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 * *
[ 환계 / 마케롯의 폭포 ]
“임자야 튀, 튀어라!”
“…이 망할 블루드래곤!”
토할 것 같다.
에녹에서 마케롯의 폭포라는 대륙으로 이동하는 데까지 ‘정말, 이렇게 순탄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했다.
그건 지금을 위한 플래그였던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빌어먹을 드래곤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아이리스가 확실하다.
배가 고프다는 이유, 그 망할 이유 하나로 아황 마케롯에게 받치는 공물을 실은 마차를 습격한 푸른 용이다.
그 어떠한 존재 보다 받들어 모시는 신에게 감사의 표시로 건네는 공물을 난데없이 처먹었으니, 바바리안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나비 부족께서 백안을 띄시고 우리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쿠쉬, 카라카!”
“카라카, 카라카!”
분명 저들은 화가 나 있다.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내뱉고 있지만 분명 저들은 화가 단단히 나 있다! 짐승처럼 달려드는 이들을 피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다!
베를리를 업고 뛰지 않았더라면, 델타의 마지막 희망은 어쩌면 마케롯의 공물이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우리를 향해 죽일 기세로 뛰어오고 있다!
“…끄응, 고대어로 우리를 죽이겠다는구나, 임자야.”
“그건 나도 알아!!”
그러니까, 고대어로 ‘쿠쉬’는 ‘잔인하게’라는 뜻이고 ‘카라카’는 ‘죽여 버려’라는 뜻이므로 이를 해석해보자면 ‘잔인하게, 죽여 버려!’와 ‘죽여 버려, 죽여 버려!’가 되겠다.
“투, 투명 마법을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인간 주제에 제법인 소리를 하는군!”
거대한 나무와 수풀 사이를 빠르게 뛰던 중 베를리의 말을 들은 아이리스가 투명 마법을 사용했고, 주변 환경에 맞게 신체가 위장되어 앞서가던 아이리스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나비 부족과 우리들. 서로 간의 거리가 10m가량으로 부딪치거나 강한 소리만 내지 않는다면 들킬 염려는 없다.
이에 따라오던 나비 부족은 의아한 행동을 보이며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제길, 저 자식들 코까지 좋으면 어쩌란 거야.’
업고 있던 베를리 쪽에서 ‘퐁’이라는 소리와 함께 유리병 같은 것으로부터 뚜껑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나비 부족은 조금씩 우리와 거리가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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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살았어, 뭘 한 거야?”
“…황실에서 빠져나올 때, 깁슨이 주었던 위장 향수에요.”
“위장 향수라…. 그런 건 처음 들어보는데.”
“이제는 공병이 되어버려서, 더는 사용할 수 없지만요.”
나비 부족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이 거대한 숲속에 잠깐이나마 숨기로 했다. 절경이라면 절경인 이 숲은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서 가장 웅장하며 근사하다.
조용히 숲 바닥에 누워 숨을 고르다가, 높게 솟아오른 빽빽한 나무들이 아이리스가 드래곤이 되어도 나비 부족이 찾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그랬다간 마케롯의 폭포에 사는 모든 나비 부족이 우리에게 달려들지도….
게다가 이 점은 변함이 없는데 아이리스가 계속해서 ‘용으로 변하여 저 미개한 종족들을 몰살시키면 어떻겠는가.’라는 소리를 해댔고, 아이리스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말했다.
“…미친 용아, 우리는 아황에게 부탁을 하러 가는 거지, 협박하러 가는 게 아니라고. 여길 쑥대밭으로 만들어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강압적으로 나간다면 제아무리 아황이라도 꼬리를 내릴 것이다. 임자가 너무 평화로운 방법을 고집하니까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어버렸잖느냐!”
“마케롯은 환계를 창조한 생명체인 거 몰라?! 제아무리 네가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요, 내 눈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라 최대한 사려야 한다고요!”
“흥, 짐이 렌에게 패배했다고 해서 임자는 짐을 너무나도 약하게 생각하는군. 지식을 탐구하는 용이긴 하나, 어디서 무시를 받을 만큼 블루아르헨 일족은 약하지 않다!”
