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42화 (142/222)
  • 142화

    * * *

    “아, 아…. 델타는 어쩌자고.”

    반쯤 눈이 풀린 채 ‘붉은 용, 언젠가 네 녀석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아이리스와 ‘즈는 은 취흣어요.’라는 말과 ‘우, 욱!’을 오가는 베를리를 보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리 분별도 못하는 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낭추를 만난단 말인가, 죽치고 그를 기다릴 수 있는 상태도 아니다.

    하물며 베를리는 책상에 얼굴을 쥐어박고 이미 영혼의 반절은 델타로 향해 있었다.

    ‘황실에서 술에 대한 교육은 받지도 않았나 봐….’

    …아이리스도 렌에게 얼마나 쌓인 것이 많았으면 ‘붉은 용, 언젠가…’를 반복하다 끝내 울음보를 터뜨렸다.

    들어보니 ‘너희 선조 드래곤 슬레이어한테 맞고 뒤짐’이라는 말에 상처를 받은 듯하다.

    ‘…잘 생각해보니, 진짜 심한 욕인 것 같기도.’

    자기 조상이(그것도 지고하다는) 욕을 먹은 것과 그 욕을 했던 대상이 너무 강한 나머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에 대한 푸른 용의 슬픔을 자향주가 자극하고 만 것이다.

    그래, 자향주는 마치 위스키와 같았다.

    몇 년산이니, 몇 년산이니 논하기도 뭣한 처음 접해보는 이들의 위스키.

    이를 잘 모르는 초짜배기들은 마냥 좋은 술이라 생각하며 다음 날 대가리가 깨질지도 모르는데 뒤질 듯이 마시는 그것.

    확실히 한 모금 머금었을 때는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입속에서 향긋하게 퍼지는 그 미려한 맛이 실로 붉은 노을을 떠올리게 했으니….

    ‘베를리의 눈이 다시 보라색으로 돌아오고 있네.’

    ‘아, 아이리스의 마법이 풀리려고 하잖아.’

    ‘…이런, 곧 들어가야겠어.’

    했으니, 푸른 용과 마녀로 오인당하는 델타 베를리 3세는 붉은 노을에 빠져 주사를 부리지 않겠는가. 나는 지나가던 솜사탕 직원에게 부탁하여 두 개의 방을 예약한다.

    자향주….

    하필 붉은색이라 방금까지도 아이리스는 잔에 든 술을 향해 ‘네 이놈, 붉은 용!!!! 짐이 혼쭐을 내주겠다!!!!’라며 삽시간에 수십 잔을 삼켜버렸다.

    아마, 저리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여관은 늦은 시간이 될수록 뜨거워지는 곳이 아니던가, 아무래도 내일부터 야월행의 시작이라 주변은 지금부터 더욱더 시끄러워진다.

    되살아난 시체가 낼 법한 소리가 나는 우리 테이블과는 상반된다.

    주변은 온갖 수다 소리와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무한다.

    문제는 그중 유난히 시끄러웠던 테이블이 사람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어느 여관에 가나 있을 법한 불한당 같은 패거리였다. 어째서 구왕에 있는진 모르겠지만.

    “…죄, 죄송합니다. 끄윽, …끄윽.”

    “이 쥐방울만 한 놈이 뭘 잘했다고 울어?”

    이곳에 일꾼은 전원 솜사탕같이 생긴 녀석들이다. 일단 거대한 수인이 멱살을 잡아 허공에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중에서도 유난히 잘 울었던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아이리스가 진작 한번 울렸던 그 녀석이다.

    ‘쳇, 보기 안 좋구먼.’

    내게 영웅 심리란 이 세계에 머무르며 강제적으로 발현되는 것. 본래 그런 성향의 사람은 아니다. 저 상황이 연출되기 한참 전에 약간의 오지랖을 시도하려고 했다.

    문제는 용맹하다고 하는 마케롯의 수호자들이 대부분 이를 말리려고 했다.

    다른 직원이 와서 이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껄끄러운 일만 생길 것 같아 방관하고 있었던 것.

    ‘저들은 장족이라 부르는 하늘 범을 잡기 위해서 고용된 수인 사냥꾼들입니다. 이번 사냥을 마지막으로 낭추 님에게 정리해고를 당했다고 하더군요.’

