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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44화 (144/222)
  • 144화

    * * *

    고고학자 월키스의 서적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하늘 범(Sky Tiger)이란 환계에 존재하는 먹이사슬 최상위 생명체 중 하나. 굵직한 글자로 중요함을 강조하는 문단이 있다.

    ‘유난히 야월행 시기에 지랄 같다.’

    수북한 털이 달려있어 늑대를 연상하게 하나, 사지가 없어 하늘을 날아다닐 때 거대한 뱀이 구름을 기어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뭔가 동양의 용이 떠오르는데….’

    외형이나 지능 따위를 유심히 비교해보았을 때, 하늘 범은 용보다 한참 하위 개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확실히 마력을 운용하는 지혜가 있는 용과 달리 비교가 된다.

    ‘아, 프리실라처럼 피지컬로 몰아붙이는 스타일인가.’

    ‘근성이 대단한 놈이네. 쉽지 않을 텐데.’

    하늘 범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야월행의 순수한 신비물로, 그 긴 행렬을 모조리 먹어 치우면 더욱더 높은 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물론 그 행렬을 모조리 먹어 치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늘 범을 사냥하는 장족들의 뒤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낭추를 보니 더욱더 그렇다.

    부유여관 입구에서 보았던 ‘하늘 범의 머리’라는 글자가 새겨진 헌팅 트로피를 보라.

    작년부터 쭉 이어지는 하늘 범의 머리들이 단 한 번도 사냥에 실패한 적이 없음을 말해준다.

    그만큼 야월행은 부유하는 구왕에 거주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환계에 아주 중요한 행사라고 할 수 있었다.

    야월행이 무사히 이 지점을 지난다면 사계에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것.

    이러한 경사스러운 대이동을 단숨에 처먹으려는 하늘 범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하늘 범이 어떤 흉포한 개체로 성장할지도 모르는 법에다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환계의 생태계가 어떤 식으로 망가질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하늘 범을 사냥하여 얻은 전리품 따위는 장족들이 가져다가 팔 수 있게끔 했다.

    게다가 ‘야월행 보호비’라는 이름으로 두둑하게 받아 가는 것도 당연한 부분.

    자신은 구왕을 띄우기 위하여 큰 힘을 사용하지 못하고, 아황은 미래밖에 모르는 바보에다, 광귀는 하늘을 날 줄 모르니,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생각은 없다며 낭추가 덧붙였다.

    어쨌든 하늘 범은 최상위 개체에 속하고, 그 개체를 사냥할 수 있는 자가 환계에는 장족밖에 없으니 거금을 주더라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전문가를 쓰는 게 낫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왜 저희가 하늘 범을 사냥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장족의 사냥꾼들이 아직 혼수상태라고.”

    “….”

    “자네의 푸른 용이 ‘꿇어라’하고 기절시켜버리는 바람에.”

    아이리스를 있는 힘껏 노려보았지만, 녀석은 빠르게 시선을 회피하고 휘파람을 불 뿐이다.

    따지고 보면 나 또한 아이리스의 행동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니 피차 할 말이 없다.

    ‘그래도 하늘 범만 사냥해준다면 부엉이를 쓰게 해준다니까.’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아르바이트를 하루라도 빨리 끝낼 수 있으니까, 게다가 ‘예―입’을 못한다는 이유로 솜사탕에게 바가지를 긁힐 일도 없다.

    하물며 이 여관주인은 아이리스 등에 올라타, 녀석이 알아서 하늘 범을 족치는 것만 구경하면 끝. 일사천리, 마치 델타의 문제도 이처럼 해결되었으면 할 정도의 완벽한 시나리오.

    “좋아, 아이리스 들었지? 우리가 하늘 범을 사냥해야 해.”

    “싫다만.”

    나는 아이리스의 머리를 움켜쥐고 ‘네가 저질러버린 일을 해결할 줄도 알아야, 지고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법이야’라고 최대한 상냥하게 이야기한다. 물론 금방이라도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갈 것만 같다.