“응, 너희 선조 용살자한테 맞고 뒤짐.”
“…뭐, 뭐, 뭣! 그럼 임자는….”
뭐라고 바락바락 대들어야 할 텐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베를리가 내게 ‘아, 아서…. 아이리스 님이.’라며 말을 걸었다.
감고 있던 눈을 떠보니 녀석이 눈물을 머금으며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내 ‘흐에엥!’하는 소리와 함께 땅을 치며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푸른 용.
바닥을 어찌나 강하게 치는지 마케롯의 폭포가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듯했다.
우리 위치가 나비 부족에게 들통날까 봐 아이리스에게 달려가 녀석의 입을 강하게 틀어막는다.
녀석의 입을 가린 손에 녀석의 눈물이 떨어졌다. 뭐랄까 세상에서 가장 서운한 드래곤처럼 우네.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손을 뗄 수가 없다. 미안.
“흐어업, 해 호헷히호 했허훅호, 힘하흔하호 홍헝헝히하”
“뭐, 뭐라는 거야.”
“흐어엉, 내 모멧티도 뺏어 먹고, 임자는 바보 똥 멍청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알, 알겠어. 미안해 아이리스. 돌아가면 맛있는 거 만들어 줄 테니까!”
“정, 정말인가. 임자.”
“으, 응 약속할게. 내가 미안했어.”
“짐, 짐을 위한 특별 음식인가?”
“…그, 그래. 음식의 이, 이름 앞에 아이리스를 붙여주겠노라! 하하하!”
“크흠, 지고하신 용이 이렇게 계속 울고 있을 순 없으니. 알겠다. 임자.”
‘이 새끼가….’
공복을 채우기 위해 숲을 돌아다니며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 먹거나, 돌아다니는 작은 짐승을 잡아다가 구워 먹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날이 저물어 점차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날이 밝을 때까지 휴식을 취한 다음 움직이는 것으로 계획을 정리한다.
“임자야, 멀리서 무언가가 들리는구나.”
“귀도 밝다. 나는 전혀 안 들리는데.”
“저, 저기에 불빛이.”
베를리가 가리킨 곳에서 빛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숲 사이로 넓게 열린 길.
마치 울창한 숲과 대조되는 것처럼 마차가 다닐 법한 길이었다. 그곳에서 작은 불빛이 줄을 섰다.
‘바퀴가 구르는 소리…. 아까 공물을 싣던 마차인가.’
아이리스가 공물을 훔쳐 먹었던 마차보다 거대한 크기의 바퀴인 듯했다. 지면을 울리는 강도나 숲 끝까지 울리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임자야… 저건.”
“그래, 아이나가 말했던 공물 행렬인가 보군.”
나비 부족이 줄을 지어 움직인다. 그 중앙에 거대한 마차가 공물을 싣고 땅을 구르고 있다. 그 주변으로 횃불이 허공에 셀 수 없이 떠다녔다.
마케롯 폭포대륙의 모든 나비 부족이 모여서 이 행렬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우리가 찾고 있던 공물 행렬이 분명하다.
이곳까지 숨어든 가장 큰 이유. 백귀야행과 유사한 나비 부족의 대이동.
그 공물 행렬을 쫓아가면 ‘환상절벽’이라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
“임자, 이것을 따라가면…. ‘구왕’이 나타난다는 폭포가!”
“아이리스, 다시 투명 마법을 사용해야겠어.”
“월키스의 서적에서 읽었던, 그 구왕을 볼 수 있는 것인가!”
본 대륙에 거주하는 나비 부족이 모두 모여서 거대한 마차에다 공물을 탑같이 쌓은 다음 ‘환상절벽’으로 이동한다.
아이나가 건네준 종이에 적혀진바, 제단으로 향하기 위함이다.
공물을 실은 마차를 환상절벽 끝에 두어 대축제를 벌이는데, 제단을 둘러싸 날이 밝을 때까지 춤을 춘다. 일종의 환계의 평화를 유지하는 아황 마케롯을 위한 잔치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날이 밝아 해가 떠오를 때.
