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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46화 (146/222)
  • 146화

    * * *

    ‘그자를 이곳으로 데려올 수만 있다면, 정교의 지배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자는 ‘모르딕 아젤’을 의미했다.

    정교의 어떠한 술수로 인하여 온전한 의식을 빼앗긴 그녀. 이제는 그가 되어버린 모르딕을 되돌려보겠다는 정령왕이었다.

    모르딕의 전우, 말던 포그마.

    그는 가장 가까운 친우가 새긴 자신의 깊은 상처를 쓸며 잡념에 빠져들었다. 씁쓸한 표정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긴 호흡을 뱉고 난 뒤, 눈빛에서 의지가 서서히 불타오른다.

    포그마는 무릎 위에 올림 양 주먹을 쥐고서 호르게타 혁명단원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녀석을 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있던 철혈의 검 일원들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표정이, 그 얼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호르게타 일원들은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던 드래곤 길드. 포그마와 그 동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자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정령계의 상위 정령들과 주신들의 힘이 필요하다. 그자가 섭취한 것은 르파르파의 꽃이 아니니까.’

    르파르파의 꽃, 이 이름을 가진 꽃은 파르파르의 꽃과 함께 해마다 하나씩만 피어오른다는 정령계의 비보.

    마력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하여도 이 두 가지의 꽃은 정령들의 주식 중 하나이기도 했는데, 심지어 파르파르 언덕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정령이 아닌 생명체들이 섭취했을 때 호르몬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쳐 성별이 전환되는 경우가 존재했으나, 결코 모르딕처럼 영혼 없는 눈으로 전우를 베어버리는 효과를 가져다주진 않는다.

    아이나와 홉스는 ‘마계에서 보았던 지배력이 담긴 피로해소제와 비슷한 것을 섭취했으리라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정교는 강력한 지배술을 통해 모르딕을 통제한 것이 분명했다. 정령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포그마의 어깨에다 손을 올렸다.

    “정교, 교황의 힘은 아젤이 원하는 욕망 정도는 가볍게 이뤄 줄 수 있는 기적을 가졌다.”

    “제국을 역사상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자, 여자를 남자로 변모시키는 것은 대수롭지 않으니.”

    철혈의 꽃에서 받은 의뢰에 대한 전문. 추기경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겠노라는 글씨는 여전히 남아있으니 정교의 계략이 아니고서야 연결점이 없다.

    ‘그때 모르딕이 섭취한 플라스크입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털어 마시려고 했기에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포그마가 건넨 플라스크에는 단 한 방울의 단서가 남아있다.

    간신히 그것을 빼내어 조사한 레니가 ‘확실히 이 약은 제가 만든 것과 완전하게 다른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미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모르딕을 중앙기사단에서 강제적으로 빼내어 정령계로 데려온 다음, 정령왕과 주신들의 힘으로 강력한 정신지배 마법에서 해방하는 것.

    “내가 모르딕을 상대하지.”

    “그가 죽지 않는 선에서 제압하겠다.”

    목소리의 주인은 프리실라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사리 분별을 못 해서, 동료까지 베어버린’ 아젤을 상대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소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딕의 실력은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프리실라.”

    “선생에게 배워왔던 모든 것,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겠네. 선생에게도 청춘어람이라는 말이 통한다는 걸 말이야. 하하.”

    “말하는 걸 보아하니 수많은 단련으로부터 나온 자만이군. 절대 굽히지 않을 고집으로 보이는데…. 그래 프리실라. 각오는 되어있나.”

    “물론, 그저 모르딕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게 아쉬울 뿐. 이 프리실라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똑똑히 기억해줬으면 하는데.”

    본격적인 중앙기사단 습격 작전에 대한 회의가 시작된다.

    모든 전장의 지배자라고 부르러 과언이 아닌 아네스의 경험, 과거 전술 교관이었던 아이나와 란베르크의 전문적인 지식을 기초로 하여 진영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작전을 모색한다.

