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40화 (140/222)
  • 140화

    * * *

    [ 서대륙 델타 / 던전 할머니 여관 ]

    “아네스, 선생님께서 마법 부엉이 회신이 없습니다.”

    “내 알아보니 환계의 대부분은 마법 부엉이가 닿지 않는다더군.”

    “선생님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 괜찮은 겁니까.”

    “그쪽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게다. 우리는 우리 일에 최선을 다할 뿐.”

    “…알겠습니다. 아네스.”

    “걱정하지 말게, 아서는 네 검조차 손쉽게 막은 사내니까.”

    마법 부엉이. 사계의 거주하는 대부분의 이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통신 마법으로 마법 부엉이가 닿는 곳은 어디라면 어떠한 형태로도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며칠째 아서에게 보낸 마법 부엉이의 메시지가 대답이 없으니, 란베르크는 초조할 수밖에 없다. 환계를 따라가야 했던 것은 자신이 아닐까 하고 계속해서 선택에 대한 후회를 거듭했다.

    ‘아니, 선생님이 이곳에 나를 남긴 이유는 있을 터.’

    ‘지금은 휴식에 집중하자. 언제 올지 모르는 순간이니.’

    던전 할머니 여관, 호르게타 혁명단의 일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델타에 암흑이 도래한 뒤, 아네스가 운영하는 여관에서 ‘던전의 향기’나 마시며 약간의 담소를 나누는 게 그나마 있을 여유의 전부였다.

    본래 던전 할머니 여관도 베를리를 만난 이후 잠시 영업을 중단하려고 했으나… 용사의 쉼터도 휴업인 가운데 이곳까지 닫으면 혁명단의 인원은 어디서 휴식을 취하냐며, 으름장을 놓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비 보급담당의 ‘브라운’이다.

    결코 자기가 맥주 마실 곳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며, 으하하! 하고 웃는 브라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할매, 할매! 이것 좀 보라고!”

    “에구, 무슨 소란이냐.”

    “거참, 란베르크 선생도 보라니까!”

    “귀가 터질 것 같다. 닥쳐라. 프리실라.”

    란베르크와 아네스는 다음 작전에 관해 이야기 중이었다.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신기한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이들의 대화를 비집고 들어왔다.

    혁명단의 인원은 ‘델타의 늑대’를 제외하고 전원 평상복을 입고 있다. 물론 드래곤 길드의 제복도 아닌 완전한 평상복이다.

    그런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던 프리실라가 대뜸 옷을 들어 자신의 배를 까뒤집는다.

    여기서 란베르크의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는 행동을 취했는데, 실로 사람들의 웃음보를 터트리는 장면이었다.

    “나, 여기서 뭔가 생기고 있다고!”

    무슨 소리냐, 할미 눈엔 아무것도….”

    배를 주시하던 아네스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프리실라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별안간 정적이 이어졌는데, 여관에 있던 모든 혁명단 일원들이 맥주를 들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가히 대마법사 셀로닌의 경지인 공간 정지와 흡사할 정도로.

    “설, 설마…. 네 녀석, 선생님의 아이를 가져….”

    던전의 향기를 마시고 있던 레니가 전방을 향해 강하게 내뿜었다.

    물론 레니뿐만 아니라 ‘아서’를 아는 자라면 전원 그 자리에서 맥주 폭포를 만들어내기 바쁘다. 이어지는 사람들의 휘파람 소리가 감탄을 대신했다.

    ‘뭔가, 생기고 있다고?’ 프리실라 배에서 생기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많은 이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싱글벙글 입이 찢어지라 웃고 있는 프리실라를 보면 오지도 않은 미래가 걱정이다.

    아네스는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난 프리실라의 해맑은 표정을 보고는 ‘아이가 아이를 가지다니…’라며 멍한 표정으로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이미 란베르크는 백안을 띈 채로 앉아서 기절한 듯하다.

    여기서 레니는 이미 입술 위로 그림자가 내려앉아 일종의 흑막을 연상하게 한다.