    녀석은 고개를 흔들며 낭추를 향해 말했다. ‘임자야, 짐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이런 행동을 취한 이유도 전부 임자의 모습을 배워 그런 것이 아니더냐. 혹여 임자는 임자 자신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냐?’

    ‘보라, 임자 눈에 비친 내가 곧 임자의 모습을 닮아있으니.’

    할 말 없게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맞는 말만 하는 것 같으니, 나는 낭추의 표정을 보느라 이리저리 바쁘다.

    아이리스의 말은 어느 정도 낭추를 비꼰 것이었다.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자신의 식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망정, 어찌 환계의 생태계고 어쩌고, 그럴 자격이 없다.’

    ‘부유하는 구왕, 낭추여. 짐은 현재 어쩔 수 없어 그대의 수문장 노릇을 잠깐 하는 것이나… 에잇, 말리지 말아라 임자야! 이 정도 발언은 제아무리 부하라고 한들 가능하지 아니한가.’

    낭추는 아이리스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지 않아도 성깔이 더러워 보이는 낭추가 금방이라도 아이리스의 뺨을 냅다 쳐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짐보다 더욱 오랜 세월을 맞은 개체에 비해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인정하겠노라. 좋다. 지혜랍시고 똥만 가득 찬 네 녀석의 주둥아리. 과연 어디까지 떠들 수 있나 들어볼까.”

    “어리석은 푸른 용이여!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대는 아직 성숙할 만큼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니 이해할 수 없겠지!”

    “그래서, 네 녀석은 장족의 사냥꾼에게 맞아 반병신이 되어버린 ‘소’에게 사과는 했느냐?

    “….”

    “대를 위해서 아무 말 없이 뒤져라 처맞은 ‘소’에게 이 여관의 주인으로서 감사하다는 말은 전했느냐?”

    “….”

    아이리스는 고개를 들어 낭추를 바라봤다. 나는 낭추를 올려다본 녀석의 표정을 볼 수 없었으나 반대편에서 침을 꼴깍 삼키는 베를리를 보았을 때, 아이리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아무리 작고 연약한 개체라고 할지언정, 식구라고 생각한 대상에게는 어느 비극적인 조건이 따라오더라도 ‘지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무리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것이 이 지고하신 아이리스가 용사의 쉼터에서 배운 것이며, 그토록 하찮다고 느꼈던 인류에게 얻은 고귀한 것이다. 네 녀석은 과거의 짐보다 못하다. 한심할 정도로.”

    낭추는 아이리스의 멱살을 강하게 잡았다. 거대한 손아귀가 여인을 압박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바뀌는 것이 아이리스도 상당히 진심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고 했다만, 이미 수지가 맞지 않으니 할 말이 더욱더 없구나. 네 녀석이 진정 대를 위한다면 우리에게 부엉이를 사용할 수 있게 했어야 한다.”

    “현재,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세력을 가지고서 사계를 집어삼키려는 심산인 정교. 그들과의 전면전을 코앞에 둔 우리에게 부엉이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줄 테니 일을 하라?”

    “심지어 부당한 대우를 받는 네 녀석의 부하를 도와주었더니, 사냥꾼들이 혼수상태라 사냥을 하지 못한다. 그 이유로 ‘대’가 희생할 수도 있으니 하늘 범을 대신 죽여 달라?”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표정을 짓고서는, 그리 계산적인 태도로 나오는 것을 보았더니, 토악질이 날 수밖에 없지. 짐은 네 말에 복종하는 일꾼이 아니거늘.”

    “용사의 쉼터에 있어서 연이 없는 이들은 조연일 뿐이니라, 우리가 행하는 기적 같은 일들에 다른 사람들도 ‘관여’되는 것이지. 결코, 식구가 아닌 이들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 외, 일상을 방해하는 귀찮은 것을 귀찮아하는 임자의 성격 덕. 짐 또한 보고 배웠던 대로. 우리가 귀찮음을 무릅쓰고서 ‘소’를 위해 ‘대’를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한심하고 어리석은 낭추여. 짐이 하는 말에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그 주둥이를 원하는 만큼 마음껏 떠들어대는 것은 자유다. 하나.”

