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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41화 (141/222)
  • 141화

    * * *

    “정말 미치겠군, 말이 됩니까?”

    “이봐 진정하라고, 아서.”

    “마법 부엉이가 돌아다닐 수 없다니요!”

    “환계는 미지와 환상의 공간이니, 그 정도는 당연하다.”

    “빌어먹을…. 방법이 없습니까?”

    마법 부엉이가 환계를 돌아다닐 수 없다고 한다. 운 좋게 공기에 존재하는 마력 파장을 뚫고 들어오는 마법 부엉이가 있다고 한들, 그것은 ‘환계 대륙’에 속한 것이지 ‘부유하는 구왕’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젠장, 큰일이야.’

    이곳의 상황을 전달해줄 수도 없을뿐더러 저쪽의 상황도 알 수가 없는데. 이래서야 베를리의 눈이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한, 고구마를 한없이 집어먹는 느낌을 받고 말 것이다.

    하물며 세계의 유산이 언제 각성할지도 모르고. 아황의 말을 따르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혹은 그 이상의 긴 시간이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사계의 멸망을 코앞에 두고서 초조해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에다. 델타는 정교에 의해서 완전히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 심지어 렌은 광화로 인해 마브리우스 산맥에 있으니….

    “이보게 아서, 방법이 있으니 심각한 표정은 삼가도록.”

    “…지금 삼가게 생겼습니까, 무슨 방법인데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유여관에 마법 부엉이를 수신받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

    “부유여관?”

    “부유하는 구왕이 운영하는 환계의 수인들을 위한 여관이지.”

    “부유하는 구왕은 우리가 밟고 있는 거북이 아닙니까?”

    “그건 마력으로 움직이는 녀석의 껍데기고, 또 다른 육체가 존재한다.”

    낭추(浪秋)란 물결 같은 가을을 의미하는데, 그 이름은 구왕의 또 다른 육체의 이름이었다.

    심지어 부유여관의 이름도 낭추(浪秋)라고 부르러, 마케롯의 수호자들은 이곳을 향할 때 ‘가을로 가자’고 말한다고.

    마케롯의 수호자들은 환계의 생태계를 조화롭게 하는 구왕과 아황을 수호하며, 이따금 휴식을 위해 낭추를 향한다.

    특히나 현시점에서 ‘야월행(夜月行)’이라 불리는 신비물들의 축제까지 끼어있단다.

    “낭추(浪秋)로 가라.”

    “긴 모험에는 여흥도 필요한 법.”

    “다만 낭추 녀석, 굉장히 계산적이다. 짜증 날 정도로.”

    “게다가 성격이 그리 우호적인 편은 아니라, 부디 조심하길.”

    아황은 우리에게 기적을 내린다. 그것은 환계에서 태어난 이들의 언어를 해석할 수 있게끔 하는 편의가 담긴 것.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낭추에게 말조차도 걸 수 없을 것이라는 아황의 판단이다.

    꼭 한마디라도 할법한 아이리스는 아무 말이 없었다. 별을 동공에 품고 있었다.

    놀이동산에 처음 가보는 아이의 표정을 본다면 분명 이와 같을 것이다.

    게다가 거기는 어디고, 뭐 하는 곳이며 무엇이 유명하다는 등의 자신의 과도한 정보를 늘어놓았다. 베를리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맞장구를 치느라 바쁘다.

    ‘품위를 지키기는 개뿔, 아주 신이 나셨군요. 아이리스.’

    * * *

    아이리스의 넓디넓은 등을 빌려 낭추로 향하는 하늘. 녀석은 델타에서 출발하기 전 베를리에게 신신당부했다.

    그것도 반은 협박 어조였다.

    ‘짐은 임자를 제외하고 아무나 태우지 않는다, 이번 딱 한 번만 예외니라!’

    그렇게 이야기했던 지고한 푸른 용은 어디로 갔는지, 고고학자 월키스의 서적을 토대로 베를리에게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으며 기분 좋게 비행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임자, 저것을 보라! 저것은’이라고 시작되는 설명에 귀나 후비며 듣는 태도가 몹시 불량한 나와는 달리, 베를리의 경우 ‘우와 정말 대단해요.’와 ‘역시 아이리스는 박식해요!’ 같은 아이리스가 흡족해할 수 있는 반응을 내놓기 때문이다.

