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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35화 (135/222)
  • 135화

    * * *

    구왕의 뱃고동 같은 울음소리가 지면을 울렸다. 변태 같은 나비 부족을 떨치고 간신히 구왕의 섬에 도착한 우리.

    울창한 정글 같은 곳에 떨어져서 오랫동안 땅을 굴렀다.

    ‘젠장, 아이리스. 너무 대충 착지했다고!’

    숨을 가쁘게 내쉬며 ‘끔찍한 녀석들이었어.’라는 말을 동시에 내뱉는다.

    지고한 푸른 용께서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생명체라며 손사래를 쳤고, 베를리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자 아황을 찾아볼까….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이네, 베를리.”

    “후, 아닙니다. 점점 속이 괜찮아지고 있으니.”

    “아이리스, 아이나가 줬던 지도 좀 줘봐.”

    “…?”

    아황을 찾기 위해서 아이나가 수집해준 정보는 상당히 유용했다. 하물며 아이나가 밤을 지새우고 온갖 고대 서적을 뒤지며 탄생시킨 지도는 더욱 유용한 것이었다.

    에녹에서 마케롯의 폭포까지 이동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이 그 지도였다.

    아이리스도 이를 보며 고고학자의 서적 중에서도 최대한 신빙성이 있는 것들로만 조합한 지도라고 했다.

    그리고… 이 소중한 것은 아이리스의 가방에 있다.

    그것은 소중한 지도를 담아두는 가방. 파손의 염려가 다분한 재질이 아닌 다차원 주술이 적용되어있는 마법의 일종으로, 아이리스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가 그것을 의미했다.

    “뭐, 뭐라고 말 좀 해봐.”

    “임, 임자야….”

    “…제, 제발 그것만은 안 돼!”

    “…잃어버렸다.”

    “야 이, 망할 *&@#&@#*!!!”

    * * *

    [ 부유하는 구왕 / ??? ]

    동굴, 아서에게 꿀밤을 맞아 혹이 3개가 올라온 아이리스가 동굴 내부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는 중이다. ‘지고하신 이 몸께서 열매나 찾고 다녀야 한다니.’라며 구시렁거리는 것도 물론이다.

    “모멧티도 뺏어 먹었으면서. 쳇.”

    “…쳇, 쳇!”

    푸른 용은 원통하다.

    모멧티를 훔쳐 먹은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아서라는 이유만으로 그 분노를 가라앉혔다는 점을 몰라주니 더욱더 서러울 수밖에. 괜스레 맞은 혹이 알싸하게 가렵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생명체는, 임자일 것이야. 암.’

    이 웅장한 동굴은 사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공간. 내부에서 자연 마력이 순환하여 벽에 종유석이 돋아나 있다. 분명 수집가에게 팔면 거액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호흡만으로도 건강을 되찾는 기분에다가, 내부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음에도 종유석이 발산하는 자연 빛으로 인하여 사방이 푸른빛으로 경쾌하다.

    일단은 은신이라는 명목으로 동굴에 들어왔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먹을 것이 없다는 점에서 아이리스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먹을 것을 들고 가지 못한다면 큰일이다.

    아서는 동굴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리스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허기를 채울만한 걸 가져와라.’는 부탁을 했다. 정확히는 명령이었지만 아이리스는 부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들은 종유석에 맺힌 이슬이라도 공병에 담아 식수로 쓰고자 동굴 내부를 탐사하며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아마도 아서는 ‘동굴에서 차라리 미아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 용.’이라며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임자는 정말 무식하다.”

    “내가 돌아다닌다고 음식이 나오나.”

    동굴 내부가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었는데 이를테면 개미집과 유사했다.

    푸른 용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구멍을 죄다 들어갔으나, 이렇다 할 먹을 것을 찾지 못했다.

    “쳇, 임자에게 돌아가야겠어.”

    “여기에 뭐가 있….”

    방금까지 했던 말은 취소.

    이것은 아서에게 포인트를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나무가 주렁주렁 안고 있는 열매의 개수를 센다.

    ‘1점, 2점….’ 부유 마법을 사용해 인간의 몸으로 열매를 따기 시작했다. 용으로 변하기에는 나무가 있는 이 구역이 너무나도 좁다.

