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36화 (136/222)
  • 136화

    * * *

    [ 부유하는 구왕 / 광귀 동굴 ]

    ‘그래서 물음표였구나.’

    아이리스와 베를리의 손목을 잡은 채로 줄행랑을 치면 그만이었다. 지면으로부터 바위가 돋아나더니 보란 듯이 출구를 막는 것은 당연한 전개일까.

    입구가 막히는 것은 분명 침입자의 도주를 막기 위한 장치가 틀림없다.

    등 뒤가 바로 출구였는데….

    저 멀리서 매섭게 달려오는 광귀 두 마리. 붉은 눈은 대륙의 내로라하는 광전사와 같은 느낌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이후엔 광귀에게 몰려서 황천길을 건너는 식이겠고.’

    아이리스의 강력한 공격에도 벽이 꿈쩍하지 않는다. 이 벽은 동굴의 모든 마력이 이어져 있다. 게다가 아황의 축복이 깃든 곳이라면 렌이 아닌 이상 이 벽을 파괴하는 데 무리가 있어 보였다.

    ‘흉흉한 마력에 피부가 쭈뼛해진다.’

    아이나의 자료, 광귀의 두꺼운 가죽은 용살자도 베어내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드래곤과 비등한 전투력을 지닌 개체가 아니냐는 말도 있다.

    나는 광귀를 끌고 온, 빌어먹을 아이리스를 쳐다보았다. ‘아하하, 아니 글쎄, 마력의 크기가 짐보다 클 줄이야.’라며 꼬리를 내렸지만.

    ‘임자야 짐은 사실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용이니라.’

    불필요한 대화는 잠시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쓴 소리를 내자, 아이리스가 주눅이 들었는지 고개를 숙이며 ‘이곳에서는 짐이 용으로 변할 수도 없지 않은가.’라고 속삭인다.

    “알았어, 동굴이 협소하니까 그런 거잖아.”

    “쳇, 알면서 꼭 그런다니까.”

    “원거리 마법으로 엄호하고, 일단은 베를리를 지켜 줘.”

    “저 녀석들은 매우 강하다. 섣불리 접촉해서는 안 돼.”

    두 마리의 광귀는 잔상을 남기며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가 도망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천천히.

    그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온다.

    “그래, 지금의 내 상태로 이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야.”

    “임자, 아무래도 마안의 사용은 무리인가?”

    “맞아, 게다가 강제적으로 마안의 출력을 제한할 거다.”

    나는 아이리스가 만든 강도가 높은 얼음으로 검을 대신했다.

    용살자의 무기도 광귀의 피부를 뚫지 못한다는데, 그저 강철로 연마된 검은 턱도 없다.

    ‘마력 중첩, 강도 강화.’

    ‘중첩, 중첩.’

    역시 드래곤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이라 마력이나 마법을 여러 겹으로 중첩해도 끄떡없다. 수 없이 마력이 중첩된 이 날카로운 얼음은 일회용 용살검 같은 느낌이다.

    “크르르르….”

    잔상의 일각이 눈에 잡힌다.

    두 마리의 늑대가 빠른 속도로 나를 공격해왔고, 그 격을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아직은 가능하다. 광귀들의 매서운 손톱 끝을 눈이 따라간다.

    ――.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쥐고 있던 얼음과 강철보다 단단해 보이는 녀석들의 손톱이 부딪치는 소리가 베를리의 귀를 아프게 했다.

    흉흉한 마력이 담긴 공격 속에 자연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 일전에 아이나가 말했던 것처럼 녀석들의 몸속에는 환계의 기운이 가득하다.

    웬만한 사람들은 따라갈 수 없는 속도, 렌이나 란베르크가 있었더라면 자칫 내가 맞을까 봐 얼음 화살을 쉽사리 쏘지 못하는 아이리스를 대신 할 수 있었을 텐데.

    ‘물론 이해는 한다. 마케롯의 쌍생아, 광귀.’

    ‘란베르크를 웃도는 속력이니, 말 다 했지.’

    두 마리의 인간 늑대는 일격을 서로 교차했다. 한 마리의 공격을 어렵사리 막으면 하단으로 또 한 마리의 공격이 들어왔고, 두 격을 반복해서 막다 보니 눈이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한다.

    ―쾅!

    녀석은 거대한 팔을 휘둘러 내 복부를 강타했다. 인간 포탄처럼 날아가 벽에 꼬라박은 탓에 귓가에 ‘찡――’하는 소리가 울려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어지럽다.

    시야가 흐리다.

    “임자야!”

    “아서 님!”

    “…젠장. 요즘 많이도 굴러지네!”

    나는 입가의 핏물을 닦아내며 두 마리의 광귀를 직시하고는 ‘이거 참, 이렇게 상대하기 벅찰 정도라니.’라며 입을 열었다. 이어서 내게 달려오려는 아이리스와 베를리를 멈춰 세운다.

    ‘기다려, 너희가 붙으면 더 불편해진다고.’

    가속 마법을 중첩했다.

