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43화 (143/222)
  • 143화

    * * *

    “이보게, 아서! 이쪽이라고! 아하하!”

    “아, 네!… 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작은 솜 녀석들의 반도 못 미친다고, 하하!”

    그러니까 빌어먹을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늘 직원에 목말라 있었으니 직원 체험도 훌륭한 사장이 되기 위해서 경험해볼 만한 좋은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나보고 망할 솜사탕들보다 일을 못한대, 이런 취급은 처음이야.

    ‘젠장, 머리를 박고 부탁하긴 했다지만.’

    낭추의 마법 부엉이는 일반적으로 상용화된 것들과 완전히 격이 틀렸다.

    마법 부엉이가 환계에 들지 못하는 이유는 대륙을 둘러싼 마력 때문이다.

    이 마력은 마치 ‘여기는 우리 집, 그러니 안 돼.’라는 식의 환계 주신들이 타계에 존재하는 사악한 잔당을 향한 일종의 엄포.

    낭추가 ‘환계는 사계의 생태계를 조율하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사악한 마음을 품은 자들을 막기 위함이라’라고 덧붙였다.

    단 이곳의 하늘을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부엉이가 존재하는데, 낭추의 부엉이다.

    그 어떤 곳이든 대륙을 횡단하고 메시지 전달이 가능한 황금 부엉이.

    ‘자네는 이 부엉이가 실어 보내는 편지의 금액이 얼만 줄 아나?’

    ‘자그마치 30골드가 넘는다. 자, 그럼 30골드.’

    …라고 손을 내밀던 낭추에게 ‘하하, 죄송하지만 지금은 가지고 있는 돈이 없어서, 나중에 인계에 들러 꼭 전해드리겠습니다.’라고 하자 ‘멍청한 소리를 지껄인다면, 이 거래는 없던 것으로 하겠다.’라고 답했다.

    말해 뭐해, 30골드 치만큼 이곳에서 솜사탕을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결딴이 났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계약서에 승인했다.

    ‘야월행이 끝나는 시기까지 아서와 그의 일행들은 부유여관 낭추에서 직원으로 일한다.’라는 계약서에 ‘그의 일행들’은 당연히 ‘아이리스’와 ‘베를리’를 말하는 것이므로.

    나와 베를리는 이 태풍의 탑만치 거대한 여관에서 서빙의 임무를 맡는다.

    음, 제국을 이끄는 황실의 영애가 여관에서 노동한다는 건 웃기는 일이었다.

    근데 뭐 어쩌겠어. 지금 이곳에서는 지고하신 블루드래곤도 수문장일 뿐인걸.

    ‘너희 아버지를 대신하여 사회성을 길러주지.’ 그렇게 말했다만, 고개를 빠른 속도로 끄덕이며 당연하다고 말하는 베를리에게 미안했다.

    “이, 이번에 바뀐 수문장. …도대체 뭔데?”

    “그러니까, 그냥 들어가질 못한 게 한다니까.”

    “대기 줄 때문에 대륙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고.”

    …일단은 여관주인만큼이나 성질이 고약한 푸른 용을 뚫고서 여관에 무사히 입성할 수 있었던 저 수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이봐, 아서! 자향주 좀 가져다주게!”

    “예, 알겠습니다.”

    “으하하, 아서 군 어디서 굴러보지 않은 티가 팍팍 나는군.”

    “아니, 왜요! 그리고 손님 혹시 브라운이라고 아십니까?!”

    “브, 브라운? 아니 그런 양반은 모르는데 말이야.”

    “쳇, 내가 1분 안에 가져다드립디다. 준비, 땅.”

    “으하하, 장난이야, 장난.”

    이마에 열십자를 두껍게 세운 다음 가속 마법을 중첩한다.

    용사의 쉼터에 직원들이 많아진 이유로 홀에서 서빙하는 일이 줄었던 내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마음을 먹었다.

    나, 아서는 각오했다.

    이곳에 있는 손님들에게 인정을 받겠노라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꾼인지 보여주겠노라고! 빌어먹을 지금의 수문장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

    .

    .

    “후배 님, ‘예’가 아닙니다. ‘예―입’이라고 하셔야죠.”

    “예… 입….”

    “아니죠, 자 따라 해보세요. 예―입.”