    옆에 있던 아이나 마저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브라운은 손뼉을 치며 계속해서 웃고 있을 뿐이고.

    “…확실히 아서와 그런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면 아주 행복한 일이겠지만. 란베르크 선생, 백안에서 벗어나 자세히 보란 말이다!”

    프리실라가 란베르크 어깨에 손을 올려 몇 번을 당기니 빠져나간 혼이 되돌아온다.

    정신을 차리곤 ‘으악, 네 녀석 배를 그렇게 물끄러미 쳐다볼 만큼 이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그러니까 의외로 단단히 숙맥인 듯하다.

    “호오, 애송이 녀석. 이것은 세계의 유산이 아니더냐.”

    “맞아! 할매, 이건 세계의 유산이라고!”

    “아직 은은한 것이, 자세히 보이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어.”

    아네스가 프리실라의 배꼽 위로 은은하게 나타난 푸른빛의 문양을 바라본다.

    프리실라가 문신이나 애 장난 같은 낙서질을 해둔 것이 아니라면 정확히 세계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마땅히 축하할 일이 아니던가, 프리실라는 늘 강함을 원했고, 육신에 자리 잡히는 미지의 기관 ‘세계의 유산’을 갈망했으니.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맥주를 들고는 프리실라를 향해 ‘더 높은 등급을 위해서!’라며 큰소리로 외쳤다.

    헐레벌떡 일어난 레니가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바라보고 있던 쥬드가 피식하고 웃는다.

    델타가 어떻게 되었건, 사계가 마녀로 떠들썩하건, 그 어떤 재앙도 막론하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무르익어갔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이 시간이 영원하길 바라며. 맥주의 톡 쏘는 기쁨을 목으로 넘기고는 모두가 평화를 소원한다.

    “몸이 좋지 않아서, 먼저 들어가겠네.”

    “할매, 자꾸 죽는소리하지 마.”

    “요 녀석, 내가 언제 죽는소리를 했다고!”

    “으윽,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걸 보니, 백 년은 더 살겠군.”

    새로이 맞이할 제국의 미래를 위하여. 젊음을 대가로 전장의 고고한 늑대가 되었던 아네스. 그 모든 것을 대가로 내놓았으니, 나이가 들어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영이 버티지 못할 만큼 마법과 기술을 때려 부어다 굳이 삶을 억지로 연장할 필요는 없다. 죽마고우처럼 친한 척을 해대는 죽음이 이리 오라 하여도 그 누구보다 담담했다.

    미래를 위해 육을 불사르는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각혈이 줄어든 자신에게 대단히 감사를 전할 정도였으니.

    모든 늑대가 진심을 담아 그녀를 어미라 불러 한 점 부족함이 없다.

    .

    .

    .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잘 채비를 끝낸 아네스. 벽이나 책상 같은 곳에 수많은 사진이 조용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눈이 가는 곳에는 늘 사진이 있다.

    “비슷했지. 아니 똑같았다.”

    프리실라 복부에 자리 잡은 세계의 유산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의 문양. 희미하여 정확하다고 할 수 없으나 결코 모를 수가 없는 문양.

    어떠한 시련과 역경이 찾아와도 지금의 아네스가 존재할 수 있게 했던 ‘언덕을 오르는 늑대’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이에게서 피어나고 있었다.

    그 덕으로 자신에게 새겨져 있던 ‘언덕을 오르는 늑대’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알게 된다.

    거울 속에는 더는 100일 전장의 아네스는 없으며, 그저 혁명을 소원하는 늙은이의 아집이 비칠 뿐이다.

    ―사진, 아네스와 어깨동무를 한 3명의 사내. 아네스는 피식하고 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든다.

    그 순간만큼은 그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100일 전장의 아네스나 늑대의 어미가 아닌, 그저 먼저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는 그때의 아네스가 있다.

    “사킨보, 다르도라, 루픽스.”

    “긍지 높은 나의 전우들이여.”