    신체가 기적에 의해서 어느 정도 상향 보정을 받아, 평소보다 두 배는 많게 중첩을 시도한다.

    ―치――――잉!

    광귀의 강력한 일격.

    쥐고 있던 아이리스의 얼음이 닿을 때마다 바닥을 강하게 울린다. 발끝으로 그 진동이 흘러 내려갈 정도로.

    ‘묵직하다.’

    ‘잘못하면, 압사하겠어.’

    상향 보정된 육체로도 녀석들의 격을 받는 것이 묵직하다고 느껴질 정도라면….

    보정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 확실하다. 온몸에 있는 뼈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정말, 무식할 정도로 빠르잖아.”

    “컹컹, 컹컹. 컹컹!”

    “근사한 분위기와 다르게 짖는 건 소심하네, 똥개야.”

    마력의 과다 출력 현상.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는 눈과 입. 그곳으로부터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마력의 기운은 동굴의 내부를 어지럽힌다.

    탁한 마력을 버티지 못한 베를리는 약간의 구토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혼절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녀의 정신력도 대단하다 볼 수 있다.

    ‘정말 곤란해.’

    ‘점점 빨라지고 있어.’

    간신히 한 마리의 광귀를 바닥에 처박는 데 성공한다. 발바닥으로 녀석의 머리를 강하게 밟아, 얼음에 일격을 위한 강한 마력을 실어 형인지 동생인지 모를 광귀를 향해 쾌속 이동한다.

    ―!

    별안간 동굴 후방이 강력한 검기에 의해 쑥대밭이 된다, 공격을 멈춘 광귀, 검기의 방향에 따라 피가 횡으로 터지며 천장에 있는 종유석을 적셨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이리스가 소환한 수십 개의 굵직한 얼음 창이 광귀의 몸을 뚫는다. 수십 개의 창에 찔려 있는 광귀는 마치 밤톨을 연상케 한다.

    “…한 마리 끝.”

    “자, 다음.”

    뒤를 돌았을 때는 이미 또 한 마리의 손톱이 내 얼굴을 향하고 있었고, 얼음을 일자로 세워 간신히 막는다. 그 무력에 의해 지면을 타고 뒤로 쭉 밀려 나간다.

    “임, 임자야 뒤를 보거…!”

    ―!

    “……!”

    등 뒤가 뜨겁게 타올랐다.

    허리로부터 날붙이에 의한 자상의 통증이 깊게 느껴진다.

    강한 충격으로 인하여 고개가 뒤로 젖혀지니, 죽어야 마땅했을 광귀가 붉은 눈을 일렁이며 나를 직시하고 있다.

    [ 일부 기관(신경계)의 치명적인 파손 발생 ]

    [ 일부 기관(골격계)의 치명적인 파손 발생 ]

    [ 일부 기관(근육계)의 치명적인 파손 발생 ]

    [ 치명적인 소상을 막기 위한 육체의 수복을 요구함 ]

    기적을 방자한 신의 저주가 귓가에 울렸다. 은퇴 이후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를테면 뒤지기 일보 직전일 때 들리는 소리였다.

    [ 해당 기관을 ‘재생’시키기 위해 ‘EX 랭크 : 레노브의 손길’ 결속 ]

    [ 오류, 하향 조정 발생, ‘EX 랭크 : 레노브의 손길’ 결속할 수 없음 ]

    [ 의식에 따라 육체의 수복 대신 다른 목록을 선정 ]

    [ 해당 장기(눈)에 과부하 발생 / 마안 결속 강제 출력 가능 ]

    [ 육체의 운동신경을 증대시키기 위해 ‘S랭크 : 잔광의 마안’ 결속 ]

    육체의 수복 대신 신체의 운동신경을 증대시키는 마안을 결속했으나, SS랭크조차 터무니없었는지 고작 S랭크가 눈에 결속된다.

    “가속 마법 중첩.”

    이를 열 번 반복했다.

    시야가 좁아진다. 육체의 치명적인 손상을 회복하기 위해 심장이 마력을 뱉어내기 위해서 펌프질하는 데다 가속 마법을 중첩했으니 타당하다.

    “…아, 아이리스. 마력을 보충해 줘.”

    “암! 내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

    “…이 마력 은행 같은 녀석. 하하.”

    ‘잔디에서 얻었던 마력을 뱉어낼 시간이야, 푸른 용’이라는 말과 동시에 두 마리의 광귀에게 달려든다.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잔상을 남기며 쾌속으로 접근한다.

    베를리는 이를 보며 아무 말을 하지 않았으나, 이내 미간을 찌푸리고 전장의 흐름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눈으로 전투를 담을 수 없으나, 난제를 지혜롭게 대처하려고 했다.

    다시 격을 주고받는다.

    잔광의 마안 덕분에 몰아치는 공격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정도면 가능하다.

    “이봐 똥개, 이제 지치나 보지.”

    “크르르…. 크르르르….”

    두 마리의 광귀로부터 마력의 파편이 모이기 시작했다. 파편이 연기 같은 유기체가 되어 몸으로 계속 흡수하고 있다.

    ‘뭐야…. 저건.’

