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45화 (145/222)
  • 145화

    * * *

    별을 가득히 담은 밤하늘 아래. 격렬한 싸움을 펼치는 이들이 있었다.

    푸른색, 강철 같은 비늘을 두른 용은 하늘 범 여럿과 춤을 추고 있는 듯 보였다.

    비단 지켜보는 모든 이가 침을 꼴깍 삼키는 이유는, 용과 함께 백안을 뜬 사내의 눈이 혈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야월행, 정령 중에서도 신비라고 일컫는 아름다운 것들의 행렬을 둘러 단숨에 잡아먹으려 했던 첫 번째 하늘 범의 최후는 꼬챙이였다.

    그렇다. 꼬챙이.

    푸르고 거대한 마법진에서 길고 거대한 얼음송곳이 생성된다. 그 송곳이 야월행을 향해 입을 벌린 하늘 범을 무자비하게 뚫어 지상으로 추락시켰다.

    “하늘 범 꼬치, 하나 대령이오.”

    “구워 드시지 않으면 배탈 납디다.”

    분명 긴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허공에서 질러대는 이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부유여관에 있는 이들의 웃음을 터지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광귀야, 이 꼬챙이를 옮겨라.”

    언제부터 와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베를리와 낭추 옆에 서 있던 아황이 광귀에게 명령을 내렸다.

    두 마리의 광귀는 얼음꼬챙이와 함께 바닥에 꽂혀버린 하늘 범을 양 끝에서 들고 이동한다.

    지상에서 지켜보던 손님들이 아황과 낭추에게 어디로 들고 가는 것이냐, 이것의 전리품은 저들의 것이 아니냐는 말을 뱉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다문 입을 활짝 열게끔 해주는 대사가 있었으니.

    이어서 낭추는 엄지를 들어 올리며 이들을 향해 덧붙였다.

    ‘아서 군이 하늘 범을 음식으로 만들어 부유여관에 있는 전원과 함께 나눠 먹자고 했다네. 그래, 포만감이 넘치는 밤이 되겠군.’

    지상에 있던 수인들은 끝없이 환호하며 신입 직원을 응원하기 바쁘다.

    긴 주둥이를 가진 수인들은 하늘 범 고기를 상상하고서 새 나는 침을 막기 힘들다.

    ‘하늘 범 고기는 몹시 진귀하여 쉽게 맛볼 수 없는 식자재.’

    전설적인 식자재.

    해마다 늘 장족의 사냥꾼들이 거대한 하늘 범을 싣고 이동할 때면 이를 지켜보던 수인들이 ‘딱, 한 입만 먹어보고 싶다.’는 말을 기나긴 탄성으로 대신할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조금만 맛을 보자는 말은커녕, 수북하게 나 있는 털이 한 올 빠질까 봐 조심스럽게 가져가는 장족의 사냥꾼들에게 무슨 말을 뱉을 수 있으랴.

    환계에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연 마력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포식자 하늘 범의 그 야들야들한 살코기를 드디어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바닥으로 다음 꼬챙이가 떨어지는 동시에 수많은 환호가 터져 나오며, 이들을 응원하기 바쁘다. 역대 최고의 야월행, 입맛을 다시게 하는 최고의 밤을 기다린다.

    “그렇군, 아황 자네의 말이 맞았어.”

    “거 이방인은 싫다고 하지 않았나.”

    낭추는 고개를 흔들며 자신이 했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니 말에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수긍하며 다음을 이어갔다.

    “저자는 정말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가.”

    “그건 아무도 몰라, 알 수 있는 건 이 세계의 신도, 우리들도 아닌, 오로지 이 세계를 읽는 자만이 가능한 것이니까.”

    “세계의 결말이 가속되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마케롯.”

    “그래.”

    “세계가 곧 끝이 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저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희망을 품고 싶은 기분이네.”

    “그래서 그렇게 목청이 터지라 울었나 보군.”

    “….”

    굉음이 터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던 이들이 ‘결에 가까운 미래와 과거를 보는 자’라고 생각이 들었는지, 그들을 비집고 들어가 낭추를 바라보며 입을 여는 베를리였다.