    “이거 보게나, 하하.”

    “그래도 노튼의 성을 가진 아이랍시고.”

    “저렇게 지어미를 쏙 빼닮아버렸다니까.”

    “…프리실라, 프리실라. 우리가 사랑한 딸이.”

    * * *

    [ 마브리우스 산맥 ]

    용들의 시체, 하나같이 붉은색의 철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들이었다.

    대부분 사지가 비틀어져 있거나 그 거대한 것을 날아오르게 하는 흉흉한 날개가 사정없이 찢어져 있다.

    용의 시체라며 근사하게 표현하기도 애매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산맥 위의 탄 냄새를 풍기는 고깃덩어리에 불가하니, 그 주위로 붉은 머리 여인이 따분한 표정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하여간, 지치지도 않나 봐.”

    거대한 구멍 하나가 움푹 패 있었는데, 본래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전투 중 만들어진 산맥의 상처였다.

    온갖 잡다한 마법이 맞닿으며 모든 피해가 산에 남아, 그러지 않아도 흉흉했던 곳의 인상을 더욱더 짙게 만든다.

    접시 같은 구멍에는 지반 위로 올라온 용암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곳을 향해 걸어가던 붉은 머리의 여인이 옷가지를 하나, 둘 벗어던지고는 그곳에 나체로 들어간다.

    용암이 분명하나 얼굴의 반을 담그고 호흡을 뱉어 부글부글 거품을 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 하니,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지극히 평범한 목욕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러다가 붉은 용의 씨를 말리겠어.”

    “광화도 꾸역꾸역 눌리느라, 머리도 아프고.”

    “빨리 돌아가고 싶다. 마스터에게.”

    타닥타닥 불꽃이 튀어 오르는 용암 속에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본다.

    광활한 어둠에 별이 수놓아져 있어 황홀경에 빠져드는 붉은 머리의 여인이었다.

    멀리서 거룩한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스터와 장을 보러 다닐 때, 가끔 성당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비슷하다.

    성스럽고 밝으며 웅장했다.

    ‘아까 맞았던 상태 이상 마법이 풀리지 않은 건가.’

    이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에 엄한 귀를 탁탁 때려 청각을 고치려고 든다.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그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사방에서. 요연했던 멜로디가 이제는 눈앞에서 느껴진다. 목소리는 하나가 아닌 여럿이며 악기의 연주 하나 없이 이것은 오로지 성악의 구조였다. 마치 성가대가 성가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이거, 이거…. 다른 손님들은 초대한 적 없는데.”

    10명의 인간이 사방에 위치한다. 거리가 멀었지만, 허공에 맴도는 마력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그들의 살의는 거짓이 아니었다.

    정갈한 인상을 주는 푸르고 하얀 판금 갑옷을 입고서 기도를 하고 있다.

    그 뒤로 쭉 이어지는 성가대들의 합창, 마스터가 이따금 언급했던 헤르메딕트 성가대가 분명하다. 초대하지 않은 이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

    튀어나온 암반에 제각각 대열을 유지하며 서 있는 10명의 인간은 달랐다.

    이그리스 십자회. 뒤에 있는 성가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으리으리한 기운이 감돈다.

    세력의 규모와 각각이 지닌 힘을 고려해볼 때 쓸데없이 자신에게 없었던 유례없는 공포감이 찾아왔다. 사방에 울리는 거룩한 그들의 목소리가, 가사가, 저 붉은 용을 심판하겠노라 외치고 있다.

    “인간을 죽이지 않기로 했는데, 불쌍하게도 지금은 예외야.”

    “이렇게 찾아와서는 숙녀의 소중한 시간을 훔쳐보기까지….”

    “부끄러워서, 너희를 죽이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증거인멸이 중요하거든, 마스터가 알면 큰일이니까.”

    “근데 한입에 잡아먹으면, 그만큼 또 쉬운 게 없지.”

    “탕이 식는다. 슬 덤벼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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