    ‘야월행이 끝나면 부유하는 구왕에서 떠날 예정이니, 너무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 친구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도움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 범을 사냥하는 이들은 결코 평범한 사냥꾼이 아닙니다. 하늘 범이란 환계에 있어서 드래곤과 비등하게 취급되는 개체.’

    ‘나리께서 환계의 내로라하는 강한 일족이라 한들, 저들은 광귀를 제외하고 환계의 최강을 다투는 종족이라 건드리어 좋을 것이 하나 없으니까요.’

    부유하는 구왕에 신비물이라 불리는 고귀한 정령들이 일 년 동안 성장하고는 열을 펼쳐 환계 대륙으로 향한다. 그리고 낭추의 하늘 위로 지나가는 것이 야월행.

    낭추에 있는 손님들이 등에다 마력을 담아 허공으로 보내는데, 이들이 무사히 대륙으로 내려갈 수 있게끔 마력을 보충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 해마다 열리는 행사에 빼먹지 않고 등장하는 하늘 범.

    이를테면 모멧티를 먹으려고 드는 아이리스와 같은 성질, 드래곤의 동류라고 부르기엔 지능이 낮아 완전히 아종에 가깝다.

    아황의 광귀는 하늘을 날지 못하니, 낭추가 드래곤 슬레이어와 같은 ‘장족의 사냥꾼’을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매해 나타난다는 하늘 범을 두고 새로운 사냥꾼이라도 뽑는 것이냐 묻자.

    해고의 이유는 이번 야월행에 나타나는 하늘 범이 환계에 존재하는 마지막 계체라고 한다.

    ―쾅!

    장족이라 불리는 사냥꾼이 바닥에다 솜사탕을 내팽개쳐버렸다.

    바닥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친 까닭에 동공이 약간 풀린 얼굴이다.

    ‘이, 자식이!’

    ‘…그만둬, 나서면 더 큰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이를 보고 참지 못했던 수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족의 사냥꾼에게 다가가려고 했으나, 옆에 있던 동료가 그를 말려 자리에 앉혔다. 다른 테이블도 비슷한 분위기다.

    한 번이라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장족의 사냥꾼은 정신이 나간 솜사탕을 다시금 집어다가 바닥에 강하게 내려쳤다. 이번엔 놓지 않은 채로 다시 허공에 들어 올렸다.

    ‘빌어먹을, 이러면 나서지 않을 수가 없잖아.’

    눈빛에 살의가 느껴진다.

    명백히 저 사냥꾼은 솜사탕을 화풀이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이 이것을 죽여도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낭자했던 울음소리가 멈춘 지 오래. 백안을 뜨고 게거품을 물고 있는 솜사탕.

    그 새하얗고 곱던 털이 멈출 줄 모르는 코피로 인하여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

    모두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흔들던 순간. 매몰차게 바닥으로 향하는 사냥꾼의 손목을 간단히 부여잡은 아이리스가 서 있다.

    고개를 내리깔았기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으나 음산한 마력의 주인은 분명 아이리스였다. 사냥꾼은 그것도 모른 채, 미간을 찌푸리며 아이리스의 정수리를 노려볼 뿐.

    “네년…. 친구가 죽는 모습을 구경이라도 하러 온 거냐. 근데 이걸 어쩌나, 너부터 죽어줘야겠는데. 으하하! 그렇게 무섭나,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악당의, 그것도 사망 플래그가 잔뜩 담긴 대사를 펼치는 장족의 사냥꾼이었다. …글쎄 많이 들어본 대사인 것 같다.

    2척이 족히 넘는 장족의 사냥꾼은 자신의 얼굴을 아이리스 옆으로 가져다 대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리스를 향해 섬뜩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빌어먹을 아이리스가 더욱 섬뜩했다.

    “…높군. 눈높이가.”

    “으응?! 뭐라는 거… 으, 윽, 억!”

    “꿇어라.”

    아이리스의 강력한 마력이 담긴 용언.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용과 같은 거대한 존재감이 사방에 퍼진다.

    묵직한 중력이 사방에 깔리자, 장족의 사냥꾼이 바닥에 무정하게 꿇어앉았다.

    “뭐, 뭐…야. 으윽!”

    “흐…. 억, 헉.”

    거친 호흡을 뱉으며 꿇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하는 장족의 사냥꾼이었다. 설마 아이리스는 정신지배를 하고 있는 건가! ……어, 어! 잠깐 이건?

    ‘그 대사만큼은 안 돼!’

