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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랭크의 여관주인-134화 (134/222)
  • 134화

    * * *

    나비 부족. 해가 뜰 때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춤을 췄다.

    절벽 앞에 놓인 제단, 그곳에 배치된 거대한 공물 마차를 둘러싸고 ‘움바타!’를 외친다.

    아이리스의 말로는 ‘신이시여!’라는 의미라고. 중간마다 ‘우라트!’라는 말도 들렸는데, ‘사랑합니다.’라는 뜻으로 마케롯에게 전하는 숭고한 마음이란다.

    ‘개뿔…. 언제까지 추는 건데, 체력만 보면 S등급 이상이잖아.’

    나도 모르게 ‘우라트’를 속삭이며 퀭한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린 번갈아 가면서 잠을 자고 어렵사리 하루를 버텼는데…. 저들은 도대체 무슨 힘으로 쉼 없이 춤을 출 수 있는 걸까.

    “흐암…. 임자야, 어떻게 되었느냐.”

    “어떻게 되긴, 저 미친놈들 아직도 추고 있어.”

    “…대단한 놈들이구나, 날이 이렇게 밝았는데.”

    베를리가 다가와 ‘피곤하진 않으신가요?’라며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열매를 꺼내더니 내게 먹으라며 권유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냉큼 받아다가 한입 베어 문다.

    과즙이 적셔준 덕에 입안에 쌓였던 단내가 단숨에 날아갔다. 다시금 나무 뒤로 숨은 뒤에 나비 부족이 행하는 광란의 파티를 감시한다. 그래 봐야 춤 밖에 추질 않으니 감시랄 것도 없다.

    “임자야 나도 줘.”

    “시끄러워, 넌 어제 다 먹었잖아.”

    “…아, 아이리스. 제 것이 하나 남으니 드세요.”

    “그러지 마, 버릇 나빠진다고.”

    “임자도 어제 다 먹지 않았느냐!”

    “베를리를 재우고 내가 대신 그만큼 보초를 섰잖아!”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이었다. 저 빌어먹을 나비 부족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을 경계해야 했기 때문에 보초를 서자는 베를리의 의견을 토대로 불침번을 정한다.

    ‘베를리, 내가 대신 설게.’

    공주는 지금까지 온갖 암살자에게 쫓기느라 늘 긴장 상태로 버텨왔는데, 델타가 아닌 곳에서 잠을 자는 것보다 안정적인 것은 없다. 그녀는 긴장을 풀고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해야 했다.

    게다가 베를리의 경우는 체력적으로 충분한 관리가 되어야만 이 여정을 계속할 수 있는 일반인, 이대로 가다간 여정을 끝내기도 전에 과로사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베를리 대신 내가 자처하여 불침번을 선 것. 하물며 저 빌어먹을 용에게 ‘같이 좀 서주면 안 될까?’라고 분명 부탁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긴, 성격 좋은 공주가 욕심 많은 용에게 남은 열매를 주려는 것을 보고는 ‘버릇 나빠진다.’고 방해하는 여관주인을 보고도 궁금한 것인가.

    ‘짐 같이 밀도가 높은 두뇌를 가진 생명체는 충분한 수면이 생명이거늘!’

    관자놀이를 누르며 ‘그냥 너도 렌처럼 마브리우스 산맥으로 가버리는 게 어때.’라고 말하자 ‘아이리스 해안이 아니라, 어째서 마브리우스 산맥인가?’라는 물음을 표했다.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상성이 맞지 않는 환경에 노출되면 빨리 뒈지지 않을까 싶어서.’라는 말을 더했다.

    저 지독하고 몹쓸 용이 꼭 들어줬으면 하는 말이었는데, 아쉽게 듣기 전에 곯아떨어지더라고. …꼭 들어줬으면 하는 말이었는데.

    케미가 좋다니, 그딴 소리는 금물이다. 예전에 말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언젠가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면 반드시 찾아갈 거라고 말이야.

    “임, 임자. 그만 노려보거라.”

    “…싫은데.”

    “모두 저길 보세요! …폭, 폭포가!”

    숲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절벽, 강하게 내리치는 폭포의 물줄기가 중력이 역전되듯 하늘로 치솟고 있다. 비몽사몽은 없어지고 별안간 정신이 빠짝 든다.

    온종일 춤을 추만 있었던 나비 부족도 이것을 보더니 하던 것을 모두 멈춘 뒤, 양팔을 들어 이상한 고대어를 외치기 시작했다.