    카니로베와 격전을 펼쳤던 그 순간만큼이나 가속 마법을 중첩하여 낭추에 유례없던 서빙에 성공했는데 그건 안중에도 없었다.

    손님들에게 정갈한 ‘예입’을 못한 탓에 빌어먹을 솜사탕이 선배랍시고 내게 자꾸만 핀잔을 먹였으니까.

    2층 홀의 난간에다 머리를 박고 한숨을 쉬던 찰나에 입사 동기 베를리가 다가온다.

    “아서도 휴식 시간인가요?”

    “응, 일 잘하던데 인기도 많고,”

    “아하하….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닐까요.”

    “아이리스에게 저녁을 가져다주는 길이야, 같이 가자.”

    “네, 다 같이 먹는 음식이 맛있는 법이니까요.”

    직원은 타임 별로 휴식 시간이 지정되어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아서와 그의 일행들은 같은 휴식 시간을 배정받았다.

    주방에서 직원을 위해 만들어진 주먹밥을 먹으며 ‘델타는 괜찮을까’라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국엔 ‘아까, 그 솜사탕 새끼가’와 같은 하소연이 주제가 되는 우리들.

    ‘사장실에도 불려갔지. ‘황금 부엉이가 보이긴 하더라, 근데 그것보다 아서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고 낭추새끼가….’

    ‘아무튼 자네, 당분간 아스나 아소는 어떻겠나?’라며 이 여관의 주인이 방금 나를 불러놓고 뱉은 말이었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손님이 장난삼아 뱉은 말을 낭추가 쓸데없이 신중하게 들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젠 하다못해 유바바처럼 이름까지 뺏을 작정이냐!’라며 악덕 사장을 향해 울분을 토했다만, 녀석은 옆에 있던 황금 부엉이를 손가락으로 쓰다듬더니 눈빛으로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네가 지금 그렇게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닐 텐데?’

    나는 센이다. 이름을 빼앗긴 치히로라고.

    * * *

    “아이리스, 너 인마 융통성 없다며 소문났어.”

    “수문장이란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자가 아니더냐.”

    “그래도 그렇지, 손님은 받아야 할 것 아니야.”

    “짐은 임자가 힘들까 봐 일부러 그런 것이거늘.”

    “흐응, …그거 묘하게 설득력 있네.”

    수문장이 아이리스에서 우장군으로 교대가 되어, 대충 근처에 있는 잔디에 앉아 주먹밥을 먹고 있다. 배가 고팠는지 뺨에 밥풀을 묻히며 허겁지겁 먹는 녀석.

    내가 밥풀을 떼어주리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고, 다시금 수문장으로 교대한 뒤에 어느새 배가 고파지면 떼먹지 않을까.

    환계의 하늘을 노 다니는 부유하는 구왕, 그 구왕과 함께 떠다니는 작은 섬.

    그 섬 속의 부유여관. 사계에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이 전경을 본다면 군침이 돌고 말 것이다.

    “끅, 끅….”

    “베를리?”

    전경을 바라보던 중, 옆에서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리스도 이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는데, 나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들어서 베를리를 위로해주라는 사인을 건넸다.

    ‘난 이런 거 잘 못 한다고, 아이리스.’

    ‘짐도 그런 것에는 소질이 없거늘!’

    그렇게 고민 끝에 베를리의 어깨를 툭툭 치며 ‘괜찮을 거야, 그곳엔 믿을만한 사람들이 있으니깐.’ 큰 위로가 될 법한 말은 아니었으나 진심을 담아 위로했다.

    이내 고개를 들고 눈물을 닦은 다음 얕은 미소를 짓는 베를리.

    “…제 눈이 한시라도 빨리 돌아와야 할 텐데.”

    “제국의 여인이여, 혹시나 해서 짐이 이야기하지.”

    “네, 아이리스.”

    “어찌 되었건, 그대 잘못이 아니니 자책할 필요는 없다.”

    “….”

    원하지도 않은 보랏빛의 눈을 가진 여인, 입을 닫지 못했다.

    멍한 표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유여관 쪽에서 붉은색 빛을 내는 등이 허공으로 수백 개가 떠오른다.

    분명 야월행을 위한 것이지만 마치 그녀를 위로해주는 느낌. 어두운 밤하늘에 떠오른 셀 수 없이 많은 등에는 마력뿐만 아니라 삶의 축복을 담는 것.