    “어느 세월에 다 따는가, 이건 짐에게 맞지 않는 방식이야.”

    “에잇.”

    아이리스는 나무를 발로 찼다. 대부분의 열매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단단히 버티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아니 아이리스의 발차기를 버텨낸 녀석들이 있다.

    “요 녀석 보게, 짐을 무시하다니.”

    몸채를 잡아다가 난데없이 흔드는 아이리스 덕에 나무는 열매 하나 남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이 되어버렸고, 장사해도 될 만큼 바닥에 열매가 삼라하다.

    ‘이걸 어떻게 들고 간담.’

    용으로 변할 수도 없는 노릇에다, 몇 개만 들고 가기도 뭣하고. 하물며 아서와 베를리를 데려오기도 쉽지 않을 듯했다.

    턱을 잡고서 고민에 빠지던 찰나.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서 황금빛의 눈을 일렁거리는 이들이 나타났다.

    ‘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주변에 마력 유동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동굴의 짙은 마력 유동 때문에 저들의 기척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이리스의 사방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아득히 많은 수인이 둘러싼다.

    “파라카파 하타, 카로쉬!”

    “흐음, 그러는 너희는 무엇이냐.”

    “마카레이 오돔파!”

    “호오, 너희들이 ‘마케롯의 수호자’이더냐.”

    “카라카, 카라카!”

    “짐을 죽인다니, 가소롭군.”

    그러지 않아도 나비 부족으로 인하여 온갖 수렁을 겪은 터라, 푸른 용은 단단히 화가 나 있다. 게다가 아서에게 바칠 열매를 보더니 ‘아황의 것’이라며 말하는 저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소리 없이 시작되는 전투, 아이리스는 협소한 공간이라는 환경요소 때문에 용으로 변할 수 없다는 페널티를 안고 있었지만. 오만한 표정을 보아 전혀 문제가 없다.

    “그래도, 꽤 강하게 생긴 녀석들로 모여 있구나.”

    “짐의 존함은 드래곤오브 블루아르헨 블레아스 아이리스.”

    “용으로 상대할 가치도 없으니, 이 형태를 유지하겠노라.”

    “어서 덤벼라, 빠짐없이 도륙을 내주마.”

    마케롯의 수호자들은 아이리스에게 별안간 덤벼든다. 그러나 조금도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생성된 발사되는 날카로운 얼음 창이 그들을 무자비하게 뚫는다.

    “그런 같잖은 공격으로는 짐에게 닿을 수 없거늘.”

    푸른 용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앞에 있던 수호자가 죽어버리면, 뒤에 있던 수호자들이 계속해서 아이리스에게 덤벼든다.

    ―캉. ――캉!

    애석하게도 날카로운 얼음 창에 뚫려 구멍만 늘어날 뿐. 창이 수호자들을 뚫고 동굴 벽에 강하게 박힌다.

    나비 부족을 제대로 상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저 아서가 ‘불살’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카…. 카, 라카!”

    “이거 참, 제법 쓸 만한 재생능력을 갖췄구나.”

    “좋다, 영원히 얼어버린다면 어떻게 재생하겠느냐.”

    “…카라카, 카라카!”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군. 나름 우호적인 용이 되려 했는데.”

    푸른 용은 조금도 봐줄 생각이 없다. 그 누구도 이곳에서 아이리스에게 참견할 수 없다.

    용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아서도 먼 곳에 있으니 마력 유동에 반응하지 못할 것이다.

    “고유영역 조성마법.”

    “그 이름, 대지를 얼리는 빙결화원.”

    “이곳을 짐의 영역으로 장악한다.”

    차가운 공기가 공간을 완전히 머금었다. 아이리스로부터 사방이 얼음으로 뒤덮이자 지면에 서 있던 마케롯의 수호자들은 별안간 얼어붙고 만다.

    ―.

    허공에는 푸른색을 띠고 있는 수백 개의 마법진이 형성된다. 금방이라도 얼어붙은 적들의 심장을 금방이라도 뚫고 지나갈 듯이 얼음 창은 고개를 내민다.

