한 왕좌는 정교의 심장, 교황을 상징한다. 그것도 모든 이들의 야욕을 채울 수 있게끔 권력을 손에 쥐여준 새로운 교황을 상징했다.

    어떠한 것일지라도 그 신성하다는 손아귀에 집히면 모조리 파멸해갔다.

    이들도 내가 제아무리 이름난 권력가이며, 선택받은 수하들이라고 한들 저 교황 앞에선 파리 목숨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그리스 십자회는 복귀했느냐.”

    “아직도 마브리우스 산맥에 있다고 합니다. 성하.”

    “흠…. 그들이 애를 먹을 정도라니 놀라운 사실이군.”

    헤르메딕트 성가대는 다른 일을 부여받았으니 별개였고, 이그리스 십자회는 교황의 무력을 상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용이 아무리 강한 개체라고 한다지만 그깟 괴물 하나 잡지 못하는 상황에 이빨을 긁는 비르테리아였다.

    새하얀 신전 내부에 의해서 정적이 더욱 강조되는 듯하다.

    비르테리아가 입을 열지 않으니 다른 이들이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다. 그 목소리가 울려야만 대의의 신전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칠할 수 있었다.

    근래 바라던 바가 잘 풀리지 않아 미간을 찌푸리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 심기를 무시한다면 큰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벌레들이 살기 위해서 발악하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

    “100일 전장의 아네스.”

    비르테리아가 아네스를 언급하자, 모든 이들은 이때다 싶어 입을 열기 바빴다.

    이 모든 것의 문제점을 아네스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사지를 비틀어 평생 걷지 못하게 한 다음 짐승이 들끓는 우리에 가두어 비참한 말로를 구경하자, 그 사악함을 감추지 못하는 노쇠한 이의 이빨을 모조리 뽑아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하자.

    고문관에게만 맡겨도 좋은 구경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제아무리 100일 전장의 늑대라고 부르는 전사라고 한들 고통스러운 고문에는 이길 수 없다, 더럽고 추악한 신념을 꺾어 성하의 신성함을 향해 굴복시키자.

    아이언 메이든부터 시작하여, 흉부와 턱을 꿰뚫는 헤어틱 포크, 바퀴에 매달아 튀어나온 사지를 망치로 파괴해버리는 브레킹 월, 사지를 끈으로 결박하여 늘어뜨리는 랙.

    이들은 고문관이라도 된 것처럼 줄줄이 고문 방법들을 읊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유다의 의자’가 언급되자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왕좌를 손바닥으로 내리친다.

    “시끄럽다.”

    “…….”

    “…….”

    교황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네스와 내통했던 기사를 잡아다 고문을 통해 증거를 얻은 것은 전부 이 순간 때문이 아니던가.

    모두는 침묵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100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던 비르테리아가 그토록 심판하고 싶어 했던 자였다.

    혹은 창의적인 방식이 아닌 진부한 고문들을 나열해서 그랬던 것인가.

    “그자가 그런 방법으로 굴복할 것 같으냐.”

    “좋은 것이 떠올랐으니 들어보도록 하라.”

    * * *

    “마셔라, 아네스여. 어명이다.”

    “이 늙은이가 이것을 마시지 않는다면?”

    “네 일족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겠지.”

    “실로 너희들은 빌어먹을 놈들이구나.”

    그릇에 든 것은 검은 물이었다.

    변태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자신을 가만히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진 않으리라 생각했던 아네스.

    의문을 품는다. 이것은 심장을 멈추게 하는 맹독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약을 가져다주던 상급 일원이 그릇의 검은 물을 쳐다보던 철창 안의 아네스에게 말했다.

    “흡마철을 갈아서 만든 것이다.”

    “역시, 자네들은 변태 끼가 충만하군.”

    “뭐, 뭐라!”

    아네스를 향해 윽박지르려고 했던 정교의 일원은 동공이 커졌다.

    맛있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 늙은이는 흡마철을 갈아 만든 물을 단번에 들이켜고 있었다.

    ‘노망이라도 났나 보군, 일말의 공포도 느끼지 않는다니.’

    흡마철은 마력을 흡수하는 철.

    마력을 죄다 흡수하는 무기를 제조하는 데 사용된다. 특별법이 지정되어있는 물질로 항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당연히 정교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그 무시무시한 강철을 갈아서 만든 물을 마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당장은 아니지만, 심장에서 생성되는 마력보다 흡마철이 흡수하는 마력이 많기 때문에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갈 것이다.

    “네 녀석은 내일 아침 ‘아웃러리’ 상태로 우리에 갇힌 채, 외부 감금형이 시행될 것이다. 어찌, 오늘이 마지막으로 편안한 밤이 되겠군.”

    “허허, 꽤 좋은 곳에 데려다줄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나.”

    “…쯧쯧, 끝까지 용맹한 척은. 네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될 거다.”

    정교의 일원은 뒤를 돌아 유유히 사라졌다. ‘아웃러리’는 더는 법에 보호받을 수 없는 상태, 일종의 사냥감으로 인정되기에 이를 죽이는 자에게는 큰 보상이 주어질 정도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것이 당연한 엄벌이었다.

    빠져나갈 수 없도록, 혹은 누군가가 도와줄 수 없도록, 그 어떠한 공격에도 파손되지 않을 흡마철 우리에 갇혀서, 그 철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칼날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 아네스였다.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독하게 죽어가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어차피 아네스는 죽음과 죽마고우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목걸이를 빼낸다.

    작은 늑대 얼굴이 철재로 제작되어 있다. 늘 하던 행동처럼 능숙하게 그것을 반으로 연다.

    사진이 있다.

    어린 프리실라와 지금보다 젊은 아네스가 있다.

    ‘내가 싸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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