    등에 차고 있던 나무 방패를 들어다 환호를 하는 자들과 마차를 절벽 끝으로 밀기 시작하는 자들로 나뉘었는데, 후자의 경우 춤 때문에 힘이 빠진 터라 마차를 미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움바타, 움바타, 움바타!”

    “움바타, 우라트!”

    그리고 저 멀리서 구름을 뚫고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를 보고 있던 베를리는 입을 벌리고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륙만 한 거북이가 천공을 누비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이 타이밍에 맞춰 거대한 마차가 절벽으로 어렵사리 떨어졌고, 폭포가 그것을 안고 하늘로 쏘았다. 부유하는 구왕은 서서히 절벽 위에 가까워졌다.

    사방으로 물이 튀어 절벽이 젖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계속해서 마차들을 밀어 대공으로 쏘는 나비 부족.

    옆에서 꾸벅 졸고 있던 아이리스에게 ‘일어나!’를 외치며 단잠을 깨운다.

    “흐, 흐에.”

    “흐에가 아니야, 지금 구왕이 떴어!”

    “…구, 구왕! 그게 사실이더냐 임자야!”

    아이리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는 ‘저, 저것이 진짜 구왕의 모습’이라며 탄성을 냈다.

    웅장한 대륙은 거북이를 닮아있었고, 그 등에는 생태계가 존재했다. 숲이며 산이며 온갖 자연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리스, 출발하자!”

    아이리스는 대답도 필요 없다는 것처럼 드래곤으로 순식간에 모습을 바꿨다.

    그 여파로 인하여 나무가 들썩이고 크나큰 진동이 울렸으니, 멀리 있던 나비 부족이 시선을 옮겼다.

    “아라마, 카라카!”

    묵직한 뱃고동 소리가 사방에 울린다. 이들 중 하나가 비상사태를 전원에게 알린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머지 인원들은 우리를 향해 ‘카라라!’를 외친다.

    이를테면 죽여 버리자는 뜻과 같은 끔찍한 고대어를 뱉으며 우리가 숨은 숲속으로 뛰어들었고, 등에 차고 있던 방패를 꺼내 들거나 창을 들고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아이리스가 이들에게 포효하며 겁을 준다.

    용으로 완전히 모습을 바꾼 아이리스를 보며 공포감을 느끼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들은 자신의 목숨보다 침입자를 제거하는 것이 우선인 미친놈들이니까!

    ―.

    거대한 날갯짓으로 인하여 나무에 붙은 잎들이 사방을 헤치며 흩어졌고, 나비 부족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강력한 풍압을 막기 바빴다.

    “아이리스, 어서 절벽으로 나가자!”

    『보랏빛의 눈을 가진 인간이나 꽉 잡거라. 임자야!』

    절벽 쪽으로 아이리스가 날아오르자, 오천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나비 부족의 시선이 몽땅 우리에게 향했다. 하물며 ‘카라카!’를 외치는 소리가 더욱 격렬해진다. (복습 : 카라카 = 죽여 버려)

    “베를리, 놓치지 않게 꽉 잡아!”

    “네! 걱정하지 마세요!”

    천공을 향해 솟아오르는 폭포, 그 방향을 따라 거세게 이동하니, 부유하는 구왕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지면과 멀어져 새끼손톱보다 작아진 나비 부족의 동태가 수상하다.

    ‘방패를 꺼내 들었어, 뭘 하려고?’

    방패는 분명 공격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던가, 나비 부족은 이를 서프보드처럼 응용하여 폭포를 타고 빠른 속력으로 치솟았다.

    ‘저 녀석들은 진짜 미친놈들이 맞아!’

    한 손에는 창을 들어 공격을 가할 태세가 준비되어 있다. 폭포와 멀어지기 시작하니 이들은 창을 우리에게 던지기 시작했고, 검으로 그것을 받아치며 아이리스의 비행을 돕는다.

    “마력 결계를 펼치겠습니다!”

    “그런 것도 할 줄 알다니, 대단한데.”

    “어릴 적부터, 꾸준히 연마했으니까요!”

    베를리는 마력을 소모하여 거대한 마력 방패를 형성했고 아이리스가 구왕에게 접촉할 때까지 나비 부족이 던지는 창을 막는 데 집중했다.

    ‘조금만 더!’

    공물을 실은 마차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폭포 끝점에서 벗어나더니 구왕의 등으로 떨어진다.

    저렇게 떨어지면 공물이 죄다 망가질 법도 한데 영점을 어찌나 잘 맞췄는지 거대한 호수로 하나둘씩 떨어진다.