    고도의 마력이 밀집된 형체. 하물며 원소의 기운을 담고 있다.

    수백 개의 얼음 창은 빠른 속도로 적들을 향해 날아갔으나, 어떠한 이유로 닿기 직전 간신히 멈춰 선다.

    아이리스의 검지는 일종의 지휘봉. 의지에 따라 목표물을 끊임없이 유도하여 쫓아가는 얼음 창. 그것을 지휘하는 가녀린 손가락이 ‘기다려’라고 말했다.

    “젠장, 짐도 물러 터져버렸군.”

    “이게 다 임자 때문이야.”

    자신에게 대항한 존재의 생명을 거두는 일 따위는, 지고한 용에게 있어 별 볼 일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아서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어느 시점부터 ‘아황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존재들.’로 판단하고 만 것이다. 아이리스, 이 또한 여관 생활의 영향이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크흠, 열매만 들고 가면 문제 될 것은 없으니.’

    ‘특별히 살려 주는 것이니라.’

    가벼운 웃음을 짓고는 얼어붙은 마케롯의 수호자들을 원상태로 돌려놓는다.

    웃음의 의미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이없음을 표하는 것이었다.

    얼어붙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마력을 모조리 사용해버린 탓에 얼음이 파괴되자 백안을 띄며 땅바닥에 하나둘 쓰러지는 마케롯의 수호자들.

    “그나저나, 이 거대한 마력은 누구의 것인가.”

    “짐의 앞에서 보란 듯이 마력을 자랑하다니.”

    “가소롭다. 당장 그 얼굴을 보여라!”

    * * *

    “아하하, 정말 재밌는 분들이 여관에 계시는군요!”

    “재밌다니, 하나같이 나사가 빠진 사람들밖에 없는데.”

    베를리와 적당히 동굴 내부를 돌아다니며 입구로 향하는 중이었다. 베를리는 ‘아이리스께서 길을 잃으셨는지 감감무소식이네요.’라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미아가 되길 바란다고.’

    ‘그걸 노리고 온 거야, 베를리.’

    이런 거대한 동굴에 음식이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푸른 용은 반성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네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벽 보고 서 있어!’와 같은 것이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여관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아하하.”

    “…멀쩡한 사람은 이 여관에 취직할 수 없어.”

    “멀, 멀쩡한 사람은 여관에 취직할 수 없다니요?”

    제국 하나 정도는 우습게 초토화할 수 있는 드래곤, 술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정장을 착용한 해골, 하물며 다른 차원에서 불려와 세계의 파국을 막은 한국인도 용사의 쉼터에서는….

    ‘한심한 개그 캐릭터가 될 뿐.’

    제국의 다음 통치자가 될 훌륭한 인물이 멍청이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뿐더러, 베를리의 이면을 보고는 다음부터 이름 앞에 ‘빌어먹을’이라는 문장을 붙이고 싶지 않다!

    “제국을 바르게 이끌기 위해서, 공부나 하라고.”

    “아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그리고, 외곽에 있는 마을을 신경 써주길 바랄게.”

    베를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외곽에 있는 마을이라고는 했지만 ‘레르 마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델타 3세 주변으로 뱀의 혀를 두른 권력자들을 떠올린다.

    델타를 훌륭한 제국으로 변모시킨 위대한 민족의 터를 손 놓고 있었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얼굴에 녹아들었다.

    “권력을 지닌 사람의 주변에는 못된 놈들이 많은 법이야.”

    “제가 반드시 뒤를 이어….”

    “왜 그래 베를리?”

    “잠시, 이게 무슨 소리죠?”

    “무슨 소리라니, 아무것도 들리….”

    “…저, 저기!”

    동공이 커진 베를리,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은 머나먼 동굴 끝자락.

    그곳으로부터 ‘임자아아아아!!’라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품위를 중시하는 녀석이 볼품없이 달려오고 있다.

    “아, 아, 아, 아서! 아이리스 뒤에 따라오고 있는 저건!”

    “…아, 아.”

    반성 차원에서 아무것도 없을 법한 동굴에 던져놓고 열매를 가져오라고 시켜놨더니.

    아하하, 녀석… 반항심이 대단해.

    광귀를 데려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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