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50화 (150/222)

150화

* * *

[ 서대륙 델타 / 용사의 쉼터 ]

관에 있는 시간이 늘어버린 신사 해골들. 이들은 아서를 포함하여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든 용사의 쉼터에 남아 하릴없이 마당을 정비하거나 창문을 닦는 것을 반복한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일꾼들, 이전보다 의욕이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캡틴이 분배한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으나, 동공이 담겨있어야 할 구멍 속 드리운 그림자엔 이유 모를 쓸쓸함이 맴돌고 있다.

모두가 바쁘다.

그러나 이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델타를 구하는 것도, 검을 쥐어 못된 놈들을 혼쭐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프리실라 같은 강한 자들에게 방해만 될 뿐이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두개골을 돌리며 웃음을 주는 것.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우울함으로 공복 진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달그락, 달그락.’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것만으로도 감복한다.

그래도 할 일이 없지 않다. 부재인 사람 말고도 프리실라는 이곳에 거처가 있기 때문에 늘 그녀를 위한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

‘달그락, 달그락!’

참, 아서가 똥간이라고 부르는 연구소도 이곳에 있으니 레니를 위한 음식도 가져다주어야 한다. 혹은 레니나 프리실라를 위해 퍼플이 마차를 운영해야 할지도 모른다. 할 일이 많다.

여관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틀어 소리의 시작점을 찾아 시선을 고정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여관 사람들. 프리실라, 란베르크, 아이나, 레니, 그리운 얼굴이 한가득. 심지어 드래곤 길드의 모든 이들까지.

“달그락!”

“하하하, 캡틴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캡틴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프리실라, 캡틴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뺨을 긁적였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여관 문을 열어 신사 해골 일동은 정중히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들을 혼신을 다해 반겼다.

* * *

용사의 쉼터는 델타의 외곽에 있어 사람들에 눈에 띄기 쉽지 않다.

게다가 델타의 실버타운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정교가 델타를 삼켜버릴 심산인지 작정을 하고 권세를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곳도 위험을 피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제아무리 사람의 발걸음이 적은 곳이라지만 이곳도 피차일반 위험을 우회할 수 없는 곳. 레지스탕스를 위한 호르게타의 본거지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먼지 하나 묻지 않잖아.’

란베르크는 적당히 홀에 앉아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슥 닦았다.

사람의 발걸음이 완전히 끊긴 여관에 먼지 하나 묻지 않는다는 것은 해골 녀석들이 그만큼 관리를 잘해온 것이다.

‘훌륭한 친구들이군, 선생님이 극찬할 법해.’

음식을 내려놓는 네이비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다는 의미였다.

호르게타의 일원들도 오랜만에 테이블에 앉아 얼마 지나지 않은 추억에 잠겼다. 단 몇 개월 전에만 하여도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웃으며 떠들기 바빴는데.

“얼른 우리가 피게 해야겠어.”

“피게 하다니 무슨 소리냐, 프리실라.”

“꽃말일세, 꽃.”

“꽃이라니.”

“웃음꽃을 피우게 해야겠다는 말이네.”

란베르크는 ‘사람들의 웃음꽃을 피우게 하고 싶다면, 네 투구에 그려진 웃음부터 지워야 할 것이다.’라며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프리실라는 ‘싫어’라고 바로 받아쳤다.

희망을 쥔 영웅의 면모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를 란베르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간혹 특정이 되어 정교의 자객이라도 붙는다면 그녀가 위험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아네스도 이와 같은 생각이었다.

‘네 의견이 너무나도 좋은 것이라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신념. 그렇게 생각하는 방법도 알아야 할 텐데.’

젊은 검객은 프리실라를 보며 참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호탕한 성격은 물론이고, 고집도 똑같다. 물론 모르딕 쪽이 조금 더 까칠한 편이긴 하지만 피차일반 비슷하다.

“정령계에서 모르딕의 얼을 보지 않았다. 상태가 어떻지?”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더군, 아직 의식은 없어.”