    『저곳이 바로 낭추(浪秋) 흐르는 가을이라 부르는 곳이다. 구왕의 이름이 낭추였을 줄이야. 이것은 월키스도 몰랐던 부분이거늘!』

    『아주 멋진 곳이로다. 주위는 거목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마치 군주의 성을 떠오르게 만드는구나. 용사의 쉼터에 버금갈… 흠흠, 방금은 실수.』

    아이리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버금간다는 말은 칭찬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치게 멋진 곳이긴 했다.

    허공에 떠 있는 웅장한 지면 위, 붉은색의 길쭉한 여관이 건축되어있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여관보다는 무협 소설에 나올 법한 객잔을 닮아있다.

    베를리의 ‘마케롯의 수호자들이 저희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는데, 저들이 알아보면 어쩌죠?’라며 걱정을 했다.

    사실 마케롯의 폭포를 떠올리면, 방패를 서프보드처럼 이용해서 우리를 추격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이는 무려 아이리스의 ‘원주민 공포증’을 탄생시키기도 했으니까.

    ‘아황이 손을 써두겠다고 했으니, 문제없겠지.’

    ‘뭐, 자기 이름을 대면 괜찮다는데.’

    .

    .

    .

    [ 구왕의 부유여관 / 낭추(浪秋) ]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그. 그게….”

    “게다가 보랏빛의 눈이라,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자신을 수문장이라 칭하던 수인에게 마케롯과 친분이 있는 사이이며, 낭추를 만나러 왔다고 전했다. …그렇다.

    돌아오는 대답은 ‘내 손을 써둘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이라는 말과 상당히 거리감이 있다. 빌어먹을 당근 같은 아황!

    돌아오는 대답은 상당히 을씨년스럽고 냉담한 것임으로 부유여관 낭추를 기대하던 아이리스는 수문장의 멱살을 잡고 말았다.

    물론 그로 인해서 수문장의 임무를 더욱 집중시킨 것은 덤이다.

    “들어라, 어리석은 수문장이여.”

    “뭐, 뭐… 어리석은?”

    “감히 지고한 용의 출입을 막다니.”

    “퍽! 당신이 용이라면, 이 문을 열어드리겠소!”

    “오호라….”

    나는 고개를 내린 다음 본 장면을 보지 않는 것을 택했다. 베를리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숙여 딴 곳을 바라보기 바쁘다.

    이미 뒤에서는 ‘하, 하늘 범이다!’라며 꽥꽥 성대를 혹사하는 이들이 한가득.

    ‘으아, 제발 쪽팔리니까 적당히 해.’

    아이리스는 고개를 내린 우리들의 어깨를 탁탁 쳤다. ‘오호라’라는 말과 동시에 웅장한 변신 음이 연출되고는 정적이 이어졌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본다.

    “들어가자, 임자야. 해결되었다.”

    “해결되었다니, 전원 기절했잖아!”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이다.”

    “그냥 네가 부유여관에 들어가고 싶은 것뿐이잖아!”

    관자놀이를 누른다.

    아무래도 새로운 관자놀이가 필요하다.

    어디 유명한 가게에서 살 수도 없고, 브라운 아저씨에게 ‘아저씨, 새로운 관자놀이 하나만 만들어줘요.’라고 부탁한들 ‘으하하, 대장장이는 그런 거 몰러!’하고 대답이 돌아올 것이 훤하겠지만.

    조심스럽게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기절한 수인들 사이를 비집고, 낭추라는 말과 몹시도 어울리는 적갈색의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간다.

    형형색색의 찬란한 빛을 내는 불꽃들이 공중을 떠돌아 시야를 가득 채운다.

    여관 안을 바쁜 듯이 돌아다니고 있는 일꾼들은 야월행(夜月行)의 준비가 한창인지라 저마다 빠른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오오…. 굉장해, 굉장하군!”

    “어이, 들뜨지 말라고 푸른 용.”

    “그런 것 치곤 임자의 동공도 미친 듯이 떨리는구나?”

    “아니, 착각인데? 베를리가 더 심한데?”

    “아, 아서가 가리는 바람에 아직 구경도 못 했는데요.”

