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32화 (132/222)
  • 132화

    * * *

    ‘장기 휴무’라는 글씨가 적힌 팻말을 마당에 박았다. 물론 잔디가 상하지 않도록 배치했으니 문제는 없다.

    보통 휴무라는 글자를 보면 게거품을 물고 ‘어째서’를 외쳤는데, 요즘엔 ‘아서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서 그럴 거야.’라는 식으로 배려가 늘고 있는 손님들이다.

    더군다나 델타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서가 해결해 주려나 봐.’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이들이 대다수였고.

    프리실라는 란베르크와 합류하여 델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당연히 정교의 일원들이나 그중에서도 유난스러운 전투성법자들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아, 아… 귀찮은 일은 피하고 싶었는데.’

    ‘피할 수 없는 귀찮은 일과 마주할 줄이야.’

    ‘그래도 모두가 힘내고 있으니, 뭐라도 해야겠지.’

    첫 번째 관문은 ‘어떤 방법으로 델타를 빠져나가나’였는데, 솔직하게 이렇다 할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이리스의 말대로 미친 척 국문을 단숨에 뚫어버리자는 의견을 따를 수 없다.

    ‘단숨에 뚫어버리고, 단숨에 범죄자가 돼서 온 세상에 알려지겠지.’

    국문을 뚫는 것이야 뭐가 어려울까.

    다만 주목이 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이그리스 십자회가 총출동하여 우리를 추적할지도 모르는 부분이고.

    최대한 몰래 빠져나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아이리스가 드래곤이 되어 투명 마법을 사용한 뒤에 불가시 상태로 날아서 탈출하는 방법이 있었다.

    순찰을 마치고 여관에 들른 란베르크가 했던 말이 여기서 핵심으로. ‘최대 계엄령이 엄포 되고 난 뒤, 대공을 순찰하는 정교의 부유선이 여럿 생겼습니다. 선생님.’

    사실상 투명 마법을 사용한 아이리스로 대공을 향해 탈출하는 것이 유일한 수단이며, 말고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쟤네가 사용하는 마력 감지 장치는 워낙 예민하니까.

    물론 마안의 뭉치를 개안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랬다간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장님이 되고 말 것이다.

    ‘베를리의 보랏빛 눈을 확인하기 위해서 썼던 마안의 페널티가 아직 지속하고 있으니…. 정말 필요할 때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유일한 방법에 대한 문제점. 드래곤이 마법을 지속형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대공에서 감시하는 정교의 부유선이 이를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는 것.

    란베르크도 이를 알았던지 아이리스의 심장을 언급했다. ‘드래곤은 자신의 심장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렌만 가능했던 거야.’라고 이야기하자 ‘짐도 가능하다!’라며 버럭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치며 성을 내는 아이리스다.

    “너희들이 심장을 멈추고, 내 방에 몰래 들어오는 정도의 시간은 약 4초. 여기서 델타를 단숨에 빠져나가는데 최소 1분, 가능하더라도 네가 멀쩡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아이리스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정도도 임자에게 해주지 못한다면, 나는 이곳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거늘.’이라고 말이다.

    나는 ‘풉’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리스에게 손가락질하며 ‘청소나 제대로 하지, 쓸데없이 분위기 잡고 그래.’라고는 폭소를 선물했다.

    지켜보고 있던 여관 일동도 ‘그래, 저번 대청소 때는 방에서 몰래 농땡이 부렸다던데. 아하하!’라며 덧붙였고.

    “뭐, 뭣!”

    “해보자. 내가 미세하게 마력을 보충하면 어떻게든 될 거다.”

    “…아, 암! 짐을 믿어 보아라!”

    “혹여나 죽게 되면, 브라운 아저씨에게 가져다줄 거고.”

    “왜 하필 브라운인가, 임자.”

    “대장장이가 침을 줄줄 흘리는 재료가 드래곤 본이거든.”

    “…?”

    투명 마법을 사용한 뒤에 심장을 멈추어 비행한다. 이미 적용된 마법은 처음 지불했던 마력만으로 유지, 나는 그 위에 마력을 감출 수 있는 마법을 중첩한다.