    중앙기사단을 습격한다는 것은 전투성법대의 중심 막사를 습격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수로 밀리는 것이 뻔히 보이는 일방적인 전투가 될 것이다.

    그곳에서 기사도를 가슴에 품고 전투성법자에 의해 철장 안에 있을 델타의 기사들까지 구출하고 싶으나 모든 것을 얻을 순 없다.

    불리한 싸움을 비집고 아젤을 빼돌리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 불리한 상황을 더욱 불리하게 만들 수 없는 상황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가지고 있는 전력과 전투력이 높은 인물들이 각개전투를 펼쳐 중앙기사단의 본부를 최대한 어지럽히는 것이 목표, 이어서 란베르크는 작전의 계획을 하나씩 설명했다.

    ‘중앙기사단의 철문과 성벽은 웬만한 충차로도 박살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저번 습격 작전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판단하지.’

    ‘그러므로 정문과 함께 전방에 있는 성벽을 내가 벤다. 그 자체만으로도 내부에 있는 전투성법자들은 두 눈을 부라리며 공황에 빠질 테니까.’

    ‘이어서, 나는 정문에 남아 지속해서 이들을 유린할 것이다. 그리고 불가시 상태의 부유선에서 남은 조가 중심으로 투입된다.’

    ‘그 순간. 공황에 빠진 그들도 정신을 차린 뒤 전력을 중심으로 투입하겠지, 이때 중앙으로 투입된 조들은 ’버티기‘에 들어간다. 물론 모르딕 아젤이 등판할 때까지.’

    ‘상공으로부터 중앙투입을 시행한 조의 조장은 프리실라가 맡는다. 하지만 모르딕이 등판한 시점부터는 아이나가 조장을 맡는다. 프리실라는 모르딕 아젤과 대립 구도를 펼쳐야 하니까.’

    ‘그리고 네 녀석이 말했던바, 모르딕을 죽이지 않고 제압해야 한다. 그녀가, 아니 그가 죽는다면 작전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제길, 모든 이들을 대신해서 말하지. 네 녀석이 어이없게 모르딕 손에 죽는다는 것도 작전의 의미를 잃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여기까지, 질문 있나?’

    아이나는 근래에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중앙투입조에 대한 이견을 추가했다.

    ‘이전과 달리 정교의 대공 감시가 강해졌다는 것, 광학미채로 불가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부유선의 특성을 무너뜨린다는 점’이었다.

    ‘대공에 위치한 정교의 부유선, 그들의 대공 감시 장치가 지닌 능력을 고려하면 지상으로부터 4,000m입니다.’

    ‘즉 불가시 상태의 이점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들보다 높은 곳에 있어야만 부유선이 대공 감시 장치의 탐지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란베르크가 가져온 부유선은 지상으로부터 10,000m 이상까지도 상승이 가능한 함선이기에 감시를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어서 고고도 침투에 대한 새 방안이 필요하다.

    모두가 숨죽여 방안을 모색하던 사이에 포그마는 철혈의 검 일원들과 함께 의견을 나눈 뒤에 입을 열었다.

    ‘저희가 중앙기사단에 위치한 대공 감시 장치를 무력화시키겠습니다.’라는 의견이었다.

    “저희 철혈의 꽃 일원들은 란베르크 님과 함께 부유선을 탑승하지 않고 중앙기사단으로 곧장 가겠습니다. 이후 저희는 설치된 대공 감시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유선을 끌고 중앙기사단의 고고도에서 대기해주신다면, 저희가 대공 감시 장치를 무력화시킨 다음, 상공으로 마법을 쏘아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때 중앙기사단 고고도 상공에 위치한 부유선의 고도를 낮추어 중앙투입조가 침투합니다. 어떻습니까?”

    중앙기사단에 위치한 대공 감시 장치만 무력화시킨다면 가능한 일.

    대공 감시 장치가 반경이 넓지 않기 때문에 제국 곳곳에 빼곡하게 위치한 이유도 그러했다. 이들의 인원은 14명, 조를 나눈다면 지상 침투가 가능하다.