    중앙이 꼭대기까지 뻥 뚫려서 전고가 상당히 높아 보인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거대한 탑 안에 전 층의 중앙을 뚫어놓고는 층의 경계를 없애버린 것과 같다.

    그 중앙. 수없이 많은 등이 붉은빛을 내뿜으며 부유하고 있으니, 천천히 떨어지는 가을의 낙엽을 연상하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내벽을 둘러 꼭대기까지 연결된 계단을 타고, 아황 덕에 알아들을 수 있는 수인들의 수다 소리를 배경음 삼아 천천히 올라간다.

    “저곳에 앉는 것이 좋아 보이는구나, 임자.”

    “놀러 온 게 아니라, 낭추를 만나러 온 거다.”

    “끙, 아황도 여흥을 즐기라고 하지 않았느냐.”

    “시끄럽고, 저기 있는 직원한테 낭추가 어디 있는지 물어봐.”

    “뭐, 저기 보이는 솜사탕 같은 놈 말이냐?”

    “응… 네가 솜사탕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실로 솜사탕이 따로 없다. 크기는 조막만 한 것이 홉스보다 작고, 아이리스가 건들건들하게 다가가서 흉흉한 마력을 풍기고는 ‘너희 사장 데려와’라고 말했다간 금방이라도 아기 같은 울음보를 터트릴 것만 같다.

    “너희 사장 데려와라, 한입에 삼켜버리기 전에.”

    “…….”

    일단은 쩌렁쩌렁하게 울어대는 솜사탕, 그리고 그 직원을 달래느라 수고가 많은 베를리. 나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야유에 ‘저 망할 푸른 머리가 그랬어요.’라고 대답하기 바빴다.

    간혹 그 야유 속에서 ‘뭐야, 저 녀석들 인간 아니야?’라며 수상함을 표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으나,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의심이 낭자한 눈빛을 줄일 수가 있었다. 고맙습니다. 마케롯! 이름이 당근 같다는 건 취소니까!

    ‘끅, 끅… 사장님께서는 외출 중입니다. 끅, 흑.’

    ‘끅…. 난데없이 울어버려서, 죄송합니다.’

    솜사탕 직원이 울음과 함께 내어놓은 접시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담겨있었다.

    흘렸던 눈물이 솜사탕 같은 몸을 금방이라도 녹아내리게 할 것 같다.

    ‘…말씀하신 대로 낭추의 대표적인 요리들을 내었습니다.’

    아이리스가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것들로 가져오라!’며 으름장을 놓았기에, 사망 플래그를 피하기 위한 솜사탕의 노력이 깃든 메뉴라 할 수 있다.

    과연 인계에서는 구경도 못 하는 진귀한 음식들. 당장 옆에 있는 베를리만 해도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음식의 향연으로 황실의 자녀답지 못하게 침을 줄줄 흘린다.

    ‘이것 참, 배가 많이 고팠나 보네.’

    ‘하긴, 좋은 음식을 오랫동안 먹지 못했을 테니.’

    접시에 든 음식이 그녀로 인해 빠르게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을 보고는 ‘마시지 말고, 씹고는 넘겨야 하지 않을까?’라며 걱정을 덧붙이자, 황실의 영애라는 점을 망각했던 베를리가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흉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오히려 복스러워 보기 좋았는데, 체할까 봐.”

    눈물을 쏙 뺀 솜사탕이 자리에서 떠나고 색깔만 다른 솜사탕이 별안간 찾아와서는 술을 따라주었다.

    몸에 비해 안쓰러울 정도로 거대한 술통을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손님들에게 시음을 권유하고 있었던 것.

    이를 지켜보던 아이리스가 잔을 채우고 있는 붉은 색의 술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색깔만 다른 솜사탕을 향해 입을 연다.

    또 잡아먹겠다는 소리를 했다간 렌에게 동족포식을 부탁할 거니까.

    “술의 빛깔이 아름다운 것이 귀한 놈으로 보이는데. 짐이 네 녀석에게 이것이 어떠한 술인지 설명할 기회를 주겠노라.”

    “자향주(紫香酒)라고 부르러, 원료가 되는 쌀을 노을의 자연 마력으로만 숙성을 시킨 것으로… 손님 나리,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요놈은 다른 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진귀한 술이니, 얼른 드셔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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