    ‘아이리스에게 마력을 보충해줄 때, 적당히 마력 유동을 조절하면….’

    ‘미세한 마력을 숨기는 것이니, 마안의 뭉치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정교의 마력 감지 장치가 뛰어나다고 한들, 날아다니는 새를 보며 ‘미친, 대공을 이용한 탈주가 발생했다!’고 하진 않을 테니까.

    “아, 장난이잖아. 아이리스. 표정 풀어.”

    * * *

    [ 대의의 신전 ]

    데크에던, 황제의 성채 아래에는 사계를 휘어잡을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자들과 새롭게 탄생한 교황이 자리하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마커스는 대의의 신전에서 가장 거대한 왕좌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 사냥꾼의 탈을 벗고 야망을 품은 사내가 비르테리아에게 걸어간다.

    “성하, 정보에 따르면 붉은 용의 광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마브리우스 산맥으로 향한 것 같습니다. 출처가 확실하니 준비가 되는 대로 용살자를 보내주시기를.”

    “좋다. 그대가 말한 10명의 용살자는 이미 준비되어있으니.”

    비르테리아의 호출이 떨어지자 거대한 왕좌 주변으로 정교의 십자가가 그려진 백금의 갑주를 두른 이들이 나타났다.

    사계의 모든 것을 아울러도 이보다 거룩한 모습을 지닌 전사들은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만족하는가, 마커스.”

    “…이그리스 십자회. 만족을 넘어 경외를 표합니다. 성하.”

    붉은 용을 토벌하기 위해 준비된 10명의 용살자들은 ‘아이올레드 카미드헬러’를 포함하여 전투 추기경으로 이루어진 정교의 최대전력 이그리스 십자회였다.

    이그리스 십자회.

    단언컨대 그중에서도 십자(十字)라고 불리는 10명의 전투 추기경은 그 어느 대륙에 떨어뜨려 놓아도 최강의 위치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잔혹하고도 무정한 심판자, 베일에 싸여있는 거룩한 전사들을 마주하고 있던 마커스는 긴장감을 숨기기 위해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드디어 산맥에서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

    “시간을 주신다면, 빠르게 시추하여 성하에게 받치겠나이다.”

    “서두르도록 하라. 사계가 우리 발밑에 놓여있을 것이다.”

    대의의 신전에 놓인 10개의 왕좌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비르테리아의 모든 계획이 정해진 시나리오처럼 순탄하게 진행됨을 알려주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제 부하로부터 아네스가 마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았습니다. 하물며 오래전부터 마녀를 숨겨왔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성하.”

    “마녀를 숨긴 죄는 그 어떠한 죄질보다 사악하기 그지없으니, 부디 비르테리아의 부활과 성하의 모욕을 지울 무자비한 심판을 내려주시옵소서.”

    “늑대의 우두머리 노튼 아네스. 그 시체를 보관한 뒤에 매년 비르테리아의 기념일을 맞이하여 부관참시를 시행하소서!”

    비르테리아는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커스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과거였다. 온갖 모욕감을 느끼게 만든 아네스가 떠오른 것이다.

    ‘먼저 아네스와 관련된 기사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에이덴이었나. 그자를 찾아 고문하라.’ 그 음흉한 웃음과 함께 흘러나온 말은 심히 잔혹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모르딕을 들여보내도록.’

    이어서 대의의 신전으로 사내 한 명이 터벅터벅 걸어 들어온다. 십자회와 비슷한 전력을 가졌으리라 추측되는 묵직한 기운이 사내로부터 사방에 퍼졌다.

    모르딕 아젤.

    철혈의 검을 이끄는 수장이자, 사내가 되어 아젤 제국을 이끌 다음 통치자.

    누구보다 직관적인 눈빛을 지닌 모르딕의 동공은 흐렸다. 마치 영혼이 도망간 껍데기처럼.

    * * *

    “가자, 아이리스!”

    “진짜 …요, 용이라니요!”

    “얼른 타 베를리!”

    베를리는 난생처음 보는 드래곤에 의해서 겁을 잔뜩 먹었으나, 아이리스라는 사실을 조금씩 믿게 되며 조심스레 그 위로 올라탄다. 아이리스는 콧방귀를 끼며 입을 열었다.

