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131화 (131/222)
  • 131화

    * * *

    [ 페지르 최대 계엄령 실시, 1일 차 ]

    델타는 정교로 인하여 최대 계엄령이 선포된다. 그것은 델타 3세의 의지가 아니었으나, 모든 것을 통제당해야 했던 델타의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제국의 통치자에게 혀를 차기 바쁘다.

    ‘델타의 마녀가 나타났다.’

    이미 제국 사방으로 퍼져버린 정교의 전문으로 인하여 국민들은 공황에 빠진 지 오래였고, 누구 빼놓을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은 델타를 떠나려고 했다.

    마녀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 정도의 의미였다. 절망을 부활시키는 목적을 가진 암흑마도사들이 받드는 인외의 존재. 마녀가 제국에 있다는 것은 곧 절망이 나타날 징조로 보기도 했다.

    문제는 제국의 국문을 단단히 막고 있는 정교의 일원들로 인하여, 피난을 하는 것도 무리를 넘어선 불가능에 가깝다.

    ‘임시주둔 막사.’

    정교의 일원들이 델타에 건축한 교회 이외에, 국문 주변을 둘러싸 구축된 임시진영을 의미한다. 정교의 일원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혹은 검문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는데.

    검문소라고 적혀있는 막사에는 유난히 귀족들의 괴성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들뿐이랴, 델타를 빠져나가려는 모든 국민들의 아우성은 그곳에 담겨있을 것이다.

    타 제국도 정교로 인하여 검문을 하고 있었기에 델타의 국민이 혹여 델타를 빠져나가 타 제국으로 이동하여도,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다.

    하물며 타 제국에서 델타의 국민이라는 것이 들켰다가는 임시주둔 막사로 끌려가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페지르에 끌려가 비인도적인 잔인한 형벌을 받을지도 모르는 부분이다.

    게다가 이름 있는 귀족의 경우에는 더욱 막대한 돈을 들여 외부로 나가려고 했기 때문에 정교의 통제가 더욱 강해지고 마는데.

    ‘이렇게 어이없이 죽을 바에, 델타를 포기하겠어!’

    그런 귀족들이 정교에 뇌물을 주다가 잡혀 임시주둔 막사로 끌려가 숨을 거두기 일보 직전까지 맞아 터진 것이 부지기수였다.

    그중 대표적인 예로 ‘돈으로 못 하는 것은 없다’라는 가훈의 하거먼이 있었다.

    이러한 좋은 예시를 보며 귀족들은 제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했기에 그 이상 임시주둔 막사로 끌려가는 일이 발생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철장 안의 삶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정교 측에서는 마녀가 다른 곳으로 도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델타의 국민을 외부로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네스로 인하여 델타에는 마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확실히 알게 된 나로서는, 의미 없는 공포감을 느끼며 하루를 버티는 국민들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델타에는 마녀가 없어요. 모든 것은 정교의 계략입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사람들이 공항이 온 상태에서 내 말을 믿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렇게 정교는 완전한 통제를 위하여 델타에 최대 계엄령을 내렸고, 저녁이 되면 국민들이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지경까지 몰아세운다.

    * * *

    [ 서대륙 델타 / 북문 ]

    정교의 전투성법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혼절에 가까운 국민을 계속해서 밟고 있다. 국민의 머리에서 짙은 선혈이 흘렀다.

    전투성법자들이 검이나 메이스 같은 무기를 쥐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만, 거기까지.”

    “…넌 뭐야.”

    전투성법자들은 자신들에게 멈추라는 명령을 내린 한 사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없는 눈빛이 다분했다.

    곧 미간을 찌푸린 다음 사내에게 달려들 기세가 충만하다.

    “란베르크, 평범한 검객이지.”

    “평범한 검객 나리가 돌아버리셨군.”

    “궁금해서 묻는 건데, 정교의 가르침은 그러하던가.”

    “짐승 취급을 당해야 그 나불거리는 주둥아리를 닫겠어.”

    “그래서, 선량한 국민을 저렇게 만든 거냐고 물었다.”

    정교의 수칙.