    아이리스의 ‘짐도 해보고 싶다.’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만든 등이 저 무리에 끼지 못했을 것이다. 마침 모두가 그것을 생각했는지 피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 여관주인은 할 말이 없네.

    미간을 찌푸리며 아이리스에게 귀찮다고 했지만, 막상 허공에서 무리 지은 등을 보았더니 나도 모르게 정말 아름답다 느꼈기에.

    주먹밥을 반쯤이나 남겼다. 손에다 꾹 쥔 채로 잠이 들어버린 베를리.

    긴장이 풀렸다 하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지. 근래 기면증처럼 조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럴 법도 하겠어, 얼마 만에 찾아온 평화인데.’

    ‘지금까지 쫓겨 다닌 것을 생각하면 잘도 버텨줬네.’

    정말이지 많은 위협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늘 자신의 목을 노리고 찾아오는 정교의 암살자들. 심지어 황실 속내에서 누군지 알 수 없으나 지아비의 권력을 탐하는 못된 자들.

    ‘제국을 위해서 이 모든 것들 피해 도망쳤으니까.’

    ‘긴 여정에 대한 보상으로 지금을 만끽해둬, 베를리.’

    ‘돌아가면, 도망이 아닌 정면승부가 될 테니까.’

    아이리스가 잠든 베를리를 확인하고는 나를 지긋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사색에 물든 눈빛에 나의 대답으로 구역질을 주었더니, 녀석은 피식 웃고서 정면을 바라봤다.

    “임자야.”

    “왜 불러, 쓸데없는 소리는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아니다.”

    “쓸데없는 소리였나 보네.”

    .

    .

    .

    모두가 자리에서 떠나고 아이리스는 마지막 교대로 인하여 우장군과 자리를 바꾸었다.

    여전히 아이리스만 보면 질색을 하는 우장군, 푸른 용은 인간의 이빨을 내보이며 장난삼아 겁을 준다.

    ‘임자야, 임자야.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더구나.’

    ‘심지어 붉은 용보다 짜증 나는 여자가 있었다니.’

    이곳에 오기 전이었다.

    아황의 집에서 나와 베를리와 함께 적당히 주위를 돌아다니다, 다시 돌아올 때였다.

    베를리는 잠시 마당에 있는 정령 같은 것들과 노닥거리느라 올라오지 않았으나 푸른 용은 아서가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그때였다.

    ‘엿들었지만, 짐은 아직도 임자가 어떠한 존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사계의 모든 것을 가져다 붙인다 한들, 이 존재는 감히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지고한 생명체이자, 지식을 탐구하는 아이리스가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자존심을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고고학자 월키스의 모든 서적을 들춰본다고 하여도.’

    ‘심지어 월키스를 되살려, 임자에 대해 서술하라 하여도.’

    ‘그것은 현저히 불가능에 가깝다.’

    ‘임자라는 존재를 정의할 자는 최소한 이 세상에 없다.’

    아서는 완전한 이방인. 이곳과는 연결될 수 없는 미지의 차원에서 넘어온 인간이자, 기적은 따위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모든 것을 타개하고, 결말로 이끌어가는 창조자의 비겁한 수법.

    이름 모를 신이 직접 빗어낸 존재였다. 말도 안 되는 두 쪽 눈을 가지고 절망을 토하는 구멍에 던져져 결말을 위한 비극이 파멸할 때까지 무한하게 피를 흘러온 것이 아서였다.

    ‘가엾은 것, 원래 세계에서 이계로 흘러들어와, 좋은 것은 보지 못할망정 처음부터 세계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구멍에 내던져지다니….’

    ‘그래서 일상이 망가지는 하루를 맞이할 때면 그토록 미간을 찌푸렸던 것이더냐. 짐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그대의 일상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노라.’

    ‘제아무리 7인의 영웅이 모두에게 추앙받는 존재라 하여도, 짐의 눈엔 임자만큼 지고하며 추앙받아 마땅할 생명체는 없다.’

    ‘아득히 긴 세월, 정말로 수고가 많았구나. 무한하게 지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짐의 미래를 지켜 주어 참으로 고맙구나. 그 말을 전하고자 했느니라. 임자.’

    “전하지 않은 이유라.”

    “쓸데없는 이야기라 대답할 것이 훤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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