    …….

    “이것이….”

    “너와 짐의 눈높이다.”

    다행스럽게도 장족의 사냥꾼을 포함한 그의 패거리는 바닥에 뻗은 채로 완전히 혼절한다. ‘이 자식…!’이라며 아이리스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간신히 일어나는 어느 악당은 되지 못했다.

    ‘저, 저자가 바로 우리가 찾던 노블레스(noblesse, 고귀한 신분)!’라는 말이 바로 옆 테이블에서 튀어나온다.

    따지고 보면 아이리스의 일족인 ‘블루아르헨’은 귀족이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지구에 거주하는 어느 분께 ‘죄송합니다.’를 중얼거리며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을 때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테이블과 바닥을 가렸다.

    아무래도 그 기척으로 인하여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자네, 누구에게 사과하는 건가?”

    “그게, 그… 당신은 설마 낭추?!”

    “그래, 여관 대문에서 꽤 설쳐주셨더군.”

    * * *

    폭풍전야가 지나니, 폭풍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순식간에 펼쳐진 모든 전개에 얼을 타기 바빴지만.

    다시금 술잔에 담긴 자향주를 보며 ‘붉은 용!’을 외치는 아이리스 덕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황은 나름 선한 분위기였는데.’

    일단은 예약했던 투숙객 시설로 아이리스와 베를리를 ‘에잇, 말썽꾸러기들!’이라는 말과 함께 내던져놓고는 구왕, 낭추와 이야기하기 위해 내려왔다.

    ‘낭추는 성질이 완전 더러워 보이잖아.’

    진정한 눈높이는 낭추와 마주 보며 앉아있는 본인이 경험하고 있다. 8척에 가까워 보이는 적갈색의 기린, 게다가 이족보행이다. 낭추의 앉은 높이 때문에 정면을 바라보면 명치가 있다.

    “그래, 자네가 아황이 보낸 사람이로군. 몇 시간 전 광귀에게 전달은 받았다. 우리 직원을 도와주었으니, 보답으로 ‘원하는 것을 하나’ 이야기해보게.”

    ‘다만, 자네 용 때문에 혼절해서 넘어진 수문장의 타박상 값은 빼겠네.’라고 덧붙인 덕에 ‘낭추 녀석, 굉장히 계산적이다. 짜증 날 정도로’라며 말했던 아황이 떠올랐다.

    “이곳에는 마법 부엉이의 수신이 가능한 장소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아, 그것 말인가. 낭추의 꼭대기. 내 방.”

    “급한 용무가 있어서, 혹시 그곳을 빌려도 괜찮을까요.”

    “참고로 수신이 가능한 장소가 아니라, 그 마법 부엉이가 특별한 것이다.”

    “낭추, 그렇다면 그 특별한 마법 부엉이를 한 번만 사용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 안 되지.”

    “예?”

    낭추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었고, 테이블 주위를 둘러 대화를 구경하던 일꾼들에게 ‘얼른, 야월행 준비를 해라. 내일이 시작인데 한시가 바쁘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내 보답으로 하나만 들어준다고 하였는데, 자네는 분명 마법 부엉이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데다 사용했으니, 마법 부엉이를 빌려주는 것은 ‘거래’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하….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 그래도 아황이 당신에게 부탁하면 도와준다고 했는데!”

    “허, 아황 녀석도 부유하는 구왕에서 이래저래 여유롭게 살고 있으니, 내게 빌어먹고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거늘. 그 양반의 부탁을 내가 쉽사리 들어줄 것 같으냐.”

    아황 마케롯의 얼굴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며 ‘짜증 날 정도로… 로… 로…’를 덧붙이고 있다. 얼추 정령왕과 비슷한 분위기라 믿음직스러운 느낌이 줄어들고 말았다.

    그 양반…. 이렇게 말하긴 안타까우나 자신이 놈팡이라 일컫던 정령왕과 흡사한 취급을 이곳에서 받고 있는 것 같잖아.

    결에 가까운 미래를 보는 자는 개뿔.

    그래, 이것은 이를테면 ‘아서와 정령왕, 낭추와 마케롯’같은 느낌. 따지고 보면 여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낭추와 나는 상당히 비슷한 포지션.

    나는 비슷한 입장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테이블에 머리를 강하게 박는다. 실은 아프니까 적당히 소리가 날 만큼 눈치껏 박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그 부엉이를 사용하려면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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