    “또다시 계산적인 태도로 우리를 대한다면. 그때는 우리의 ‘대’를 위해 너희가 모두 애지중지하는 이 여관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짐은 네 부엉이를 가져갈 것이다.”

    * * *

    [ 다음 날 저녁, 부유여관의 상공 ]

    “울릴 필요까진 없었잖아….”

    『…누가 그놈이 울 줄 알았겠느냐.』

    “그래…, 인정.”

    목청이 터지라 우는 낭추.

    우리는 그때를 잊을 수 없다. 지켜보고 있던 부유여관의 모든 수인은 ‘에잇, 낭추를 또 울려버렸잖아,’라는 표정을 짓곤 우리를 장난스럽게 쳐다보았다.

    우리는 잠깐이지만 나쁜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말았는데.

    그전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낭추를 노려보던 아이리스가 당황스럽다는 듯 크게 열린 입을 닫지 못했다.

    ‘맞아… 낭추가 저렇게 여릴 줄 누가 알았겠나.’

    낭추는 정말 여린 사람(?)이었다. 실은 너무나도 소심하기에 긴 세월 동안 환계의 드넓은 천공을 돌아다니며 홀로 지내 온 것.

    전투력? 글쎄, 마커스처럼 토끼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데.

    까칠한 성격은 타계의 이방인들이 쳐들어와 횡포를 부린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선보인 말투와 이미지는 죄다 연기라는 점에서 손뼉을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낭추가 화를 낼 때마다 손님들이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라고, 미간을 찌푸린 낭추가 아닌 무표정으로 낭추에게 팩트를 꼽는 너를 말이야.”

    “혹시라도 네가 낭추에게 공격을 가할까 안달복달. 뭐랄까… 낭추를 바라보는 손님들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아기를 보고는 ‘뚝, 울지 마라!’며 소원하는 느낌이었어.”

    『쳇, 간만에 이 지고한 용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나 했는데.』

    “글쎄, 적당히 멋졌다니까.”

    예상 밖으로 구왕이 나쁜 놈(?)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했으니, 아이리스가 직접 짜놓은 하이라이트 신은 완벽한 연출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시나리오의 이름은 ‘붉은 용보다 멋진 푸른 용’이었다.

    시무룩한 푸른 용을 향해 베를리는 ‘역시 지고한 용들에게는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아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이리스의 성향을 완전히 파악한 듯하다. 용으로 변한 상태에서 팔짱을 끼곤 ‘쳇’을 연발하는 아이리스.

    『그래도 기분은 썩 나쁘지 않군.』

    시간이 흘러 환계에 어둠이 찾아오며 그와 함께 부유하는 구왕에도 밤이 찾아온다.

    저 멀리 고요한 지평선에서 빛을 내며 상공에 떠올라 모습을 나타내는 정령들의 행렬.

    천천히, 그렇다고 너무 늦장을 부리는 느낌은 버리고. 낮은 하늘에 가로로 스치는 별똥별과 닮아있다.

    하늘이 그들의 무대인 듯,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커튼처럼 오로라가 걷힌다.

    “베를리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짐이 확인하지, 임자는 마안의 사용을 지양하거라.』

    “저 정돈 마안을 사용하지 않아도 볼 수 있거든.”

    “음…. 왜 저렇게 다급한 표정으로 몸을 흔드는 거야.”

    『제국을 통치할 자는 언제가 품위를 지켜야 하거늘.』

    『가만히, 짐이 들어보도록 하겠노라.』

    저 멀리 티끌만 한 크기의 여럿이 손을 흔들고 있다. 베를리 옆에 낭추도 있고.

    이어서 기다란 목을 꺾어 얼굴의 반이 보이는 아이리스였다.

    눈이 내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이를테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뜻이 분명하다. 듣지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손이 관자놀이를 향하는 이유는 뭘까.

    『임자야, 이런 말이 있다. 월키스의 서적에 적혀있지.』

    『하늘 범이 둘 이상 모였을 때.』

    『성체 드래곤의 한 마리 전력을 낼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 한 마리가 아니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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