    전투성법자는 일반인들을 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지나가는 잡배처럼 국민을 밟으며 사악한 웃음을 짓는 자들에게 정의란 가르침은 거리가 멀다.

    전투성법자들의 공식적인 평균 전투등급은 B. 창가에서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검객 하나가 10명이 넘는 전투성법자를 감당하는 것은 무리라며 고개를 흔든다.

    여러 가지 신성 기도문을 외우는 전투성법자들, 이들은 당연하게도 여럿이 란베르크를 상대할 심산이었다. 다양한 기적이 육체에 중첩되어 찬란한 빛을 뿜어댄다.

    ―.

    그 축복을 두른 무기가 모조리 끊어져 나간다.

    란베르크는 여전히 같은 곳에 서 있었다. 다만 아까와 다르게 흉흉한 마력이 검에 집중되어있다.

    마치 마검(魔劍)처럼. 그 주변으로 푸른빛의 마력 티끌들이 수없이 흩날린다.

    ―.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억!’ 소리와 함께 모든 전투성법자들이 하나, 둘 백안을 띄며 바닥에 쓰러진다. 피 한 방울 내지 않은 채로 불과 5초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전투성법자들 중 란베르크와 대화를 했던 이가 혼미한 정신으로 기어간다.

    란베르크는 천천히 그것을 따라갔다. 그의 눈에는 그저 기어가는 벌레처럼 보인다.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는데.”

    그리고 전투성법자의 얼굴을 짓밟는다. 란베르크의 신발 바닥에는 쇠붙이를 막기 위한 철판이 덧대어 있었기에,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으로 기절과 깨어남을 반복하며 괴성을 지르는 전투성법자였다.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잖아.”

    “으… 으윽, 으윽… 흑!”

    “아니, 아니야.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니까.”

    이내 전투성법자는 완전히 게거품을 물며 혼절했고, 밟고 있던 다리를 들어 유유히 돌아서는 란베르크.

    쓰러진 국민에게 다가가 간단한 회복마법을 사용하여 응급 처치를 했다.

    두려움으로 인하여 창가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쓰러진 국민을 일으켜 세웠고, ‘자네 같은 젊은이가 제국에 있어서 다행이야.’라며 란베르크에게 감사를 표했다.

    ‘후.’

    란베르크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 사실 전투성법자와의 마찰 이전부터 고민했던 부분으로, 최근 아서와 했던 모의전투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아서는 란베르크의 일격을 예전처럼 가볍게 막지 못했다.

    심지어 그중에 다수가 란베르크의 승리였다. 곧 그 말은 현재 델타에서 란베르크보다 강한 존재는 없다는 말.

    ‘선생님에게 많이 강해졌다는 말을 들었지.’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강해진 것이 아니라 아서가 약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교의 수상한 움직임 때문에 더욱 큰일을 해야 할 스승에 대한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 * *

    [ 서대륙 델타 / 용사의 쉼터 ]

    “있잖아, 베를리.”

    “네, 아서.”

    “야시장에서 내 음식을 떨군 게 너였구나.”

    “그, 그건! …죄송합니다.”

    “용맹했던 깁슨 기사를 애도하지.”

    “….”

    아네스가 자신의 두 번째 혁명이라는 말과 함께 맡기고 간 ‘델타 베를리’는 제국을 이끌 통치자의 피를 가진 황제의 직계며, 심지어 보랏빛 눈을 가지고 있다.

    보랏빛 눈이라면 마녀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그 어떠한 개체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동공의 색. 그 눈을 마주하게 되면 사악한 마력이 손끝까지 전달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이 없어.’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범주 내에서 그렇다는 점이지만, 이 보랏빛 눈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말 것도 없이 명백하게 마녀의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베를리의 보랏빛 눈은 조금 달랐다.

    사악한 마력은커녕 오히려 미세한 마력 유동조차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의문이다.

    이를테면 색만 다르지 일반적인 눈과 다를 것이 없다.

    ‘임자야, 이건 마녀의 눈이 아니다.’

    ‘색은 분명히 마녀의 것이긴 하다만….’

    그렇게 박식하다던 아이리스도 두 손을 들며 항복을 선언한다.