    종유석, 천장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백 개의 종유석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녀석들은 종유석의 마력을 흡수하고 있다. 왜?

    ―.

    광귀의 별안간 일격,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칭

    보여서 막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구멍 속에서 지금까지 몸에 기록된 경험이 기적처럼 일어난 것. 기적을 온전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나에게 어쩌면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리스, 종유석을 얼리세요!”

    “알겠다!”

    종유석의 빛으로 내부가 밝을 수 있던 동굴이 아이리스의 얼음으로 인하여 간신히 그 빛을 유지했다.

    광귀가 더욱더 빨라질 수 있는 원천이 차단되었으나, 이전보다 빨라졌다는 것은 다를 바 없다.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게, 땅을 얼려야 해요! 아이리스!”

    “이곳을 짐의 영역으로… 장악한다!”

    지혜로운 베를리의 판단이 옳았다. 사방이 얼음으로 뒤덮인 탓에 광귀가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전과 달리 균형을 잡기 힘들어 보인다. 그 기세를 몰아서 다시금 공격을 시도한다.

    “가속 마법 중… 첩!”

    “가속… 마법, 중첩!”

    “중… 첩.”

    광귀를 향해 일격을 하나하나 쏠 때마다 가속 마법을 중첩했다.

    이미 발끝에 감각이 무뎌갈 정도로 마력 유동이 도를 지나친다.

    금세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하는 광귀들, 점점 격을 받아내는 것이 수월해 보인다.

    그 허점을 찾아 계속해서 베어나가니 녀석들의 두꺼운 가죽도 조금씩 찢어지기 시작한다.

    ‘백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

    스위칭하며 공격해오는 두 마리의 늑대, 고도의 집중을 통해 같은 곳을 베어낸다.

    잇따라 반격에 의해 실패하는 공격도 잦다.

    ―쾅! ――――카, 강!

    ―쾅! ――――깡! ――깡!

    검을 구성하는 얼음의 강도가 떨어지고 있다. 녀석들이 미끄러운 바닥에 적응하면 할수록 받아쳐 내는 격이 많아졌기 때문에 당연한 일.

    그러나 깊은 상처를 입고 있는 광귀들도 마찬가지였다.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출혈을 치유하기 위한 심장의 마력 재생 기능 때문에 신체 능력을 하향시킬 수밖에 없다.

    ‘신체 강화, 중첩.’

    ‘한계 무력, 해방.’

    광귀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차 벽으로 던진다.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인하여 바닥에 고꾸라지더니 미동도 하지 않는다.

    요새를 단숨에 함락시켜버리는 무력을 해방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 일부 기관(근육계)의 치명적인 파손 발생 ]

    [ 일부 기관(골격계)의 치명적인 파손 발생 ]

    “…젠장, 다리가 완전히 결딴났잖아.”

    대신 오른 다리가 완전히 박살 나서 상체를 지지하기 힘들어지고 말았다. 수복하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릴 듯했다.

    남은 한 마리의 광귀가 이미 혼절해 버린 형제를 보더니 나를 향해 괴성을 지르고,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한다.

    마지막 심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가속 마법을 중첩하여 녀석의 격을 모조리 받아치고는, 손아귀로 녀석의 주둥이를 잡아 바닥에 내려친다.

    이 말도 안 되는 전투에 기적 같은 승리를 거머쥘 준비를 한다.

    땅으로 처박힌 광귀의 목 뒤를 베어내 완전히 숨통을 끊어버려야 한다.

    마지막 기회.

    또 다시 시야가 흐릿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으나, 더 이상의 부활코인을 방자한 기적 따위는 내게 없다.

    ―콰―――직.

    “……빌어먹을.”

    간과했다. 얼음의 강도를 높이기는커녕 육체에 능력치만 올렸으니, 그 무력을 따라갈 수 없다. 내구력이 다된 얼음은 허공에서 산산조각 흩어졌다.

    “크르르….”

    그리고 광귀가 서서히 일어서며 그 거대한 몸으로 내려다본다. 오랜만에 죽음을 마주하는 감각이 스치자, 혼절해 있던 또 한 마리의 광귀도 정신을 차리며 일어선다.

    앞은 어둠이다. 의식이 날아가기 직전, 귓가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지 모르겠으나 여유로운 발걸음이 지금 상황에 턱이나 어울린다.

    이미 한쪽 다리는 손쓸 수 없고, 지탱하고 있던 나머지 다리마저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금의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과 다를 것이 없기에, 육체의 감각으로만 판단한 사실이다. …큰일이다. 여기서 내가 쓰러지면.

    “워, 워….”

    “네 녀석은 누구냐, 임자를 건든다면 가만두지 않겠노라!”

    “거참, 개 주인이라만.”

    누군가가 성난 강아지를 달래듯 ‘워, 워’라고 말하자 광귀의 폭발적인 마력 유동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시야가 흐려진다. 내 몸이 무정하게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

    .

    .

    [ 육체의 자가 수복을 위한 강제력 발생 ]

    [ 대상자의 의지를 일시적으로 차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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