“거참, 단장이 들으면 분개하겠어. 남자로 돌아가려고 그 고생을 했는데.”

“선생님이 섭취하신 것과는 완전히 다른 거라고 했으니까.”

“멀쩡하게 돌아갈 수는 없다는 말인가.”

“복구과정에서 근육과 신경계가 대부분 파괴되고 말았다.”

“그 말은….”

“잘못하면 다시는 검을 쥘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지.”

프리실라는 쥐고 있던 포크를 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란베르크가 입을 열었고 그것은 프리실라를 위로하는 동시에 자신을 위로하는 말과 동일했다.

‘아쉽겠군, 비슷한 감성을 가진 검객의 말로가 그것이라.’

‘분명 다시 일어날 자이며, 다시 일어나더라도 당장 그녀를 이길 수 있을 자신이 없다.’는 대답을 꺼낸 프리실라, 늘 그런 녀석이지만 모르딕에 대한 예우가 보였다.

‘그래, 너무 우쭐해 하지 말라고. 모르딕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 자리에서 네가 이겼더라면 차세대 검성으로 인정받는 일이니. 황당무계한 것이지.’

차세대 검성을 일컫는 대상자는 몇 없었다. 그중에서도 모르딕은 당연했고, 그 모르딕을 검으로 승리를 한다는 것은 차세대 검성이라는 말이 허락된 자일 수밖에 없다.

차세대 검성인 란베르크가 바라보고 있는 프리실라의 가능성은 그곳까지 닿을 수 있다. 강함을 원하는 의지와 집념은 충분히 그곳까지 닿을 수 있다.

“암, 아직 멀었다. 한참 더 가야 해.”

“그 의지 하나만큼은 이 선생도 따라갈 수가 없군.”

여관 상공에 투명화가 적용된 부유선을 정착시키고 용사의 쉼터로 들어오는 홉스, 마침 타르툰이라는 수인이 수집한 정보를 호르게타의 일원들에게 건네주기 위해 도착한 상태다.

둘은 함께 여관으로 들어오며 수집된 정보를 일원들에게 나눠주었고, 그 내용의 대부분은 중앙기사단에 자리를 잡은 전투성법대의 중심 막사 수리 및 증축에 관련된 것이었다.

모두가 혀를 차며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모르딕을 빼내는 것까지 성공했으나, 갈수록 정교의 본거지인 교황청에서 보내는 병력들이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티는 것도 한계점에 다다르면 호르게타의 일원들이 제아무리 압제에 맞서도 델타의 결말은 다를 것이 없다.

호르게타도 언젠가 발각될 수밖에 없다.

최대한 빠르게 아서 일행이 두 눈 멀쩡한 베를리를 델타에 데리고 온 다음, 정교의 무자비한 압제를 사계에 알려 제국의 파멸을 막아야 한다.

‘문제는… 그럼에도 정교가 멈추지 않는다면.’

희생되고 있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검을 쥐는 것 자체가 자신의 신념을 무너뜨리기에 사람을 해할 수 없는 아이나도 언젠가 그로 인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프리실라와 란베르크가 ‘후방에서 홉스의 지원을 도와라’고 말한다 한들 들을 리가 없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해만 된다고 말해보기도 했지만, 실제로 누구 하나 죽이지 않고도 제 실력과 호르게타 일원들을 통제하는 능력을 무시할 수 없으니. 그저 답답한 노릇이었다.

* * *

타르툰은 프리실라의 부탁을 받아, 요리 삼인방이 만든 음식을 포장하여 던전 할머니 여관에 도착했다.

델타의 늑대들과 함께 있을 아네스에게 요리를 가져다주는 작은 임무였다.

‘더 늦기 전에 도착해야겠군.’

델타의 저녁은 더 이상 시끌벅적한 야시장을 떠올릴 수 없었다.