    이들이 중앙기사단의 대공 감시 장치를 무력화한다면 그 고고도에서 내려왔다가, 그 고고도에서 올라가는 방법을 통해 부유선의 투명화 기능의 이점을 살릴 수 있다.

    모든 일원의 도주도 간편하다.

    “정말 가능하겠나?”

    “저희는 ‘철혈의 검’입니다.”

    그 대답만으로 충분했던 것인지 란베르크는 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델타의 늑대들을 포함하여 100명이 넘어가는 대인원, 손을 맞잡고 사이좋게 정문으로 침투할 수는 없으니 어차피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 * *

    [ 서대륙 델타 / 중앙기사단(전투성법대 중심 막사) ]

    한 사내가 중앙기사단 정문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란베르크,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까칠한 검. 차디찬 공기로 인해 얼굴을 숨긴 복면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제한 시간은 1시간.’

    모양새를 보았을 때는 수상하기 짝이 없으나, 비슷한 행세를 하던 거지들이 많았던 나머지 거리를 돌아다니는 전투성법대에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기에 중앙기사단의 정문으로부터 멀리, 멀뚱히 서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을 터이다.

    까칠한 검을 바라보고 있던 ‘쇠로 된 꽃’들은 성벽을 넘어 중앙기사단 내부로 잠입했다.

    상당히 숙달된 실력으로 보이는 움직임이 예사가 아님을 알려준다.

    ‘그들이 성벽을 넘어 침투하고, 10분.’

    ‘모든 것이 시작됨을 알리는 첫 번째 격을 선물한다.’

    로브 안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던 까칠한 검의 손가락은 ‘톡, 톡’소리를 내며 시간을 재고 있었다. 심장 박동에 맞추어 팔짱을 낀 상태의 왼쪽 검지가 고요하게 혁명을 준비한다.

    조금씩 사방에서 현이 튕기는 소리가 울렸다. 한둘씩 모여, 노래를 만든다.

    바드의 웨라가 이들의 작전을 위해 거리의 연주자들을 몽땅 모아 온 것.

    연주를 빙자한 난리에 중앙기사단 내부에 있던 전투성법자들이 움직인다.

    ‘정문으로 모여들고 있군.’

    정문에서 나온 몇몇 전투성법자들이 멀리서 연주를 하던 수백 명의 음악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친다.

    개 같은 연주는 다른 곳에서 해라는 식의 어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인지, 이들은 음악의 선율을 더욱 고조시켰다.

    ―정교의 압제에 저항하라.

    음 사이마다 들리는 목소리, 커지기 시작했다. 그 음률의 가사는 전투성법자들을 흥분시키는 데 충분하다.

    ―더욱더 소리쳐라, 델타의 울부짖음.

    일순간 거대한 검기가 중앙기사단 정문을 향해 쇄도한다.

    가로로 이어지는 성벽과 나란히 크기를 유지하는 검기가 전방을 완전히 뚫어버린다.

    ―고함쳐라, 거짓된 하늘을 향해.

    충격으로 인하여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방은 더욱 자욱해진다.

    연주하던 이들은 그 자리에서 모든 역할을 수행했으니 재빠르게 도주한다.

    ―일어서라, 델타의 영웅들이여.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성벽은 강력한 주술이 적용되어 있어 웬만한 공성 전차가 몰아붙여도 무너지지 않는 것.

    그 무너지지 않는다던 성벽은 무자비하게 연기를 휘날리며 모래보다 못한 것이 되어버린다. 비록 충차로 벽을 무너뜨리지 아니한들 어떠한가, 더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

    정문에 잔뜩 모여 있던 전투성법자를 향해서, 보이지도 않는 얕은 미소를 짓는다.

    천천히 그 음률을 섞어 조용히 노래하는 까칠한 검.

    ―일어서라, 우리는 신에게 심판받을 이유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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