    “혹시 낭추께서 결에 가까운 과거를 보는 자입니까?”

    “하하, 미안하지만 나는 사색에 빠져야만 하는 일은 질색이다. 나는 예언자가 아니야.”

    “…실, 실례했습니다.”

    “그가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양반이 자세히 알려줄 거야. 그런데 이미 지난 과거를 볼 필요가 있나 싶은데.”

    낭추의 말에 고개를 돌려 베를리를 바라보던 아황은 팔짱을 끼고서 입을 열었다.

    몽환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마케롯, 델타 4세는 여전히 그가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는 이미 죽었다. 아니 죽어야 했는데, 놀랍게도 아직 살아 있더군. 결에 가까운 미래는, 결에 가까운 과거를 보는 자가 소멸한다고 했다만.’

    ‘이렇게 변덕스러운 미래가 아닐 터, 한데 살아 있다고 하는군.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그가, 어떤 생김새를 가졌는지도 모르는 그가.’

    ‘그가 살아 있다는 것에 그래도 감사했다. 나와 동질감을 가질 수 있는 존재는 그뿐이니까.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결에 관련이 되어있다는 말이겠지.’

    하늘 범이 무자비하게 꽂혀있던 꼬챙이가 하나둘 지상에 박혔고, 손님들이 광귀와 함께 부유여관으로 꼬챙이를 옮기는 것을 돕는다.

    남아 있는 하늘 범은 단 한 마리, 야월행의 정령들도 부유여관의 상공을 지나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아황과 낭추는 고개를 들어 ‘마지막 한 마리의 낌새가 수상하다’며 곧이어 이어질 전투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 * *

    ‘하늘 범이 여럿 모이면 용 한 마리의 전력을 낼 수 있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정보였군, 월키스를 향한 신뢰가 드디어 떨어지고 말았다. 임자야.’

    월키스를 향한 신뢰가 떨어진 아이리스와 대치하고 있는 남은 한 마리의 하늘 범.

    지금까지 꼬챙이가 되어버렸던 다른 개체와 달리 덩치가 유난스럽다.

    고요한 밤하늘 금방이라도 서로가 이빨을 들이밀며 부대낄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으나, 하늘 범은 급작스럽게 몸을 비틀어 빠른 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쫓아, 아이리스.”

    아이리스는 대답도 없이 육중한 몸을 하늘 범을 향해 쏘았다.

    사방으로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퍼지며 지상에 있던 이들의 귀를 아프게 한다.

    피지컬 자체는 다른 색의 용들과 달리 부족하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어쩌면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하고.

    지금처럼 내 입술이 뒤집힐 정도로 빠른 속력을 내는 아이리스가 증명했으니.

    계속해서 전방으로 뻗어나가던 와중 ‘녀석은 더욱 힘을 비축하여 다음 야월행을 노리려고 하는 것 같다.’며 아이리스가 덧붙였다.

    ‘반드시 잡아야 해.’

    절망을 토하는 구멍 속에서 빠져나와, 어느 날 남아있는 잔존의 절망들이 사계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이후로 일 처리를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기 시작했다.

    『쳇, 짐의 마력 소모가 컸다.』

    “무슨 일이야, 속도가 줄었잖아. 아이리스.”

    하늘 범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아이리스가 무수히 많은 얼음 창을 소환하더니 하늘 범을 향해 쏘았다.

    닿기는커녕 크기가 작은 나머지 마력이 소모되어 사라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에 와서 제대로 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했으니….』

    “녀석을 뚫을 만한 얼음. 그 정돈 만들 수는 있겠지.”

    『만들 수는 있다만, 녀석에게 거대한 그것을 닿게 할 만큼의 마력이 없…. 임자야 또다시 마안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더냐!』

    『그건 아니 된다!』

    “시끄러워, 부족한 피지컬을 내가 대신 채울 뿐이니까.”

    아이리스가 시도 때도 없이 마안의 사용을 말리려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의 내가 마안을 사용한다는 것은 마치 폐암 말기의 환자가 줄담배를 피워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이래 봬도, 렌에게 팔씨름을 이긴 사내.’라며 아이리스에게 신호를 보냈고, 녀석은 고개를 흔들더니 끝내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마력으로 조각하기 시작했다.