정교라는 어둠이 드리우고 이곳의 저녁은 계엄령으로 인하여 돌아다닐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간혹 돌아다니는 이가 발각된다면 전투성법자에게 끌려가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맞아서 반 불구가 되는 것은 기본이었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미 희생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저녁에 고양이 한 마리도 돌아다니지 않는다.

노을이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려면 몇 시진이나 남았건만 신의 철퇴가 그리 무서운지 사람의 인기척이 거의 없는 거리였다.

수인이라 함은 델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종족으로 전투성법자들의 눈에 띄는 것도 당연했다. 음식을 잔뜩 싸 들고 거리를 다니는 타르툰에게 ‘저 새낀 뭐냐’는 식으로 시비조를 틔는 자들이 많다.

전부 함정이다. 조금이라도 반응했다간 전투성법자들에게 둘러싸여 ‘신의 뜻을 거역한다.’는 빌어먹을 이유로 저들의 지루함을 풀어줄 장난감이 될 뿐이다.

‘빌어먹을 새끼들.’

‘5대가 보신다면 눈이 뒤집히시겠어.’

시내에 사람들이 없어야 할 터, 던전 할머니 여관 밖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시력이 좋은 타르툰은 몰려있는 자들이 이미 국민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원 전투성법자들이나 정교의 일원들이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그중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여관을 지켜보고 있던 몇몇의 국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아네스와 앞면이 없는 사이처럼 구경꾼으로 위장했다.

“아네스, 네 녀석을 반역자로 체포한다.”

“흐음, 웃기는 녀석이구나, 증거라도 있느냐.”

수많은 전투성법자들이 던전 할머니 여관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거대한 동굴 속이 진짜 던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서진 물건으로 사방이 난리도 아니다.

오랜만에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아네스, 표정에서 꺾이지 않을 기세가 물씬 흘렀다.

새하얀 로브를 둘러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는 전투성법자들의 대표로 보이는 남성도 스산한 기운을 풍긴다.

‘마치, 모든 것을 준비해왔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이군.’

이 둘을 기준으로 뒤에는 각각의 세력이 팔짱을 끼고 노려보기 바빴다.

팔짱을 낀 쪽은 델타의 늑대들이었으나 애당초 여관을 헤집어 놓은 탓에 이미 잔뜩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증거, 증거라고 했나. 그래,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오냐, 이 아네스가 반역자라는 증거를 가져….”

전투성법자 사이에서 거구의 고문관이 바닥에 망태를 끌고 중앙으로 걸어왔다.

망태는 성인 남성 한 명을 넣을 만한 크기였다. 무엇보다 없던 죄도 만들어버린다는 정교의 고문관이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거구의 고문관이 망태 속에 있는 인간을 바닥으로 끄집어냈다.

거의 나체에 가까운 상태.

손톱이 모조리 빠져있다.

비어있는 이빨 몇 개도 고문의 흔적으로 보였다. 몸과 얼굴은 피멍이 잔뜩 올라온 탓에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다.

손가락 관절이 모조리 꺾여있다.

망태에서 꺼낸 것만으로도 바닥을 자신의 피로 질척하게 만들었다.

굳은 피딱지와 상처로 인하여 이 사내가 누군지 도저히 알아보기 힘들었으나, 아네스는 모를 수 없었다.

뻐금뻐금 입을 여는 사내의 말이 델타의 늑대들 귀로 스며들었다.

얼마나 많은 고통을 토해냈는지 죽어가는 사람처럼 목이 쉬어있다. 늙은 노파가 내는 소리보다 더운 쉰 소리였다.

‘……죄, 죄송… 합… 니다. 아…네, 스.’

아네스는 전투성법자들을 노려보더니, 이내 자신의 몸을 숙이고 사내에게 다가갔다.

부러진 손가락이 아플까 봐 만지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멀쩡한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괜찮다. 괜찮다. 많이 고통스러웠겠구나. 이제 괜찮다.’라는 말을 사내에게 전했다.

이 말을 듣자 사내는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쉰 소리로 통곡했다.

“괜찮다. 이 아네스는 괜찮다. 울지 말거라, 아이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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