    폭포와 구왕이 멀어진 탓에 나비 부족 녀석들도 자포자기하며 아래로 떨어졌고, 와중에도 ‘카라카!’를 외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다음에 저들과 만나는 일이 있더라도 좋은 인연이 되기는 글렀다.

    “임자야, 나비 부족은!”

    “전부 내려갔어, 지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살아있으려나.”

    “굉장해….”

    “베를리?”

    거센 바람에 의해 후드가 벗겨지고 베를리의 눈이 드러난다. 보랏빛의 눈. 아무리 보아도 마녀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미지의 비보를 담은 듯했다.

    아름답다는 말을 쉽게 하는 편은 아닌데, 마치 블러드럼의 하늘과 유사하다.

    따지고 보면 용에 올라탔다는 것도 아주 놀라운 일. 난생 겪어보지 못한 절경을 용의 등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그것도 고고학자조차 자세히 보지 못했다던 구왕을 눈에 담고 있다.

    “블러드럼이라고 들어봤나 몰라.”

    “첼로니아 대제국의 자치령 말인가요?”

    “델타 3세가 자녀 교육은 확실히 했나 보군.”

    “아하하, 그 정도 사회교육은 아무나 받고 자란답니다.”

    “네 눈 말이야. 블러드럼을 빼다 박았다고나 할까.”

    “그래봤자…. 마녀의 눈인걸요.”

    “이제부터 그게 아니란 걸 증명해야지.”

    “네, 저를 두 번째 혁명이라고 말해줬던 아네스를 위해서라도.”

    환계의 하늘이자, 부유하는 구왕의 하늘을 날고 있다. 아이나가 정리해줬던 것대로 거대한 생명체 등엔 살아 숨 쉬는 생태계가 존재했고, 최소 델타제국의 크기와 맞먹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거대했다.

    ‘구왕의 섬.’

    등껍질 대신 대륙을 뒤집어쓰고 있는 느낌이다. 드래곤 외에는 전부 열등한 생물이라 일컫는 아이리스가 이 거대한 거북이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이 이해된다.

    『단언컨대 구왕은 지금까지 봐온 생명체 중에서 가장 신비롭고 웅장하다.』

    “맞아, 나도 열린 입을 다무는 게 쉽지 않더라고.”

    “저, 저도요.”

    * * *

    [ 마계 / 마브리우스 산맥 ]

    들끓는 용암이 지옥이다.

    지면이 평면처럼 분명하지 않으며, 산발적으로 튀어나온 땅바닥 사이에서 불꽃이 타닥타닥 튀어 올랐다.

    화마가 주변을 무자비하게 휩쓸고 간 것처럼 주변이 온통 붉은색이다. 저 멀리서 용으로 추측되는 것의 처절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 포효의 주인은 마브리우스 산맥의 주인이자 용의 정점이라는 이름을 가진 붉은 색 개체.

    광란의 날개 ‘레드아르토’였다.

    붉은 용의 주변에는 수많은 용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레드아르토’라는 이름을 갈구했던 야망을 품은 개체들.

    지금은 대장장이가 좋아할 법한 재료로 남아 레드아르토의 발밑에서 그저 썩어 문드러질 뿐이다.

    『광화 때문에 내가 약해졌다 한들.』

    『…레드아르토라는 정점을 상징하는 이 이름은.』

    『너희가 그렇게 쉽게 닿을 수 있는 글자가 아니란다.』

    광화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붉은 용은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오히려 그편이 셀 수 없이 쳐들어오는 타 개체의 난봉에도 허점 없이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양이라고 생각했건만, 마브리우스 산맥에 도착하여 제대로 된 수면을 단 한 번도 취하지 않았던 붉은 용.

    『더는 이곳에 나지 않는구나. 발푸레 나무도.』

    쪽잠이라도 자기 위해 인간형으로 모습을 바꾸고 적당히 숨을 만한 바위 뒤에 몸을 기댄다. 마법 처리가 되어있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아서가 가장 싫어하는 목걸이지만, 렌이 가장 좋아하는 목걸이였다.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보고 싶은걸요, 마스터.’

    ‘드래곤오브 레드아르토 레바테이나 렌’의 속에서 끓어오르는 광기가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다.

    인간을 먹어본 적은 없으나 어쩌면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 아서와 마주할 것을 각오한다.

    그렇게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번만 견디면 앞으로 아서와 떨어질 일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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