    “잘 버티라고.”

    거대한 얼음 창을 어깨에 짊어지고, 아이리스를 강하게 밟아 장력을 만든다.

    발끝부터 허리, 연결되는 상체에 마력을 집중시킨다. 온몸을 비튼 다음. 하늘 범이 있는 방향에 힘껏.

    ―던진다.

    전방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쇄도하는 거대한 얼음. 주변의 공기를 찢고 전투기가 이륙하는 소리가 사방에 퍼진다.

    마력 고갈과 동시에 엄청난 무력이 전해진 탓에 인간형으로 변한 아이리스는 백안을 띄고 있었다.

    날카롭고 거대한 얼음은 부리나케 도망가는 하늘 범을 쫓아서 꼬리 끝에 닿는다.

    기나긴 몸은 풍선이 터지듯 소멸하기 시작했고, 쇄도하는 얼음을 막기에는 터 없이 역부족.

    벌린 입을 찢고 나온 얼음은 하늘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듯했으나, 가장 높은 구름에 닿을 때쯤 서서히 소멸한다.

    지상에서 이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입을 벌린 채로 넋을 놓았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모두의 머릿속에는 똑같은 말을 흐리고 있을 뿐.

    ‘이것이 진정 이 세상 싸움이란 말인가?’

    .

    .

    .

    부엉이 사용의 모든 조건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오자, 환호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괜스레 옆에 있던 아이리스가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시끄럽구나.’라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붉힌다.

    “자, 이제 부엉이 얼굴이나 좀 볼까요.”

    “이거 참, 성질 급하기는. 그래, 마침 저기 오는군.”

    부유여관 꼭대기에서 황금색 부엉이가 날아오더니, 자연스레 낭추의 어깨에 앉는다.

    황금 부엉이가 신기했던 탓에 베를리가 뚫어지게 쳐다보며 시선을 놓지 못했다.

    작은 양피지 하나가 돌돌 말려 부엉이 발목에 묶여있었고, 낭추는 그것을 풀고는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진즉 받아야 했던 편지라며 조금만 기다리라는 시늉을 더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신음을 뱉는 낭추를 보며 베를리는 이윽고 델타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는 의사를 전했다.

    “생각보다, 정교의 무력이….”

    “에잇, 답답하거늘!”

    낭추가 들고 있던 양피지를 아이리스가 낚아챈 뒤 읽기 시작했다.

    녀석이 대신하여 읽는 편지.

    그것은 사계의 신문이었다.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아이리스의 목소리에, 그 내용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한숨을 크게 내쉴 수밖에 없었다.

    “…아바마마.”

    ‘델타 3세, 정교가 휘두른 심판의 검으로 인하여 귀가 잘린다. 마녀의 행적을 완고하게 숨기는 왕권은 남김없이 붕괴하여, 비르테리아 연합군의 지속적인 압박이 예상된다.’

    ‘비르테리아 연합군. 델타의 주적이었던 데크에던과 혈맹이었던 아크론이 손을 잡고서, 마녀를 탄생 시켜 사계의 멸망을 유도하는 델타 제국에 맞서기 시작하다.’

    ‘마녀를 따르는 잔당들의 모임이 나타났다. 이들은 레지스탕스라는 어울리지도 않은 이름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으며, 델타에 안착한 주요 정교 기관을 타격하는 등의 악행을 일삼는다.’

    ‘여전히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으나, 지속적인 반역을 일삼으며 정교가 내리는 심판을 거부하고, 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기에. 정교는 이 악의 세력이 가진 야망을 멈추기 위하여 쉼 없이 노력하고 있다.’

    ‘정교가 가진 뜻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아이리스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했고, 낭추와 아황도 마찬가지였다. 베를리는 떨군 고개를 들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은 뒤 입을 열었다.

    그것에는 각오가 담겨있다.

    “…비록 흉사에 빼앗겨 버린 땅일지라도.”

    “무릇 기적은 피어나는 법이니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