    우리는 당장이라도 제국을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목적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에게 부탁하네, 제국의 수호와 증거 수집은 내가 하도록 하지.’

    아네스는 델타의 늑대들과 드래곤 길드의 인원으로 제국에서 잡배처럼 돌아다니는 정교의 비판받아야 마땅할 행동들을 막고, 그 증거를 모은다고 했다.

    ‘베를리의 눈을 원래대로 되돌려야만 제국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

    아네스가 했던 말이 더욱 관자놀이를 아프게 했다. ‘마녀 토벌’이라는 목적으로 델타를 파멸시키거나 정복하려고 한다면, 마녀가 아닌 것을 증명하면 그만이라고.

    마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교가 강압적으로 제국을 파멸하려고 한다면 사계도 바보처럼 방관하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증거도 충분하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내게 넘어온 부탁은 심각하다.

    베를리의 눈을 원래대로 되돌려 달라고, 남대륙에서 모멧티를 잡는 의뢰로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난이도가 아닐까 싶은데.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요, 아네스.

    [ 시야에 마법이 포착되지 않음 ]

    고통을 무릅쓰고 마안의 뭉치를 개안하여 베를리의 보랏빛 눈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안의 뭉치조차 포착할 수 없는 마법이라는데, 방도가 있나.

    아니 마법 자체가 아니라는데.

    ‘임자야, 마법이 아닐 수도 있지 않겠느냐.’

    아이리스는 몹시 복잡한 유전적 생태계 뭐시기를 설명하며, 본래부터 멜라닌 색소로 인하여 후천적으로 동공의 색이 변질할 수 있다나 뭐라나.

    어쨌든 자신의 지식을 마음껏 뽐내고 난 뒤에는 한숨을 쉬더니 ‘그것도 아닌 듯하구나.’라며 아쉬움을 덧붙였다.

    …전혀 아쉬워 보이지 않았다. 지식을 마음껏 표출해서 상당히 만족한 표정이다.

    “믿을 만한 구석의 사람은 아니지만, 어쩌면 네가 가진 눈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줄지도 몰라, 그 녀석을 불러보려고 해.”

    “좋아요. 아네스가 믿는 당신의 의견이라면…. 음? 믿을 만한 구석의 사람이 아니라는 건 무슨 뜻이죠?”

    .

    .

    .

    “허허, 그렇군. 그래서 이 정령왕을.”

    “빨리 봐주기나 봐줘요.”

    “하하, 아서는 성질이 급하다니까.”

    “지금 이그리스 십자회가 쫓고 있다는데!”

    그렇다. 정령왕을 부른 것이었다.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어서 네가 무슨 댓바람으로 정령왕에게 부탁을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만. 그래도 사계에서 손꼽힐 만큼 오래 살아온 존재가 아니던가.

    정령왕은 베를리의 눈을 계속해서 바라보더니 신음을 토해냈다.

    뭔가 ‘끙’하는 느낌에다가 금방이라도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이야기할 것만 같다.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죠.”

    “…기다려보게.”

    보랏빛 눈을 워낙 유심히 쳐다보던 터라, 베를리도 약간 부담스러운지 어깨를 주춤하거나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그 옆에 서 있던 나는 고개를 흔들며 관자놀이를 누를 수밖에 없다.

    ‘하하, 미안하네. 나도 잘 모르겠어.’라는 말을 뱉는다. 나는 사백안을 뜨며 정령왕의 멱살을 잡을 수밖에 없다.

    이 빌어먹을 거친 숨소리는 덤이고!

    마냥 1+1처럼 함께 온 아와가 기겁을 하더니 ‘정, 정령계의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목숨만큼은 살려 주거라!’며 나를 뜯어말린다.

    “끅, 아, 아서. 이거 좀 놓게나. 이 방면에 아는 자가 있어!”

    “어쭈, 살려고 발악하네. 구라치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 모릅니까.”

    “…구, 구라라는 녀석이 누구인가? 아, 아무튼 거짓말이 아닐세!”

    “알겠으니까, 어서 그 구라를 이야기해보시죠.”

    “…환, 환계로 떠날 채비를 하게, 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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