절벽을 타고 강하게 내리치는 폭포가 역류하여 허공에 분사된다. 이후 구름을 뚫고 ‘부유하는 구왕’이 그 위를 지나간다고.
절벽 끝으로 마차를 밀어 떨어뜨리면, 역류하는 폭포의 힘으로 인하여 부유하는 구왕의 등에 공물이 도달한다.
그렇게 매해 두 번 나비 부족은 마케롯에게 감사를 담아 공물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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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나의 의뢰 관련 정보조사자료, 고고학자 월키스의 서적 『세계의 유산』 中, 66장 ‘천공을 떠도는 유산’에서 발췌.
[ 부유 거북 ‘구왕(舊王)’]
감히 고대(ancient)라는 단어를 ‘종족’으로 개체명 앞에 붙일 수 있는 몇 없는 생명체 중 하나. 거대하다는 말은 구왕(舊王)에 있어 표현상 맞지 않으니, 하나의 대륙을 필적할 크기라 설명할 수 있다.
구왕(舊王)은 ‘환계’의 천공을 떠도는 부유 거북으로 아득히 오래전 창세기에 가깝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생명체이다. 아칸 전체를 포함하여 유일하게 자연을 잉태한 특이 개체로 학계에 기록이 된다.
*이 구왕은 ‘마케롯의 움직이는 섬’이라고도 부르는데, 아황 마케롯이 존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디까지 월키스의 서적을 통하여 추출한 사실이므로 확실하진 않으나, 정령왕의 증언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곳에 아황이 있을 것이다.
―아이나의 의뢰 관련 정보조사자료, 고고학자 월키스의 서적 『세계의 유산』 中, 67장 ‘유산이 탄생시킨 섬’에서 발췌.
[ ‘구왕(舊王)’의 섬 ]
고대부터 존재해 있던 구왕(舊王)의 등껍질 위에 잉태된 거대한 자연. 살아 움직이는 섬. 허공을 떠도는 유적이라 불린다.
암흑지대에서도 그 거대한 육체를 보존했던 위대한 섬은 외부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 마법으로 감추어진 세계의 유산이기도 하다.
한 대륙을 필적하는 크기의 구왕. 영양소는 밝혀진 바가 없으나, 분명한 것은 천공에 떠도는 마력을 흡수하여 주 원동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고학자들은 연구를 위해 구왕(舊王)의 섬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이곳에 사는 ‘마케롯의 수호자’로 인해 진입이 어려웠다.
―아이나의 의뢰 관련 정보조사자료, 고고학자 월키스의 서적 『세계의 유산』 中, 68장 ‘유산과 아황을 지키는 자들’에서 발췌.
[ 마케롯의 수호자 ]
이들은 구왕(舊王)의 섬을 수호하는 강력한 수인 집단이다. 얼마 남지 않은 커다란 자연의 보고인 구왕(舊王)을 지키는 이들은 엄격한 규율과 강인한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구왕의 섬에서 태어난 종족. 외부인은 절대적으로 마케롯의 수호자가 될 수 없다. 그들의 유대는 조직 안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그들의 일생은 살아 움직이는 섬에 모든 생명체와 윤리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 마케롯의 쌍생아, 광귀(光鬼) ]
마케롯의 피가 이어진 두 마리의 늑대. 그 크기는 작은 용과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족으로 보행할 때는 성체의 용과 비슷한 크기라고 한다.
부유하는 구왕에 존재하는 아황의 날카로운 송곳니. 두 마리의 늑대를 보호하는 질긴 가죽은 드래곤 슬레이어조차 베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용이라는 개체와 필적하는 것이 아니냐는 설이 있다.
아황의 모습을 보기 위해 구왕의 섬까지 발을 디딘 상급모험가의 최후는 대부분 광귀(光鬼)에게 맞이한다고 한다.
*광귀는 범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기에 그것과 마주한 자는 대부분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른 채 사지가 찢겨 시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