    『특별히 태워주는 것이니라.』

    “고, 고맙습니다.”

    델타의 중심에서 상당히 멀다고 할 수 있는 용사의 쉼터, 정교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나머지 근방까지 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더 늦기 전에 출발해야만 했다.

    허름한 로브를 착용하고 있던 베를리는 후드를 더욱더 강하게 뒤집어쓴 뒤에 아이리스의 거대한 등에다 손바닥을 놓았다.

    여관 일동은 이들의 배웅을 위해 묵묵히 출발을 지켜보고 있다.

    “단장, 제국은 우리가 지키고 있겠어.”

    “프리실라, 너무 무리하지 말고, 조심하세요.”

    “하하, 단장이 걱정해주니 고마운 걸 그래.”

    “다시 란베르크와 합류할 생각이죠?”

    “응, 길드원들도 몸이 근질거려 참질 못하겠다고 하더군.”

    “…되도록 싸우지 말고, 괜히 일 만들지 말고요.”

    아이리스가 투명 마법을 사용한다. 지상에서 드래곤의 마력 유동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여관 일동이 도왔고, 서서히 아이리스의 얼굴 끝부터 투명화가 시작되더니 베를리와 아서에게 그 영향이 중첩된다.

    별안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마당이 되어버렸고, 그 어떠한 마력 유동도 잡히지 않는다. 이 정도면 대공을 순찰하는 정교의 부유선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

    별안간 마당과 이어진 드넓은 초원의 풀들이 강하게 눕혀졌다가 일어선다.

    이들의 얼굴에도 그 찬바람이 닿았기에 용이 흘리고 간 산들바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장, 조심히 다녀와.’

    여관에 있던 이들은 아서와 공주가 타고 있는 용이 지상에서 멀어졌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 * *

    ―아이나의 의뢰 관련 정보조사자료, ‘마케롯과 나비 부족’ 中

    아황 ‘마케롯’은 환계의 왕으로 고대종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생명체이다. 학자들에게는 생태계 그 자체로 비유되기도 하며, 환계를 구축한 생명체로 계의 심장 역할을 한다.

    정확하게 마케롯이 위치한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으나, 학자들은 ‘마케롯의 움직이는 요새’라 불리는 ‘부유하는 구왕’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더했다.

    *정령왕의 증언에 따르면 확실히 ‘부유하는 구왕’에서 여가를 보내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정보가 상당히 적은 녀석이라 자신의 증언이 웬만한 학자보다 잘 들어맞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가졌다.

    ‘나비 부족’

    이들은 환계에서 태어난 이들로 환계의 생태계 중 관리자의 역할을 한다. 마케롯을 환계의 신으로 숭배하고 있으며, 그 뜻에 따라 환계의 특정 지역을 수호하는 역할을 함께해왔다.

    이 신비로운 세계를 수호하기 위한 나비 부족이 가진 규율에 대해서 고대인들이 알 리가 만무하다. 그들이 죽어, 죽어 보존한 것이 지금의 정보이기도 하다.

    환계에서 뭣도 모르고 나비 부족에게 죽어가는 모험가들이 줄을 섰을 때, 그 시기에는 환계를 ‘지옥의 입구’라고도 불렀을 정도로 고대인들에게 위험한 곳이었다.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지역은 나비 부족에 의해서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사계의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아무리 강하더라고 하더라도 수호지역에 출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개체의 전투력 또한 외부에서 기록한 바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전투등급 A 이상이라 분류하고 있으니 함부로 덤벼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것과 같다.

    인간이 환계에 임시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에녹’이라 불리는 작은 대륙이 있는데, 아와의 황금 광산을 품은 에녹 산맥이 위치한 대륙이다.

    이곳은 위대한 정령사 ‘크리스 레노브’의 노력으로 인하여 인류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곳이다. 로아에 말에 따르면 오래전 정령계와 접점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허락된 대륙 에녹을 지나 ‘마케롯의 폭포’라는 이름을 가진 대륙에 도착하면 크기를 잴 수 없는 거대한 폭포가 존재하는데, 서적에는 그 폭포를 통하여 부유하는 구왕으로 향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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